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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개청춘 -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유재인 지음 / 이순(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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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항상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나였더랜다. 00 왕자와 행복하게 결혼을 했다라고만 끝맺는 동화들, 7전 8기로 000 대학에 입학하거니 00 시험에 합격한 이들의 수기들, 로또 1등에 당첨된 이들의 삶과 00으로 주식이든 사업에서든 대박난 이들 삶,
그 이후 삶은 어땠을까? 그들은 그 이후로,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을까? 

1.
  <<위풍당당 개청춘>>(이하 청춘)은 낙타가 드디어 바늘 구멍에 들어가사, 어렵게 취업에는 성공했으나 결국 꿈나무가 되지 못하고 '청춘'을 저당잡힌 이십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는 그렇게 소망하던 '직장인'이 됐으니, '동화 공식'에 따르면 행복하게 살았어야 했다. 그녀는 '빛나는 청춘'을 보내고 있었을까?

청춘이란 게,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는 글이 생각난다. 돌도 씹어먹을 수 있는 육체적 나이를 말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말마따나 청춘이란 게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뜻한다면, 껍데기 같은 대화를 주고 받는 생활 속에서(73면), '첫 문장 들여쓰기 3칸'에 상상력을 수장시켜야만 하고(125면), 강인한 의지는 월급날에 맞춰 꺽일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이십대들(그나마 취업에 성공한)은 언제 청춘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형상을 한 적(敵)이 사라진 시대(168면)를 살아가는 이십대들에게, 저자는 통쾌하게 외친다.
"우리가 무슨 봉입니까"(170면)


<<청춘>>이 갖고 있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잠깐! 다음 내용을 이어가기 전에 단점부터 말하련다. 

2.
  일단 <<청춘>>은 재미있다. 이게 무슨 단점이 되는냐라고 반문한다면, 이게 꼭 이십대가 아니어도 직장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재미있다는 거다. 더더욱 이게 무슨 단점이 되느냐라고 반문한다면, <<청춘>>이 '책'이라는 데 있다. 그러니까 <<청춘>>은 한줌의 냉소와 두줌의 재치가 저자의 통찰과 입담으로 잘 버무려져 좌충우돌 '행정직 직딩 초년사'를 유쾌하게 풀어냈으나, '개인사'를 담아냈다는 한계가 느껴진다는 거다. 요컨대, 블러그나 싸이질을 통해서 쏟아질 수 있는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는 말이다. <<청춘>>은 그 부제까지도 철저하게 20대 독자층을 겨냥해서, 편집과 구성면에서도 언제어디서든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졌고, 그에 걸맞는 저자를 발굴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치더라도, 딱 그 정도의 유쾌함과 메시지를 느끼고자 한다면 아쉬울 게 없으나, 한 권의 책으로서 그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을 갖고 메시지를 던져주는 힘을 느끼고 싶어했던 독자라면, 너무나 실망스럽지 않을까 한다. (하긴 책표지나 구성을 보면서 그 이상의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발간 의도를 넘어선 것 같지만) 아무튼 또 그렇다치더라도 오프더레코드편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왜 여기에 굳이 있을까" 라는 강한 의문을 들게 만든다. 엄마에게 메신저를 가르쳐 드리고, 예의있는 신랑을 만들기와 저자의 아이팟 나노 구입에 관한 주변의 반응 등이  "위풍당당 개청춘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잔혹사" 라는 원제와 부제목을 무척 낯설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혼녀가 '너무 가진 자' 같다며, 이 책의 컨셉에 맞춰 남편을 남친으로 바꿨다고 말하는 저자의 고백이 하등 배반스럽지 않으나, 한 권의 책으로서 갖는 완성도에서는 아쉬움을 크게 느끼는 구성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과 같은 목소리(굳이 책의 형태가 아니더라도)가 나온다는 건, 희망적이다. 


 3.
'이십대, 까도 우리가 까자는 것(164면),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 

 포식자가 지배하는 생태계 구조와 닮은 이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잊어버리지 말자는 결의와 다짐으로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그녀, 삶의 비밀이란 게 다른 사람을 발견하는 데 있다는 요하임 바우저의 말을 인용하며 타인의 삶을 보려는 그녀, 자신이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바꿔가며 살아보려고 했다는 보네커트 옹의 말을 좋아한 그녀,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녀를 통해 이 사회에 저당잡힌 '청춘'을 돌려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느껴진다.

수많은 청춘들이 '기쁜 삶'을 누리지 못한다.  "이력서를 백번쯤 쓰고 천신만고 끝에" 취업에 성공한 이들이나 "서른이 다 되도록 아르바이트"만 하는 이들이나, "88만원 세대"라는 숫자로 정의되고 이 시대 속에서 그들은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절망과 좌절을 안겨주시는 사회, 이 사회에 그대로 수긍하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인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잃지 않고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바꿔가며, 내가 주체가 되고, 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간다면, 우리들은 잃어버린 '청춘'을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십대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잃어버린 시간, 그 '청춘'을 이제 돌려받기를 원한다. 내 청춘을 돌려받자는 것! 내가 주체가 되고, 사회가 만들어낸 '루저'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진정한 나의 삶을 느끼고 살아가자는 것.  모두가 '빛나는 청춘'을 돌려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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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망, 너무 사양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마망 너무 사양해 -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꼬마 파리지앵의 마법 같은 한마디
이화열이 쓰고 현비와 함께 그리다 / 궁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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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길, 하나의 삶, 하나의 성공,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그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연히 당시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고, 그 때문에 그 아름답던 시절을 참 우울하게 보냈더란다. 물론 나름대로 저항도 하고 거부도 하면서 또래 친구들에 비하면 자유롭게 살았지만,  그 자유의 대가는 언제나 그들보다 뒤처진 사회적인 지위라든가 경제력이라든가로 환산되었다. 당시에는 그게 또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들이대는 대차대조표에서 나는 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 또래의 아이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혹여 그때의 나처럼 성공이나 행복이 그 한 가지밖에 없다고 믿으며 빛나는 청춘을 여전히 저당잡히고 사는 건 아닐까.

  <<마망 너무 사랑해>>(이하 마망)을 읽으면서 그 시절의 내가 혹은 나처럼 살아왔을 누군가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단순히 문화적인 차이를 겪으면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어떤 가족의 이야기였다면, 나는 그냥 책장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큰 이유로, 내가 멀지 않은 미래에 결혼하게 되어 그 나라로 날아가지 않는 이상, 흥미가 당기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타국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자녀는 커녕 결혼조차 생각이 없는 사람한테 <<마망 >>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생각되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개개인의 삶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을 수 있는 공간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건, 단순히 문화적 차이를 그린 에세이를 보는 것과는 달랐다. 앞서 말했던 내 지난 삶이 <<마망>>을 읽는 내내 겹쳐졌으니까. 그리고  이 땅에서 자라나고 있는  또다른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으니까. 똘레랑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내 세대까지도 그런 사회가 되지 못했다면, 다음 세대들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나부터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후세대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도 이 땅에 태어난 내게 주어진 의무가 아닐까 하는 것.

   
  [마시멜로 이야기]가 불편했던 이유는 '성공'이라는 잣대로 자제력이라는 인간의 한 특성을 추출해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 성공은 행복의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자유를 가진 개개인의 삶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다. 평범하고 잔잔한 행복을 추구할 선택의 권리도 있는 것이다. -68면  
   


프랑스 교육 이야기도 나오는데, 나 역시 "관계"에 얽매이고 사는 삶에서 결국은 완전히 못 벗어나고 있다. 그러니까 행위 주체가 나 자신이 아니라 관계의 의해 결정된다는 것.

   
  "프랑스 교육의 핵심은 '자기생각'을 고민하게 만들고 '자기생각'을 표현하는 훈려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행위의 주체가 '자기 자신' 이라는 프랑스 꼬마를 보면서 '자기 자신'보다는 '관계'에 얽히고  살았던 내가 때때로 뒤통수를 살짝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낄 때가 있다. " - 150면  
   


최근에 '둘째'가 결혼했는데, 둘째와 새언니가 결혼 준비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결혼이 완전히 '관계'들이 얽매이는 순간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언니는 이제 무얼해도 시부모와 시동생 등 시가쪽 가족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챙기고 배려하고 있었으니까.

결혼과 같이 작게는 가족 관계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적 관계 속에 우리는 얼마나 얽매이고 살고 있나. 지금의 나는 비록 이렇게 관계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비명을 질러도, 적어도 다음 세대들에게는 <<마망>>의 아이들처럼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줘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   

 끝으로, 만약 <<마망>>을 안 읽었더라면, 이런 생각을 또 언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당장 관심있는 분야의 책이나 필요한 책만 읽지 말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새삼 든 거다. (현재는 필요한 책만 겨우 읽고 살고 있고 나지만.) 철학이란 게 정말 '철학서'에만 들어있는 게 아니니까. 다시 한 번 내 삶을 돌아보게 하거나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게 하는 글들, 그 글들이야말로 철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정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어떤 분야의 책을 한 번쯤 집어서 읽어보는 것도 참 신날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안 읽은 분야의 책으로, 무엇이 있을까?  읽어야 할 책이 참 많다.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도 행복할 수 있어. 행복이라는 건 아주 사소한 것일 수 있어. 하늘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거나, 구남 냄새를 맡고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엄마가 비주를 해주거나, 이런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행복이라고 할 수도 있어. 그리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면서 자신도 행복감을 느끼기도 해. 행복은 사람에 따라 모양과 색깔이 다르지. 하지만 그 크기와 질을 결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야." - 26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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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 세쌍둥이와 함께 보낸 설피밭 17년
이하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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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꽉 막힌 도로와 차들, 환승역에서 차갑게 스치는 수많은 익명의 군중, 통장에 찍힌 잔고와 다음 달에 이메일로 날아들어올 카드명세서. 24시간 운영되는 대형 마트에서 피곤에 찌든 직원들의 옆얼굴을 스쳐지나가며 카트 안에 더 넣을 물건과 빼야 할 물건을 결국 계산대 앞에서 망설여보기도 하고, 마트에 가지 못한 날은 편의점으로 달려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물건을 구입하기도 하며, 도시의 불야성 그 불빛을 바라볼 때, 꿈을 꿉니다. '곰배령 꽃비가 내리는 세상'을.

봄이면 피는 꽃들을, 여름이면 녹음에 둘러쌓이고, 가을이면 지는 낙엽들과 겨울이면 눈밭에 쌓여, 그 계절의 변화를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접하는 게 아니라 직접 온 몸으로 느끼며, 몇 가구 안 되는 이웃 주민들과 나무는 물론 숲속의 동물들과도 그 계절을 준비하는 세상을. 직접 담근 메주로 만든 된장을 멸치 넣고 팔팔 끓인 뚝배기 안에 풀고, 내가 심은 모종에서 무럭무럭 자란 청양고추와 호박과 감자와 양파를 댕강댕강 썰어, 해감시켜놓은 바지락과 함께 퐁당 집어넣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국을 내놓는 밥상을.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를 읽었을 때, 이루지 못할 꿈의 한자락을 보는 것 같아, 저는 보는 내내 울먹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의 삶,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이 남겨져 있는 이 곳의 삶, 짬짬이 각종 공연과 미술관에 들리면서 대신 풍요로운 문화 생활이 이 곳에 있지 않느냐 위안을 삼아보아도, 채워질 수 없는 삶의 그리움, 본시 고향이 갯벌 내음 나는 바닷가 부근이었던 저에게 도시의 삶은 언제나 채워질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바다로 흩어졌던 연어들이 떼를 지어 강으로 돌아오듯, 회귀[回歸] 그 귀소본능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저는 오늘도 통장에 찍힌 숫자를 들여다 보며 내일의 삶을 꾸려가야 합니다. 오늘이 아닌 미래를 잔고에 따라 먼저 계획하며 살고있는 도시의 삶 속에서,  세쌍둥이와 함께 곰배령 그 "풀꽃세상"에 터를 잡은 그녀의 모습은 여행지에서 얻은 엽서 한 장이 되어, 꿈처럼 그리움처럼 다가옵니다.

   
  "필녀를 통해 나는 낟알 하나의 의미를 익혔으며, 한솥밭을 먹는 사람들이 바로 식구라는 사실을, 그리고 밥솥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 (...)필녀에게 받은 밥솥의 뜻은 내 가슴에 싱싱하게 살아있어 오늘도 내게 밥을 짓게 하고 있다. 그러니 햇살이 좋으면 햇살이 닿는 대로, 꽃이 피면 꽃빛이 비치는 대로 눈 내리고 비오는 창가에서 소록소록 밥이 끓고 있는 우리 집 부엌을 필녀가 보면 참 좋아하겠다." -58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고향이지만은, 그러나 저는 이 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녀처럼 필녀와 같은 이를 만나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깨닫게 해준 이 곳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꿈과 저의 꿈이 만나 하고 싶은 일이자 해야 할 일이 된 그 꿈을 이루게 되는 그날, 저는 그제서야 짐을 덜고 연어처럼 고향으로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쉰이라는 나이는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아지는 때. 나도 어머니처럼, 곰배령의 꽃들처럼 언젠가는 저물어갈 터다. 아아, 사랑하고 살기도 짧은 세월 속에 무엇을 더 두리번거릴 텐가. 하산 길,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빨라진다. 나 사는 세상으로 돌아가 더욱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가야지. 곰배령의 꽃들처럼 찬란하게, 내 어머니들 사신 것처럼 지극하게" - 228면  
   


  책조차 필요한 책만 겨우 읽고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단비와 같이 만난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가끔 이 삶이 너무 지쳐 쉬고 싶을 때, 곰배령 그 설피밭으로도 달려가보렵니다. '곰배령의 꽃들처럼 찬란하게, 당신의 어머니들이 사신 것처럼 지극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만나고 나면, 오늘도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는 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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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2010-03-0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꽃님,
하고 싶은 일들을 가슴에 품고 해야 할 일들 앞에 서 있는 그 기분, 저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시험을 앞에 두고 소설책이 읽고 싶다거나
외출약속을 잡아놓고 갑자기 옷장정리를 하고 싶다거나, 글이 쓰고 싶다거나,
등등 ,

저의 일상은
거의가 must와 wish 사이의 줄다리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지요.
옛날엔 must 가 우세했는데 요즘은 점점 wish가 힘을 얻고 있는 듯해요.
아마도 당위(must)의 항목이 많이 줄어들은 듯...
한동안 의무를 권리로 말을 바꿔 사용해 보았습니다.
청소할 의무를 청소할 권리로
밥 할 의무를 밥 할 권리로,
눈 치울 의무를 눈 치울 권리로
지불할 의무를 지불할 권리로^^
숱을 쳐낸 머리카락 처럼 일상이 다소 가볍게 느껴졌답니다.^^
그런데
바람의 꽃님의 '그 사람들의 꿈과 저의 꿈이 만나 하고 싶은 일이자 해야 할 일이 된 그 꿈을 이루게 되는 그날,'
을 읽으며 must와 wish가 함께 하는 꿈을 만나봅니다.
짜장면과 짬뽕사이에서 습관적으로 고민하다가 처음 짬짜면을 만날을 때의 그 참신하던 기분과 흡사합니다,^^
환하고 멋지게 여겨집니다.
좋아 보이면 꼭 따라하게 되는 습성이 있는 저는
'must와 wish'를 소명과 소망이라 부르는 꿈의 작업으로 받아들이고
적극 따라하기를 선택합니다.
기왕에 하는 일이라면 소명이자 소망이라 생각을 전환하면
훨씬 신나고도 재밌게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흔들리는 것은 마음' 에 적극 한표^^

책 읽어주심, 리뷰 올려주심 , 고맙습니다.
그리고 올려주신 리뷰'곰배령의 꽃들처럼 찬란하게 '를
저희 세쌍둥이네 풀꽃세상 홈피 (www.jindong.net)풀꽃사는 이야기방에
옮겨두었음을 신고합니다.
그럼, 바람의 꽃님 즐거운 봄날 맞이하시기를 고대합니다.
지금, 눈 펑펑 쏟아지는 진동리에서...





 
<남자는 초콜릿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남자는 초콜릿이다 -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
정박미경 지음, 문홍진 그림 / 레드박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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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가는 여자가 상반신을 살짝 비틀어,
부드럽게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고혹적인 미소를 날린다면?

'잡히면 쥑인다'는 멘트가 절로 상기되는 코미디 영화 속의 광녀만 아니라면,
제대로 먹히는 "남자 후리는 1백만 가지 자태"중의 하나다.  - <남자 후리는 1백만 가지 자태> 중에서 1378쪽 인용

1.
  <<남자는 초콜릿이다>>(이하 <초콜릿>)은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라고 소개가 되는데, 그렇다고 내용도 B급일까? <초콜릿>은 관객과 비평가를 사로잡고, 재미와 감동은 물론 고예산으로 오랜 기간 동안 투자한 A급 영화와 같다. 물론 남성 관객들의 야유쯤은 흥행 성적에 누가 되지 않는다. 참고로, 필자는 B급 영화를 단순히 싸구려 저질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시상영이란 게 영화사 속에 남아있는 21세기에, A와 B급으로 영화의 수준과 장르를 분류하는 잣대는 이미 허물어졌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도 B급이라는 용어를 잊지 않고 사용하고 싶은 건, "B급" 속에 남아 있는 원초적인 냄새 탓이다. 그렇다. 그 '아우라' 때문이리라. B급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저예산과 오직 몸뚱이(아이디어) 하나로 거대 자본 시장의 틈을 파고들었던 수많은 영웅들이 만들어 냈던 그 역사의 냄새!

아무튼 본글로 다시 들어가면, 내용도 B급일까? 라고 아까 물었던 이유는,  "정박미경의 B,급,연,애,탈,출,기" 라는 부제목 때문이다. <초콜릿>이 B급 연애 탈출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그 내용마저 B급은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까 B급 연애 운운해 하며, 그저 호객 행위용으로 독자를 사로잡으려는 부제목이 아니라는 거다.  다시 말해 B급 연애에서 벗어나라 둥, 탈출하라는 등의 말만 늘어놓으며 B급 조언을 일삼는 책이 아니라는 거다.  (절대절대(=강한부정) 필자가 초반에 제목만 보고 편견을 가졌다는 말이 아니다.)


2.
   <초콜릿>에 나오는 7가지 유형 중에 이제 막 서른에 진입했거나 서른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김연수 횽아가 '서른 살'이라는 책을 내줬으면 좋겠다.) 여성들이 한 번쯤 겪어 봤거나 겪고 있는 중이거나 겪을 가능성이 99.999999...% 라면 저 7가지 유형에 무척 동감할 것이다.

뭐, 이제 막 서른이나 서른 이후의 연애가 어찌 7가지 유형만으로 정리될 수 있겠냐마는 적어도 서점 안을 노닐다가 슬몃 <초콜릿>을 들춰보거나, 혹은 인터넷 서점의 검색창에 '연애'라는 글자를 한 번이라도(도리질? 그렇다면 마음만이라도!) 두드려본 이라면, 충분히 7가지 유형만으로도 설득당하고 만다.  (물론 선물로 받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도중에 혹은 00 이벤트 도서 목록에 혹해서 또는 그 밖의 수많은 우연과 축복으로 <초콜릿>을 읽게 될 독자들이라면, 장담은 못하겠다.)
 
그리고 필자처럼 정확하게 어떤 유형에 속하지 않고 조금씩 모든 유형에 걸쳐 있는 이도 있으리라.  읽는 내내 어쩜, 그래, 어머, 이런 머저리! 등의 감탄사를 내뱉을 수 있었던 건, 7가지 유형에 모두 걸쳐있는 덕분이다. '7유형'을 종합한 이 제8의 유형은 피해야 할 남자 유형과 배워야 할 연애 기술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한숨을 포옥 내쉬리라. 물론,  2~3가지를 조합한 제9의 유형이나 제10의 유형도 있을 것이다. 자, 여기서 그 7가지 유형에 설득당할 수 있는 '마법'이 시작된 거다. 책소개에는 분명 "리얼 B급 연애 7종 세트"라고만 나왔는데, 그 유형의 가지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수 있으니, 무한 사은품을 받아낸 기분이 이러할까, 공짜도 이런 공짜도 없다!  막무가내로 기뻐하려다 정가를 본다. (이거 값을 올려받거나 수정한 거 아냐! 그렇다. 나는 늘 속고만 사는 1인다.)   

 

3.
  나에게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 아주 단순하게 찾아본다면(상황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답변이지만) 밑줄을 쫙쫙 긋게 할 만큼 유려한 문장 그 자체를 비롯해, 미처 정리되지 못한 내 생각이나 생각하지도 못한 사유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 순간이 아닐까. 자기계발서나 실용서는 읽어보지 못하고 오직 문학과 인문서적 독서 외길 인생을 살아왔던 필자가 그동안 너무 편식적인 독서를 하게 했구나도 알게 해 준 책(이런 말을 다시 써먹을 다른 책을 금세 또 만나긴 했다.)  아아, <초콜릿>에는 밑줄 그은 곳이 참 많다. ("참많다"에 3방향 입체 써라운드로 음향 효과를 넣어주시길!)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몫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든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든, 분명한 것은 사랑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내'가 보이고 '나'를 경험게 된다는 점이다. 호감, 좋은 감정, 혹은 사랑을 주고받는 연인 관계는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강력한 인간관계다. - 53면

이 과정에서 '나'라고 생각해 왔던 경계들이 드러나고 그 경계들이 서서히 움직이고 변화하는 '경계 허물기'가 진행된다. '나라는 경계'를 허무는 과정은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다.  (...) 연애가 쾌감을 주든 상처를 주든 분명한 것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원하는지, 자신을 알아가는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 54면

자신에 대한 방어막 하나 없이 연인 관계가 주는 감정의 회오리 속으로 벌거벗은 채 걸어 들어간 것이다. - 40면

남자들이 '자기 여자'에게 기대하는 것이란,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자유분방해야 한다는 것, 자기가 꺾을 수 있을 만큼만 고집스러워야 한다는 것,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기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 103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애는 소비를 먹고 산다. 커플 되기의 가장 쉬운 방법이자 문화를 향유한다는 자부심도 안겨주는 영화는 개봉일에 맞춰 봐줘야 하고, 만난 지 백 일쯤 되는 기념일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생일이면 더욱 소비적인 이벤트가 덧붙여지고 몸 누일 곳이 없는 커플에게는 모텔비까지 더해진다.
연애는 곧 소비이고 소비를 통해 유지된다. - 111면

그것을 적극적인 자신의 선택으로 이야기하는 순간 그 이후 변화하게 될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변화하는 삶을 책임지겠다는 것에는 또 다른 결심이 필요하다. - 153면

그때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사랑하고 있는 스스로를 사랑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다는 느낌 자체가 좋았어요.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니까요. - 211면"


더 이상은 생략!   

1-1
  물론 그렇다고 <초콜릿>에 100% 공감되는 건 아니다. 연애 관련 실용서를 처음 읽은 탓인지 몰라도(그 흔한 여성잡지도 5시간에 걸친 헤어펌(염색+ 펌 +코팅) 을 수십 번 해대는 동안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다. 전화번호와 자웅을 겨룰 만큼 두꺼운 여성 잡지라도 5분만에 읽어버린다. '그림'만 보고 살았다.)  혹은 연애 관련 수다를 해본 게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 탓인지는 몰라도......!  여기까지 쓰다 순간 '자판질'을 멈췄다.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와 만나 옛추억을 나누면 그 시절은 그저 순수하고, 아름답고, 마냥 그립고 좋을 수밖에 없는 과거=추억이 된다. "왕년에 내가 말이지" 라고 할 때의 왕년도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이 책 다 읽은 지 1주일 안 됐는데, 벌써 "추억"이 되다니! 그렇다.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이 기억이 안 난다. (이때 이모티콘을 써주고 싶다. 무릎꿇고 엎어진 상태서 흙흙) 밑줄 그은 부분은 죄다 공감이 되는 부분이니 말이다. 처음부터 다시 읽을까? (다시 이모티콘 효과)  


커피 마시고 왔다 
 
  가장 객관적인 답변은 철저하게 여성의 입장에 쓴 글이기 때문이리라. 즉, 7가지 유형을 분류할 때 들게 되는 사례를 보면, 이 세상에는 비겁하거나 나쁘거나 마초거나 후진 남자들로 득실 거리고, 그 남자들에게 당하기만 한(7가지 유형 중에서 1가지 유형의 여성만 유일하게 '나쁜여자'라고 말할 수 있는 양다리의 고수지만, 그녀의 사연을 읽게 되면 결코 미워할 수 없다.) 여성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마주하게 될 때, 지난 500년 간 쌓아온 여성들의 분노 게이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콜릿>은 '내 편 만들기' 식으로, 여성 독자들끼리 함께 분노하고 남자들을 밟아주기 위한 노가리용이 아니었다. 그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연애와 섹스, 그 욕망과 두려움과 설레임 속에서 자신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우리의 왕언니가 진한 삶의 경험과 통찰로 얻어낸 결과물을 가감없이 들려주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감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분명 또 있다. 이 음습한 기분을 뭘까! 어쩌면, '연애'라는 그 세포, 야광충마냥 핏줄 속에서 온 몸을 돌며 그 반짝이는 더듬이와 돌기를 빛내고  있을 그 세포가 말살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찾아온 '낯설음' 탓은 아니었을까, 연애 그 이름만으로 필자에게는 이미 100% 공감하기가 어려웠던 게 아니었을까.

오호 통재라!
개체수 보존을 위해서라도 지극한 정성과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살폈어야 했는데!

문득 1월에, 최저 기온으로 치닫던 평일밤에 덜덜 떨며 심야영화로 본 <로드>가 생각난다. 그 세포를 만나게 되는 날이 <로드>의 마지막 장면처럼 눈물콧물 질질 흘리게 할 수 있을까, 그 끝없는 잿빛 하늘아래 끝없이 걸어갔던 남자와 아이의 처절한 사투, 인류 멸망 그 이후의 삶의 현장 속에서 가슴 속의 불을 나르던 마지막 사람들! 매카시 횽아의 위력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역작 <더 로드>! 책으로도 꼭 만나세요! (본 글은, <<남자는 초콜릿이다>>(정박미경, 레드박스) 리뷰입니다. 서평을 마지막 부분만 읽거나 건너뛰면서 읽는 분들을 위한 친절한 덧붙임.)

  몇 억만 년 전에 제대로 된 사랑 좀 해보겠다고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었을 때,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그것도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절절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초콜릿>을 읽고나니, 그때는 관념적으로 느꼈구나를 생각하는 나를 바라보는 나가 있다. 아무튼  <초콜릿>을 비롯한 연애 관련 실용서들을 접할 때(접하게 된다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필자 역시 귀차니즘보다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해? 하는 반발심이 더 컸다.  하지만 '기술'은 필요하다! 그렇다. 사랑에 관해서도 기술은 필요했던 것이다. 어떻게 내 마음을 전달해야 하는지,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관계'를 위해 어떻게 서로를 이끌어야 하는지, 어떻게 상대를 배려해야 하는지 등을 알아야만 했던 것이다.   

"사랑의 마음은 결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소중하게 전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 216면"

   아무튼 커피 마시고 온 이후의 생각을 정리하면, 여성의 시각으로 사랑과 연애를 다루면 역시 한 면만 보게 되는 위험은 있다. 그 상황을 여성의 시각만으로 단호하게 판단하고 해결책을 내리면, 남성이 아닌 같은 여성의 입장이라도 소외되는 결론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초콜릿>이 단순히 그 면만을 부각시키면서, 남녀 관계의 역학 구도를 되짚으며, 여성 동지들을 단결하게 만드는 글이 아니라는 거다. '비치'가 되라느니, 남자의 자원을 아낌없이 향유하라느니 하라는 조언들이 먼저가 아니라, 여성들이 '나'의 모습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 진정한 나와 관계맺는 연애를 하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연애(좁게는 연애지만 넓게 사회) 관계에서 늘 수동적이거나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 못하거나 진정한 나의 모습을 잃고 사는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게 아닐까?  


4.
  우리는 늘 첫키스의 날카로운 추억과 함께 진정한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사랑 이후는? 그 순간의 번쩍임과 황홀감이 지나간 이후는? 여전히 그 순간의 사랑만을 찾아 헤매게 될 것인가? 채워지지 않는 욕망만을 탓하며 끊임없이 다른 이를 찾아 미끌어질 것인가? 물론 그,래,도,된,다! 하지만 이제 그것마저 지친 이들에게, 그리고  한 번쯤 각종 미디어와 로맨스 소설이 심어둔 판타지에 찌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필요할 때, 무엇보다 사랑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보다 충만한 사랑과 즉 사랑 이후에 찾아오는 삶인 연애, 그 두 자를 파헤쳐보고 싶은 이들에게 <초콜릿>은 초콜릿이 된다!

드디어 이 글의 결론,
(샛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손가락에서 단내가 난다.)

자기계발서나 실용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이들이 있어, 같은 이야기를 또 하고 말만 바꿔 또 해도 이 책들은 불황 속에서도 꾸준히 팔린다. (아참, <초콜릿>은 에세이로 분류된다. 부랴부랴 마이리뷰란에 '에세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뒀는데, 필자는 실용서로 분류하고 싶다. - 실용서로 알고 읽었다가 리뷰 작성란에 '에세이'로 뜬 거 보고 알았다. 뭐 장미가 장미로 안 불려도 그 향기가 여전하다면, 에세이를 에세이라 안 불러도 되지 않을까? 근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그 심정은 또 다르지 않을까? 에잇! 하지만 필자는 <초콜릿>이 자기계발서 내지 실용서처럼 보인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메시지가 너무 강력하게 전달되니까.)  아무튼 서당집에서 1년만 더부살이하는 개도 읊을 수 있는 풍월이 있다. 앎에는 실천이 따라야 하는 법! 연애, 그 충만한 삶을 지금 당장 실천하기를!    

자, 그렇다면 <초콜릿>과 그 밖의 다른 연애 상담서들도 모두 섭렵하고, 100명의 남자와도 연애를 해봤다면, 이 사람은 이제 연애 고수 혹은 달인이 되는 것인가?

천만에 말씀! 분명 이 책을 수십 번 정독하고 안내서대로 실천하다고 해도, 여전히 나쁜 남자에 끌리고 후진 연애를 하고 삶을 허무하게 소모하는 여성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 코도 석자다!) 문제는 그 실패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짱황'이라는 말씀. 단 한 번의 연애라도, 더이상 자신을 소모하는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뿌리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마치 뼈아픈 실수를 겪었다면, 그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는 지혜와도 같은 것이다. 이론과 실천, 이 둘만으로는 더 이상 삶에서 변화가 찾아오지 않는다. 이론과 실천에 성찰도 반드시 넣기를! 그 깨달음과 함께 실천을 누리기를! 성찰을 동반하는 사랑과 연애를 통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를! - 이건 서당집 개도 아직 못 찾은 진정한 앎의 의미다. (나만 몰랐다고는 죽어라 말 못해!) 나와 내 삶 그리고 연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까지 놓치지 않으며, 만국의 여성들이여 연애하라!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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