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얼어붙은 바다 ㅡ 이언 맥과이어 ,
정병선옮김 , 열린책들
이따금 인터넷 검색창에 가을의 기후만 365일 이어지는 나라가 있는지 찾아보곤 한다 . 이 책을 하필
겨울에 읽기 시작했나 후회와 벌벌 추위에 떨면서 섬너의 선택에 웃음이 났다 . 피바람 모래바람이 불고 뜨거움이 작열하는 전쟁터에 있다가라면 그래
그럴만도 하겠어 싶다 . 그래도 너무 극단의 선택이 아닌가 ? 얼어붙은 바다라니 ... 그는 낭만적인(?) 몇몇의 이유로 포경선을 찾았지만
이곳도 평온한 삶의 터전은 전혀 못된다 . 분명 아편에 취해서 시류를 읽는 감각조차 마비된 게 아니고서야
.
한 여름 불볕 더위에 좌판이 벌어진 시장을 지나다보면 온갖 냄새들이 파리떼처럼 들끓는다 . 가장 먼저
후각을 마비시키는 건 역시나 생선 좌판 뒷쪽에서 풍겨오는 부패의 냄새다 . 지금은 위생 관리가 예전보다 좋아져 훨씬 덜하긴해도 여전히 피와
단백질과 지방층 그리고 내장이 퍼트리는 그 특유의 냄새를 잊을 수는 없지 .
꼭 삶의 터전도 전쟁 중의 전장터와 다를 게 없다는 듯 섬너가 다다른 곳은 아름답지 못하다 . 그도
스스로 무슨 미친 짓을 벌인 건지 바로 후회했을 만큼 , 항행의 시작부터 곧 너의 몸과 이상의 괴리를 알려주지 하는 것처럼 온 몸의 뿌리를 발칵
뒤집는 배멀미에 진저릴치게 되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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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은 섬너가 그리스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미친놈이라고 비웃었지만 , 실상 , 그들이 카드
놀이를 하거나 날씨 얘기를 할 때 , 그는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은 지극한 복락의 상태로 침상에 누워 있었다 . 그렇게 아편을 흡입하면 , 섬너는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 . 마음이 기연가미연가한 상태에서 뒤죽박죽된 시공간을 부유했다 . 골웨이 , 러크라우 , 벨파스트
, 런던 , 붐베이 . 1분이 한 시간 같았고 , 거의 순식간에 10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 아편은 속임수요 , 사기인가 ? 섬너는 가끔
궁금하다 . 그게 아니라면 , 우리 주변의 세상이 거짓인가 ? 격정과 비통 , 지루함과 걱정의 세상 말이다 . 섬너가 다른 것은 모른다 할지라도
, 이것만은 확실히 알았다 . 그 둘 다 진실일 수는 없다는 것 말이다 .
(본문 76 쪽 )
ㅡ
그들은 부빙 같다 . 그저 한덩이 떠 있을땐 발도 딛고 몸도 세울 수 있는 곳만 같았는데 부빙끼리
충돌하면 그 충격에 와지끈 가장자리며 중심이며 상관없이 검은 바닷물로 부서져 내리지 않던가 ? 부빙같은 사람들의 충돌이 그렇듯 허무하게 스러지고
가라앉는 모양새가...
섬너의 비밀이 뭔가 엄청난 걸 거라 생각한 나를 비웃는 작가 . 그의 불명예스런 제대장이 비밀이었다니
그깟 종이 한장으로 사람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나 세상의 방식에 새삼 기가 막힌다 .
좀 더 악착같을 줄 알았던 드랙스의 끝은 하루만 살자 하는 사람답게 허망한 끝이었다 . 악인 최후의
예우가 이처럼 되야하지 않겠냐는 듯 작가는 악의 형상에 어떤 권위도 주지 않고 간단히 멸할 것을 명한다
.
모함에 걸려 명예도 잃고 바닷가 악취나는 소굴로 몰려 들어왔던 섬너는 그곳을 벗어나며 다시 오명으로
얼룩진 채 도망쳐 나오게 된다 . 그의 말처럼 사람의 연줄은 힘이 없어도 돈은 금화는 힘이 있었다 . 정의는 그만큼 허약한 거라는 걸 보여주려
한걸까 ? 그가 한 게 뭐가 있나 , 살인자를 정당방위로 죽이고도 도망자 신세 . 또 그 먼 바다까지 가서는 사람들을 다 잃고 혼자 돌아오고
만다 . 아편에 취했을 때 그가 한 생각들 , 정의나 사람의 순수함은 속임수고 사기 같다 . 아니 그 둘 다 진실일리는 없다
.
너무 찬 내 손에 내가 놀란다 . 벌써 2월의 끝인데 봄이 다가올수록 온기를 몹시 갈망하면서도 여름에
치를 떠는 내가 있다 . 얼어 붙은 바다를 빠져나오며 또 가을의 전설만을 떠올리는 내가 있다 . 지독함은 그 겨울에 놓고 오자 . 그래 그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