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손상기 평전 - 39까지 칠한 사랑과 절망의 빛깔
박래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 08년에 쓴 리뷰다. 

1.

  내 근황을 멀리서 궁금해 하는 지인이 있는데, 그는 전화하면 딱 세 가지만 묻는다. 그 중 하나는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소?" 아마 이번에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되물을 것 같다. "너, 손상기라는 작가 들어봤어?" 최근 나는 손상기 평전을 읽게 된 거다. 올해(2008년)가 손상기 작고 20주기라고 한다. 현재 그의 삶의 회고하는 전시회도 열리고 있는데, 문득 평전을 그동안 너무 '취급' 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었는데 그 목록에서 '평전'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읽었던 평전을 세어 보라고 한다면, 글쎄 너무 없네? 아무튼 '평전 읽기' 일환으로 손상기 작가의 평전을 읽었다기 보다는 당장은 필요에 의해 읽은 셈인데, 생각난 김에 앞으로 평전도 좀 읽어보자 라고 머릿속에 좀 새겨넣어 볼란다.
 

2.

  올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고흐 전시회가 있었다.  전시회 마지막 날은 이미 컴컴한 밤이 되어버렸는데도 입구에 늘어선 줄이 속된 말로 죽음이었다! 시립미술관 입구 밖에까지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기억이 난다. 저 상황에서 전시장에 들어가면 작품보다 "움직이는 머리"만 보이게 되니까 말이다. 고흐가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 인상주의 화가라면 일단 먹어주니까?(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소장용이다!)   

 나 역시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됐다. 왜 고흐가 좋아? 그 열정이? 실은 고흐가 보여줬던 그 광기라는 것도 그 인생의 전부를 지배하지 않았다. 1888년 고갱과의 불화를 시작으로 1890년 37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보여줬던 광기의 시간들. 어떤 이들은 정신분석학에서 연구한 결과 고흐 그림 속에 나타나는 동글동글한(특히 별이 빛나는 밤에) 형상들이 그의 정신 상태와는 무관하다고도 하는데,  뭐 이 말은 신빙성이 좀 떨어진다. 별이 빛나는 밤이 1889년 작이니 확실히 정신착란 증세 즉 발작이 자주 있었던 시기지 않았나. 그러니까 발작과 퇴원이 되풀이된 그 시기에 남겼던 작품들이 그의 "개화기(開花期)"였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쓰고보니 여전히 답은 되지 않는다.  

 암튼 아마 나는 그러한 삶이 있었기에 고흐에 그렇게 빠져든 게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는" 이라고 확신해도 될 듯하다. 마치 단순히 호감은 있었던 사람인데 그 사람의 삶을 엿보게 된 순간 꿈결같이 빠져든 순간이라고 하면 전달이 되었으려나. 내가 언제 고흐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됐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언제 그를 처음 만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그에게 빠져들었던 순간은 확실히 기억난다. 그러니까 내가 고흐에 빠져들었던 순간은 그가 귀를 자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알았을 때다. 이상하게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공개된 사생활 부분도 잘 챙겨보아가며 살지는 않았다. 그 작가가 쓴 산문집에서나마 그의 이력을 알게 되는 셈인데. 아무튼 책을 통해 얻게 된 지식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직접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적이며 누군가의 삶을 추적해 보는 게 고흐가 최초였을 거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고흐의 그림에서 보이는 그의 삶을 좋아했던 것 같다. 마치 손상기 작가의 작가 노트에 나온 말처럼,  그릴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자기의 모습 같은 거 말이다. 

 
3.   

  손상기 작가가 일반 대중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지만, 83년도에 미술 평론가들이 뽑은 문제의 작가로 선정되면서 꾸준히 그의 그림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이뤄진 것 같다. 이 책에 그의 그림이 몇 점 실려있는데, 아 또 다른 말 좀 하면 확실히 그림은 직접 보는 게 가장 좋다. 특히 빛의 흐름을 중시했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인쇄된 상태로 보면, 죽은 그림이나 마친가지다. 손상기 작가는 청회색 계열에 어두운 색채를 많이 썼는데, 그런 느낌들은 인쇄된 그림에서는 담겨지지 않는다. 

손상기 작가의 삶 자체가 참 드라마틱하다 .불구의 몸이라는 신체적인 장애가 그의 삶을 굴곡지게 한 첫 번째 요인이기도 하지만 그의 삶에 "사랑"이 찾아오면서 더욱 애절하게 되었다. "사랑은 감미롭고도 위험한 향기"라는 제목으로 평전에서도 한 장(章)을 할애할 만큼 그에게 "사랑"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그러니까 불구라는 신체와 배다른 두 딸을 가졌던 삶 때문에 손상기 작가는 작품 외적으로도 많은 이들을 이목을 끌었던 작가였던 것 같다. 83년 문제의 작가로 선정되고 이듬해 샘터 화랑에서 매년 개인전을 열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때마다 언론은 끊임없이 그의 삶을 헤집어 놨는데, 그 탓에 첫 번째 부인의 이별이 더욱 힘들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4. 

 손상기 작가의 작품 중에 '귀가 행렬' 이라는 작품이 있다. (귀가나 달동네 등의 시리즈 속에서 보여주는 귀가 모습들) 당시 아현동에서 조그만 화실을 열고 생활을 했을 때, 외출 후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하나하나가 그의 심장과 폐와 다리 신경들을 짓눌렀을 거다. 귀가하는 모습은 그 자신일 수도 있고, 당시 삶의 무게를 그만큼 지고 올라가는 주위 사람일 수도 있는 거다. 손상기 작가가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삶의 고통과 고뇌와 애환들. 손상기 작가의 작품이 내 심장을 누르는 건, 그의 그림 한 점 한 점에서 느껴지는 그의 숨결인 셈이다. 그의 그림보다 더 먼저 만나게 되는 건 그의 삶인 셈이다. 작가와 삶. 필연적으로 그리거나 쓸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 그러한 절박함.  

  내 생에 절박했던 순간들은 언제였을까? 하루하루가 절박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는 있는 걸까? 어차피 삶이라는 건, 이해받는 게 아닌 데 말이다. 어떻게 내가 너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말에서 진의가 안 느껴진다. 적어도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으니까. 어쩜 그의 그림 앞에서 서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그나마 그에게 내가 진심을 보여주는 '이해'인 듯하다. 

참, 박래부 씨가 쓴 평전이 확실히 객관적인 것 같다. 뭐, 다른 출판사의 책도 없지만. 그 전에 샘터 화랑과 기타 다른 기관의 자료를 통해 손상기 작가 관련 글을 읽었는데, 미화되거나 너무 감상적인 평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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