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계 -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
켄 윌버 지음, 김철수 옮김 / 정신세계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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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통합의 그늘 ― 이론과 체험 사이에서

 

윌버의 통합 모델은 참으로 아름답고 정교하다.

처음 접했을 때는 “여기까지 그려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먼저 나왔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모델의 빛 만큼이나 그늘 또한 분명히 보게 된다.

 

윌버가 『의식의 스펙트럼』을 것은 1977년, 그의 나이 스물 셋이었다.

동서양의 철학, 심리학, 종교, 영성을 하나의 틀로 통합하려 한 이 시도는 지금 보아도 경이롭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스물 셋의 체험으로 모든 것을 말할 있었을까?

그가 말한 무경계의 이론은 깨달음의 경지였을까? 혹시 알음알이는 아니였을까?

48세였던 내가 2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런 의심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의심은 비판이 아닌, 그의 이론과 체험 사이의 간극을 보기 위한 것이다.

 

윌버의 모델은 의식이 점점 넓은 정체성을 포괄해 가는 ‘확장’의 구조를 설명한다.

자아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인류로, 인류에서 우주로. 확장하는 이 흐름은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의식을 확장하는 일이라기 보다, 의식이 일어나는 근본 자리를 꿰뚫어 보는 일에 가깝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어진다.

의식의 확장과 깨달음은 같은 것인가?

전자가 내용물을 늘리는 일이라면, 후자는 그 내용물이 나타나는 바탕 자체를 보는 일이다.

방이 커지는 것과 방이 처음 생겨나는 자리’  아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윌버는 아주 훌륭한 지도를 그렸다.

의식이라는 복잡한 지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지도다.

하지만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지도를 아무리 오래 들여다본다 해도 산을 오르는 체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는 신심명이 말하는 ‘유증내지(唯證乃知)’ , 즉 오직 깨쳐야만 안다 말이 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통합 모델은 관대해 보이지만, 자칫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미묘한 오만으로 기울 수 있다.

실제 삶은 어떤 이론보다 거칠고, 어떤 모델보다 복잡하다.

그래서 신심명은 이렇게 경계한다.

막축유연(莫逐有緣)세간을 좇지도 말고

물주공인(勿住空忍)공함에 머물지도 말라.

 

어떤 체계에도, 어떤 설명에도 머물지 말라는 말로 읽힌다.

 

2년 전의 나는 <무경계> 를 통해 의식의 스펙트럼, 그리고 대극성에 대한 이론, 마지막 통합의 시도에 감탄했다.

“아, 이렇게 보면 다 하나구나.”

하지만 50세가 넘어 버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모든 것을 하나로 보려는 시선 또한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진정한 통합은 모든 모델을 존중하되 어느 모델에도 갇히지 않는 자유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 모두 대자유인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역시 하나의 지도일 , 머물곳은 아니다.

누구든 길을 직접 걸어봐야 지도가 맞는지 틀린 지 있지 않을까.

 

내일은 <무경계> 다시 사유하기 여정을 마무리 해야겠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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