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가는 자 -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최진석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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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건너가는 자

지은이:  최진석

   : 건너가기는 나를 벗어나는 것



지난주 큰아이가 상해에 있는 외가댁으로 갔다.

아들이 18년동안 커오면서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 마음을 내서 떠나는 여행이다.

대학 입학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몇 개월간 혼자 자유롭게 보내겠다고 한다.

올 초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묘소도 갔다 오고, 어릴 때 함께 해주셨던 외할머니, 외가쪽 친척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단다.

나에게 상해는 첫 직장을 통해 아내를 만난 곳이고,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는 동년(童年)의 추억이 담긴 곳이다.

앞으로 나와 아내는 두 아들과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 경험을 비추어 보면 대학 들어가는 순간,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가족 보다는 대학 친구, 선후배랑 가까워 지고, 그러다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하고, 대학 졸업후 사회에 진출 하게 되는 단계를 겪게 된다.

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때 마침 읽게 된 <건너가는 자>는 익숙한 이곳에서 새로운 저곳으로 건너가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건너가는 자>의 저자 최진석 철학교수는 <반야심경>의 지혜를 철학적으로 통찰했다.

최진석 교수는 세상의 수많은 경전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반야심경>만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반야심경>은 불교의 방대한 경전중에서 글자수  260자로 구성된 짧은 경전이다.  

비록 짧은 경이지만 <반야심경> 안에는 불교의 핵심 사상이  농축 되어 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불교 신자라면 대부분은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다.

그러나 최진석 교수는 불교 신자의 입장이 아닌 철학자의 입장에서 <반야심경>을 통해 인생 전체를  통찰하는 사유의 틀을 제시 한다.

저자의  철학적  시각으로 불교를 관계의 종교라고 보았다.



<차유고피유, 차생고피생,차무고피무, 차멸고피멸.

(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없음으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진다.>



이는 불교의 연기법을 설명한 것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 형식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계에 기반해서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의자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의자를 구성하는 나무 판자나 받침, 나사, 못 혹은 바퀴 같은 것을 따로 떼어 내어 보면 의자라고 할 수  없다.

의자를 구성하는 여러 부품을 조립하여 의자의 형상을 완성 시켜야만 의자가 된다.

하지만 형상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의자가 가진 성질을 우선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의자를 '앉음' 이라는 성질을 가질 때에 의자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의자를 형성 하는 각각의 부품들이 합쳐져 의자라는 성질을 가질때 의자가 되는 것이다.

, 의자는 인연에 의해 잠시 부품이 모여 의자로 존재 할 뿐 따지고 보면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존재는 인연이란 관계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그래서  세상은 본래 본질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곧 '' 라는 존재의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 하고도 상통하는 것이다.



대행 큰스님께서도 하신 비유중에 내가 버스를 타면 승객이 되고, 식당에 가면 고객이 되고, 아버지 앞에서는 아들이 되고, 아들 앞에서 아버지가 되는 '' 란 존재를 어느것이 진짜 '' 라고 고정 시킬 수 있냐고 하셨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고정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는 뜻이 이해가 쉽게 된다.  

인연생기(因緣生起)에 의한 관계를 통해 우리는 존재를 드러 낼 뿐이다

그래서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저자는 이를 본무자성(本無自性: 본래 자기 성품이란 없다)이라 표현하며 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을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 있음과 없음에서 서로 나옴) 과 주역의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謂之道: 음과 양이 도에서 나왔다)으로 그 뜻이 같음을 설명한다.

공이란 없음이나 텅빈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꾸 공 이란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서  공을 잘못 이해 한다고 밝힌다.

<공은 단지 기호 일뿐 실체가 아니며 세상이 인연으로 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논리적인 개념일 뿐> 이라 말한다.

이 표현은 저자가 북경대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을 때 학기말 과제에 쓴 답안이라고 했다.

공이 단지 기호 일뿐 실체가 아니라는 통찰에 당시 지도교수 탕이지에 (汤一介:1927~2014) 교수에게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 ()나 공() 이란 것은 본질이 아니라 단지 기호에 불과한 것이란 것이며 이는 관계를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뜻이다.

기호를 붙힌다는 것은 부르기 쉽게 이름을 갖다 붙힌다는 뜻과도 같다.

글자 그 자체에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닌 단지 부르는 이름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마치 '의자'  라는 이름이 의자와 아닌 것과 마찬가지 이다.



저자는 <반야심경>의 참뜻은 바라밀다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바라밀다' 란 본래 파라미타(Paramita) 라는 어원에서 나온 것으로 '저쪽으로 건너가게 되다' 는 뜻이다.

인간은 건너가도록 태어난 존재이며 멈추지 말고 사람이 사람으로 완성되는 길을 걷기 위해 건너가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위스 조각가, 자코메티(1901~1966)의 작품 <걷는 사람> 이 책의 표지가 된 이유 이기도 하다.



저자는 또한 자신의 고삐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고삐를 잡고 건너가라고 한다.

자기만의 고삐를 쥔다는 것은 남들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걸으라는 뜻이다.

붓다가 선언했던 '천상천하 유아독존' 은 비단 붓다만이 할 수 있는 선언이 아닌 것이다.

남이 보는 것을 내가 보는 것이라 착각하지 말고 나만의 심안(心眼)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때 자신의 무대에서  진정한 주인공이 되어  당당히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엄마의 나라 중국에서, 아빠의 나라 한국으로 건너가서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런 의미 에서 이 책은 큰 아이가 대학 입학 하기 전에 꼭 읽었으면 하는 책으로 추천해야 겠다.


공에 관한 공부 역시 양자역학처럼 감각과 직관으로 쉬이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또 재미있게도 <반야심경> 과 양자역학 사이에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되기도 하고요. - P10

즉 manage, 경영이라는 단어의 근원은 ‘고삐를 잡고 무언가를 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다른 무엇보다 고삐라는 말 자체입니다.
여기서 고삐가 내포한 의미를 다른 말로는 철학philosophy 혹은 이상vision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P32

무언가를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은, 영혼의 성장판이 닫힌다는 뜻입니다.이런 상태에서는 어떤 지식도 그다지 쓸모가 없습니다. 모든 창의성, 삶의 생기, 친절,용기, 절제 등과 같은 지적인 활동은 지식에서 오지 않고, 알고 싶어 하는 의지로 가득 찬 자신만의 욕망에서 나옵니다.
- P42

세계의 진실을 진실로 아는 것, 이것이 해탈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업이 계속 쌓이고, 결국 윤회의 순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계의 진실한 모습, 실제 모습을 실상이라고 합니다. - P64

붓다도 브라만들의 비방과 폄훼를 견뎌야 했고, 예수도 율법주의자들이 가하는 치욕을 견디며 자신만의 진리의 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치욕에 무너지면 건너가지 못합니다. 건너가려면 치욕을 견뎌내야만 합니다. - P136

반복은 리듬이고, 리듬에는 감동을 일으키는 힘이 있습니다. 반복하고, 반복하면, 감동이 일어나고, 감동이 일어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중략..
지금의 내가 ‘이곳‘에서 벗어나‘저곳‘으로 건너가면서 나는 나 이상이 됩니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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