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이제 너도 주식 계좌 하나 만들어 봐라.

지금 나도 만들었는데 재미가 솔솔하다.

, 지금 같이 회사 문제로 벌이도 없을 땐 주식이라도 사서 놔 둬봐.

아빠, 나 이번에 수익률이 또 올랐어. 왜 투자를 안 하는 거야?

진짜 아빠가 걱정 , 언제까지 회사 분쟁을 끌고 갈 거야?

뭐라도 해야 되는 아니야?


지방에 계신 엄마와 대학 다니는 아들이 번갈아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묻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주식해보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주식 열기는 20대 초반의 아들부터 70대 어머니까지 주식을 하고 있다.

50평생 주식이라곤 한 주도 사 본 적이 없는 나한테 엄마와 아들의 얘기가 압박으로 느껴진다.

언론에서 연일 흥분해서 떠드는 삼성이나 SK하이닉스의 이윤과 주식이 나랑 무슨 상관일까.


지금의 주식 시장은 바다에 모인 사람들과 같다.

드넓은 바다에 누군가는 호화 유람선을 타고 항해를 하지만, 누군가는 이제 서핑 보드를 타고 있다.

누군가는 헤엄을 쳐서 즐기고 있지만, 누군가는 이제 막 몸에 수영 튜브를 끼운 채 어슬픈 수영을 배우고 있다. 바다의 출렁이는 물결에 누군가는 난파를 당하지만, 누군가는 구명 보트를 타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바다에 던져진 사람들, 지금 주식 시장은 바로 바다에 던져진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300년 전, 아이작 뉴턴은 7천 파운드라는 거금을 South Sea Company 라는 회사에 투자했다.

사우스 컴퍼니는 남미에서 막대한 규모의 무역을 하게 회사라고 알려졌고, 당시 영국의 조지 국왕까지 회사를 방문하여 10만 파운드를 예치하였다.

대중의 초기 관심은 열풍으로 바뀌었고, 시골 농부에서 부터 귀족, 공작 부인까지 주식을 사 모으기에 이르렀다.

100파운드에 불과했던 주식이 점차 300, 400파운드를 넘어섰다.

이때 뉴턴은 이렇게 오르는 주식 열기에 의심을 갖고, 두 배의 수익을 내고 처분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주식은 어느새 단순한 이익의 대상이 아니라, 흡사 종교적 신앙처럼 믿음의 영역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사우스 컴퍼니 주식은 어느덧 500파운드를 넘어섰고 주식 인수가는 급기야 천 파운드를 넘고야 말았다. 하지만 회사는 주식 청약자들에게 50%의 배당금이 약속된다.  이때 파격적인 조건에 아이작 뉴턴은 2만 파운드를 투자한다.


하지만 무한 동력 개발처럼 무한히 돈을 벌게 주는 구조는 세상에 없다.

어느 순간 마구잡이 투기는 현금이 바닥이 나자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뱅크런 같은 사태가 발생하고 사우스 컴퍼니는 공황에 빠지며 현금화 사태는 영국의 은행을 도산 지경에 이르기에 충분했다.

이때 우리의 천재 물리학자 뉴턴이 정신 차렸을 그의 투자금 2만 파운드는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수보리야, 갠지스강의 헤아릴 수 없는 모래알처럼 갠지스강이 또 많다면 어떻게 생각하냐. 그리고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는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오원에는 있다 없다 할 수 없는 뜻이 있거늘 그 모래 수이겠습니까. > 대행 스님의 뜻으로 푼 금강경 중에서


금강경을 읽다가 드는 생각, 주식 시장은 고도의 계산된 논리가 아닌 거의 신앙에 가까운 믿음일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에게 주식 시장은 바다가 아니라 어쩌면 갠지스강의 성수와 같은 믿음의 영역으로 변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쯤 되면 주식을 하는 사람들의 의식 구조는 갠지스강을 두고 성수(聖水)라고 여기는 인도인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주식은 미래에 대한 가치를 투자하는 것이다.

현재 실적과 실체가 분명 있지만 그것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사고 파는 장이다.

하지만 믿음의 결과는 아무도 수가 없다.

아직 우리는 미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이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주지만 과연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미래인 같지는 않아 보인다.

반도체, 인공지능, 우주 산업, 배터리 등등  기술의 발전에 따라 분명 미래는 현재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 인류의 발전은 믿음을 현실화 하는 능력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지만 망설이게 된다.

갠지스강 모래알 같은 존재인 우리가 아무리 많아도 결국 모래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식하느냐 마느냐, 과연 그것이 문제일까.

문제는 믿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지 않을까.

주식이 신앙이 되는 시대에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갠지스강의 모래알은 오늘도 여전히 햇살에 빛나고 있겠지?

갠지스강과 모래 그리고 마음 하나.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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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각자 자족하는 바가 다르긴 하지만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을 추구한다면 소유적 욕망일 뿐이죠. 연일 오르는 주식 시장에 눈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욕망이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FOMO증후군도 없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