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론 2편. 사람의 마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사람들은 유방이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용인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즉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를 잘 썼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지만 인재를 잘 썼다는 것은 결과에 대한 하나의 분석일 뿐이다.
우리는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유방은 어떻게 사람을 움직일 수 있었는가.
유방의 진짜 능력은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결핍을 보는 데 천재적이었다.
보통 사람은 상대를 마주할 때 자기의 입장에 빠져 상대를 가늠한다.
상대방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내가 상대보다 무엇이 월등한가, 상대를 어떻게 하면 이용할 수 있을까. 상대와 나를 두고 저울질을 한다.
그런데 유방은 달랐다.
그는 상대를 마주하면서 저 사람이 지금 무엇에 굶주려 있는 지를 먼저 보았던 것 같다.
돈이 필요한가. 자리가 필요한가. 명예가 필요한가. 인정이 필요한가. 자기 재능을 한 번 마음껏 펼쳐 보고 싶은 무대가 필요한가.
유방은 상대의 욕구를 먼저 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멈추지 않았다. 상대의 욕구는 결핍에서 오는 것임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상대의 결핍을 채워 주었다.
돈을 원하면 돈을 주었고, 직위를 원하면 직위를 내주었다.
명예를 원하면 이름을 올려주었고, 무대를 원하면 아예 판을 열어주었다.
이건 단순한 포상이 아니다. 이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결핍의 공간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핍의 공간을 자신이 채워준 것이다.
그래서 유방 곁의 모인 사람들은 모두 유방을 통해 결핍을 채웠다.
그들은 결국 유방만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방이 깔아준 판 위에서 자기 욕망을 실현하려고 더 열심히 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방이 다른 어떤 제왕적 위치의 인물들과 차별점을 가진다.
그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스스로 움직일 이유를 만들어 준다.
자, 그대는 자리를 원했지? 여기 자리가 있다.
그래, 그대는 이름을 남기고 싶었지? 여기 전장이 있다.
좋아, 네 재능을 증명하고 싶었지? 내가 무대를 열어 줄게.
유방은 결국 판을 깔아 준 것이다.
이렇게 판을 깔아주면 그다음부터 사람은 유방의 명령 때문에만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 안의 결핍과 허기 때문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유방은 그것을 일찍이 간파했다.
사람은 자기의 욕망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그러나 유방의 진짜 천재성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그는 상대방의 결핍을 보고, 그 결핍을 채워주고,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렇게 채워진 욕망으로부터 그 사람의 능력을 기대 이상으로 뽑아냈던 것이다.
즉, 상대가 가진 모든 잠재적 재능을 전부 발휘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줬다.
보통 사람은 누군가를 만족 시키면 거기서 멈추고 상대에 대한 댓가를 바란다.
자리를 줬으니 됐지, 돈을 줬으니 됐지, 명예를 줬으니 됐지, 이쯤에서 생각한다.
그런데 유방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 번 채워진 결핍은 사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리를 받은 사람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뛰고, 명예를 얻은 사람은 그 명예를 키우기 위해 더 나아가고, 무대를 얻은 사람은 그 무대 위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고 더 깊이 달려든다.
유방은 바로 그 지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니 그의 용인술은 단순히 사람을 잘 쓰기가 아니다.
그건 사람의 욕망을 읽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고, 충족된 욕망을 다시 자기 판의 동력으로 바꾸는 심리적 설계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야 말로 유방의 진영에 인재가 모이게 한 근원이 아니었을까.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자기 생각에 빠져 남을 잘보질 못한다. 그런데 유방은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남의 허기를 먼저 보았다.
아마 장량 조차도 그 능력 만큼은 유방을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장량은 판을 읽는 사람이었지만, 유방은 사람을 어떻게 작동 시키는지 알고 있었다.
항우와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 선명하다.
항우는 자기가 바로 무대다.
그는 너무 강하고, 너무 높았고, 너무 눈부셨다. 그래서 부하들은 항우를 따라가기도 바빴다.
항우 밑에서는 자기 욕망을 펼칠 공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항우는 이미 보통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소위 만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방은 항우와 다르다. 그는 자기가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자기 욕망을 걸고 뛰어오를 수 있는 판을 열어준 것이다.
한신에게는 군사를 맡기고, 장량에게는 계책의 무대를 주고, 소하에게는 뒷일의 권한을 주었으며, 항우 진영에서 귀순한 진평에게 까지 각자의 욕망을 걸 자리를 주었다.
이러니 부하 입장에서는 안 하고 배길 수가 없다.
그건 충성 이전이며 명령 이전의 일이다.
어쩌면 중독에 가깝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중독은 단순한 흥분이 아니다.
그건 자기 욕망이 살아 있는 무대 위에 올라선 사람의 흥분이다.
유방은 사람들에게 “나를 위해 뛰어라” 라고 말하기 전에, “네가 원하던 것을 여기서 해보라” 고 말했다.
그래서 유방 진영은 단순한 적을 이기기 위한 군대가 아니었다.
각자의 결핍과 욕망이 유방이 펼쳐준 판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반복될 수록, 어느 순간 사람들은 유방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유방의 운명 안에서 자기 운명을 실현하려는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이것이야말로 유방이 만든 집단 무의식이자 운명 공동체가 아니었을까.
결핍이 만들어 낸 운명 공동체가 끝내 항우라는 완벽한 산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유방, 그는 인간 내면에 감춰진 결핍과 욕구를 보았다.
그 어떠한 두려움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 제왕의 마음이라면 상대의 결핍을 보는 눈은 제왕의 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