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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평점 :
한비가 살았던 전국 시대의 군주국가는 이미 사라졌다.
이제 내가 사는 현대는 황제도 제후도 없고, 신하가 군주의 눈과 귀를 가려 나라를 빼앗는 시대도 아니다.
하지만 <한비자> 를 읽다 보면 2천 년도 더 지난 그의 이야기가 현시대에도 전혀 낯설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특히 회사를 오래 다녀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라 본다.
회사에는 규정이 있고, 직급과 권한이 있다. 사람을 평가하고 성과에 따라 보상하며, 잘못에는 책임을 묻는다.
누군가는 일을 맡기고 누군가는 결과를 보고한다.
한비가 말한 법(法)과 술(術), 세(勢)가 떠오른다.
물론 현대 기업이 법가 사상을 계승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사람이 모여 조직을 이루면 시대가 달라도 비슷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권한과 책임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보고와 실제 성과가 일치하는지는 누가 확인할 것인가.
한비가 군주에게 던졌던 질문은 오늘날 기업의 경영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난세의 시대에 당신은 어떠한 군주가 되어야 하는가?
얼마 전 구직 사이트 커뮤니티에서 어느 한 사람의 사연을 읽었다.
그는 회사 사장과 직접 면접을 보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던 주말, 회사에서 전화가 왔단다.
미안하지만 채용을 취소하겠다는 통보였다.
그의 울분 섞인 글에는 수 많은 위로의 댓글이 이어졌다. 차라리 그런 회사에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에 그런 회사에 기대를 걸기보다 스스로를 계발해 사장이 모셔갈 만한 인재가 되라는 뼈 때리는 충고도 있었다. 그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구직자가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일과 기업이 신의를 지키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나 역시 얼마 전 비슷한 허탈함을 경험했다.
한 회사의 면접을 마치고 난 후, 회사 직원을 통해 최고경영자와의 마지막 면담이 있다고 했다.
연락을 기다리라며 대기하라고 했다. 난 직원분의 말에 회사 최고 경영자의 만남을 기대하며 일주일 넘게 면접 준비를 했다. 회사를 공부하며 회사의 향후 10년을 구상한 로드맵까지 만들면서, 어느새 그 조직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열흘 남짓 지나 돌아온 것은 면담 취소와 불합격 통보였다.
물론 채용을 약속받은 것은 아니었으니 앞선 구직자의 사연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의 허탈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김칫국부터 마신 자신을 탓했다. 쉰이 넘어서도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배운 셈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기업의 오너에게 최종 결정권이 있다고 해서 그 결정이 곧 원칙이 되어도 되는 것일까.
조직의 규정과 절차가 한 사람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뒤집힌다면, 제도는 존재하되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 질문은 내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으로도 이어졌다.
나는 중국에서 25년 넘게 일했고, 그중 오랜 시간을 자동차 부품회사의 관리자로 보냈다.
생산과 품질, 구매와 납기, 사람과 조직을 관리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회사를 떠나 근로관계와 권리를 놓고 법정에서 다투고 있다.
노동중재 위원회에서는 내 손을 들어올려줬지만 그 결과에 불복한 회사는 나를 상대로 1심을 청구했다.
또한 최근에는 회사가 제기한 별도의 차량 손해배상 소송에서 청구 전부 기각이라는 1심 판결을 받았다.
회사는 퇴사 이후 차량을 무단으로 점유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당시 회사 책임자의 지시와 실제 반환 경위, 손해 발생의 증거를 구분해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오래전 한비가 경계했던 문제가 떠올려졌다.
군주와 측근의 관계였다.
한비는 군주가 신하의 말에 눈과 귀를 맡기고, 판단의 중심을 잃는 일을 경계했다.
그런데 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오너가 측근의 보고를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반대로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앞세워 측근과 제도를 움직인다면 또 어떻게 될까.
내가 겪은 사건에서 실제로 누가 누구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회사의 과거 지시와 이후 소송에서의 주장이 서로 충돌했고, 결국 법원에서 그 책임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남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히 측근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다.
측근에게 휘둘린 군주도, 자신의 뜻대로 제도를 흔드는 군주도 결국 통치의 중심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비의 무위(無爲)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군주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거나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법과 기준에 따라 신하에게 일을 맡기며 그 결과를 살피는 통치의 방식이다.
한비에게 법은 기준이었고, 술은 신하를 살피고 검증하는 방법이었으며, 세는 군주의 지위에서 나오는 권세였다.
군주는 그 권한을 쥐고 있으되, 자신의 감정이나 측근의 말에 판단을 내맡겨서는 안 되었다.
그렇다고 한비가 오늘날의 법치주의를 말한 것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군주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기업과 경영자에게 조금 다르게 적용해 보고 싶다.
권한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이 세운 원칙을 함부로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득 마키아벨리가 떠오른다.
그가 말한 비르투(virtù, 변화하는 현실을 읽고 기회를 붙잡아 행동으로 옮기는 정치적 역량)는 군주의 판단과 결단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기업에서 오너의 카리스마는 중요하다. 오너의 카리스마는 조직 구성원 모두를 압도하며 조직을 이끄는 힘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판단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라도 제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제도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의 판단과 제도가 서로를 지탱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나는 왜 <한비자> 를 읽어야 했을까?
한비는 군주를 위해 <한비자>를 썼다고 했다. 오직 군주만을 위해서.
그런데 나는 군주가 아니다.
한 나라를 다스릴 일도 없고, 지금은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경영자도 아니다.
오히려 지난 직장과의 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한 채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는 구직자다.
지난 직장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다음 직장은 어디서 시작할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 내가 왜 군주를 위해 쓰인 이 오래된 책을 붙잡고 있었을까?
돌이켜 보면 나는 오랫동안 조직을 움직이는 방법을 고민해 왔다.
사람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책임을 물을 것인가?
그러나 정작 지금 내게 필요한 질문은 조금 달라지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가?
회사의 평가에 기대를 걸고, 면접 결과에 마음이 흔들리고, 법정의 승패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기도 한다.
때로는 억울함이 앞서고, 때로는 조급함이 판단을 서두르게 한다.
그렇다면 나 역시 내 안의 수많은 목소리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비는 군주가 신하에게 판단의 중심을 빼앗기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도 수많은 신하가 있다.
욕심 이라는 신하도 있고, 두려움 이라는 신하도 있고, 분노라는 신하도 있고, 기대라는 신하, 조급함 이라는 신하도 있다.
그들이 내는 목소리들을 모두 안 들을 수가 없다.
다만 어느 하나가 내 삶의 주인이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비가 말한 무위라는 것도 사실 내게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되, 내 판단의 중심은 놓치지 않는 것.
스스로 지킬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것.
물론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 고수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원칙은 어느새 기분이 되고, 중심은 고집이 되기 쉽다.
그동안 나는 <한비자>를 읽으며 한비의 법·술·세에서 시작해 진나라의 흥망을 보았고, 마키아벨리와 군주의 능력을 비교했다. 조선의 군주와 이순신을 생각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쟁의 시대를 끝내고 오랜 통치의 기틀을 세우는 과정도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권력과 통치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나 자신이었다.
생각해 보면 흔들리는 것은 언제나 나라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조직의 수장이 흔들리면,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흔들렸으며, 그 결과 조직 전체의 위기로 번진다.
그건 국가든 기업이든 그 어떠한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그 영역은 내 자신에게로 까지 확장되어 내려온다.
그리고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지난 직장과의 다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 결과들이 앞으로 내 삶 전체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한비는 군주에게 나라의 중심을 놓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나라의 군주도 아니고, 이제는 한 조직을 이끄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오래된 조언을 내 삶으로 가져올 수는 있다.
왜냐하면 '내 자신' 이라는 나라의 주인은 바로 '나' 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삶에서는 '나'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 '나' 는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독재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남의 전횡을 막기 위해 원칙이 필요하듯, 내 마음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도 원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다스려야 할 마지막 나라는 결국 나 자신이었다.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 그것이 바로 무위를 지키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비는 군주를 위해 글을 썼지만,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한비자>를 읽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하의 권세가 강하다는 것은 군주를 제멋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주를 제멋대로 조정하는 신하가 있으면 군주의 명령이 아래까지 이르지 못하고, 신하들의 실정이 군주에게까지 통하지 않는다. - P185
한비에게 정치란 세상이야기에 귀를 기울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말 그대로 심리를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법을 세우는 것이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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