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론 1편. 유방의 굴기(崛起), 제왕(帝王) 마음

 

중국 속담중에 “三个臭皮匠,顶个诸葛亮 (sān ge chòu pí jiàng, dǐng ge Zhū Gě Liàng) 이란 말이 있다.

직역은 명의 냄새나는 가죽 기술자가 제갈량과 맞먹는다 라고 풀이하는데, 본래 뜻은 명의

평범한 기술자가 합치면 지혜로운 제갈공명 만큼 성과를 있다  뜻이다.

제갈공명이 어떠한 인물인가.

삼국지에 나오는 많은 주인공들 중에 가장 지혜롭고 신비로운 인물이 아니던가.

그러한 제갈량 조차 명의 평범한 사람이 모이면 맞먹을 있다는 민간에서 전해져 오는 속담이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힘을 합쳐 지혜를 짜내면 반드시 똑똑한 사람을 능가할 수도 있다.

속담에 들어 맞는 인물이 삼국지 전에 이미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이다.

 

2300년전, 약육강식이 지배하던 춘추 전국시대를 마침내 종식시킨 진시황은 자신의 통일 제국이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통일 한지 겨우 15년 만에 진시황이 죽자 진이란 거대한 제국은 곧바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王侯将相,宁有种乎?(Wáng hóu jiàng xiàng, níng yǒu zhǒng hū?)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는가  라고 외치며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의 불꽃은 마른 들판에 급속도로 들어가는 불길처럼 번져 중국 전역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진의 폭정으로 억압된 분노를 폭발한 농민들은 수도 함양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썪어도 준치라는 속담처럼 통일 제국이였던 진의 정규군을 성난 민중의 힘만으로는 당해낼 없었다. 결국 진승 오광의 반란의 불 길은 진압될 것 같았지만, 옛 초나라 장군 가문 출신의 항우가 진의 군대를 박살 내며 반란의 불 길은 더욱 크게 번져갔다.

 

이때, 유방의 고향 패현(沛縣)까지 반란의 불꽃이 이어졌고, 일개 사수의 정장(泗水亭长)이었던 유방이 패현을 장악한 패공(沛公) 되었다.

사수의 정장은 지금으로 치면 파출소장 정도인데 이때 바로 지역 시장의 위치까지 올라 것이다.

사실 유방과 항우는 지금 현대 중국의 강소성(江苏省) 지역 출신들이다.

유방은 서주(徐州), 항우는 숙천(宿遷) 소주(苏州)지역 에서 자랐다.

강소성 지역은 대륙을 관통하는 개의 , 황허와 양쯔강 중 양쯔강 아래 지역을 지배했던 옛 초나라였다.

그래서 후에 항우가 진을 멸한 초나라를 이어서 초패왕(楚覇王) 이라 정한 것이다.

결국 유방과 항우는 초나라라는 국가 정체성과 지역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훗날 항우진영에서 유방에게 넘어온 인재들도 이러한 지역문화의 공유 때문에 왕래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방은 초패왕 항우에 의해 당시의 (지금의 사천성)으로 밀려나가게 되고 한중왕(漢中王) 책봉되었다.

지금이야 중국인들의 정체성을 한나라(漢朝) (漢) 기원삼아 한족(漢族)이라고 내세우지만 정작 한의 시조인 유방 자신은  이란 국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방의 참모 소하(蕭何) 거듭된 설득으로 유방은  이라 국호를 겨우 받아 들였다고 한다.

원래 한중(漢中)이란 지역은 한수(漢水: 장강의 주요 지류) 흐르는 곳으로 하늘의 은하수와 닮아 땅의 은하로 비유 되었다.

그래서 땅이 비옥하여 훗날 패권을 다지기 아주 좋은 곳이며 하늘과 짝을 이루는 아름다운 이름이라 하여 천한(天漢)이라 부르며 이것은 하늘의 (天命)에 따르는 것이라 설득했다는 것이다.

 

당시 유방은 초패왕 항우를 감히 넘볼 없는 위치였다.

진의 수도인 함양을 먼저 입성하여 관중왕이라 책봉될 알았지만 항우의 서슬퍼런 눈빛에 울며 겨자 먹기로 쫓겨나가야 했다.

험난하기로 유명한 촉의 땅으로 들어가며 유방과 그의 군사들은 이제 다시 중원으로 나올 알았다. 유방은 분명 분노했겠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홍문연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항우에게 공포를 떨었겠지만 그는 그 공포에 사로 잡히지 않았다.

유방은 촉에 도착한 자포자기 하지 않고 바로 준비해서 고작 4개월 만에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바로 항우에 대한 선전포고를 했다.

드디어 유방의 반격으로 천하쟁패가 시작된 것이다.

 

유방은 항우 앞에서 언제나 꼼짝도 못하고 주눅이 들었는데 어떻게 항우와 대적할 생각을 했을까?

항우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유방은 어떻게 극복할 있었을까?

이후 이어지는 천하쟁패는 불과 4년만 걸렸다.

진시황 사후 3년만에 진의 제국을 멸망 시켰고, 다시 4년만에 당시 아무도 넘볼 수 없었던 초패왕 항우를 이긴 것이다.

하지만 천하쟁패 기간중에 유방이 파죽지세로 항우를 몰아 부쳐서 이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매번 싸움에서 유방은 거의 항상 탈탈 털렸다.

팽성 전투에선 56만의 유방의 연합군이 항우의 3만 정예병에 터지고 도망쳐야 했다.

형양성 전투에서도 항복까지 하고 죽을 뻔했지만 겨우 목숨만 건져 나와야 했다.

영혼이 나갈 정도로 유방은 항우에게 쫓겨나가야 했고, 목숨을 건 탈출은 한 두번이 아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방은 항우에게 도전했다.

도전하고 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또 패하는 모습에서 챔피언에게 죽지 않을 만큼만 얻어 터지고, 그리고 다시 재충전해서 또 도전하는 유방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유방은 항우와의 천하쟁패에서 승리하였다.

아무 배경도 없고, 무력도 약한 유방이 귀족 출신에다 역발산기개세 (力拔山氣蓋世) 항우를 어떻게 이겨서 천하를 재통일 시킬 있었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정도의 상대를 만나면 고양이 앞에 쥐처럼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데 유방은 어떻게 항우에게 대항할 의지가 꺽이지 않았던 것일까.

과연 유방은 정말로 하늘이 내린 천자였을까.

벌꿀오소리 같은 유방이 호랑이 같은 항우에게 달려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유방은 항우에게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

항우가 패기를 지녔다면 유방은 똘기로 뭉쳤던 것일까.

 

2300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수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분석했었다.

그들은 유방과 항우의 출신과 인물 성향등을 비교 분석하며 여러 이유들을 밝혀냈다.

이유들 가장 대표적인 것을 뽑는다면 크게 세가지다.

 

첫째, 유방의 용인술(用人術)이다.

, 항우가 범증이라는 책사 하나를 잘 활용하지 못했지만, 유방은 인재를 알아보고 적극 기용하여 장량, 한신, 소하 같은 인물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꿨다는 것이다.

장량은 귀족 출신이며 과거 진시황 암살을 시도할 만큼의 의기가 높은 인물로 유방을 보자마자 유방의 두뇌가 되었다.  

한신 역시 뛰어난 전략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그냥 묻힐 뻔한 인물이지만 유방은 그에게 파초대원수라는 직함을 주고 유방의 전군을 통솔시켰다.

소하는 유방과 같은 패현 출신으로 원래 유방보다 지위가 높은 상사였지만 유방을 패공으로 모시면서 모든 전투의 후방에서 필요한 군수 물자를 끊임없이 지원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유방의 용인술이야 말로 항우가 결코 이길 없는 점이다.

 

둘째, 유방의 포용력이다.

비록 유방은 천민 출신이지만 귀족 출신인 항우에 비해 포용력이 넓었다.

항우가 전투에서 적들을 모두 죽이며 공포를 불러 일으켰지만 유방은 항우와 달리 감싸 안으며 민심을 안정시켰다. 그러한 포용력이 천하의 민심을 사로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유방의 정치적 명분이다.  

유방은 진시황에게서 내려온 악법(恶法) 약법삼장(约法三章)으로 만들어 우선 민심을 사로잡았고, 항우가 초의제를 시해한 것을 꼬집어 역적으로 몰아 명분을 세웠다. 그것은 그가 민심에 의한 정치적 명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분석은 대체적으로 유방이라는 개인의 힘이 많이 약하니 조직적인 구조로 힘을 재편성해서 항우의 개인적인 출중한 능력을 이길 있었다는 설명이다.

 “三个臭皮匠,顶个诸葛亮 (sān ge chòu pí jiàng, dǐng ge Zhū Gě Liàng) 이란 속담이 어울리는 결과를 만들어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의문이 든다.

유방이 조직을 구성하고 적합한 인물들을 통솔하는 장악력은 개인적 능력이 아닌가?

과연 유방의 개인적 능력은 정말 형편없었을까.

 

항우는 유방의 군대를 없이 깨트렸지만 결국 유방의 마음은 깨트리지는 못했다.

이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반복해서 지면, 몸보다 먼저 마음이 진다. 패배가 쌓이면 현실보다 먼저  마음의 판사가 항복한다. 

나는 된다고, 여기까지라고, 저 사람은 넘을 수 없다고. 

보통 사람은 실패를 만나면 선택하게 된다. 포기하거나, 타협하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자기 수준을 낮춘다.

그런데 유방은 그렇지 .

그는 다시 준비하고, 곧바로 실행한다.  모으고, 또 나가고, 또 부딪힌다. 그리고 깨진다.

빠진 독에 붓는 것처럼 보여도 한다.

그건 언제나 비합리적이다.

제왕 마음은 어쩌면 그런 비합리성 속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초한전쟁의 승부는 마지막 해하의 전투에서만 갈린 것이 아니라,  이전 수많은 패배를 유방이 어떻게 통과했는가에서 이미 갈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항우는 유방의 몸을 몰아붙였지만, 유방의 마음은 끝내 항복 시키지 못했다.

나는 유방을 천민 출신 황제로만 보고 싶지 않다. 그건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너무 쉬운 위로.

많은 사람들이 유방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유방처럼 있다는 식의 희망 내세우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듣기에 달콤하지만, 그만큼 얕다.

 

유방 신분 낮을지언정,  내면의 디폴트는 결코 범인의 것이 아니었다.

무수한 실패를 당하고도 끝내 자기 존재의 중심을 내주지 않는 사람 바로 유방이었다.

항우는 유방과의 싸움에서 거의 매번 이겼지만 마지막 해하전투 패배 한번에 최후를 맞이했다.

 

유방이 천하를 얻은 것은 인재를 써서 만이 아니라, 무너져야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항우는 유방의 군대를 꺾었으나, 유방의 마음은 꺾지 못했다.

어쩌면 초한지의 진짜 시작은 바로 거기에서부터였는지도 르겠다.

유방의 꺾이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제왕(帝王) 마음이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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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14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입지전적인 인물들은 다 비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초한지에서는 유방만이 그러했다면 삼국지에서는 위,촉,오의 조조,유비,손권이 모든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니 결국 천하삼분지계로 나눠져 버리고 말았겠죠.
그나저나 유씨 일족은 주로 얻어터지며 살아가나 봅니다. 막판 뒤집기 기술이 막강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