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낭송 대승기신론
마명지음, 김혜영 풀어 읽음, 고미숙 기획 , 출판사 북드라망
중고등 역사시간에 무엇에 대한 답 인지는 모르겠지만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란 명칭이 몇십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왜 아직도 머리속에 남아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나라를 빛낸 위인들 하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라 시대 원효 스님.
해골물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달았다는 일화 ,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와 요석공주와의 러브 스토리,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낳은 아들 설총 이야기등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원효 스님이 무슨 업적을 남긴건지는 대부분 모른다.
그냥 '원효는 대승기신론소를 남겼다' 는 역사 교과서의 한줄만 머리속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이책 <낭송 대승기신론>은 세월이 흘러도 머리속에 남아 있던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다.
대승기신론은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를 지은이는 마명 이란 AD150 년 경에 살았던 시인이자 스님이라 한다.
원효대사가 지은게 아니었다.
원효스님은 마명 스님이 쓴 대승기신론에 소 (疏)를 붙였는데 이는 곧 대승기신론의 주석서이다.
그렇다면 책에 주석을 달아 놓는게 그게 무슨 대단한 업적이라고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것일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실 주석을 단다는게 지금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문제가 아닌것 같다.
조선 성리학에서는 공자의 유학 경전에 주석을 단 주자(朱子)를 거의 공자님 반열에 올려 놓지 않았던가? 그래서 주희의 주석에 대해 다른 해석을 용납하지 않았고
만에 하나 주자의 해석에 비판이라도 가하는 자는 바로 이단이나 사문난적(斯文亂賊: 학문을 어지럽히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도적)으로 취급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예전시대에는 주석이란게 참으로 중요했었나 보다.
그렇다면 주석서를 달 정도의 원작은 분명 쉽게 이해 되지 않는 난해한 수준일 것이다.
아마도 주석서를 달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원작자의 사상을 완전히 이해한 상태에서 출발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원작을 처음 접한 독자나 이해가 안가는 독자를 이해 시키기
위해서는 다시 그 수준에 맞게끔 재해석 해내야 한다.
그러니 주석서를 단다는 것은 원작의 이해를 넘어선 경지에 들어서야 한다.
그렇다면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는 대승기신론의 어떠한 위치에 오른 주석서
일까?
이책은 마명의 대승기신론과 원효가 주석을 단 대승기신론소와 별기 일부를 함께 읽을 수 있게 되어있다.
대승(大乘)은 대승불교 소승불교를 나눌때 쓰는 그 '대승' 이다.
즉 큰수레라는 뜻을 가졌다. 마명은 대승은 곧 일체 중생으로 보았다. 일체 중생의 마음. 그 마음이 한마음(一心)이라는 것이다.
기신(起信)은 믿음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혹은 믿음을 세운다.
논(論)은 논의 하다. 즉 조리 있게 따져서 말한다. 정도로
해석 할 수 있겠다.
즉 모두 합쳐 이해 하자면 '한마음을 믿는 마음을 일으키는 논' 이다.
마명은 대승, 즉 한마음은 두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 진여는 우리 본성품을 말하고 생멸문은 나고 죽는
생사로 나타내어 지는 현상을 말한다.
즉 철학으로 따지면 본체와 객체로 나눌 수 있고, 본질과 현상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진여문과 생멸문을 통해 한마음을 믿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설명한 책이 바로 대승기신론이 되는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일심이문(一心二門)' 이 핵심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뭐야? 대승기신론이 이렇게 쉬운것 이였어?
설마 이렇게 이해가 되는것을 원효스님이 다시 주석을 달았다면 이런 나의 이해가 틀린것일까? 뭔가 더 심오한 내용이 있는게 아닐까?
그렇다. 더 심오하다.
그런데 틀린것이면서 틀린게 아닌게 된다.
진여문과 생멸문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여문과 생멸문이 둘이 아니고 그것이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처음 깨닫게 되는 시각(始覺), 확연히 깨달은 본각(本覺), 그리고 깨닫지 못한 불각(不覺)' 으로 나뉘어 지지만 사실 이 세가지 깨달음이 서로
의존하며 다르지 않다고 설하고 있다.
왜 그렇게 될까?
깨달음의 경지는 그 근본이 같기 때문에 가능한것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그 경지는 깨달음이라는 물 맛을 봐야 알 수 있다.
그래서 원효스님과 같이 유학길에 올랐던 의상(義湘) 조사의 법성계(法性界)에는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즉 '깨친 지혜로 알 일일뿐 다른 경계로 알수 없네' 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승기신론의 둘이 아닌 경지에 대한 거듭되는 논의는 원효 스님이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은 경지,
'일체 유심조' 사상, 즉 '모든것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는 근본 사상과 상통한 면이 있다.
그러니 원효스님은 자신이 깨달은 바가 마명 스님의 전하는 대승기신론의 논지와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고 그에 대한 주석서를 달아 놓게 된것이
아닐까 싶다.
원효 스님의 주석서 '대승기신론소' 는 후에 중국과 일본으로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 스님들이 인도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업적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 스님은 그 번역을 토대로 다시 원래 인도 불경의 참뜻을 이해를 했다고
볼수 있다.
즉 붓다의 마음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선(禪)이다.
다만 일본은 한국과 중국을 통해 그저 겨우 수입해서 자신들이 따라 하는 수준 정도 였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본을 비하하는것은 아니고 물론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불경은 부처님 말씀을 문자로 표현 한 것이고 그 문자 이전의 마음을 우리 조상 스님들이 알았다면 그건 깨우침을 통해서 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처님 열반이래 깨달음의 불빛이 꺼지지 않고 인도와 중국으로 전해지는 것을 전등(傳燈)이라고 표현 하는데 깨달음의 경지가 결국 우리나라 까지
전해져 온것은 참으로 희유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오직 깨친 눈밝은 사람만 알아 볼수 있는 경지.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아직 그 경지는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 모르는 나(불각) 가 바로 진여의 작용이고, 그 진여는 생멸과 다르지 않다고 대승기신론은 설하지 않는가?
그러니 무엇이 걱정인가?
오직 지켜 볼 뿐이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고 선방(禪房) 스님들은 표현 하신다. 원래 공부는 목숨을 다해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전 선사들은 매달린 벼랑 끝에서 손을 놓는 마음으로, 잘 벼린 칼 끝에서 서있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부처님 마음과 중생의 마음이 둘이 아니라고' 했듯이 바로 '내 자신이 바로 부처이고 그 것을 믿는 마음을 일으키는것' 그것 이야 말로
대승기신론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인 아닌가 싶다.
그래서 법성계에선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變正覺: 처음 발심하는 마음이 바로 바른 깨침을 이룬
때이다)이라고 한것 아닐까?
그것이 바로 불각(不覺)이 시각(始覺)으로 변하고 다시 시각이 바로 본각(本覺), 즉 정각이 되는 경지인것이다.
이 세가지 깨달음이 결국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낭송하고 또 낭송해야 겠다.
마명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과 원효 스님의 간곡히 다시 전하는 마음이 내 마음속에 훈습(훈습: 연기에 스며 들듯 천천히 젖어 들게 되는
)이 되도록 ...
모두가 한마음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