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책 - 금서기행
김유태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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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나쁜 책 / 금서기행

지은이: 김유태

 : 금기(禁忌) 를 넘어서 존재하는 진실을 찾는 여정



나는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 제목이 <나쁜 책> 이다.

'금서기행' 이란 부제목을 달고 있는 '빨간 책' 이다.

나에게 '빨간 책' 하면 학창 시절의 은밀한 단상이 떠오른다. 

그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 눈을 피해 친구들과  몰래 돌려가며 보던 19금 서적을 우리끼리 속어로 '빨간 책' 이라고 불렀다.

신성한 학교에서 겉이 하얀 교과서 뒤에 속이 야한 빨간 책을 숨겨놓고 메마른 침을 삼켜가며 숨죽여 보는 짜릿함은 당시의 우리에게 엄청난 일탈이자 모험이었다.

성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사춘기 소년들에게 풍만한 여신에 대한 환상을 생생히 상상하게 만드는 '빨간 책' 은 분명히 '금서(禁書)' 였다.

물론 금서를 몰래 보다가 들키게 된다면 마치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는 듯한 끔찍한 결과를 각오해야 했다.

지금 우리 애들도 나 몰래 비밀리에 야동을 보겠지만 그 시절 나와 같은 느낌으로 보는 지는 모르겠다.

이제 세상은 변했고 성()과 폭력(暴力)에 대한 수위의 경계는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오늘날 아직도 많은 국가에서는 정치, 종교, 사회, 문화적인 체제에 반()하여 불온(不穩) 하다는 이유로 작가들의 사상을  통제하고 출판의 자유를 빼앗기도 한다.

그래서 금서(禁書)에 대한 호기심은 어쩌면 사춘기 소년의 욕망과도 비슷한 일탈성(逸脫性)을 갖고 있지 않을까?


이 책 <나쁜 책> 에는  한때 금서였거나 아직도 금서로  봉인(封印)된 작품과 작가 들을 만날수 있다.

이문열, 마광수 같은 우리나라 작가를 비롯하여 조지 오웰, 니코스 카잔차키스, 밀란 쿤데라 , 주제 사마라구, 엔렌커 같은 비교적 친숙한 이름의 작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넬리 아르캉, 사데크 헤다야트, 타슬리마 나스린, 이스마엘 카다레, 비톨트  곰브로비치 등 나에게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의 책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중에서 <난징의 강간>을 쓴 아이리스 장의 슬픈  개인사, 한때 실제로 창녀로 살았던 <창녀>의 작가 넬리 아르캉, 다 읽는 순간 자살하게 된다는 < 눈먼 부엉이> 의 사데크 헤다이트, 시선이 곧 권력이 된다는 <포르노그라피아> 의 작가 비톨트 곰로비치 등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다수의 작가와 작품은 생소했고  근친상간, 살인과 폭력,  소아성애, 신성모독,시체유기등 같은 상당히 높은 수위의 자극적인 소재가 난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금서의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한 불편한 소재안에  감추어 두었기 때문이다. 



<참극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작가 본인과 난징 피해 여성간의 시간적 . 공간적 거리감이 사라졌고 이 때문에 아이리스 장의 고통으로 전염되었다는 설명입니다. 타인의 고통이 씨앗처럼 이식되어 그녀 내부의 고통으로 발아된 것이겠지요. 그 싹이 자라 맺은 결말의 이름은 작가 자신의 '죽음' 이었습니다.> (P.38 아이리스 장, 난징의 강간 중에서) 



<나는 정치적인 것이나 젠더의 문제나 무엇이든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보려한다.  예술과 정치는 뼈와 피의 관계와 같아 분리할 수 없다. 픽션은 진실이며, 픽션은 더 깊은 진실이기도 하다.> (P.358 아룬타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 중에서)


<시선의 문제는 권력의 발생과 등가를 이루는 일이며 시선을 확보한 자가 권력의 소유자가 됩니다. 인간이 지하 단칸방이 아닌 고층 건물 거주를 희망하거나 권력자가 되어 세상을 내려다 보기를 바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선 확보의 문제 이기도 하지요. 시선의 우위에 서면 타자로부터의 개입('균열')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으니까요.> (P.366 비톨트 곰브로비치, 포르노그라피아 중에서 )



이처럼 <나쁜 책>을  소개하는 저자 김유태의 통찰은 감탄할 만큼 아주 훌륭했다.

금서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금서속에 숨겨진 작가들의 내면을 발견하고 그 사색의 지점을 저자의 시선으로 독자와 함께 바라 보고자 했다. 

아마도 책의 소제목이 '금서기행' 이라 붙인 이유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쁜 책>은 가장 좋은 책이었다. 

일명 '불온서적(不穩書籍)' 으로 불리는  '나쁜 책'을 통찰하는 아주 '좋은 책'인 셈이다.


<나쁜 책>의 저자 김유태는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자 매일경제신문 기자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발표 되기전에 이미 한강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때 한강작가의 수상을 예측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을 정도로 기자로서 통찰이 뛰어난 것 같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매주 100여권 정도의 신간이 여러 출판사로부터 저자 앞으로 배달이 된다고 한다. 한달이면 500여권, 일년이면 6000권이 넘는 신간이 우리나라에서 출간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 중에서 매주 10권 정도만 저자에 의해 선택  되어지고 나머지는 버려진다고 한다.

그 버려진 책들에 대하여  저자는 '안전한 책' 이라고 부른다.


독자를 충격하지 못하는 책은 출판과 동시에 죽기 때문에 살아서 팔딱거리는 책 골라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오직 살아서 펄떡거리는 책, 세상과 불화하고, 독자에게 싸움을 거는 책이라야 진정한 책의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의 바램처럼 언제나 항상 살아 있는 책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저자는 독자의 신분으로 돌아가 자신이 성소(聖所)로 여기는 대학 도서관 책장의 책들을 끄집어 본다고 한다. 

그때 저자가 읽게 된 책이 바로 엔렌커(阎连科) <사서(四書)> 였다.

엔렌커는 현존하는 작가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이 금서로 지정 되어졌다.

그가 쓴 작품중 무려 8권이나 중국에서 출판 금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서랍속에 갇힌  '서랍문학(抽屉文学)' 이라 불린다.

저자는 서랍속에서 빛나는 금서(禁書) 사서(四書)를 언급하며 위험한 책인 금서가 가진 의의를 말한다.


<위험한 책에는 금서라는 딱지가 붙고, 금서중에서도 정말 위대한 책은 독자의 내면에 끊임없이 싸움을 걸어온다. 독서의 끝자락에서 어지러움증을 일으키는 책만이 불멸의 미래를 약속 받는다. 엔렌커의 대다수 책이 그러한 것 처럼 금서는 이중적 드라마다.> (들어가는 글 중에서 P.12)


<금서를 선택하여 읽는다는 것은 잊힐 뻔했던 인류의 가치와 미래 지향적인 진의를 제자리에 위치시키는 독자(讀者)적 행위다. ... 중략... 위험한 책만이 위대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안전한 책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우위에 서서 교훈 처럼 자신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들어가는 글 중에서 P.15)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세상의 거의 모든 문학 작가들은 언어를 통해 진실을 찾는 탐색자(探索者)이자 구도자(求道者)들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 감추어지고 가려진 진실을 찾고자 그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를 파헤치고 있다.

그들 중 아주 일부는 외부의 세상이 아닌 인간 정신과 사물의 내부로 시선을 돌려 펜을 마치 수술실의  메스처럼 사용하여 해부하기 시작한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과연  진실인가?


그러한 작가들의 진실 찾기의 첨예함은 결국 시대와의 불화를 불러 일으킨다.

안전한 책을 쓰질 못하고 시대와  타협하지 못한 그들이 써낸 책은 불온하고 위험한 '나쁜 책' 이라는 시대의 평가를 받게 된다.

정치, 종교, 이념, 문화등 사회 체제가 정한 '금서(禁書)' 는 사실은 어두운 인간본성과  불편한 진실을 은밀히 감추고 있다.

어쩌면 금서를 정한 사회 제체는 독자가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의 충격을 보호해 주려는 선한 의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또 현실과 픽션을 구분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대중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진실을 왜곡, 조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 사회는 시대와 체제를 맹신하고 맹종하는 사람들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아직 금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이 더 있다는 뜻 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세상의 모든 금서 작가들의 진실 찾기는 여전히 계속 될 것이다.

맹종(盲從)맹신(盲信)을 멈추고 깨어있는 지성과 영성을 위해 우리는 '나쁜 책'을 읽어야 한다

금기(禁忌)를 넘어서 존재하는 진실을  향한 나의 독서 여정은 계속해서 이어져 갈 것이다.



지금은 봉인해제가 되어 버린 사춘기 시절 '빨간 책' 속의 픽션은 성숙과 성장에 필요했던 또 다른 의미에선 '좋은 책' 이지 않았을까?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근래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금서의 작가는 없다. 노벨문학상의 안전한 선택은 변질이며 이는 권위의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 P14

타인의 렌즈로 자아를 규정하려는 이중성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습니다. 특히 흑인에게 그것은 참혹했던 역사와 차별적인 문화가 억지로 눈알에 끼워넣은 무형의 콘텍트렌즈이고, 심장에 깊숙이 박은 미추의 안경일 것입니다.
<토니 모리슨, 가장 푸른눈> - P101

대중적으로, 또 비평적으로 찬사를 받는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회 내부의 기저심리, 일종의 무의식을 건드릴 때라야 가능하다는 것이 널리 입증됐습니다.
<카밀로 호세 셀라,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 P132

생각해보면 인간이 간절히 원하는 욕망은 언제나 파괴적입니다. 자아를 부수고 그의 주변 세계를 붕괴시킵니다. 거친 욕망일수록 그 욕망은 평범한 삶으로부터의 월경(越境)을 전제로 삼습니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윤리적 굴레를 무너뜨리고 금지된 땅으로 진입하는 시도일 때가 많습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어둠 속의 웃음소리> - P148

다시말해 신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인간의 비범한 운명을 계획했다는 의미였으며, 역경과 고난에 빠진 인류가 신을 찾음으로써 위안을 얻는게 아니라 신의 영광을 위해 인간이 도구화된다는 충격적인 전제였습니다.
<주제 사마라구, 예수복음> - P273

우리는 이처럼 자기 자신의 심연을 응시하면서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존재입니다. 자기 내면과 대화 없이 삶은 완성되지 못합니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내면에 헤다야트의 부엉이 같은 ‘무엇‘이 있지 않던가요.
<사데크 헤다아트, 눈먼 부엉이>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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