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한 달은 내겐 특별한 달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그 날이 그 날인 생활.

하지만 내가 얼마나 많이 나에게 속고 살아왔는지, 다는 아니지만 그 일부분을 만난 달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으로 알고 살았다.

스스로를 부드러운 사람으로, 남들이 "외유내강"형의 사람이라 하니까 나도 그런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화를 낼 일이 없는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는 것과

화를 낼 일이 있는데도 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나는 단지 화를 낼 일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살았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감사하게도  나를 화나게 만들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그 사람들의 덕분으로 그렇게 잘 살았을 뿐인데도,

내가 열심히 절하고 수행한 덕분에 내 인격이 높아진 줄 알고 살았다.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수행은 커녕, 자기를 바로 보지도 못 하면서,

성철 스님 도량에 다니면서, 불기자심을 입으로 그렇게 외치고 남들에게 쯧쯧 혀를 차 놓고는

자기 자신은 못 보고 살았다니.

 

자신을 제대로 보게 해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한다.

스스로 속고 스스로 묶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일체 중생을 위한 입에 발린 기도가 아니라

내 무지를 남에게 덧씌우지 않기를, 무명을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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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7-09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돌아보는 눈이 있는 님께선 더디지만
꾸준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_()_

이누아 2007-07-10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화가 났습니다. 상대가 앞에 없어서 힘껏 화내지는 않았지만 화가 났습니다. 오늘 저는 소리내어 말했습니다.

나는 화가 났다. 나는 화가 났다. 나는 화가 났다.

이렇게 화난 나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말하자 평온해졌습니다. 저는 화가 나거나 화를 내고 나면 제가 화났다는 사실 때문에 자책하거나 실망하곤 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나쁜 일이며, 상처를 주는 일이며, 그것은 못난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화난 나를 수용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질책했습니다.

그러나 어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화를 낸 것은 나다. 화를 내지 않고 고상하게 있는 게 내가 아니라 바로 화가 난 그 사람이 나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겠다고 애를 쓰고 있는 걸까? 화를 낼 수도 있는 거지. 그래, 화를 낼 수도 있는 거지. 만약 화를 낸 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내게 화내는 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아마 내게 그랬듯이 그를 못난 사람이라고, 그에게 실망했다고, 그를 판단하지 않을까? 나를 판단하거나 평가하기에 앞서 받아들여 보는 건 어떨까? 나를 받아들인다...라고 말하자 평온해졌어요.

어쩌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속는다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판단내리고, 있는 그대로가 아닌 어떤 다른(이상적인) 상태와 비교함으로써 좌절을 맛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어제 했었어요. 어제 화낼 일인지, 화내지 않을 일인지 상관 없이 저는 화가 났어요. 그래서 님의 페이퍼를 보니 주절대고 싶어졌구요. 화를 내는 우리 자신의 순간순간이 특별한 기도보다 더한 수행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자꾸자꾸 화내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님!!

님의 이야기는 늘 수행의 이야기입니다. 님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제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입니다.




달팽이 2007-07-10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의 이야기를 곰곰히 읽어봅니다. 대우 스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화를 없애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올라오는 화와 분심 그것이 뿌리없는 공중에 떠 있는 허상임을 보라고요.
일상에서 그 화에 휩싸이면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요.
이누아님의 공부방법이 좋은 듯 합니다.
저는 '미륵존 여래불'하고 바치겠습니다.

혜덕화 2007-07-10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달팽이님 고맙습니다.
제가 화가 났던 것은 바로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나>때문이었네요.
문제는 화를 내고, 내가 그렇게 화를 냈다는 것을 상대는 벌써 잊어버렸는데도 제가 제 자신에게 실망하고 화를 계속 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두 분 도반이 있어 행복한 아침입니다.
_()()()_
 

 

오늘 저녁엔 영화를 두편이나 봤다. 그것도 ebs에서.

초저녁엔 가진자와 못 가진자-born equal-를, 11시 쯤엔 킨을.

킨은 초반 20분 정도를 놓치고 보지 못했는데, 초저녁에 본 영화와 너무 비슷해서 오늘은 같은 주제로 영화를 묶었나 싶을 만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점점 전개되어 나가는 과정도, 결론도 너무 달라서 초저녁에 봤던 영화의 찜찜했던 감상, 오히려 안보는게 나았을 것 같은 감상을 싹 씻어 주었다.

딸을 잃어버리고 거의 정신 착란의 상태에 까지 이른 킨의 마음에,  이웃 방의 7살 키라는 삶의 희망과 따뜻함을 되찾아준다. 키라의 방에 몰래 들어가 아이의 냄새를 맡고 아이가 누웠던 침대에 누워보는 아빠의 간절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영화 속에 그대로 살아있어, 영화를 보는 내내 슬펐다.

딸을 대신해서 키라를 유괴해 가고 싶은 마음과, 키라를 두고 가는 것이 마치 자기 딸을 두고 가는 것 같아서 "미안해"를 연발하며 눈물을 흘리던 주인공의 갈등이 마치 두 손을 맞잡으면 상대의 체온이 느껴지듯 마음에 그대로 옮아와 눈물을 흘렸다.

음악도, 영화도, 책도

사람이 사는 이야기다.

어느 날은 음악이, 어느 날은 영화가, 어느 날은 책이, 어느 날은 아이들이, 어느 날은 기도가

삶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아름답게도 추하게도 느끼게 해 준다.

"거친 삶의 소중함"을 이렇게 표현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거칠면서도 아름다운게 삶이 아닌가 싶다.

참 슬프고도 아름다운 영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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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7-08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마지막...장면에서 저의 착각일지는 모르겠으나..
윌리엄 킨은 딸 소피를 터미널에 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프레이야 2007-07-08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킨, 그런 슬픈 이야기였군요. 전 못 봤네요. 메피님의 광고가 있었는데 말에요.
혜덕화님, 편안한 일요일 보내세요.^^ 꾸욱.. 눈도장이에요..

혜덕화 2007-07-0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미안해 소피, 미안해" 하던 그 말이 사탕을 사던 딸을 두고 한 눈 판 자신에 대한 자책이 아니라, 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일 수도 있겠군요.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졸였습니다. 워낙 미국 영화가 엽기적인 것이 많아, 이 사람이 정신착란 상태에서 아이에게 해를 끼칠까봐... 남자 배우의 눈물이 꼭 진짜 눈물 같더군요. 전혀 연기 같지 않은 연기. 잘 봤습니다.

혜경님, 흐린 일요일 아침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선암사 가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버렸답니다. 알려지지 않은 영화, 엣날 영화에서 더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보셨으면 좋았을텐데...
님도 편안한 일요일 보내세요.
 

 

강인선 기자블로거

cafe.chosun.com 2007/06/12


   10년 전 캄보디아에 출장을 갔다가 내전이 일어나 발이 묶였다. 어느 날 아침 지축을 울리는 둔탁한 소리에 잠이 깼는데, 그건 멀리서 들려온 포성이었다. 그날 새벽 공항 근처에서 반군과 정부군 간의 교전이 벌어져 공항이 폐쇄됐다고 했다. 전화는 불통됐고, 창밖으로는 화염에 휩싸인 건물이 보였다. 


   호텔 밖 거리에는 피란민의 행렬이 물결처럼 이어졌고, 호텔 직원도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달아났다. 외국인 직원과 관광객만 남은 호텔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가까이에서 총성이 들렸다. 호텔 측에서 일러준 주의사항은 단 한 가지. 로켓탄이 날아들 수 있으니 창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전날 조금만 더 부지런을 떨었어도 이 나라를 떠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목숨을 남의 나라 내전에 맡기게 된 내 신세를 한탄했다. 경비가 느슨해졌으니 호텔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반군이 들이닥칠지 떼강도가 몰려들지 포격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작은 배낭에 여권과 지갑, 카메라, 호텔 냉장고에 있던 과자와 초콜릿, 생수병을 집어넣었다. 몸만 달아나야 한다면 들고 뛸 수 있는 부피와 무게였다. 두 번째 가방에는 노트북 컴퓨터와 녹음기, 출장 중에 모은 취재자료를 넣었다. 사정이 허락돼 조금이나마 내 물건을 갖고 갈 수 있다면 꼭 챙기고 싶은 것들이었다. 나머지 물건은 큰 트렁크에 마구 던져 넣었다. 가져가도 좋고 버려도 상관없는 것들. 옷과 핸드백, 구두, 화장품 등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내가 무의식중에 세 그룹으로 나누어 정리한 가방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그 분류기준은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순간에 판단한, '사는 데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답이었다.


   특히 세 번째 트렁크! 내가 할부금을 갚아가며 사들였던 옷, 손에 넣기만 하면 인생이 완벽하게 충족될 것 같았던 멋진 핸드백,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는 말을 믿고 샀던 하이힐 등등….


   내가 뼈빠지게(까지는 아니지만) 일해서 번 돈으로 고작 저런 것을 사들이며 좋아하고 있었다니 기가 막혔다. 생사의 기로에서 그 물건은 다 짐이었다. 발로 차서 쓰레기통에 처넣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저런 헛되고 헛된 것을 위해 살아왔다니! 이번에 살아 돌아가면 절대로 이렇게 살지 않을 테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일주일 후 내전은 끝났다. 내가 총리를 인터뷰했던 장소인 관저는 포격을 당했고, 내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만났던 한 신문기자는 취재 중 폭도들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미국인 관광객은 호텔 앞에서 귀고리를 빼앗으려던 강도와 싸우다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캄보디아에서 무사히 빠져 나온 후 나는 생활을 단순하게 정리했다. 옷과 화장품은 필요한 것만 남기고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동안 쓰지도 않으면서 아깝다고 끌어안고 있던 것도 다 버렸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순간에 이게 짐일까 아닐까를 생각하면, 생활의 거품을 걷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순하다는 것은 기본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그걸 알지만, 살다 보면 또 헛된 것이 마음을 홀린다. 그래서 지나치다 싶을 때는 '캄보디아의 그날'을 생각한다. 니체는 "세상에는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는 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들어내는 다수가 있다"고 했다. 니체가 말하는 멍청한 다수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번 주말에 집 정리를 하면서 또 한 번 왕창 버려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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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6-1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서재에도 정리를 좀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언제 시간을 내어야겠습니다.
 

 원주 스님께 첫 삼천배를 한 사람들이 법명을 받는 동안 공양실 앞에 평상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 스님께서 내려오셨다.  잠깐 백련암에 공부하러 오셨단다.  대영암 보살님과 법상사에서부터 인연이 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팀 이름이 "영원한 자유"라고 하니까, 기도하더라도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눈을 가지고 정진 잘 하라고 하신다.

한 달 내내 놀다가 삼천배 와서 한꺼번에 한달 업장 참회하지 말고, 시냇물이 쉬임없이 흐르듯이 108배든 300배든 꾸준히 쉬지말고 일과를 하라고, 그래야 천천히 가늘게 가도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일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일러 주신다.

 "우리가 지금 공양실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여기에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들어있다,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정진을 향한 바른 걸음이 되도록 내 삶의 한 걸음 한 걸음을 깨어서 잘 보라"고 하면서 발을 <쿵> 굴리시는데, 그 소리가 가슴 속에 천둥 소리처럼 <쿵>하고 울렸다.

이십대의 총각과 처녀들에겐 "좋은 남편, 좋은 아내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정진과 공부를 통해 나의 격을 높이면 자연히 나와 같은 격을 만나게 되니, 딴 생각말고 인격을 높이는 공부를 하라고도 하신다.

 

우연히 공양실 앞에서 나눈 짧은 법문이 법당에 앉아 듣는 어떤 법문 보다도 감동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합장이 되었다. 물질 적인 것, 영원하지 않은 것을 바라지말고, 팀 이름처럼 나를 참회하고 영원한 것을 향해 큰 발원을 세우라고도 하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영암 보살님이  스님 이야기를 하신다.

삼천배 백일 하러 오셨다가 삼천배로는 양이 안찬다고 일주일만에 오천배로 올려서 오천배 백일 하시고 출가하셨단다. 출가 전 집안이 아주 좋은데 부모님들이 스님 찾으러 오면  도망다니면서도 꼭 출가를 고집하셨다고 한다. 어리석은 중생심으로 보아도, 앞으로 큰 스님 될 분 같았다.

 

 일주문만 나서면 절에서 받은 감동은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다시 중생심으로 무장하고 살아가게 된다.

번뇌가 끝이 없고 고통이 끝이 없고 즐거움이 끝이 없어도 꾸준히 닦고 닦아 내 주변 인연들에게 만이라도 고통을 덜어주는 보살행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내일부터 전임 학교 선생님 두 사람과 수험생을 위한 천배 칠일 기도에 들어가기로 약속을 했다.

혼자 하면 흐지부지 될 것 같아 새벽에 각자 집에서 입재를 하고 7일째 되는 날 회향을 같이 하기로 했다.

고 2 엄마 둘만 하기로 했는데 옆 반 선생님도 함께 기도에 힘을 보태겠다고 해서 셋이 되었다.

 

공부로 힘든 세상의 모든 수험생에게 소리 없는 이 기도가 가서 닿기를.......

우주 법계의 모든 인연, 모든 사물에 감사의 삼배 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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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1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불심에 그저 고개 숙이고 갑니다.
평안한 하루 맞으시고, 내일부터 천배 칠일 기도 잘 해내시기 바랍니다...

달팽이 2007-06-1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좋은 이야기 듣고 갑니다.
언제 한 번 따라가고 싶군요..

혜덕화 2007-06-1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고맙습니다. 님의 격려가 내일 기도에 힘을 실어주네요._()_

혜덕화 2007-06-1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언제든 환영합니다. 둘째 주 토요일이니 언제든 마음 내키시면 연락 주세요. _()_

서재의꿈 2007-06-10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 내세요~
저는 오늘 새벽에 남해 서쪽바다를 보며 망운암으로 오르다, 정상에 올라 동쪽 바다를 보며 기지개를 하고는 망운암 대웅전에 들러 기도를 드리고 나오니, 스님 한 분이 우리 일행을 보시더니, 일찍 다녀간다며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셔서, 오늘 하루를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네요~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스님께 차 한잔 부탁드리고 싶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일터로 돌아와 앉았지만, 자꾸 아침 일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네요~

혜덕화님!

천배 기도 잘 끝내시고 회향도 잘 하세요~()

혜덕화 2007-06-1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꿈님, 오랫만에 뵙네요.
덕분에 오늘 새벽 1000배 입재를 무사히 했습니다.
크게 보면 이 세상에 수험생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은 아무래도 고 2 아들을 둔 엄마이다 보니 고등학생들에게 촛점이 맞춰지네요.
새벽에 절하면서 그런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수험생을 위한 기도라는 포장 속에 내 아이를 위한 욕심은 없는가, 살펴 보았습니다.
사람이니 설령 그런 욕심이 들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천배 하고 나니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떠오르는 아침이었습니다. 다리는 아프지만, 행복한 하루입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_()_
 
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읽고 이 책을 주문했다.

작고 얇은 책이다.

낙엽을 밟고 들어가서 눈을 밟고 나오는 동안거 기간 동안의 스님네들의 삶이 아무런 장식없이, 과장없이 눈에 보이는 듯 쓰여져있다.

늘 허기져 생활하는 스님들이 감자서리를 해서 감자 구이를 해 먹는 글이 참 재미있었다.

선객들의 허기를 아는 원주 스님은 딱 잘라 서리해 먹지 말라는 대중 공사를 열면 선객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인 것 같아 자물쇠를 잠궜다가, 번호 열쇠로 바꿨다가, 대책을 세운다.

하지만 아예 문의 돌쩌귀를 들어내고 감자를 구워먹는 일이 생기자,  하루 세끼의 주,부식을 감자로 바꿔서 감자 서리를 못하게 하는 대목은 정말 재미있었다.

세모를 맞아 쓸쓸해하는 스님들의 고독이 짧은 글 속에서도 무섭게 느껴졌고, 반가이 맞이해 줄 곳도 없는데도 동안거가 끝나면 뿔뿔이 자신의 공부거리를 찾아서 길을 떠나는 모습이 내 중생심으로서는 슬프게도 느껴졌다.

깡보리밥 한 그릇에 간장 종지가 놓인 밥상같은 글이다.

텅 빈 방에 옷 거는 못만 하나 달랑 박힌 작은 절 방을 보는 느낌으로 이 글을 읽었다.

아무런 장식도 감정의 과장도 없는데, 내 마음 속 중생심때문에 슬프게도 재미있게도, 고독하게도 읽혀졌다.

지금은 어디 계신지 모르는 지허 스님, 깨달음을 얻으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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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7-06-05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 님, 깡보리밥 한 그릇에 간장 한 종지의 밥상이
참 맛있었습니다.
텅빈 방에 못만 하나 달랑 박힌 작은 절방 아랫목도 따땃했고요.^^


혜덕화 2007-06-0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생각하는 건데, 사람은 자기 인식의 수준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세상을 볼 수 없는 것 같아요. 선객들의 삶이 너무 고독하게 느껴지는 것, 나 같으면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그들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당해보면 고통일 그들의 허기마저도......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