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가제본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삼한지 세트 - 전10권
김정산 지음 / 서돌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때는 건평왕 15년 어느 여름밤, 짙은 녹음으로 둘러쌓인 취산의 어느 암자에서 더벅머리 청년이 <<삼한지>>를 정독하고 있다. 천둥이 밤하늘을 가르고 번개가 산천을 대낮 같이 밝힌 밤에도 청년의 <<삼한지>> 읽기는 멈춤이 없었고, 끼니 때가 찾아와도 책을 놓지 아니하고 밥상을 물리니, 평소에 글읽기라 하면 그 시도조차 기겁을 하며 잡기雜技에만 능한 더벅머리의 행적이 괴이쩍기만 하더라. 그렇게 여섯 날밤을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지내며 청년의 <<삼한지>> 읽기는 계속 되었고, 드디어 일곱 날밤에 산중의 밤을 일깨우는 괴성과 함께 청년이 사립문을 박차고 나오더라. 일곱 밤을 물 한목음도 들이키지 않고 잠 한숨도 자지 아니한  아이의 얼굴은 귀신의 형상이 아니라 되레 달덩이 보다 탐스럽게 빛나며 복사꽃이 피어난 듯 향기로움을 내뿜으면서 형형한 눈빛까지 발하고 있으니, 대관절 어찌된 영문인지 사찰 내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만 들여다보고 청년에게 그 연유조차 묻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이승二乘이 짐작이 간다는 듯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더벅머리 청년에게 묻는지라.  

 "<<삼한지>>는 '부족국가 시대를 마감하고 중앙집권 체제로 들어선 삼국이 서로 대립과 경쟁 속에 세력을 확장해나가는 시기를 시작으로 신라가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통일을 완성하는 676년까지 약 100년간의 역사를 재구성한' (8면 인용)책으로, 우리는 그동안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분분히 일어난 군웅들의 이야기, 영웅과 전쟁, 각종 권모술수와 책략이 어울러져 한바탕 휘몰아치는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을  중국의 역사를 통해 만나볼 수 밖에 없었느니라. 그 중에서 특히 <<삼국지연의>>는 위,촉,오로 솥밭처럼 갈라진 삼국시대의 역사를 그리고 있는데, 이 책은 젖먹이 아이조차 읆어댈 수 있을 만큼 많은 이들에게 읽혀오면서, 그네들의 역사를 무엇보다 재미있게 체득하며 자라오는 풍토를 이 나라에도 심어줬느니라.  이러하매 칠일날밤을 지새우며 <<삼한지>>를 읽은 네 느낌은 어떠했느냐?"

 "스님께서 그리 하문下問 하시오니, 소상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더벅머리는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를 다루는 역사소설이라하면 환장을 하는 놈이옵니다. 물론 이는 이목이 띄지 않는 곳에서 읽어왔던지라 사람들에 눈에는 잡기에만 능한 더벅머리로만 보였을 겁니다요. 이 놈은 <<삼국지연의>>를 이문열 평역으로 처음 접하면서 황석영과 장정일 작가의 평역본에 이어 리동혁의 완역본까지 두루 섭렵했으며, 소설<<손자병법>>부터 <<초한지>>와 <<수호지>>는 물론 <<도쿠가와이에야스>>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 한 장 한 장 씹어먹어사옵니다. 중국의 것이라면 <<삼국지연의>>가 그 중 으뜸이었고, 일본의 것이라면 <<도쿠가와이에야스>>가 신들린 경지였으나 이 나라의 것으로는 저 둘에 비할 만한 역사소설이 없었다고 여겼사옵니다. 물론 연산조 때부터 명종 초까지의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는 소설 <<임꺽정>>도 흥미로운 소설이지만, 장강이 굽이치는 <<삼국지연의>>와 전국戰國 시대를 마감하고 에도막부를 창시한 <<도쿠가와이에야스>> 비하면 그 장대한 크기에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요. 무엇보다 두 소설 모두 그 시대를 대변하고 지금도 여전히 숭앙받는 영웅들이 대거 등장하다 보니,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에세이아>>를 보는 재미와 견줄만하다고 보았습죠.

그러던 참에 철저한 고증과 정사에 바탕을 두면서 문장과 말법을 고심하여 10여년을 혼심을 다하면서 김정산 작가가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시킨 <<삼한지>>는 그 출간 소식부터 이 더벅머리의 마음을 달뜨게 했습니다요. 1권 '밤이 깊을수록 별은 빛나고'에서는 폐위된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신라 진지왕의 아들 용춘을 비롯해 폐왕의 서자 비형과 금관국 왕자 서현 등과 함께 영취산 암자에서 이뤄진 새로운 시대의 결의를 보여주는데, 삼국 통일의 그 서막을 알리는 출발이니 게 눈 감추듯 술술 읽혀졌습지요. 2권에서는 마동왕자 부여장의 등장으로 끼니조차 때울 생각도 못했고, 어서 다음 장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보다 더디 읽는 속도에 제 속이 오히려 새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요. 그러다 3권 '살수의 뜨는 별'에선 그 눈시울을 뜨겁게 달군 영웅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시험 문제로나 만나봤을 법한 을지문덕 장군이었습니다. 피와 살이 흐르는 을지문덕을 만난 기쁨과 반가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2백만이 넘는 수양제 양광의 군사를 빈틈없는 지략으로 조롱하고 농락하며, 수레 열 대의 곡식으로 수십만 군대의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그의 책략은 손무와 제갈량의 현신이요, 요동의 성곽들을 방비하며 요동 8성의 창고마다 곡식을 비축해 놓으며  수양제의 요동 정벌을 예견하는 것은 충렬사에 깃든 충무공의 전신이라 할 만하며, 쌍창워라에 올라 무인지경으로 전장을 누비는 그 용맹함은 백만 대군 속을 누빈 조자룡의 용맹과도 견줄만 하니, 3권을 읽고있을 때는 오줌을 지릴 뻔 했습지요. 수세기에 걸친 위진남북조의 분열을 통일한 수제국의 미래를 살수 속에 수장시키고 그 기세를 몰아 수나라를 정벌하지 못한 을지문덕의 꿈이  당장의 안위를 염려하는 중신들에 의해 좌절되자 이 더벅머리 역시 울분에 가득차오르며 망국의 슬픔을 예견하니 3권을 읽는 재미는 <<삼한지>> 중에 백미요 일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요.

마지막 불꽃이 가장 화려하다고 했습지요, 백제 장왕의 강력한 개혁정치로 백제의 마지막 중흥기와 드디어 용춘의 아들 김춘추가 등장하는 4권에 이어 여왕시대를 맞이하는 5권에 이르기까지, 삼국의 국경이 개의 이빨처럼 맞닿아 있어 크고 작은 전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6권에서 막리지 개소문은 드디어 중신들에 휘둘려 학정과 난치를 거듭하며 친당파의 비굴한 외교정책을 강행해온 보장왕을 임인년(642년)에 시해하고 정권을 장악했습죠. 그러나 고구려의 국운은 훗날 개소문의 죽음과 함께 다하고 말았으니, 아아 서릿발 같은 기상과 산천을 누비는 그 용맹함을 다시 못 보게 될 것을 예감하자 빨리 읽고자 하던 조급한 마음을 다독이며 부러 천천히 읽게 되고 말았습니다요.

7권에서 당태종의 요동정벌도 물거품으로 돌아갔을 때, 두 여주의 죽음 이후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김춘추가 신라 제29대 왕(태종무열왕)이 되고,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의 실정 속에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의 드높은 충절을 끝으로 백제의 7백년 사직은 660년에 나당연합군에 무너지며 영화로움도 사라지니, 아아 망국의 슬픔을 그 어디에서 달랠 수 있으리요, 동편에 해가 다시 떠오르고 산천과 백성 모두 그대로이건만 의자왕이 머리를 풀고 땅에 무릎을 끓었던 그 때 이미 어제의 해도 어제의 산천과 백성도 더이상 백제의 것이 아니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손등에 뚝뚝 떨어지는 닭똥같은 눈물은 어찌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후 망국이 된 백제와 고구려를 부흥시키고자 각지에서 부흥 운동이 일어나지만 삼국 통일로 흐르는 역사의 물길을 어찌 막을 수 있으오리까. 나당대전까지 승리로 이끈 신라가 드디어 솥밭처럼 갈라진 삼국을 통일하니, <<삼한지>> 10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태산과 같이 밀려오면서 장강의 거친 물살처럼 용솟음 치는 감격을 어찌 말로 또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요. 창밖에 비치는 희뿌연한 달무리를 바라보며 연거푸 가슴 깊이 숨을 들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려 삼은(三隱) 길재가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고 망국의 한을 읊었던가요. 삼국통일이라는 신라의 대업에도 불구하고 밀려오는 회환은 또 무엇이란 말인지요. 아아 <<삼한지>>와 동거동락하며 읽어내려갔던 지난 칠일밤이 어느새 아득한 꿈이 되고 말았으니, 이런 무상함은 대작을 읽었을 때라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이 아니었겠는지요.

스님, 이 더벅머리의 세 치 혀로는 더이상 대하大河와 같은 감동을 필설筆舌할 수 없으나 한 가지 부득불 시쁜 마음이 드는 것은, 각 사건의 경중을 조금 더 다채롭게 했다면, 읽는 이의 눈과 마음을 더욱 쥐락펴락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은 겁니다요. 을지 장군의 활약을 보여주던 3권처럼 더욱 흥미롭게 전장의 실황을 들여봐 주면서 면밀하게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했던 장면들이 극적으로 더 있었다면 더욱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요. 살수대첩 이후에는 각 사건이나 전쟁 장면들이 균형있게 전개되는 것 같았습죠. 그러니까 을지 장군처럼 피와 살이 흐르는 생동감을 다른 인물들에게도 더욱 부여했다면(없다는 말이 아닙니다요.) 읽는 재미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요. 허나 이와 같은 시쁜 마음은 장강 앞에 누는 오줌발 같은 것에 불과한 것이고, 어디까지나 소인이 지략과 책사가 오가며 피 튀기는 전장을 좋아하는 경향에 의한 탓도 크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대를 걸쳐 서가에 꽂힐, 우리의 역사를 통해 삼국통일의 과정을 담은 장대한 역사소설을 가지게 되었는데, 태산과 같은 결실 앞에 이 더벅머리는 그저 간뇌도지肝腦塗地 하더라도 충절을 맹세하는 장부의 심정으로 혼신의 힘을 쏟아 <<삼한지>>를 탄생시킨 작가에게 감사를 드릴 뿐이옵니다." 

  이후 취산 암자에서는 밤이 깊어가도 사람들의 <<삼한지>> 읽기가 끊이지 아니하니, 내로라 하는 가문의 자제들의 서가마다 <<삼한지>>가 꽂히게 되고, 글을 읽지 못하거나 책을 구입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솥밭처럼 갈라진 삼국의 형세와 그 통일의 과정을 서로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들을 수 있으니, 드디어 만백성이 우리의 역사를 먼저 알고자 그 참뜻을 밝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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