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라는 착각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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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제정신이라는 착각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COW BEBOP)' 에서 오프닝 음악 (TANK!) 은 사람을 신나게 한다.

이 신나는 째즈음악은 현실의 혼잡한 상황을 좌충우돌 하는 가운데 경쾌한 리듬으로 헤쳐나가는 중독성 강한 매력을 지녔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운전을 하면 내가 차를 모는게 아니라 우주 전투 비행기를 몰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치 내가 카우보이 비밥의 주인공 '스파이크' 가 된 듯하다.

나는 카우보이 비밥이 20세기 최고의 걸작중 하나라고 확신 하지만 어느 누군가는 그저그런 유치한 만화라고 할 것이다.

이제 나이 50이 다된 내가 이런 '중2병' 같은 착각에 빠지는데 과연 나는 제정신일까?

 

 

 

이책<제정신이라는 착각>은 우리의 인식과 확신에 관한 책이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저자 필리프 슈테르처는 '우리가 인식하는 이 현실은 사실 우리 머리속에서 만들어 내는 즉, 뇌가 만들어 내는 세상' 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뇌가 만들어 내는 세상이다' 는 저자의 생각은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라 새로운 정보는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뼈로 이루어진 딱딱한 공간속의 뇌가 외부세계를 직접 맞딱드리지 않고 어떻게 지각을 만들어 내는지에 주목한다.

즉 뇌는 어떻게 지각을 만들어 낼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거듭된 연구를 진행 하면서 지각의 변화 증상은 심리질환과 연관이 되어있음을 알게 된다.

 

 

 

뇌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상을 만들어 내면 타인이 볼때는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조현병 같은 정신 질환에 주목하게 된다.

 

연구가 깊어짐에 따라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아 보이는 환각증상, 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겪는 확신을 통해 저자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는 확언한다. (저자는 이또한 또다른 확신이라고 양해를 구한다.)

'망상'과 '정상' 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고 구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여러 예시를 들며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거의 한끗 차이라고 말한다.

데이터와 사실을 토대로 하는 과학자들 마저 자신의 열의에 빠져서 말도 안되는 이론을 제시하게 된다던가 음모론 신봉자나 열성적인 종교주의자를 다 미쳤다거나 조현병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탈진실의 시대'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세상은 보이는 현상뒤에 감춰진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고자 하는 음모론 신봉주의자들, 서로 자신이 걷는 길이 정도(正道)라고 믿는 신념주의자들로만 이루어 진것 같다.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고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는 확신으로 꽉 찬 세상속에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도(正道)인지를 두고 충돌하고 있다.

 

사실과 근거를 무시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것만 보고, 듣고 싶은것만 듣고, 믿고 싶은것만 믿는 것이 우리 인간이란 동물의 기본 설정값 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전부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해결이 어려워 보이는 문제와 갈등들에 대한 저자가 제안하는 바는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확신하는 '모든것은 단지 가설' 일뿐임을 인정하라고 한다.

우리의 확신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었다.

원시시대 부터 우리의 감각기관이 뇌에 제공하는 이해할 수 없고, 불확실하고 종종 모순이 되는 신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이든 망상이든 확신을 우선적으로 내려야만 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뇌는 예측 기제도 함께 발달 되어졌다.

즉 확신은 살아남기 위해서 형성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의 형성에는 정신질환이나 정상이나 별차이가 없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리 이해한다면 결국 우리 사피엔스 종은 태초에서 부터 함께한 불안으로 인해 오히려 확신을 강화 시켰다는 뜻이 되는것 아닌가?

불확실한 현실과 미래는 현재 확신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게 되는 셈이다.

이제 확신이 현실에 부합이 되든지 되지 않던 모두 중요한게 아닌것이다.

오히려 불확실할 수록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더욱 더 확신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모든 갈등을 야기하는 서로 다른 확신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과학적 시각 조차도 우리가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저자는 과학적 시각을 버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우리의 확신은 단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고 언제나 수정 될 수 있으니 불확실한 세상을 대함에 언제나 열린 태도로 세상을 대하길 권한다.

 

자기 확신으로 점점 분열되어 가는 듯한 세상을 향한 저자의 통찰에 깊이 공감하고 내 자신이 확신하는 모든것들에 대해 다시금 점검이 필요함을 절실히 일깨워준다.

 

 

 

카우보이 비밥에서 '비밥( BEBOP)' 의 뜻은 재쯔 음악에서 즉흥연주를 말한다.

정해진 악보 없이 뮤지션들이 각자 개성에 맞게, 상황에 맞게, 각자의 연주가 하나의 화음으로 연주 되는 것이다.

우리의 문학이나 영화 장르를 보면 단순하게 하나의 장르로 비교적 쉽게 규정한다.

로맨스, 액션, 스릴러, 공상, 코믹, 비극, 공포, 전쟁 등등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사는 현실은 어느 장르 하나로 규정 할 수 없다.

삶은 모든 장르를 포함하고 있으며 세상은 각자의 다른 장르가 공존한다.

 

나에게 세상은 코믹이지만  내 동생에게 세상은 액션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건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세상 전체는 영원한 한가지 장르만으로 존재 하질 않는다.

세상은 언제나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며 모든 장르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즉 우리는 삶의 무대에서 각자의 악기로 고정되지 않은 리듬과 박자로 째즈를 연주하는 비밥 뮤지션과 무척 닮지 않았나?

우리가 어떠한 신념을 가졌거나, 도저히 변할수 없는 확신을 가졌다 하더라도 세상은 언제나 고정되지 않은 째즈연주 '비밥' 과 다르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겠다.

 

 

 

카우보이 비밥 마지막 에피소드.

스파이크가 숙명의 라이벌 비샤스와 대결을 마치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온다.

스파이크는 이미 달관한 모습으로 멍때리고 쳐다보는 조직의 잔당들을 향해 손가락 권총을  겨눈다. 입으로 빵 소리 내고 스파이크는 쓰러져 버린다.

화면은 스파이크의 쓰러진 모습에서 하늘로 점점 클로즈업을 시키며 올라간다.

푸른 하늘, 구름, 그리고 계속 올라가며 별들이 보이는 어두운 하늘로 향한다.

결국 한참을 올라 우주까지 올라가 버린다.

우주 공간속에는 방금전 까지 격렬했던 삶과 죽음의 경계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지구안에서 우리가 가진 신념과 확신으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투쟁하던 그 모든것은 우주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아닌것이 된다.

애니메이션 이였지만 삶을 관조하는 이런 연출은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 주었다.

 

이래도 카우보이 비밥이 그렇고 그런 만화영화 였을까?

 

 

 

불교의 선지식들 께서는 '나' 를 제대로 깨닫는것이 우주를 아는것 이라고 하셨다.

법성계 구절에 '일중일체 다중일, 일즉일체 다즉일(一中一切 多中一, 一卽一切 多卽一) 하나안에 일체가 있고 일체 안에 하나가 있어,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고 했다.

내가 우주 그자체요, 우주가 곧 내가 되는 것이라.

제정신이든 제정신이 아니든 '나' 부터 제대로 깨어나야 한다.

바뤼흐 스피노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돌아가거나 행운이 그들에게 언제나 호의를 베풀어준다면, 그들은 미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 P285

진화의 명령은 ‘현실과 일치하는 세계를 구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 가능성이 극대화되도록 세계를 구성하라!‘는 것이다. - P296

우리는 세계에 대한 완전한 진실을 알 수 없다. 우리의 확신은 이런 불확실함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뇌의 중요한 전략이다. 확산은 우리에게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옳은 것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주관적 확실함에 오도된 채 자신의 확신만이 옳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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