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 대반열반경, 초기불전 시리즈 003
각묵 엮음 / 초기불전연구원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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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대반열반경)

옮김: 각묵스님

   :  부처님 무량겁을 함께 하소서

 

 

이제 곧 부처님 오신날이다.

올해 '부처님 오신날' '스승의 날' 과 함께 겹쳐 있다.

어제 독후감을 남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에서는 스승은 '스님'을 뜻한다고 했었다.

스님이 부처가 되는것이 스승의 최고의 단계라고 했다.

즉 부처님은 '최고의 스승' 이신것이라 불러도 되는것이다.

 

 

본래 이 말은 불교 용어로 '삼계도사사생자부 (三界導師四生慈父) ' 라 일컫는다.

삼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 쉽게 말해 존재 하는 모든 차원 즉, 온 우주를 뜻한다.

도사는 이끌어 주는 스승,

사생은 난생: 알로 낳고, 태생:어미 태에서 낳고, 습생: 습한곳에서 낳고, 화생: 화하여 낳는 4가지 형태로 태어 나는걸 말한다.

자부는 자비로운 어버이.

우리나라 사찰의 예불문에는 이렇게 독송한다.

삼계도사사생자부 석가모니불.

즉 온 우주간에 스승과 사생의 어버이 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이란 뜻이 되는것 이다.

 

 

불교에서는 목표를 서원, 발원이라고도 하는데 원을 세운다는 뜻이다.

불교도들은 법회때 항상 사홍서원,  네가지 큰 서원을 말한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녹이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이것은 우리가 비록 중생으로 태어 났지만 번뇌를 녹이고 법문을 익혀 결국엔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부처를 이루겠다는 서원, 즉 목표를 정한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서 탄생한 날이다. 그 의미는 인류를 구원 하는데 있다고 본다.

예수님의 탄생은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대신 하여 죄를 갚고 다시 부활 하여 인류를 구원함으로 구약과 신약의 믿음을 완성 하신것이다.

기독교에서 죄를 사하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는 것이 목표 라면 불교는 부처를 이루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날의 의미는 중생이라 불리는 우리 자신이 곧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려 오셨다고 한다.

아니 우리 중생인 우리가 곧 부처라고 선언하셨다.

닦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서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은 우리에게 간곡히 수행을 하라고 권 하신것 이다.

 

 

이 책<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는 부처님이 열반 즉 이 사바세계를 떠나기전 역사적인 시간으로 열반 2년전의 상황과 열반후 행적을 기록한 경전이다.

불교의 방대한 경전중의 일부인 <대반열반경> 이라고 불리는데 부처님의 마지막 행적이 시간순으로 서술 되어 있다.

 

 

 

아마도 20년전 쯤 한마음선원 본원에서 열린 법회였다.

그때 진주에서 올라오신 보살님 한분이 법회중에 질문을 드린적이 있다.

그분 질문 내용이 대반열반경의 한 장면 이었다.(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부처님은 본래 무량겁, 즉 영원토록 육신을 가지고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라 즉, 마왕 파순이 와서 부처님에게 이미 이룰것을 다 이뤘고 제자들도 많이 키웠으니 이제 그만 열반에 드시는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부처님은 알아서 결정 하겠다며 파순의 제안을 고려해 보신다.

 

 

그 당시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는 항상 부처님을 곁에서 모시며 부처님의 모든 말씀을 기억하는 총명함을 지녔었다.

하지만 당시 아난은 총명함과는 별개로 깨달음을 얻지 못해 아라한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만약 당시에 아난이 깨달음을 얻은 상태였다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지 말고 영원토록 현 세상에 남아 법을 설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요청이란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보면 어떤 경지에 이르신 분들은 자기가 나서서 일부러 알려 주지 않는것 같다.

논어 술이편에도 보면 '불분불계(: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려 주지 않는다)' 란 구절이 있다.

결국 깨달으신 스승들은 스스로 나서서 알려 주지 않는 것이다.

물어야 답해 주신다. 찾아야 구해 주신다. 두드려야 열어 주신다.

그렇지만 아난은 그러질 못했다.

 

 

부처님은 여러 차례 아난에게 당신이 남아 있기를 요청하라고 힌트를 내줬지만 아난은 미처 깨닫지 못해 요청을 하지 못하고야 만다.

결국 부처님은 남은 수명을 놓아버리고 열반에 드시기로 작정 하신다.

(이때 아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아난은 부처님 열반후 모인 집회에 초청을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

 

 

그렇게 부처님께서 남은 수명을 스스로 놓아 버리자 하늘과 땅이 진동한다.

이때 놀란 아난이 무슨 연고로 하늘과 땅이 진동하느냐 묻고 부처님이 이에 대한 설명을 하자 그제서야 부처님께서 열반에 곧 들게 됨을 알게 된다.

 

 

 

당시 질문하신 보살님께서는 2600년전 부처님 당시의 이와 같은 열반 상황을 설명하면서 현세의 우리들, 즉 큰스님 직계 제자, 재가 제자 모든 분들이 열심히 수행하여 아난의 그러한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자고 떨리는 음성이지만 결의에 찬 말씀을 드렸었다.

그 당시 그분의 말씀에 법회에 함께 했던 모든 사부 대중은 진심으로 탄복했었다.

 

2600년전 부처님 당시의 상황과 현재가 오버랩 되면서 모든 사부대중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 당시 법회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한번 상기 시켜주었다.

책에는 부처님 열반 전후로 좀 더 상세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것을 알 게 해준다.

 

불경의 모든 경은 아난의 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여시아문)' 로 시작한다.

마가다 국왕이 왓지라는 나라를 멸망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처님께 자문을 구하는 일을 비롯하여 부처님은 수행과 관련된 법문을 하시며 많은곳을 이동을 하신다.

부처님은 가는곳 마다 법문을 설하고 사람들의 친견과 공양을 받으신다.

그러는 도중 파왕 마순의 열반에 대한 종용과 아난에게 열반에 대한 암시를 하시지만 아난의 혼미함으로 미처 알아 채질 못한다.

하지만 결국 남은 목숨을 포기 하시고 본격적으로 열반에 드실 준비를 하게 된다.

 

 

열반에 들기 몇 일전 대장장이 아들 쭌다의 공양을 받고 아프기 시작하셨고, 그로 인해 쭌다가 혹시 자책할 까봐 미리 대중들에게 쭌다의 공양을 찬양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어 주신다.

이 처럼 경에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배려해 주는 장면이 인상 깊게 등장 한다.

 

 

쭌다의 공양으로 인한 당신의 아픔이 쭌다 탓이 아니라는 법문과 비록 열반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는 아난을 향해서도 대중들 앞에서 질책이 아닌 격려하시는 장면에서는 진정 스승의 자비를 느낄수 있다.

또한 열반에 이르기 바로전에 수밧다를 마지막 제자로 받아 주시는 장면 도 놓쳐서는 안 될 장면 중 하나이다.

 

이후 알려진 대로 마지막 제자들을 위해 방일 (放逸: 나태, 게으름) 하지 말고 정진 할 것을 유훈으로 남기시고 , 당신이 입적하면 자신의 유체를 어떻게 화장을 하고 화장후에는 어떻게 수습을 해서 처리 하라는 지시까지 정말 꼼꼼히 챙기신다.

 

 

그렇게 부처님 입멸 후 유훈대로 화장식 장작에 불을 붙이려고 하나 불이 붙지 않는다.

어떻게 해도 불이 붙지 않는 가운데 결국 뒤늦게 대제자 마하가섭이 도착하자 마자 비로소 불이 붙는 장면은 삼처전심(三處傳心: 세곳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 받았다) 의 주인공 다운 등장이 되겠다.

 

 

만약 어떤 능력있는 글 작가나 영화 감독이 있어서 부처님 열반전 상황 몇 일의 과정을 담담히 소설이나 영화로 담아 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모습이 아닌 정말로 인간의 몸으로 와서 인간으로 떠나간 여정을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을 표현 할 수 있다면.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

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번역자 각묵 스님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남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하나?

 

 

생의 찬란함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다시 죽음의 찬란함은 또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부처님의 탄생은 우리도 부처에 이르리라는 것을 알리러 온 것이고 부처님의 열반은 우리에게 윤회에서 벗어 나는 길을 보여 주셨다.

 

 

처음과 마지막, 탄생과 열반.

그 바탕은 한 몸이라고 큰스님은 설 하셨다.

 

 

2600년 전과 지금, 수억년 전 과거와 수억년 뒤 미래도 다 내 한마음에 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지극한 마음으로 돌아가 귀의 합니다.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마라.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마라. - P67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 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 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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