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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 안톤 체호프의 에로티시즘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이항재 옮김 / 에디터 / 2012년 12월
평점 :
책 제목: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안톤 체호프의 에로티시즘 단편선)
지은이: 안톤 체호프/ 이항재 옮김
제 목: 성성연애(聖性戀愛) , 체호프식의 사랑
마힐: 안녕하세요. 안톤 체호프(1860~1904) 선생님. 저는 마힐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선생님을 모시고 사랑과 욕망이란 주제를 가지고 가상 인터뷰를 진행 하려고 합니다. 혹시 괜찮으신가요?
체호프: 쁘리 벳(안녕)! 괜찮아요. 그런데 주제가 사랑과 욕망이라고요?
마힐: 네,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이란 책이 있는데요.
선생님 생전에 쓰신 사랑과 욕망에 관련된 소재의 단편들을 작품의 시간순으로 따로 모아 출판한 책이에요.
책 표지만 보면 19금(禁) 같았는데.…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제가 상상했던 그런 것은 전혀 없더라구요.
체호프: 하하. 참나. 뭘 상상 했나요? 초면에 미안 한데... 순진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하여간 남자들이란... 욕망,에로티시즘이란 말이 들어 가면 상상하길 좋아하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 같네요.
마힐: 음....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번에 이 책<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의 자극적인 표지와 선전에 낚였다고 생각 했습니다.
체호프: 아니죠. 사랑과 욕망의 감정은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감정중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감정이 아닐까요?
마힐: 네. 그렇긴 한데요. 사랑과 욕망 하면은 사실상 전혀 다른 이미지가 떠 올라요.
사랑은 성(聖) 스러운 이미지가 있고요. 욕망은 성(性) 적인 이미지가 연상 되거든요.
성(聖)과 성(性)의 차이는 구분하기가 쉬울 것 같지만 사실 애매 하기도 하는데요.
선생님은 그 둘의 관계를 어떻게 구분하시나요?
체호프: 사실 사랑의 범위는 광범위 하죠. 그래서 나는 사랑과 욕망을 구분하지 않아요.
욕망도 사랑의 일부라 생각 하거든요.
나는 말이죠. 사랑은 순수해서 좋고 욕망은 부정(不貞)이나 불륜을 나타내는 거라고 해서 나쁘다는 구분을 가지고 작품을 써내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이런건 순수한 사랑이고, 저런건 불륜이야 하는 식의 분별을 나누고 싶지 않았어요.
독자들이 어떤 판단을 하도록 유도 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 책에서 <사랑에 대하여>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작품 읽었죠?
읽으면서 작품속의 사랑이 비도덕적이라고 해서 비판하는 마음이 들었나요?
마힐: 음… 솔직히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두 작품속의 주인공인 '알료힌'과 '안나 알렉세예브나', '구루프' 와 '안나 세르게예브리나' 의 사랑은 확실히 불륜이죠.
그런데 작품속에서 그 당사자들 서로는 아주 절절해요.
알료힌과 안나가 기차에서 헤어지는 장면이나 구루프가 안나를 못 잊어서 안나를 찾아가는 장면은 연인들의 찐 사랑이 맞죠.
그래서 그네들의 사랑은 비정상적인 연애 이긴 한데 뭔가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그들이 '썸' 을 타는게 이해가 되더라구요.
아마 그래서 위의 두 작품들을 선생님의 대표적 단편으로 손꼽는게 아닐까요?
체호프: 내가 방금 사랑과 욕망을 구분 하지 않는다고 했죠?
마힐: 네. 아까 욕망도 사랑의 일부라고 하셨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구분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요?
체호프: 내 작품속의 사랑은 인간이 본래 가진 천성이라고 보는 거죠.
사랑은 아름다워야 하고 욕망은 추한 것이라는 관념은 사회 제도가 만들어 낸 거 잖아요?
제 작품 <불행> 에서 '소피야' 가 변호사 ‘일리인’의 사랑 고백에 흔들리는 가운데 처음에는 가정의 '기초' 를 지키려고 하죠.
소피아는 가정이 파탄나는 것을 막으려고 이성으로 막 붙들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결국 이성적인 판단보다 더 강한 끌림은 막을 수가 없었죠.
현실적으로 보면 머리로는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았지만 본능이 이성 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 하지 않았나요?
마힐: 네 그렇긴 한데... 건전한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본능이 이성을 압도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본능이 이성을 압도하는 것은 지극히 일부 사람들에게만 해당 되지 아닐까요?
체호프: 아니죠. 이성이 본능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은 사회적인 설정일 뿐이죠.
개인적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욕망의 힘이 압도할 경우 이성은 아무 맥도 못 써요.
제 작품속의 등장 하는 사람들의 일탈이나 부정한 관계는 사회적으로 불륜으로 취급 당하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관계가 여전히 공존하고 있잖아요?
순수하지 않은 부분을 애써 외면 하지 말라는 거죠.
그것도 삶의 일부분이고 사랑의 일부분이라고 나는 보는 거죠.
비록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당사자들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 할 꺼예요.
내가 살았던 삶이 그랬으니까요.
마힐: 그럼 작품속의 불륜..앗. 아니 사랑들은 선생님 본인의 사랑관이 반영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체호프: 네, 잠깐 제 이야기를 좀 해보죠.
나는 원래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위치한 항구 도시 '타간로그' 의 농노 집안에서 태어 났죠.
어떻게 해서든 농노 신분을 벗어나고자 할아버지 때 부터 노력 했데요.
그러다 우리 아버지때에 이르러서야 잡화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 나갔죠.
그때 우리집 형제가 7남매 예요. 내 위로 형 2명, 아래로 남동생 2명, 여동생 2명이 있었죠.
그런데 아버지가 결국 빚만 잔뜩 지고 파산하고 모스크바로 혼자 야밤도주를 해버리죠.
술만 먹으면 가족들에게 손찌검을 해댔으니 오히려 처음엔 잘 됐다고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머니 혼자서 우리 7남매를 돌봐야 했는데 끝내 감당이 안되는 거죠.
이번엔 나만 혼자 남겨두고 결국 온 식구가 전부 아버지가 있는 모스크바로 가버려요.
마힐: 아니, 그럼 혼자 집에 남게 된 거예요? 그때가 몇 살이었는데요?
체호프: 그때가 16살 이었어요. 사실 모스크바에 가면 우린 빈민촌에 살아야 했어요.
그래서 나는 고향에 남아 공부를 학업을 마치기로 한 거죠.
솔직히 나 한테는 그게 더 좋았거든요. 가정 교사 아르바이트로 와 공부를 병행했죠.
결국 난 모스크바 의과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마힐: 혼자 고학(苦學)을 했었군요. 대단하시네요.
이 시기가 선생님에게는 고난의 시기였지만 반면에 오히려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체호프: 맞아요. 고립된 생활의 어려움을 견디면서 나의 내면이 이때 각성하게 된 셈이죠.
모스크바로 대학을 다니면서 이때 부터 우리집의 모든 생계를 내가 다 맡게 되죠.
위에 형들이 있었지만 모두 제 구실을 못해서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내가 하게 된거죠.
사실 나의 글쓰기도 그렇게 시작 된 거예요.
처음엔 가명으로 단편을 써냈죠. 그 당시 작품을 몇 백편을 썼는지 나도 잘 몰라요.
먹고 살자고 쓰기 시작한 글들이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대학 졸업후 의사가 되긴 했지만 작가 수입이 더 좋으니 아예 전업 작가로 전향 해버렸죠.
마힐: 아, 그래서 실제 의사 였기 때문에 작품속 의사에 대한 묘사가 그토록 생생한 현장감이 있는 거군요. 자. 그럼 이번엔 선생님의 본격적인 연애관으로 넘어가시죠.
체호프: 네.네. 알았어요. 너무 재촉 하지 말아요. 곧 들어 갑니다.(휴~ 한숨 쉬고)
난 말이죠.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타간로그 시절의 고향 사람들, 모스크바 시절의 빈민촌 사람들. 의사 시절 돌봐준 환자들, 나중엔 사할린 섬의 감옥에 갇힌 죄수들 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어요.
그런데 귀족,부자 같은 상류층 사람들 보다 평범하거나 오히려 밑 바닥 삶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부분 이였어요.
어쩌면 내가 농노 출신 집안으로 어렵게 자라서 그런지 나와 비슷한 주위 사람들에게 쉽게 연민(憐愍)이 갔어요.
그래요. 제가 깨달은 인간의 마음속에 가장 밑바탕에 깔린 감정은 연민이라고 생각 해요. 난 사람들을 만날때 마다 그 사람에 대한 연민이 먼저 생겨요.
마힐: 아니, 그런데요. 연민하고 선생님 연애관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요?
그럼 연민이 불륜의 출발선 인가요? 욕망이 아니고요?
체호프: 뭔가 훅 들어오는 질문 같은데...
아마도 내가 출생 신분이 고귀했다면 연민이란 감정에 대해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하위 계층의 사람 속에서 비교적 뛰어난 머리와 글재주로 신분 상승을 한 셈이죠.
그래서 전 고귀한 사람들이 하는 순수한 사랑 같은 것은 잘 모르겠어요.
그런건 내 주위에 없더라구요. 아니 적어도 나 한테는 눈에 띄이지 않았는지도 모르죠.
내가 살았던 세상에서는 순수한 사랑이든 비정상적인 사랑이든 그런 구분이 중요한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제 작품속의 사랑은 불륜이지만 연민도 같이 묻어 있어요.
마힐: 아, 선생님의 사랑관을 듣고보니 이제야 이해가 조금 되네요.
그런데 결국 연민이란 감정도 따지고 보면 평등한 관계가 아닌 내가 좀더 우월한 입장에서 상대를 동정하는 심리도 있는 거라 어찌보면 연민을 기초로 한 사랑은 동등한 입장의 감정은 아니지 않나요?
그래서 연민에서 시작하는 사랑이란 것도 결국엔 다 불행으로 끝나지 않을까요?
체호프: 사실 그렇다고 봐야죠.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젊은 시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내 가정을 꾸릴 생각을 못했죠. 대신 그 시절 수 많은 여자들을 만났죠.
작품 <아가피야>,<여자의 복수>,<나의 아내들>같은 것은 그때의 경험에서 나온 거죠.
그러다가 내가 20대 후반(1889)에 만난 '리디야 아빌로바(1864~1943)' 와 10년 정도 비밀 연애를 했었죠. 그때 난 이미 유명 작가였었죠. (톨스토이가 많이 날 아꼈었죠.)
내 작품들 속의 비밀 연애 경험은 리디야와의 실제 경험이라고 볼 수 있죠.
사실 이것도 어느 정도 연민의 감정 있었죠. 당시 리디야는 작가 지망생이었거든요.
결국 그런 연애는 끝까지 이어지질 못하죠.
내 작품속의 수 많은 주인공들의 사랑은 결국 나의 현실을 벗어 나지 않았던 거죠.
실제도 연민에 바탕을 둔 삶과 사랑이었단 말이 되는 거죠.
그래서 불륜의 감정 또한 인간 또 다른 본성이었구나 하고 이해했던 거죠.
마힐: 그런데 그건 선생님 한테만 해당 되는게 아닐까요?
그런 감정 까지도 인간이 지닌 순수한 본성이라고 해도 사회적으로 일탈과 불륜에 대한 비난은 피 할수가 없죠.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선생님의 연애관이 통용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체호프: 그럴지도요. 내가 41살(1901) 에 당시 러시아에서 유명했던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1868~1959) '와 결혼했고 3년 뒤(1904)에 이번 생을 아쉽게도 마감하게 되죠.
아마 내가 더 오래 살았다면 나의 연애관이나 사랑에 대한 관념은 변했을 수도 있었겠죠.
마힐: 네, 이번 가상 인터뷰를 통해 선생님의 사랑관에 대해 확실히 이해 했습니다.
결국 선생님의 모든 작품은 실제 삶속에서 연민에 바탕을 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요.
그래서 작품속에 항상 위트가 있고 따뜻함이 있는 거였군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무덤을 벗어나 이렇게까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 하고요.
다음 또 다른 작품을 읽게 되면 다른 주제로 모시도록 할 께요. (손을 흔든다)
체호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불러 주세요. noka (빠까: 안녕~)(사라진다)
마힐: 성성연애(聖性戀愛) , 성스러움과 속됨이 공존하는 체호프식 사랑이었다.
음식뿐만 아니라 사프카의 옷에도 여자의 ‘연민‘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아가피야> - P164
외롭게 사는 사람들은 기꺼이 이야기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늘 마음속에 있기 마련이다.
<사랑에 대하여> - P257
사랑을 할 때는 그 사랑을 논하면서 일반적인 의미의 죄나 선, 행복이나 불행보다 더 중요하고 가장 높은 것에서 출발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절대 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사랑에 대하여> - P270
어떻게? 어떻게 하면? .... 좀 더 시간이 지나 해결책을 찾으면 그땐 새롭고 멋진 생활이 시작될 것 같았다. 그러나 끝은 아직 멀고도 멀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것을 두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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