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뷰를 어디부터 써야할지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모든 문장에 밑줄을 그을 수 있기에 책 그 자체가 나의 리뷰이다. 2018년 트럼프를 까기 위해 제시된 논거들이 2020년 총선 이후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준다. 

 

전체주의 행동을 가리키는 네 가지 주요 신호에 2020년 대한민국과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사람들에 대입해서 쓰다가 모두 지웠다. 강준만처럼. "거의 다 해당"되어서.

 

책에 나온 몇몇 문장들로 리뷰를 대신한다.

지금까지 두 가지 기본적인 규범이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미국사회의 견제와 균혀을 유지해왔다. 그 두 가지 규범이란 정당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mutual tolerantion)과 이해(understanding),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forbearance)를 말한다.

1933년 1월 말 서로 경쟁하던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뭔가 타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회동을 가졌고, 한 가지 합의안을 마련했다. 그것은 대중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아웃사이더 인물인 히틀러를 수상 자리에 앉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히틀러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그의 높은 인기는 어떻게든 이용해야 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를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히틀러와 무솔리니, 차베스 모두 흡사한 여정을 거쳐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그들 모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기술이 있었을뿐만 아니라, 기성 정치인들이 경고신호를 무시하고 권력을 쉽게 넘겨주거나(히틀러와 무솔리니), 혹은 정치 무대에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었기(차베스) 때문에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잠재적 대중선동가는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며, 때로 그들은 대중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경고신호를 인식하고, 이러한 인물들이 권력의 중앙 무대로 올라서지 못하도록 방어한다. 극단주의자나 선동가가 대중의 인기를 얻었을 때 기성 정치인들은 힘을 합쳐 그들을 고립시키고 무력화한다...(중략) 간단하게 말해서 정당은 민주주의의 문지기(gatekeeper)인 셈이다.

포퓰리스트는 기성 정치에 반대한다. 그들은 자신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부패하고 음모를 꾸미는 엘리트 집단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존 정당 체계의 가치를 부정하면서, 기성 정치인들을 비민주적이고 비애국적인 자들로 매도한다.

잠재적 독재자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사회를 지켜준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확고한 의지가 아니라 민주주의 문지기, 다시 말해 미국의 정당 체제였다.

구속력 있는 프라이머리는 분명하게도 더욱 민주적인 방식이었다. 그런데 혹시 ‘지나치게‘ 민주적인 방식은 아닐까? 대선 후보 지명을 오로지 투표자의 손에 맡겨둠으로써 구속력 있는 프라이머리는 정당의 문지기 역할을 약화했고, 동료에 대한 평가 절차를 생략함으로써 아웃사이더에 문을 열어놓았다... (중략) ... 두 유명한 정치학자는 프라이머리가 정당에 충성하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거나 공허한 공약을 해도 잃을 게 없는 극단주의자와 대중선동가의 등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당 문지기의 힘을 위축시킨 또 다른 요인으로 대체 언론, 특히 케이블 뉴스와 소셜 미디어 산업의 성장을 꼽을 수 있다. 과거에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오로지 소수의 주류 언론에 의존해야 했던 반면, 새로운 매체 환경에서는 보다 쉽고 빠르게 인기와 대중적 지지를 끌어모을 수 있게 되었다.

붕괴의 과정은 대개 말로 시작된다. 대중선동가는 비판자를 적이나 체제 전복자, 심지어 테러리스트라며 도발적으로 비난한다.

대부분의 경우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은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시민들 대부분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어쨌든 선거는 주기적으로 실시된다. 야당 정치인은 여전히 의회에서 활동한다. 신문도 그대로 발행된다. 그러나 민주주의 붕괴는 특히 초반에 단편적인 형태로 일어난다. 개별적인 사건만 놓고 본다면 어느 것도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독재자의 시도는 종종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다. 독재자는 의회 승인을 얻고, 대법원으로부터 합법 판결을 받는다. 가령 부패와의 전쟁, 부정선거방지법, 민주주의 의식 개선, 국가 안보 강화와 같은 시도는 대부분 합법저기며, 심지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노력으로 비춰진다.

독재 정권은 종종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혐의로 소송을 함으로써 반정부 성향이 강한 언론을 ‘합법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하게 막는다.

독재 정권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은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독재자는 헌법과 선거 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제도를 바꿈으로써 저항 세력을 약화하고, 경쟁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운동장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종종 공공의 선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다.

선출된 독재자는 심판을 포획하고, 정적을 매수하거나 무력화하고, 게임의 법칙을 바꿈으로써 권력 세계에서 중요하고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한다. 그들의 시도는 언제나 점진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전제주의로의 흐름이 항상 경고등을 울리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민주주의가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뒤늦게 깨닫는다. 그 변화가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민주주의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중요한 아이러니는 민주주의 수호가 때로 민주주의 전복의 명분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를 무한히 이어지는 경기라고 한번 생각해보자. 경기가 이어지려면 선수들은 상대를 완전히 짓밟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처럼 상대를 적대시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 팀이 떠나면 더 이상 경기는 없다. 이 말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 자제하여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워싱턴은 평생에 걸쳐 "권력을 기꺼이 내려놓음으로써 권력을 얻는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중략) 역사가 고든 우드는 이렇게 지적했다. "새로운 공화국을 굳건한 기반 위에 세운 단 한사름을 꼽으라면, 그는 단연코 워싱턴이다."

전쟁으로서 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공화당이 1994년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부터다. 하원 의장이 된 깅리치는 ‘타협 불가‘를 당의 방침으로 정했다. 이는 이념적 순수성을 당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신호로서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승리를 추구하고 자제의 규범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겠다는 의미였다. - P191

‘해머(Hammer)‘라는 별명의 딜레이는 깅리치와 함께 무자비한 당파 공격을 추구했다. 그리고 공화당의 K. 스트리트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프로젝트는 공화당 사람들을 로비업체에 집어넣고, 공화당 인사를 지지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입법 활동을 마무리한 성과에 따라 로비스트에게 보상을 하는 방안이었다. 공화당 하원 의원 크리스 셰이드는 딜레이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했다. "불법만 아니면 뭐든 괜찮다."

부시는 ‘분열이 아닌 통합‘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지만, 당파 간 전쟁은 그의 임기 8년 동안에 더욱 심화되었다. 부시의 취암에 앞서 딜레이는 그 대통령 당선자에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조언을 전했다. "민주당과 협력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통합이나 분열의 지도자라는 말도 이제 아무 의미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는 관용과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아니라 극단주의와 정쟁의 시대로 흘렀다. 극단적인 보수 진영의 저자와 라디오 및 TV 평론가, 블로거들은 오바마의 대통령으로서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티파티(Tea Party)는 오바마 취임 후 몇 주만에 조직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더 이상 이념적 ‘빅텐트‘가 아니었다. 민주당 내 보수주의 인사, 그리고 공화당 내 진보주의 인사가 사라졌고, 그에 따라 정당 간 공통분모도 줄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판에 해당하는 법 집행, 정보, 윤리, 사법기관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냈다.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FBI, CIA,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정보기관의 수장들을 불러 개인적인 충성을 요구했다. 명백하게도 그것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러시아 연루 의혹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트럼프의 가장 악명 높은 규범 파괴는 아마도 그의 거짓말일 것이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은 미국 정치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공화당 자문위원인 휘트 에어스(Whit Ayers)가 언급했던 것처럼 신뢰를 얻고자 하는 후보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되며" 또한 "거짓말은 절대 금물이다." - P248

트럼프는 자신이 했던 거짓말에 대해 많은 대가를 치르지는 않았다. 시민들이 점차 개인의 당파적 입장을 기준으로 정보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정치와 언론 환경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임기 1년 동안 그를 거짓말쟁이로 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거짓말은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에게는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 선출된 지도자의 행동에 관한 신뢰할 만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다면 미국 시민은 선거권을 올바로 행사할 수 없다. - P249

1993년 뉴욕의 민주당 상원 의원이자 전직 사회학자였던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Danial Patrick Moynihan)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인물에 대처하는 인간의 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통찰력 있는 주장을 했다. 모이니핸의 설명에 따르면 불문률에 대한 위반이 계속해서 일어날 때 사회는 ‘일탈의 범위를 축소하는‘, 다시 말해 기준을 하향조정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는 비상식적으로 보이던 행동이 정상적인 행동으로 바뀌는 것이다. - P251

트럼프 취임 후 미국 사회는 정치적 일탈을 정의하는 기준을 하향 조정했다. 트럼프의 일상적인 모욕과 괴롭힘, 거짓말, 속임수는 이러한 행동을 일반적인 행동의 범주로 넣어버렸다. 트럼프의 트윗은 언론과 민주당 인사, 그리고 몇몇 공화당 인사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트윗이 많아질수록 이에 대한 사회의 대응 능력은 떨어지게 된다. 모이니핸이 지적한 것처럼 정치적 일탈이 광범위하게 벌어질 때 사회 구성원들은 그 흐름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점차 자극에 둔감해진다. 지금 미국인들은 예전에는 스캔들이라 생각했을 사건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 P252

규범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연성 가드레일이다. 규범이 무너질 때 용인 가능한 정치 행동 범위는 넓어지고, 민주주의를 파멸로 몰아갈 주장과 행동이 시작된다. 예전에는 미국 정치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행동이 이제 고려해볼 만한 전술이 되고 있다. 물론 트럼프 자신이 헌법적 민주주의라는 강성 가드레일을 파괴한 것은 아니지만, 미래의 대통령이 언젠가 그러한 일을 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제주의 행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어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의회와 법원, 그리고 선거를 통해 저항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 제도를 기반으로 트럼프가 실패하게 만들 수 있다면 미국 민주주의 토양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 P274

북유럽 국가들은 엄격한 자산 조사를 기반으로 한 제한적인 복지 정책이 아니라 보편적인 모델을 추구한다. 이러한 방식의 복지 정책은 정치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된다. 사회보장제도나 메디케어(Medicare)처럼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혜택을 주는 복지 정책은 사회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미국의 다양한 유권자 집단을 연결하는 다리의 기능을 한다. - P2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역 사기본기 1 사기 완역본 시리즈 (알마)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 알마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는 후속권도 안 나왔는데 표지가 또 바뀌었어~! 먼저 사는 사람 바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은 즐긴다
빅토르 위고 지음, 이선화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금까지 본 오페라가 40편 이상인데, 그 작품의 원작인 문학작품들을 읽어본 게 하나도 없었다. 한때 위고, 졸라, 디킨스 등에 빠져 지냈는데도.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읽었던 작품들은 오페라 작곡가들이 별로 안 땡겨했던 것 같다(푸치니에게 '레 미제라블'의 오페라화 제안이 갔었으나 거절했다고). 내가 즐겨 소설을 즐겨 읽었지만, 오페라의 원작들은 대부분 희곡인 것 같고, 그래서 실러, 괴테, 셰익스피어 등의 희곡 작품들이 오페라 작곡가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절치부심해서 간만에 서양고전문학을 읽어보기로 했고, (비싸지만) 이 작품을 택했다.

 

의외로, 위고의 이 작품과 베르디의 '리골레토'는 거의 내용이 같다. 오페라는 희곡의 마지막 한 장(scene)만을 옮기지 않았을 뿐이다(나는 오페라의 엔딩이 더 마음에 든다). 주인공이 '왕'에서 '광대'로, 등장인물의 이름과 공간만 바뀌었을 뿐, 귀족계급을 까기 위한 목적의식까지 똑같다.

 

희곡은 '레 미제라블'이나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봤던 것처럼 위고 특유의 장광설로 빼곡하다. 오페라는 가락이라도 붙어 있지, 이걸 어떻게 다 외워서 말할지 의아할 정도. 당연히, 리브레토의 상당 부분이 희곡의 대사를 차용했지만 대부분 축약되어 있고, 그래서 오페라에서는 동기라든가 이해가 잘 안되던 부분들을 이 작품을 통해 명백히 알 수 있었다.  놀라웠던 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이 프랑수아 1세가 남긴 시에 곡을 붙였다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남았을 그 싯구가 베르디의 음악을 타고 지금까지 모든 이들의 뇌리에 남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위고가 했다는 유명한 말, '인생은 꽃, 사랑은 그 꽃의 꿀'이라는 구절을 여기서 발견한 것도 반가웠다. 매우 낭만적으로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프랑수아 1세의 작업용 멘트라는 걸 알고는 환상이 다소 깨지긴 했지만, 역시 위고의 말을 다루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마지막으로, 해설이 매우 풍부하다. 박종호의 '리골레토' 해설과 겹치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을 참고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리골레토'를 더 즐기고 싶다면 이 희곡을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곳곳에 문맥이 다소 이상해 오역 스멜을 풍기는 곳이 몇 군데 있긴 해도 전반적으로 번역은 훌륭한 편이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별 하나 삭제.

백작, 이번 연애사는 어떻게든 성사시키고 싶구료. 출생도 불확실하고 부르주아 여자이긴 하지만 미모가 여간 아니거든.

연애사에서 허술한 전략의 보완책은 신비주의라고 할 수 있죠. 위장술 말입니다.

저는 꼬투리 잡는 일에 열중할 테니 폐하께서는 즐기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 참 상서롭지 못한 징조올시다! 왕이 향락에 빠진 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지요.

왕께서 누리는 즐거움은 늘 누군가에게서 가로챈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누이건 딸이건 부인이건 유혹으로부터 잘 지켜내십시오. 도락에 빠진 권력자는 해를 끼칠 생각밖에는 안 하는 법이니까요. 그 안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건 백성들 몫 아니겠습니까. 입으론 웃고 있어도 안으로는 온갖 뾰족한 이빨을 숨기고 있지요.

눈을 멀게 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지요.

당신은 왕이고 저는 아비입니다. 나이로 보면 왕권을 가져 마땅한 나이지요. 우리는 둘 다 머리에 왕관을 두르고 있지요. 그 누구도 금으로 된 백합 왕관을 쓰고 있는 폐하나 백발을 하고 있는 제게 방자한 시선을 던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리 둘 다 처지가 비슷하군. 한 명은 가시 돋친 혓바닥을 갖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뾰족한 날을 품고 있고. 내가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이라면, 저자는 죽이는 사람이고.

인생은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고, 사랑은 그 꽃에서 난 벌꿀이지. 사랑은 하늘에 있는 독수리와 맺어진 비둘기와 같은 것이라오. 사랑은 밀어붙이는 힘에 전율하는 은총과 같은 것이오. 사랑은 가만히 내 손 안에서 스르르 녹아내리는 그대 손과 같은 것이지.

악마는 자기 식대로 일을 풀어나가지요!

여자는 죽 끓듯 변덕을 부리지.
여자를 믿는 건 미친 짓이라네.
여자는 수시로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과 같으니.

저 자 이름 마리오? 내 이름도 알고 싶지 않소? 저 자 이름은 죄이고 내 이름은 벌이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입] [블루레이] 푸치니 : 나비부인 - 수입완제품 한글자막포함
베스트리 (Annunziata Vestri) 외 / C Major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3년인가, 오페라 거의 처음 볼 떄 유투브에서 나비부인을 봤었고 결혼하면서 그 이후 뜸했다. 몇년이 지난 지금 오페라는 다시 보면서 그게 무슨 공연인지 한참을 찾았는데 이거 같다. 나에게는 '응답하라 2013' 정도 되는, 추억의 영상이다.

 

무대 디자인은 깔끔하다. 방문 하나가 있고 나무데크 길이 나 있어 공간 제약이 다소 있는 반면, 동선이 명확하다. 의상도 완전 전통적 연출. 밤을 지새울 때 '그리움'을 암시하는 발레 장면과 허밍 코러스 장면이 인상적이다. 자결씬에서 스즈키가 '카이샤쿠'까지 해주는 게 신선하다. 나름 고증?

 

음악적으로는 그냥 별다른 인상 없이 무난하고, 한글자막은 완벽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치니 : 나비부인 [한글자막] - 박종호와 함께하는 유럽 오페라하우스 명연시리즈 박종호와 함께하는 유럽오페라하우스 명연시리즈 29
도밍고 (Placido Domingo) 외 / Dynamic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무대는 황량하고, 의상은 해괴하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작가주의적 연출을 좋아하긴 한데, 이건 기모노를 안 입은 거의 첫 '나비부인'이라는 역사적 의의만 있을 것 같다. 이름발 의식해서인지 화면에 지휘자를 너무 자주 비춰주는 것도 흠. 다니엘라 데시의 노래와 연기는 아름답다. 오케스트라 반주는 처음에는 밋밋하지만 뒤로 갈수록 감동이 전해진다. 화질은 깨끗하지는 않고, 한글자막은 준수한 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