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평점 :
(마힐 나레이션) 오늘은 한비 선생에게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가 어떤 해전에서 승리했고, 얼마나 적은 배로 싸웠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내가 궁금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왕의 신임을 잃은 장수가 어떻게 부하들의 신뢰를 얻고, 끝내 나라를 지킬 수 있었을까?
애초에 이순신을 파격 발탁한 왕은 왜 그를 가둬버렸을까?
마힐: 선생님, 한 사람을 파격적으로 발탁한 군주가 훗날 그를 파직하고, 다시 불러들였다면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한비: 처음에는 사람을 알아보았고, 나중에는 의심했으며, 결국 다시 필요해졌다는 말씀이군요.
마힐: 조선의 선조와 이순신 장군 이야기입니다. 선조는 왜란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을 여러 관직을 뛰어넘어 전라좌수사로 발탁했습니다. 전쟁 중에는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지요.
한비: 그렇다면 처음부터 무능하거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군주는 아니었군요.
마힐: 그런셈이죠... 그런데 1597년에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파직하고 국문했습니다. 그 뒤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철저하게 참패했고, 선조는 다시 이순신을 기용했습니다.
한비: 전쟁 중 군령을 어기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군주는 명령의 타당성과 장수의 실제 판단을 함께 살펴야 하지요.
마힐: 선조의 판단 착오였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명령을 어긴 장수가 그저 괘씸했던 걸까요?
한비: 군주의 속마음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끝까지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지요.
마힐: 다시 이순신 장군을 불러들인 것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은 것일까요?
한비: 아니면 달리 선택할 사람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든 군주의 판단은 그 결과로 검증받아야 합니다.
(마힐 나레이션) 선조는 이순신을 발탁한 왕이자, 동시에 그를 궁지에 몰아 넣은 왕이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전장으로 돌려보낸 왕이기도했다. 한 사람의 군주 안에 안목과 의심, 권위와 현실적인 판단이 함께 존재했던 것이다. 그건 어쩌면 국가 위기 속에서도 존재하는 냉혹한 권력의 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힐: 선생님,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의 진정한 위대함은 해전의 승리만이 아닙니다. 그가 사람을 다루는 방법에 있습니다.
한비: 그래요? 말씀해 보시지요.
마힐: 군율에는 엄격했고, 전투를 앞두고는 군량과 무기, 훈련을 철저히 챙겼습니다. 부하들의 공적을 살피고, 자신도 위험을 피하지 않았지요.
한비: 하하. 장군의 덕망에 대해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제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마힐: 법과 상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비: 물론 그것만이 아닙니다. 적임자에게 일을 맡기고, 성과를 확인하며, 조직이 실제로 움직이도록 했다는 것이지요. 신뢰는 말로 얻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결과로 쌓이는 법입니다.
마힐: 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된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을 상대할 때는 또 달랐습니다. 동맹군 장수의 체면과 이해관계를 살피면서도 연합작전의 목적을 놓치지 않았지요.
한비: 부하에게 군율을 적용하는 것과 동맹군 장수를 설득하는 것은 다른 문제겠군요.
마힐: 일본 수군을 상대할 때는 지형과 해류, 진형을 활용해 적의 우세를 무너뜨렸습니다. 일본 장수들에게 두려운 상대가 되었지요.
한비: 그렇다면 그 장수는 세 가지를 알았군요. 부하에게는 기준을, 동맹에게는 이해관계를, 적에게는 두려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마힐: 그건 마치 선생님의 법, 술,세와 닮지 않았습니까?
한비: 네, 맞아요. 닮은 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군주의 통치를 논했고, 이순신은 제한된 권한으로 군대를 지휘했습니다. 둘을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마힐: 바로 그 점이 흥미롭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보다, 군주의 명령을 받는 장수가 사람을 움직이는 데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요.
한비: 그렇다면 군주가 그 장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쉽군요.
(마힐 나레이션) 이순신은 무조건 너그러운 지도자가 아니었다. 엄격한 규율과 준비, 부하에 대한 평가, 스스로 지는 책임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사람을 다루는 방법도 달랐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주목하는 이순신의 리더십이었다.
마힐: 선생님, 이순신에게는 또 하나의 질문이 남습니다. 자신을 버린 왕이 다시 싸우라고 명령했을 때, 그는 왜 돌아왔을까요?
한비: 신하로서 왕에게 충성했기 때문 아닙니까?
마힐: 물론 그 시대에는 왕과 나라를 쉽게 분리할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왕 한 사람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한비: 백성과 국토도 있었겠지요.
마힐: 임진왜란 때는 왕의 명령만 기다리지 않고 일어난 의병들도 있었습니다. 가족과 고향, 삶의 터전을 지키려 했지요.
한비: 군주가 모든 것을 지시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싸웠다는 말씀이군요.
마힐: 그렇습니다. 그런데 300여 년 뒤에는 더 극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1910년 조선의 뒤를 이은 대한제국이 국권을 빼앗기고, 왕조의 통치권마저 사라졌습니다.
한비: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싸울 이유도 사라졌습니까?
마힐: 아니요. 오히려 독립을 되찾으려는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무장투쟁과 외교, 교육과 문화운동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독립을 추구했습니다.
한비: 왕이 없는데 누구에게 충성한 것입니까?
마힐: 더 이상 한 사람의 군주만으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나라를 스스로 되찾으려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한비: 그들은 모두 같은 나라를 꿈꾸었습니까?
마힐: 아닙니다. 왕정을 회복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공화국을 지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표는 공유했지요.
한비: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힐: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광복을 맞았습니다. 독립운동의 노력과 국제전쟁의 결과를 함께 보아야겠지요.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합니다.
한비: 왕조는 사라졌지만 나라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의지는 사라지지 않았군요.
마힐: 그렇습니다. 이순신의 시대와 독립운동가들의 시대는 분명 다릅니다. 또한 충성의 대상과 국가관도 같지 않았지요. 그러나 통치권력이 무너지거나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지키려 했다는 점은 닮았습니다.
한비: 선생님, 오늘 말씀하신 사람들은 모두 훌륭합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것이 궁금합니다.
마힐: 무엇입니까?
한비: 그토록 훌륭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어야만 나라가 유지된다면, 그 나라의 제도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마힐: 음... 제도가 사라진 것 아니지만 작동되지 못한 거죠.
한비: 이순신 장군은 고금을 통틀어 정말 위대한 장수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수의 위대함이지, 통치의 위대함은 아닙니다.
마힐: 선생님은 사람보다 제도를 더 믿으시는군요.
한비: 저는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통치를 고민했습니다.
마힐: 사실 저는 선생님의 사상이 이론상 훌륭하지만 실제로 통치에 적용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사실상 그걸 적용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었을까요?
한비: 선생께서 후대의 역사를 아시니, 직접 다시 한번 찾아보시지요.
마힐: 음... 알겠어요. 한번 다시 한번 역사를 살펴볼께요.
(마힐 나레이션) 선조는 이순신을 알아보았지만, 끝까지 믿지는 못했다.
이순신은 왕의 신임을 잃었지만 부하들의 신뢰까지 잃지는 않았다. 엄격한 규율과 철저한 준비, 사람을 살피는 판단력과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로 조직을 이끌었다.
그리고 왕조가 사라진 뒤에도 나라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은 있었다.
이순신 장군과 의병, 독립운동가들의 시대와 생각은 달랐다. 그러나 그들은 통치권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려 했다.
나는 한비에게 역사속 인물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비는 내게 제도의 책임을 물었다.
“영웅이 나라를 구했다면, 그 나라의 통치는 무엇을 했는가?”
그 질문의 답을 찾다가 뜻밖의 나라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 나라는 정말 의외였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일본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그곳에서는 한비의 통치술과 놀랍도록 닮은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내일은 일본의 역사 속으로 떠나보겠다.
7일차 마침.
지금 한은 작은 나라인데 대국에 기대고 있습니다. 임금께서는 느긋하게 진나라와 위나라의 명을 듣고, 제나라와 초나라에 의지하며 움직이니, 작은 나라가 점점 쇠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영토를 넓힐 수 없다는 것을 한나라는 알지 못합니다. - P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