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37일차

<不好勞神/불호노신/좋아하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何用疏親/하용소친/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 것인가>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똑 같은 상황을 경험했어도, 그 경험의 감정이 전혀 다를 때가 있다.

시인 이백과 두보는 동시대 사람 이면서, 같은 공간에서 함께 교류를 했었다.

하지만 이백이 경험한 세상과 두보가 경험한 세상은 전혀 달랐다.

이건 이백과 두보 뿐만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같은 경험을 했음에도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이 남겨졌지만, 우리는 늘 내게 남겨진 기억과 감정이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서 사는 자폐증 환자와 다를 없는 것인가.

그런 것인가.


불교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 이란 용어로 풀어냈다.

현대 심리학의 의식과도 같은 개념인데, 불교의 식은 그 의식을 넓게 확장 시켰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몸을 움직이는 그 가운데, 의미를 내가 지니게 된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의식이 합한 것을 육식(六識)이라고 부른다.

거기에  라는 것에 집착하는 말나식과 나의 모든 무의식의 경계인 야뢰야식이 더해지면 8식이 된다.


이러한 식의 작용에 의해 우리의 세계는 주관적으로 밖에 느낄 없다.

우리는 각자의 8식이 바로 주관적이기 때문에 각자의 인식하는 세계가 다른 것이다.

그러니 이백의 세상과 두보의 세상은 같은 당나라 시인이지만 다른 세상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 역시도 같은 시대, 같은 나라, 같은 가족으로 살고 있지만 결국은 혼자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모두 자폐증 환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이런 이해의 바탕에서 우리는 다시 세상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각자의 8식속에 살아가는, 끝내 서로의 세계를 완전히 건너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계념괴진(繫念乖眞)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불호(昏沈不好) 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불호노신(不好勞神) 좋아하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하용소친(何用疏親)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것인가

 

생각에 얽매이면 혼침에 빠지고 그것은 좋지 않다.

 혼침은  정신을 피곤하게 한다.

그러니 어찌 도에 가깝고 멀고를 따지며   있겠는가?  

결국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의 육식은 피곤하다.

게다가 보이지도 않는 나라는 아집과 무의식 까지 나를 붙잡고 있으니 얼마나 무거운가. 

생각도 많아 자주 혼침에 빠지고, 정신도 아득히 피곤하니 얼마나 괴롭겠는가?


, 어쩌란 말이냐.

그러니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일단은  모르겠다하고 그냥 놔야 한다.

놓는 , 어쩌면 이것 밖에 다시 제대로 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 不好: 아닐 , 좋을 호: 좋지 않다.

勞神: 괴로할 , 귀신 신:  신명이 괴롭다.

何用: 어찌 , 쓸 묭 : 어찌 ~ 쓸 것인가.

疏親:멀리 , 친할 친: 멀리하고  가까움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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