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29일차

<一空同兩/일공동양/하나의 공은 양단과 같아서

齊含萬像/제함만상/삼라만상을 함께 포함하며>

 

우리는 보통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혹독한 고행과 수행을 통해야만 얻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행위와 깨달음은 어쩌면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향엄스님이 무심코 던진 돌멩이가 대나무 가지에 맞아  하고 소리가 났다.

소리는 향엄스님이 그동안 품었던 의심 덩어리를 완전히 녹여 버렸다.

그럼 깨달음은 어디서 것일까?

마당에 굴러다니는 돌멩이가 깨우쳐 것인가?

아니면 때마침 향엄스님 뒤에 있던 대나무가 깨우치게 것인가?

만약에 돌멩이가 눈에 띄지 않았다면?

돌멩이를 던졌는데 뒤에 대나무가 없었거나, 대나무에 맞지 않았다면.

향엄 스님은 과연 깨달을 있었을까?

스님의 깨달음에는 돌멩이, 던지기, 대나무, 맟추기, 그리고 딱 소리가 나기까지 모든 조건이 하나도 빠짐없이 있어야 했다.

이것을 불교에선 *시절인연(時節因緣) 무르 익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깨달음의 시절 인연은 사람마다 같지 않다.

 

6조 혜능은 나무꾼 시절, 이웃의 금강경 독송 소리에 깨우침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사명대사의 스승인 서산대사휴정(西⼭⼤師休靜 1520 - 1604)은 새벽 닭이 우는 소리에 깨우침을 얻었다고 하며 구한말 경허 선사(鏡虛禪師, 1846~1912) 소의 코에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  소리에 깨우쳤다고 한다.

독경소리, 닭 울음 소리, 지나가는 말 소리에 깨달음을 얻었다니...

어쩌면 깨달음은 알고자 수록 더욱 없는 것이 아닐까.

 

욕지양단(欲知兩段) 양단을 알고자 할 진대

원시일공(元是一空) 원래 하나의 공이어라

일공동양(一空同兩) 하나의 공은 양단과 같아서

제함만상(齊含萬像) 삼라만상을 함께 포함하며

 

깨달음은 어느 하나 고정되어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하지만 깨달음 안에는 세상 만물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보고, 듣고, 말하는 그 가운데 분명 소위 깨달음 이라는 것이 숨어 있는 듯 하다.

깨달음이란 내가 얻으려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깨달음은 다가오는 것이다.

깨달음은 드러나는 것이다.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쉬어야 한다.

밖으로 구하는 마음을 나도 모르게 한번 쉬게 되는 .

시절인연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시절인연은 그렇게 만들어 진다.


: 一空: 하나 , 빌 공: 하나의 , 즉 근본 자리를 뜻함

同兩: 같을 , 둘 양:  양극단이 같다.

齊含: 모두 , 머금을 함: 모두 다 같이 머금고, 즉 모두 포함한다.

萬像: 일만 , 형상 상:  만 가지 형상, 즉 만물만상을 뜻함

*시절인연(時節因緣): 특정한 시기와 상황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특별한 인연을 뜻함.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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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1-27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절인연‘은 참 아름다운 말입니다. 인간관계가 복잡하고 어려워질수록 깊이 되새겨 봐야 할 말입니다.
두보가 봄 밤에 들었던 빗소리도 시절인연의 한 모습일 수 있을까요?

마힐 2026-01-28 01:07   좋아요 0 | URL
두보의 <春夜喜雨> 시의 구절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지만,
그 비를 알아차리는 것 또한 인연이겠지요.

두보가 봄밤에 들은 빗소리도
결국은 지나고 나서야
‘아, 그게 시절이었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이 아닐까요.

시절인연은
늘 그 순간에는 소리로만 오고,
뒤늦게 의미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