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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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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던 2월의 어느 오후, 그 빗소리가 왜 이렇게 가슴을 파고 드는지, 왜 이렇게 먹먹한 심정이 되어 내리던 비를 그저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지. 그립고 반가운 님을 만나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 사람이 모퉁이 돌아 보이지 않은 그 순간까지도 손을 흔들고 있을 때, 문득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이와 같을까.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  "생의 어느 한 부분을 안다는 것으로 서로 얼굴 한 번 안 본 사이끼리 위안과 격려를 주고"받는다는 말, 그런 소설이 되기를 바랐다는 말, 그 문구를 읽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아, 이 사람이라면 내가 왜 우는지 알겠구나, 이 사람의 글이라면 그리움이 뭔지, 삶이 뭔지, 겨울의 끝자락에 내리는 비의 의미가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정말 그러했다.

가슴이 참 따뜻해지는 소설을 만났다. 참 아픈 생을 살아오셨는데 손녀에게 그 시절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며 주름진 얼굴로 웃음을 만들어주셨던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소주 한 잔 들이키면서 웃어주던 누군가의 얼굴처럼,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심사평 중에 공지영 작가의 말이 참 와 닿는다.

   
  처음에는 그렇고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흥미를 끄는 독특한 문장도 구성도 등장인물도  없었으니까. (...) 그리고 책장을 다 덮은 후에 나는 알았다. 오직 소설만이 할 수 있는 그 역할, 오직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그 질문, 뿌연 안개 낀 저녁 거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게 이 소설은 줄곧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230면  
   


누군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왜 한국 소설을 읽느냐고. 소통을 거부한 글, 재미없는 글, 빈곤한 소재의 글, 그 쳇바퀴 같이 도는 한국 소설에 질린 이들에게 그래도 나는 소통을 거부하지 않는 글, 재미있는 글, 눈이 번쩍뜨이는 소재로 감칠맛나게 쓴 글이있다고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덧붙이면서 나는 한국 소설을 읽으면 삶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모국어는 힘이 세다. '대문'이라는 단어 그 하나만으로도 삶이 배겨나온다.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함께 숨바꼭질하며 칠이 반쯤 벗겨진 대문집을 여러 번 드나들기도 했고, 누군가의 집, 그 대문 앞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성거리기도 했고, 한겨울 어느 날, 열쇠를 잃어버려 빈집의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을 때 윗집에서 기르던 백구와 함께 눈을 맞기도 했던 나.

외국 소설은 아무리 번역이 잘 되어 있어도 애초에 그들이 그려낸 삶과 역사가 다르니 모국어가 주는 그리움이 남겨있지 않다. 물론 한국 소설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 힘이 있는 건 아니다. 공지영 작가의 말처럼 오직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그 질문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작가의 글, 그러한 글만이 그리움이 될 수 있지 않을런지.

   
  빛은
조금이었어.

아주
조금이었지.

그래도 그게
빛이었거든.

- 2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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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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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된 공간의 책장 너머로 쌓여가는 책들을 보며, 전자책 구입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읽는다는 그 행위 하나 만큼은 편리하게 충족시켜줄 것 같은 전자책. 특별한 용도가 없다면 내용을 읽고 그 내용을 리뷰든 메모 형식이든 따로 정리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책읽기를 끝마치니, 굳이 책을 소장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젖어갈 무렵에 만나게 된 <<사소한 발견>>.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장이 가능한 만큼 최대한, 내게 날아온 책들은 역시 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발견>>처럼 책 자체가 아름답지 않아도, 그러니까 태초에 어둠에 있을 때 만들어진 디자인처럼 미적인 감상따위는 떠올릴 수 없는, 그저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여백인 책이라도, 그 책을 한 장 한 장 넘겼던 내 손길과 그 책이 차지했던 한뼘 남짓한 공간과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쌓인 먼지 속에 어느새 종이색까지 누렇게 바래가고 있다면, 이 책은 이제 언제든 타인에게 넘길 수 있는 사물이 아니라 각별한 의미를 지닌 '나의책'이 되고 마는 거니까.

<<사소한 발견>>을 읽어가다 문득 고개를 들어 내 방의 풍경을 바라보게 됐을 때, 저자의 시선처럼 내 방의 사물들을 '발견'하고 있는 나의 시선을 느낀다. 눈을 돌리면 어디든 마주치는 '나의책'에서부터 구석에 방치되어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조그만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다시 한 번 그들에게 나도 말을 걸어보게 된다. 안녕?

   
  "언제든지, 어떻게 하든지, 물건들에겐 유통기한이 돌아오기 마련이라고 했지만, 물건들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우리의 대화도 우리의 약속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 괜찮겠지'리고 당연시 여겼던 통조림이 알고 보니 유효기한이 쩍 지나버린 깡통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주변의 유통기한, 어쩌면 모든 관계 속의 유통기한들이 지나가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오래된 우정도, 지나가버린 사랑도, 어렴풋한 추억의 그림자도 모두 알고 보면 유통기한이 지나버려 어딘가에 버려진 건 아닐까?" 155면  
   


<<사소한 발견>>은  사물들의 잃어버린 목소리 혹은 미처 내가 귀기울이지 못했던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한 것이다.

오래된 앨범에서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흑백 사진(95), 의식과 무의식 그 사소한 경계에 있는 단추(26면), 원형으로 연결되는 곡선과 타들어가면서 떨어지는 조각난 직선의 모양이 훌륭한 디자인처럼 남겨지는 모기향(100면), 상처가 나면 무조건 발랐던 빨간약(177면) 추억을 닮은 노란색 백열등(223면), 원래의 용도 외에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주는 뽁뽁이(163면) 등...

나의 소중한 친구들을 찾아준 <<사소한 발견>> 
고마워!

   

추신 :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도 나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특별한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일명 알라디너의 하루!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알라딘의 달력을 보고 하루 일정을 생각하고 
그 날의 스케줄은 알라딘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메모장에 기록한다.

  

알라딘의 머그컵으로 향긋한 모닝 커피를 마시고 나면,

   

알라딘에서 준 샐러드바 무료 시식권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채우고,



알라딘에서 보내준 책을 읽으며,

   

휴식 시간에는 친구들과 함께 알라딘 윳놀이를 하다가,

 

게임에 져서 열불이 날 때는 알라딘 선풍기를 쌍으로 돌려 그 열을 식히고,

  

밤에는 수면 양말로 따뜻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으니,



알라딘과 24시간 함께하는 이 특별한 추억이란! 

아아 내일은 3월 봄맞이로 제공하는 양식을 받고 말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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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지> 가제본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삼한지 세트 - 전10권
김정산 지음 / 서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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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건평왕 15년 어느 여름밤, 짙은 녹음으로 둘러쌓인 취산의 어느 암자에서 더벅머리 청년이 <<삼한지>>를 정독하고 있다. 천둥이 밤하늘을 가르고 번개가 산천을 대낮 같이 밝힌 밤에도 청년의 <<삼한지>> 읽기는 멈춤이 없었고, 끼니 때가 찾아와도 책을 놓지 아니하고 밥상을 물리니, 평소에 글읽기라 하면 그 시도조차 기겁을 하며 잡기雜技에만 능한 더벅머리의 행적이 괴이쩍기만 하더라. 그렇게 여섯 날밤을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지내며 청년의 <<삼한지>> 읽기는 계속 되었고, 드디어 일곱 날밤에 산중의 밤을 일깨우는 괴성과 함께 청년이 사립문을 박차고 나오더라. 일곱 밤을 물 한목음도 들이키지 않고 잠 한숨도 자지 아니한  아이의 얼굴은 귀신의 형상이 아니라 되레 달덩이 보다 탐스럽게 빛나며 복사꽃이 피어난 듯 향기로움을 내뿜으면서 형형한 눈빛까지 발하고 있으니, 대관절 어찌된 영문인지 사찰 내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만 들여다보고 청년에게 그 연유조차 묻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이승二乘이 짐작이 간다는 듯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더벅머리 청년에게 묻는지라.  

 "<<삼한지>>는 '부족국가 시대를 마감하고 중앙집권 체제로 들어선 삼국이 서로 대립과 경쟁 속에 세력을 확장해나가는 시기를 시작으로 신라가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통일을 완성하는 676년까지 약 100년간의 역사를 재구성한' (8면 인용)책으로, 우리는 그동안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분분히 일어난 군웅들의 이야기, 영웅과 전쟁, 각종 권모술수와 책략이 어울러져 한바탕 휘몰아치는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을  중국의 역사를 통해 만나볼 수 밖에 없었느니라. 그 중에서 특히 <<삼국지연의>>는 위,촉,오로 솥밭처럼 갈라진 삼국시대의 역사를 그리고 있는데, 이 책은 젖먹이 아이조차 읆어댈 수 있을 만큼 많은 이들에게 읽혀오면서, 그네들의 역사를 무엇보다 재미있게 체득하며 자라오는 풍토를 이 나라에도 심어줬느니라.  이러하매 칠일날밤을 지새우며 <<삼한지>>를 읽은 네 느낌은 어떠했느냐?"

 "스님께서 그리 하문下問 하시오니, 소상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더벅머리는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를 다루는 역사소설이라하면 환장을 하는 놈이옵니다. 물론 이는 이목이 띄지 않는 곳에서 읽어왔던지라 사람들에 눈에는 잡기에만 능한 더벅머리로만 보였을 겁니다요. 이 놈은 <<삼국지연의>>를 이문열 평역으로 처음 접하면서 황석영과 장정일 작가의 평역본에 이어 리동혁의 완역본까지 두루 섭렵했으며, 소설<<손자병법>>부터 <<초한지>>와 <<수호지>>는 물론 <<도쿠가와이에야스>>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 한 장 한 장 씹어먹어사옵니다. 중국의 것이라면 <<삼국지연의>>가 그 중 으뜸이었고, 일본의 것이라면 <<도쿠가와이에야스>>가 신들린 경지였으나 이 나라의 것으로는 저 둘에 비할 만한 역사소설이 없었다고 여겼사옵니다. 물론 연산조 때부터 명종 초까지의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는 소설 <<임꺽정>>도 흥미로운 소설이지만, 장강이 굽이치는 <<삼국지연의>>와 전국戰國 시대를 마감하고 에도막부를 창시한 <<도쿠가와이에야스>> 비하면 그 장대한 크기에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요. 무엇보다 두 소설 모두 그 시대를 대변하고 지금도 여전히 숭앙받는 영웅들이 대거 등장하다 보니,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에세이아>>를 보는 재미와 견줄만하다고 보았습죠.

그러던 참에 철저한 고증과 정사에 바탕을 두면서 문장과 말법을 고심하여 10여년을 혼심을 다하면서 김정산 작가가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시킨 <<삼한지>>는 그 출간 소식부터 이 더벅머리의 마음을 달뜨게 했습니다요. 1권 '밤이 깊을수록 별은 빛나고'에서는 폐위된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신라 진지왕의 아들 용춘을 비롯해 폐왕의 서자 비형과 금관국 왕자 서현 등과 함께 영취산 암자에서 이뤄진 새로운 시대의 결의를 보여주는데, 삼국 통일의 그 서막을 알리는 출발이니 게 눈 감추듯 술술 읽혀졌습지요. 2권에서는 마동왕자 부여장의 등장으로 끼니조차 때울 생각도 못했고, 어서 다음 장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보다 더디 읽는 속도에 제 속이 오히려 새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요. 그러다 3권 '살수의 뜨는 별'에선 그 눈시울을 뜨겁게 달군 영웅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시험 문제로나 만나봤을 법한 을지문덕 장군이었습니다. 피와 살이 흐르는 을지문덕을 만난 기쁨과 반가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2백만이 넘는 수양제 양광의 군사를 빈틈없는 지략으로 조롱하고 농락하며, 수레 열 대의 곡식으로 수십만 군대의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그의 책략은 손무와 제갈량의 현신이요, 요동의 성곽들을 방비하며 요동 8성의 창고마다 곡식을 비축해 놓으며  수양제의 요동 정벌을 예견하는 것은 충렬사에 깃든 충무공의 전신이라 할 만하며, 쌍창워라에 올라 무인지경으로 전장을 누비는 그 용맹함은 백만 대군 속을 누빈 조자룡의 용맹과도 견줄만 하니, 3권을 읽고있을 때는 오줌을 지릴 뻔 했습지요. 수세기에 걸친 위진남북조의 분열을 통일한 수제국의 미래를 살수 속에 수장시키고 그 기세를 몰아 수나라를 정벌하지 못한 을지문덕의 꿈이  당장의 안위를 염려하는 중신들에 의해 좌절되자 이 더벅머리 역시 울분에 가득차오르며 망국의 슬픔을 예견하니 3권을 읽는 재미는 <<삼한지>> 중에 백미요 일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요.

마지막 불꽃이 가장 화려하다고 했습지요, 백제 장왕의 강력한 개혁정치로 백제의 마지막 중흥기와 드디어 용춘의 아들 김춘추가 등장하는 4권에 이어 여왕시대를 맞이하는 5권에 이르기까지, 삼국의 국경이 개의 이빨처럼 맞닿아 있어 크고 작은 전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6권에서 막리지 개소문은 드디어 중신들에 휘둘려 학정과 난치를 거듭하며 친당파의 비굴한 외교정책을 강행해온 보장왕을 임인년(642년)에 시해하고 정권을 장악했습죠. 그러나 고구려의 국운은 훗날 개소문의 죽음과 함께 다하고 말았으니, 아아 서릿발 같은 기상과 산천을 누비는 그 용맹함을 다시 못 보게 될 것을 예감하자 빨리 읽고자 하던 조급한 마음을 다독이며 부러 천천히 읽게 되고 말았습니다요.

7권에서 당태종의 요동정벌도 물거품으로 돌아갔을 때, 두 여주의 죽음 이후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김춘추가 신라 제29대 왕(태종무열왕)이 되고,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의 실정 속에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의 드높은 충절을 끝으로 백제의 7백년 사직은 660년에 나당연합군에 무너지며 영화로움도 사라지니, 아아 망국의 슬픔을 그 어디에서 달랠 수 있으리요, 동편에 해가 다시 떠오르고 산천과 백성 모두 그대로이건만 의자왕이 머리를 풀고 땅에 무릎을 끓었던 그 때 이미 어제의 해도 어제의 산천과 백성도 더이상 백제의 것이 아니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손등에 뚝뚝 떨어지는 닭똥같은 눈물은 어찌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후 망국이 된 백제와 고구려를 부흥시키고자 각지에서 부흥 운동이 일어나지만 삼국 통일로 흐르는 역사의 물길을 어찌 막을 수 있으오리까. 나당대전까지 승리로 이끈 신라가 드디어 솥밭처럼 갈라진 삼국을 통일하니, <<삼한지>> 10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태산과 같이 밀려오면서 장강의 거친 물살처럼 용솟음 치는 감격을 어찌 말로 또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요. 창밖에 비치는 희뿌연한 달무리를 바라보며 연거푸 가슴 깊이 숨을 들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려 삼은(三隱) 길재가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고 망국의 한을 읊었던가요. 삼국통일이라는 신라의 대업에도 불구하고 밀려오는 회환은 또 무엇이란 말인지요. 아아 <<삼한지>>와 동거동락하며 읽어내려갔던 지난 칠일밤이 어느새 아득한 꿈이 되고 말았으니, 이런 무상함은 대작을 읽었을 때라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이 아니었겠는지요.

스님, 이 더벅머리의 세 치 혀로는 더이상 대하大河와 같은 감동을 필설筆舌할 수 없으나 한 가지 부득불 시쁜 마음이 드는 것은, 각 사건의 경중을 조금 더 다채롭게 했다면, 읽는 이의 눈과 마음을 더욱 쥐락펴락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은 겁니다요. 을지 장군의 활약을 보여주던 3권처럼 더욱 흥미롭게 전장의 실황을 들여봐 주면서 면밀하게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했던 장면들이 극적으로 더 있었다면 더욱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요. 살수대첩 이후에는 각 사건이나 전쟁 장면들이 균형있게 전개되는 것 같았습죠. 그러니까 을지 장군처럼 피와 살이 흐르는 생동감을 다른 인물들에게도 더욱 부여했다면(없다는 말이 아닙니다요.) 읽는 재미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요. 허나 이와 같은 시쁜 마음은 장강 앞에 누는 오줌발 같은 것에 불과한 것이고, 어디까지나 소인이 지략과 책사가 오가며 피 튀기는 전장을 좋아하는 경향에 의한 탓도 크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대를 걸쳐 서가에 꽂힐, 우리의 역사를 통해 삼국통일의 과정을 담은 장대한 역사소설을 가지게 되었는데, 태산과 같은 결실 앞에 이 더벅머리는 그저 간뇌도지肝腦塗地 하더라도 충절을 맹세하는 장부의 심정으로 혼신의 힘을 쏟아 <<삼한지>>를 탄생시킨 작가에게 감사를 드릴 뿐이옵니다." 

  이후 취산 암자에서는 밤이 깊어가도 사람들의 <<삼한지>> 읽기가 끊이지 아니하니, 내로라 하는 가문의 자제들의 서가마다 <<삼한지>>가 꽂히게 되고, 글을 읽지 못하거나 책을 구입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솥밭처럼 갈라진 삼국의 형세와 그 통일의 과정을 서로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들을 수 있으니, 드디어 만백성이 우리의 역사를 먼저 알고자 그 참뜻을 밝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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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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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의 물고기>>(이하 <4월>)은 영화나 드라마로 재현될 것을 염두한 소설이 아닐까 한다. 그 이유로 첫째는 아마추어 같은 문장 탓이며, 둘째는 영상으로 재현되면 보기좋을 소재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서툴러도 장르의 혼성을 감행한 탓이다.

아마추어 같은 문장, 다시 말해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2002년과 2005년에 거머쥔 기성 작가의 글솜씨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4월>의 글은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그 한 예로, 이제 이야기가 막 펼쳐지는 초반부의 상황을 조금 옮겨본다.

"영화관은 안은 럭셔리했다. 비행기 일등석 좌석을 연상시키는 안락한 의자에 (...) 생일, 축하해요. 오늘 멋져요. 서인이 속삭이자 그는 와인 잔을 살짝 들어 올리며 윙크를 했다. 나 이뻐요? 오늘 잘 보이고 싶어요. 그런데 이 영화 어떨지 모르겠어요. 난 이 감독 싫어요. 극장의 골드클래스를 예약하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왜 싫어요? 현실을 너무 까발려서 징그럽고 야비해요. 오늘 같은 날은 낭만으로 싸 발라도 모자랄 텐데 이런 영화를 보다니...... 아직까진 난 연애에 대한 환상을 벗기고 싶진 않거든요. 서인 씨는요? 까서 먹는 재미가 있잖아요. 그가 풋, 하고 웃었다. 서인이 차가운 와인을 입술에 대고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난 오히려 좀 불편한 영화가 좋아요. 그렇고 그런 익숙한 영화는 지루해요. 하여간 서인 씬 쿨해." - 10~11면

아아 쿨해도 너무 쿨한 문장과 묘사가 아닐까? 오래 전에 대형 서점 안에서, 2002년 이상 문학상 작품을 서서 읽었던 기억을 갖고 있던 나에게 <4월>의 초반부가 주는 당혹함과 뜨악함은 어디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런지.

어떤 게 좋은 문장인지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식견이 있는 사람도 아닌 나조차 의문이 드는 글이다. 그런데 이 상황을 10년이 넘게 글을 써온 작가가 모를 리가 있겠느냐는 거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4월>은 글을 읽는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마치 드라마의 대사처럼 실제 말을 하는 배우들을 염두하고 쓴 '대본'이라고 여겨진다. 그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도 가능하고 '애드립'도 가능한 허술한 대본 말이다.
 

2.
두 번째 이유을 살펴보자. 여주인공인 진서인은 매끈한 몸매가 돋보이는 요가 강사이며, 남주인공인 강선우 역시 키가 크고 마른 몸에 조각같은 얼굴의 사진 작가다. 이들의 사연이 펼쳐지는 장소는 주로 경기도 산속 마을의 호반이라는 호숫가 근처의 펜션, 그리고 이들이 다녀가는 탱고 음악이 흐르는 카페나 요가원은 역시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장소뿐만이 아니다. 유부남과의 일탈도 즐길 줄 아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혜경(진서인 친구)과 온몸에 비를 맞고 강선우의 옥탑방에 등장했던 유정이라는 여학생의 존재 등 두 주인공과 함께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조연들의 이미지와 그들이 갖고 있는 사연들은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자극성까지 두루 갖춰있다. 이처럼 <4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이미지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물론 작가의 말마따나 "미스터리 스릴러"가 가미된 소설인 만큼 남녀 주인공들에게는 곳곳에 복선이 깔아지지만) 즉, 모호하거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인물들이 아니라, 제각기 맡은 역할과 성격이 분명해 영상으로 담아내기가 수월해 보인다는 말이다.  

3.  

  이제 세 번째를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작가 스스로 밝힌 <4월>의 장르를 살펴보자. <4월>은 애절한 러브스토리에 근본을 둔, 미스터리 스릴러적 요소를 더한 소설이라고 한다.  <4월>의 뒷표지에 하성란 작가는 "다채로운 기법들은 이질적이되 너무도 자연스러워 재봉선마저 눈에 띄지 않는다" 라고 위와 같은 장르의 혼성과 그 완성도를 극찬했지만, <4월>을 읽은 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다채로운 장르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말해, 서툰 목수가 짠 가구 같다는 말이다. 통속적으로 진행되던 진서인과 강선우의 "러브라인" 전선에  '미스터리'가 생기면서 진행되는 스릴러적 요소들은 당황스러웠지만 예측이 가능했고 그 결말 역시 이 독자의 예상을 뒤집지 않았다.

여기서 의문이 든 거다. 왜 작가는 이러한 장르의 혼성을 감행했을까?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와 모험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환영하지만, 작가의 이력마저 의심이 들게 하는 서툰 시도라면, 득보다 실이 더 클 터인데! 그 이유 중에 하나로, 작가는 독자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작가의 기존 글을 읽고 그 작가의 새로운 시도를 알고 있는 독자와 그 시도의 결과물로 처음 만나는 독자. 그 차이 속에서 자신의 글을 다시 한 번 더 읽게 되는 독자도 있을 테지만, 두 번 다시 안 읽게 되는 독자도 생길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독자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말한 바가 있지만, 독자나 작가나 어떤 책으로 처음 만나느냐는 서로에게 운이 아닐런지)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무리수를 띄울 수 있는 것은, <4월>이 글로 남겨지는 책이 아니라 영상으로 남겨지기 위한 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한 번 탈고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한 번 각색과 수정이 가능한 '이야기'라면 전력을 다해 안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모든 것은 <4월>을 읽은 한 독자의 추측이고 느낌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4월>은 앞서 말한 문장의 미숙함이 느껴져도 가독성 있게 읽혀지는 소설이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영상이 그 이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남녀 주인공의 운명적인 사랑과 비극적인 결말이 영화나 각종 미니시리즈와 주말 드라마를 통해 한 번쯤은 접해봤을 친숙한 소재였으니까. 그러니까 주인공들과 연루된 각 사건들이나 그들의 사연이 한 번쯤은 각색된 드라마나 영화로 접해봤기 때문에 오히려 잘 읽혀진 것 같다. 즉, 작가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시도와 모험이 들어간 글이였기 때문에 그 스스로 쓴 글이 낯설게 느껴지고 묘한 흥분과 호기심을 일깨웠다고 하던데(358면), 이 독자에게는 너무 친숙한 소설이었다. 다시 말해, 출생의 비밀을 비롯해 운명적인 만남과 우연이 반복되는 <4월>의 이야기는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드라마 왕국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친숙한 소재라는 말이다. 물론, 그 친숙한 소재라도 풀어가는 방식에 따라 "웰메이드"가 될 수 있겠지만, 갑작스런 장르의 변화와 몰입이 불가능한 문장의 안이함과 후반부에 들어 빵빵 터지는 각 사건들은 읽는 이를 무척 당혹스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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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가 온다
백가흠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전경이 속한 밴드가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게 실패로 돌아간 날, 밴드 생활을 하는 전경을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전경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대문을 두드리는 전경의 뺨을 때린다. 음대 출신의 딸이 밴드 생활을 하는 것에 늘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는 아버지에게 전경은 말한다. 이것도 음악고 저것도 음악이라고. 고상하게 차려입고 하는 것만이 음악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것도 음악이라고. 주인공이 전경이 아니라 백가흠 작가였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이것도 사랑이고, 저것도 사랑이라고. 고상하게 보여주는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랑이라고. 소쉬르(F. de Saussure)는 『일반 언어학 강의』에서 기표와 기의의 자의성을 말한다. 그러나 자의적인 관계가 해체될 때 “의미하는 것(기표)과 의미되는 것(기의)”의 구조 속에서 기의는 수없이 미끄러진다. 이것도 사랑이고 저것도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은 사랑에 대한 기의가 미끄러지지 않는 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귀뚜라미가 온다』(인용문구는 쪽수로 표시) 백가흠의 사랑 방정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요컨대 그가 미끄러낸 기의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로 귀결되는 사랑이라는 거다. 어머니 혹은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랑 행위에 대한 설명을 할 때 프로이트(S. Freud)만큼 궁합이 맞는 사람이 또 없다. 대형마트에서 외쳐대는 '대박 할인' 혹은 '파격 세일'이라는 구호만큼 흔히 볼 수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내게 당신은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와 같았다. 당신은 내 옷을 벗기고 내 성기를 애무했다. (...) 당신의 젖가슴이 손에 닿았다. 나는 어느새 젖꽃판에 돋아 있는 작은 돌기들을 손끝으로 훑고 있었다. 엄마의 자궁 속이 기억나는 것 같았다.”(「광어」, p.19)
 
 「광어」의 화자가 사랑하는 미스 정은 화자의 어머니를 상기시킨다. (모성에 대한 전형적인 고착 단계를 보여주는 화자는 비단 「광어」만이 아니다. 「귀뚜라미가 온다」, 「밤의 조건」, 「구두」 .. 모두 어머니 혹은 노모가 등장한다.) 「광어」의 화자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미스 정의 빚을 갚아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미스 정은 “어머니가 나를 버리”(p. 29)듯 가 버린다. 미스 정이 빠져나간 문을 보며 화자는 얼굴 없는 어머니가 불쑥 들어올 것 같다고 말한다. 그에게 부재한 건 미스 정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것. 이렇듯 「광어」를 시작으로, 화자의 “퇴행적 혹은 유아기적” 고착 단계의 사랑은 문학평론가 김형중 씨의 지적처럼 “피학적 헌신, 가학적 폭행, 강간, 신성모독”의 모습으로 각 단편마다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메타적으로 접근해 보자.『귀뚜라미가 온다』의 화자들은 왜 “퇴행적 혹은 유아기적” 고착 단계를 보여주는 걸까? 심리학적 접근이 아니라 왜 백가흠 작가가 왜 그러한 사랑을 그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은희경 작가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연결된다. 인간의 결핍, 부재를 은유한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과 다른 양상(사드-마조히즘적)으로 결핍된 존재를 표현한 『귀뚜라미가 온다』. 현대인들은 언제나 풍요의 반대급부에 시달린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삶. 어제보다 나은 내일, 과거보다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혹은 빈곤해 지지 않기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 던져진 존재.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인간은 결코 욕망을 채울 수 없다. 끊임없이 생산되며 욕망을 부추기는 체제 속에서 인간은 욕망의 기아에 허덕여야 한다. 여기서 백가흠 작가는 퇴행의 길을 택한 것이다. 퇴고적 인간의 날 것 그대로의 욕망으로. 현대인들의 욕망의 끝은 "멀쩡해 보이는 배들도 뻘에 처박혀 있는" 배의 무덤과 같다.( 「배(船)의 무덤」, p. 172)  "목 없고, 가죽 벗겨진 바다사자가 바다에 버려졌듯이"(p. 175), "우리 왔던 길을 잃어버린 것"(p. 193)과 같이 백가흠 작가는 은희경 식으로 표현하면 좌표를 잃어버린 화자들을 등장시켰고, 그들은 폐가로 향하는 길에 믿음이 있고 신앙이(p. 256)  있다고 믿으며,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작가들의 다음 작품은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조대리의 트렁크』역시 백가흠만의 무수한 기의를 남겨줄 것 같다.

 

* 사족: 이 리뷰 역시 몇 년 전에 쓴 건데, 수정하지 않으련다. 지금은 귀찮아서 부러 찾지 않은 꺽쇠들(『』「」)과 각 단편마다 조목조목 따지며 쓴, 몇 안 되는 부지런한 리뷰인 만큼, 원본대로 보존해주고 싶다! 물론 토를 달자면, 지금은 백가흠 작가의 멋진 이 소설집의 리뷰를 이렇게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내용 분석에 치우친 감상이 아쉽다는 거다. 마치 평론가 행세라도 할 것 마냥, 소설을 두고 이런 분석이나 하고 있다니!  이러한 리뷰 쓰기 방식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굳이 벗어나려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벤야민은 카프카에 관한 글을 쓸 때, 카프가가 되고 보들레르에 관한 글을 쓸 때는 보들레르가 된다. 니체 역시 필요한 건, "가면" 이라고 말한다. 여러 개의 가면, 창조적 모방이 되는 인용,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없다. 그게 리뷰든 뭐든 글쓰기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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