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4일차
<毫厘有差 /호리유차/털 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天地懸隔/천지유격/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지나니>
지도무난(至道無難), 도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유혐간택(唯嫌揀擇), 간택하는 마음마저 꺼리지 않는다면
단막증애(但莫憎爱),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에도 걸리지 않는다면
통연명백(洞然明白), 통하여 확연하게 (마음자리) 드러난다.
결국 도라는 것은 마음자리가 아닐까.
이는 내 개인이 확언하는 말이 아니다.
심즉불(心卽佛), 즉 마음이 부처란 말이 단순히 그냥 나온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조의 법을 이은 남악 회양선사(南岳懷讓677~744)는 도일이라는 제자가 열심히 좌선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회양선사는 도일 옆에서 벽돌을 가지고와 숫돌로 갈기 시작했다.
회양의 부시럭 거리며 벽돌을 가는 소리에 도일은 궁금했다.
도일은 회양에게 물었다. 왜 벽돌을 가십니까?
거울을 만들거라네.
아니 벽돌을 간다고 거울이 된다는게 말이 됩니까?
그럼 앉아만 있는다고 부처가 되겠냐?
회양의 말에 도일은 깨닫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회양은 이어서 말했다.
달구지(수레)를 끌려면 마부는 소를 쳐야 하는가? 달구지를 쳐야 하는가?
부처가 되려고 좌선을 하는 것이라면 그대는 좌선을 배우는 것이지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부처는 형상이 없으며 좌선을 배우는 것이라면 좌선은 앉고 눕고 서는데 있지 않다.
마음은 그 어떤 머무름이 없고 고정됨이 없는데 왜 앉는 것으로 부처가 되려는가?
그건 부처를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부처다.
훗날 도일은 마조도일(馬祖導一, 709~788)이란 이름의 선사가 된다.
결국 도라는 것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말이란 본래 뜻을 왜곡하기 쉽다. 또한 글로 남긴다고 해도 본래 뜻과는 멀어진다.
오늘의 구절 호리유차(毫厘有差) 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말하고 있다.
본래 우리가 가진 본래 자성인 마음자리를 밝힌 것이 신심명이다.
이는 도가 너무나 쉽지만 너무나 알 수 없는 마음의 작용임을 알리는 것이다.
단순한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장황한 설명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은 그 장황한 언어의 설명 조차 필요없이 바로 마음으로 들어가길 권한다.
호리유차(毫厘有差), 털 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다면
천지유격(天地懸隔), 하늘 땅 차이만큼 벌어진다는 것이 과연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爱), 통연명백(洞然明白)
사실 신심명의 핵심은 여기까지가 전부라고 한다.
성철(性徹 1912~1993) 큰스님께서도 신심명은 여기까지만 봐도 된다고 하셨다.
뒤에 이어지는 나머지는 모두 부연설명이다.
잘못 이해하면 호리유차, 천지현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핵심은 반복해서 거듭 되새겨야 한다.
신심명의‘명(銘)’ 이 ‘새길 명’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2026년 신년이 되었다. 올 해는 어떤 일들이 기록되어질까?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고 있지나 않을까? 소대신 달구지만 주구장창 때리고 있지나 않을까?
이제는 희망과 기대 보다는 안녕과 무탈만 바라게 된다.
주:毫厘: 털끝 호, 다스릴 리: 호와 리는 사물를 재는 아주 작은 단위, 센티, 미리 개념임.
有差: 있을 유, 다를 차: 차이가 있다
天地: 하늘 천, 땅 지: 하늘과 땅
懸隔: 매달 현, 뜰 격:현은 사람의 목을 나무에 매달아 놓은 형상을 상형화 한 것이다. 죄수의 목을 메달아 공간 사이가 떠 있다. 끔찍한 상황 묘사 이지만, 여기서는 그냥 공간이 벌어져 떨어져 있다고 봐야 함.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