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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 세쌍둥이와 함께 보낸 설피밭 17년
이하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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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꽉 막힌 도로와 차들, 환승역에서 차갑게 스치는 수많은 익명의 군중, 통장에 찍힌 잔고와 다음 달에 이메일로 날아들어올 카드명세서. 24시간 운영되는 대형 마트에서 피곤에 찌든 직원들의 옆얼굴을 스쳐지나가며 카트 안에 더 넣을 물건과 빼야 할 물건을 결국 계산대 앞에서 망설여보기도 하고, 마트에 가지 못한 날은 편의점으로 달려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물건을 구입하기도 하며, 도시의 불야성 그 불빛을 바라볼 때, 꿈을 꿉니다. '곰배령 꽃비가 내리는 세상'을.

봄이면 피는 꽃들을, 여름이면 녹음에 둘러쌓이고, 가을이면 지는 낙엽들과 겨울이면 눈밭에 쌓여, 그 계절의 변화를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접하는 게 아니라 직접 온 몸으로 느끼며, 몇 가구 안 되는 이웃 주민들과 나무는 물론 숲속의 동물들과도 그 계절을 준비하는 세상을. 직접 담근 메주로 만든 된장을 멸치 넣고 팔팔 끓인 뚝배기 안에 풀고, 내가 심은 모종에서 무럭무럭 자란 청양고추와 호박과 감자와 양파를 댕강댕강 썰어, 해감시켜놓은 바지락과 함께 퐁당 집어넣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국을 내놓는 밥상을.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를 읽었을 때, 이루지 못할 꿈의 한자락을 보는 것 같아, 저는 보는 내내 울먹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의 삶,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이 남겨져 있는 이 곳의 삶, 짬짬이 각종 공연과 미술관에 들리면서 대신 풍요로운 문화 생활이 이 곳에 있지 않느냐 위안을 삼아보아도, 채워질 수 없는 삶의 그리움, 본시 고향이 갯벌 내음 나는 바닷가 부근이었던 저에게 도시의 삶은 언제나 채워질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바다로 흩어졌던 연어들이 떼를 지어 강으로 돌아오듯, 회귀[回歸] 그 귀소본능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저는 오늘도 통장에 찍힌 숫자를 들여다 보며 내일의 삶을 꾸려가야 합니다. 오늘이 아닌 미래를 잔고에 따라 먼저 계획하며 살고있는 도시의 삶 속에서,  세쌍둥이와 함께 곰배령 그 "풀꽃세상"에 터를 잡은 그녀의 모습은 여행지에서 얻은 엽서 한 장이 되어, 꿈처럼 그리움처럼 다가옵니다.

   
  "필녀를 통해 나는 낟알 하나의 의미를 익혔으며, 한솥밭을 먹는 사람들이 바로 식구라는 사실을, 그리고 밥솥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 (...)필녀에게 받은 밥솥의 뜻은 내 가슴에 싱싱하게 살아있어 오늘도 내게 밥을 짓게 하고 있다. 그러니 햇살이 좋으면 햇살이 닿는 대로, 꽃이 피면 꽃빛이 비치는 대로 눈 내리고 비오는 창가에서 소록소록 밥이 끓고 있는 우리 집 부엌을 필녀가 보면 참 좋아하겠다." -58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고향이지만은, 그러나 저는 이 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녀처럼 필녀와 같은 이를 만나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깨닫게 해준 이 곳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꿈과 저의 꿈이 만나 하고 싶은 일이자 해야 할 일이 된 그 꿈을 이루게 되는 그날, 저는 그제서야 짐을 덜고 연어처럼 고향으로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쉰이라는 나이는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아지는 때. 나도 어머니처럼, 곰배령의 꽃들처럼 언젠가는 저물어갈 터다. 아아, 사랑하고 살기도 짧은 세월 속에 무엇을 더 두리번거릴 텐가. 하산 길,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빨라진다. 나 사는 세상으로 돌아가 더욱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가야지. 곰배령의 꽃들처럼 찬란하게, 내 어머니들 사신 것처럼 지극하게" - 228면  
   


  책조차 필요한 책만 겨우 읽고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단비와 같이 만난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가끔 이 삶이 너무 지쳐 쉬고 싶을 때, 곰배령 그 설피밭으로도 달려가보렵니다. '곰배령의 꽃들처럼 찬란하게, 당신의 어머니들이 사신 것처럼 지극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만나고 나면, 오늘도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는 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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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2010-03-0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꽃님,
하고 싶은 일들을 가슴에 품고 해야 할 일들 앞에 서 있는 그 기분, 저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시험을 앞에 두고 소설책이 읽고 싶다거나
외출약속을 잡아놓고 갑자기 옷장정리를 하고 싶다거나, 글이 쓰고 싶다거나,
등등 ,

저의 일상은
거의가 must와 wish 사이의 줄다리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지요.
옛날엔 must 가 우세했는데 요즘은 점점 wish가 힘을 얻고 있는 듯해요.
아마도 당위(must)의 항목이 많이 줄어들은 듯...
한동안 의무를 권리로 말을 바꿔 사용해 보았습니다.
청소할 의무를 청소할 권리로
밥 할 의무를 밥 할 권리로,
눈 치울 의무를 눈 치울 권리로
지불할 의무를 지불할 권리로^^
숱을 쳐낸 머리카락 처럼 일상이 다소 가볍게 느껴졌답니다.^^
그런데
바람의 꽃님의 '그 사람들의 꿈과 저의 꿈이 만나 하고 싶은 일이자 해야 할 일이 된 그 꿈을 이루게 되는 그날,'
을 읽으며 must와 wish가 함께 하는 꿈을 만나봅니다.
짜장면과 짬뽕사이에서 습관적으로 고민하다가 처음 짬짜면을 만날을 때의 그 참신하던 기분과 흡사합니다,^^
환하고 멋지게 여겨집니다.
좋아 보이면 꼭 따라하게 되는 습성이 있는 저는
'must와 wish'를 소명과 소망이라 부르는 꿈의 작업으로 받아들이고
적극 따라하기를 선택합니다.
기왕에 하는 일이라면 소명이자 소망이라 생각을 전환하면
훨씬 신나고도 재밌게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흔들리는 것은 마음' 에 적극 한표^^

책 읽어주심, 리뷰 올려주심 , 고맙습니다.
그리고 올려주신 리뷰'곰배령의 꽃들처럼 찬란하게 '를
저희 세쌍둥이네 풀꽃세상 홈피 (www.jindong.net)풀꽃사는 이야기방에
옮겨두었음을 신고합니다.
그럼, 바람의 꽃님 즐거운 봄날 맞이하시기를 고대합니다.
지금, 눈 펑펑 쏟아지는 진동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