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밖을 부르는 무의식

 

한국 정치는 무의식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 결론을 내지 못할 , 우리는 항상 밖(외세)을 불러왔다.

 

동학의 불길이 휩쓸 , 청과 일본이 들어왔고, 조선의 자주권은 외부의 힘 아래 흔들렸다. 그것은 단순한 침략이 아니라, 내부의 결핍이 외부를 호출한 사건이었다.

임진왜란 때에도 그랬다. 명의 군대는 침략자를 물리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조선 내부질서가 이미 붕괴 국면에 들어간 순간에 그 진공을 메우기 위해 들어온 존재였다.

 

해방 이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지금에 와서 “외세 개입”이라 말하지만, 그 분열이 벌어진 순간, 내부의 합의 불능이 외부의 힘을 초대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6·25전쟁. 그 전쟁은 남과 북만의 내전이 아니었다. 이 또한 내부의 균열이 외부를 불러온 사건이었다. 미·중·소를 넘어 연합군이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내부의 불화가 외부세력의 개입을 불러온 사건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선다. 우리의 무의식은 반복해서 같은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 싸움, 우리는 끝내지 못한다. 우리는 스스로 합의를 만들 수 없다.”

무력감이 바로 외부를 향한 부름이 시작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도, 민주화 시대에도, 한국 사회는 내부 갈등의 순간마다 외부의 기준을 들여다보았다.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중국과는 어떻게 상대 해야 할까?”,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조정해야 하나?”

이건 외교 정책적 질문이 아니다. 내부의 불안을 외부의 힘으로 잠재우려는 무의식의 호출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외부를 침략자로 규정하면서도 동시에 외부를 구원자로 기대해왔다.

 

외세가 우리 진영의 “패배를 막아줄 존재”라는 기대와 외부가 우리의 “승리를 보증해줄 존재”라는 환상을 꿈꾼다.

모두는 내가 스스로 결론을 없다는 무의식의 자각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단지 외교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국익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무의식의 흔적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내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의 레버리지를 끌어왔다.

레버리지는 때로는 군사적 힘이었고, 때로는 경제적 연대였고, 때로는 국제 여론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외부가 우리의 결정을 대신해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외부는 우리의 내부를 해석해주지 않는다.

외부를 부를수록 우리의 분열은 깊어진다.

밖에 기대는 순간, 우리는 내부의 결단을 포기한 것이 된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누군가는 외부를 중심으로 방향을 잡아보려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는 혼자 끝낼 수 없다.” 라는 무의식의 재현이다.

이것이 오늘의 외세 논쟁의 본질이다.

외부는 해답이 아니다. 외부는 우리 무의식적의 반복되는 역사의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일은 외부와의 전략적 관계 구축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무의식을 직면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영향력이라는 깃발 아래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무의식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답을 찾으려는 의지다.

그리고 의지는 외부의 기대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무의식에 의해 더 이상 우리가 조종되지 않겠다는 자기결단에서 출발한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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