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을 보면서 무슨 생각부터 해야 할까? 한국 영화에서 항일운동열사를 다룬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과거 장동건 씨가 주연으로 나온 <아나키스트>, 최근 개봉된 <암살>까지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산되지 않은 일제시대 활약하던 친일파들의 영향력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1920~30년대 한국사회를 본다는 것은 나라를 잃은 조선인들의 애환과 비극이 녹아있다. 이때 조선인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단 2가지 방법이었다. 하나는 그 세상에 발맞추어 살던가 아니면 저항하여 죽어가던가! 물론 여기저기 속하지 못한 채 타국으로 떠나는 조선인들도 많았지만, 타향조차도 조선에 대한 그리움을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이 일본에 함락되자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항일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일제와 그리고 친일파들과 싸웠다. 영화 <밀정>에서 그런 열광의 시기가 1920~30년대이다. 그때가 가장 항일운동이 치열했던 시기다. 우리가 잘 아는 청산리전투가 1920년대부터 시작했다. 1919년 3월 1일의 독립선언문이 탑골공원에 울리고, 일제는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후 상해임시정부가 설립되고,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시기가 1920년대부터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의 특징을 보면 여러 부류가 있다. 사대부선비들의 조선군주가 잃은 것에 대한 분개심에 의한 유교성향도 있고, 대종교와 천도교 같은 민족주의자 같은 전통사상에 기반 하는 자, 그리고 일제가 초반에 탈(脫)조선의식을 위해 도입한 자유주의가 이제는 정치적 자유주의로 변모되면서 조선인의 자유를 요구했고, 신식 사상인 자유주의 이외에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무정부주의자까지 항일운동 전선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래서 <밀정>이란 영화가 현재 건국절 논란과 함께 생각해야 할 점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좌파와 우파를 넘나들었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사상은 현재로선 우파이기도 하나, 일제시대에는 좌파로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파라고 여기던 자유주의는 왕이란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일제는 천황이란 존재가 있었고,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에는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있었다. 자유주의 사상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신만의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나라를 잃었기에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 모두 일제에 대해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에서 사회주의자 내지 무정부주의자가 많았다. 그리고 민족주의자인 대종교도들이 핵심전력이었다.
독립운동사에서 김좌진 장군, 이범석 장군은 대표적인 대종교 신자이고, 한국 대표적 역사학자인 위당 정인보, 단재 신채호, 우리 한글을 위해 연구한 주시경 선생과 조선어학회 연구자들이 대부분 대종교 신자였다. 상해임시정부 시절, 언제나 독립군에게 부족한 것은 군자금이었다. 군자금을 위해 자본가들과 협력은 필수였는데, 이때 상해임시정부 자금의 젖줄이던 백산 안희제 역시 대종교 신자였다.
대종교란 종교가 독립군의 주축이고, 민족주의라 이루어졌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다른 사상과 다른 세력과 연합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독립운동을 보면 암실이나 자살테러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봉창 열사와 윤봉길 열사가 대표적인 인물이고, 영화 <암살>에서 의열단장으로 유명한 김원봉 역시 그런 방식을 이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한다. 민족주의자 중에 단채 신채호는 대종교 신자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무정부주의자 아나키스트이기도 하다. 신채호의 동지로 유명한 아나키스트로 이회영 역시 유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무정부주의자이기도 하나 과격한 테러리스트로도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영화 <밀정>을 보면 그 당시 아나키스트들이 항일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아나키스트와 연계되면 목숨을 걸고 적진에 침투하므로 일제 입장에서는 그들의 침로를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나키스트들은 단도를 들고 침투하여 습격하고, 총으로 저격하며, 폭탄을 던져 치명적인 타격을 날린다. <밀정>에서 항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조선독립투사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헝가리 사람이나 혹은 그 밖의 서양인들도 동참하는 이유는 무정부주의자들은 모든 국가의 존재하는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싸우던 사람이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이 주로 활약하던 시기는 세계적으로 식민지국가가 한참일 때 많이 등장한다. 1930년대 후반 스페인 군부세력인 프랑코는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부를 장악하고 독재국가를 수립한다. 이때 많은 의용군들이 모여 카탈로니아로 집결하여 파시스트와 싸운다. 국가와 민족 심지어 성별조차 틀린대도 모두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국땅에서 싸운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은 식민지 정책이나 독재정책을 펼치는 국가정부에서 보자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표적이었다.
<밀정>에서 조선총독부가 가장 경계를 펼친 것은 독립군도 있었지만, 의열단이었다. 독립군들은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진 군부대로 이루어졌기에 교전을 펼쳐 진압하면 되겠지만, 의열단이나 무정부주의자 같은 과격파 암살자들은 언제나 자신들 주변에 숨어있었다. 그들은 화려한 부르주아 사회에 침투하거나 혹은 빈곤한 프롤레타리아의 세계에도 숨어있었다. 언제나 타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자신만의 비밀경로와 비밀기지를 만들었고, 일제는 비밀기지를 찾아내어 소탕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모두 일제의 감시를 두려워하므로 일제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긴 위해서는 첩보작전과 밀정요원이 필요했다. 전쟁이란 어느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무력전투가 발휘되겠지만, 밀정에 의한 전쟁은 장소나 시기와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든 이루어진 작전이다. 영화 초반 자신들의 비밀기지가 탄로 나자 밀고자를 찾아내고, 그에게 평생 자신들의 주변에 오라고 하지 말라고 한다. 밀고자 1명이 존재하면 그 조직은 모두 와해되고, 조직 하나가 와해되면 그 주변의 동료나 지원세력까지 무너진다.
일제시대 밀정을 펼친 이유는 일본경찰로 보자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밀정은 정보를 주고받고 하는 사이고, 정보의 출처에 신뢰성이 있어야 하며, 상대가 인간이기에 믿을 수 있는지 혹은 믿을 수 없는지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암살>이란 영화에서 이정재 씨가 맡은 배역은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나 막상 뒤로 가면 친일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던 밀정이었다. 친일세력은 광복 이후 반민특위에서 하나도 처분되지 못했다. 그들은 국가정부의 주요관료와 군경세력이 되었으며, 이들의 후예들은 특권과 재력을 가진 사회인사로 되풀이되었던 것이다.
<밀정>에서 한때 독립운동을 하던 이정출은 동료들을 배신하고, 일본경찰에 투항하여 높은 직위까지 올라간다. 영화초반을 보면 예전에 같이 활동하던 친구가 재력가의 집에서 자금을 얻기 위해 찾아오다 일본경찰의 함정에 빠진 것을 알고 도망친다. 이미 포위된 상황에서 진행되는 총격전에서 그가 살아 돌아온 희망은 없었다. 하지만 이정출은 사격을 멈추라며 창고 속에서 죽어가던 과거의 동료에게 죽음을 선택하지 말고 같이 나와 삶을 살아가라 한다. 그러나 예전의 동지는 권총을 머리에 대고 “대한독립만세!”라는 말과 함께 자결한다.
이정출은 자신이 배반했던 동지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를 구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에 한탄한다. 그리고 얼마 후 김우진 일행을 검거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려 하는데, 이정출이 히가시 부장에게 찾아갈 때 하시모토가 찾아온다. 하시모토는 이정출과 같이 의열단을 찾아 검거하라는 명을 받지만, 그가 의열단을 몰아넣는 방식은 이정출과 상당히 다르다. 이정출은 낚싯대를 연못 안에 집어넣고 미끼에 걸린 대어를 낚는 방식이라면, 하시모토는 낚싯대 대신 집적 연못 안으로 들어가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경성에 숨은 의열단원들은 하시모토의 행동을 본 후 모두 상해로 도망쳤다. 그러나 여기서 하시모토의 집념은 끝나지 않았다. 그도 역시 이정출처럼 조선인이었으나, 과거 항일운동을 한 적이 없이 순수하게 친일세력으로 가담했다. 하시모토가 이정출 옆에 붙인 이유는 히가시 부장의 의도였다. 히가시 부장은 상당한 공을 세운 이정출에게 신뢰하는 척하였으나 그 뒤로는 감시자를 붙인 것이다. 여기에 이정출은 의열단원을 모두 체포하면서도 그들을 최대한 죽이지 않기 위해 첩보전을 펼치려 하나 모든 게 수포로 끝나고, 결국 하시모토와 함께 상해로 떠난다.
아마 영화의 모티브는 이정출이 김우진의 소개로 의열단장 정채산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폭탄이 경성으로 들어오고, 그 폭탄에 의해 많은 일본 및 친일파 주요 인사를 죽거나 다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항일운동역사와 의열단, 일제경찰과 친일파,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긴장이 넘치는 밀정으로 두뇌싸움을 펼친다. <밀정>이 예전에 상영된 <암살>보다 더 만든 점은 영화는 단순히 액션이나 심리전으로 치중한 게 아니라 그 시대적 배경과 소품 더 나아가 카메라 앵글을 아주 잘 이용한 점이다.
<암살>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전지현 씨가 맡은 쌍둥이 자매역할이다. 동생이 임시정부에서 상당한 실력을 지닌 저격수고, 언니는 경성에서 친일파의 영애로써 살아간다. 그런데 우연히 정보가 잘못되어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던 언니는 아버지의 총에 의해 죽고, 동생은 언니의 이름을 살아간다. 이런 억지스러운 기계적 장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요소가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너무 드라마틱한 요소를 바란 것인가? 개연적인 요소에서 너무 떨어진 장면에서 영화에서 주제하는 바는 좋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기법과 방식은 틀렸다.
<밀정>은 그런 억지스러운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모든 상황이 우연의 일치보단 차라리 복선과 미리 밑에 깔아둔 양념이 위로 드러나게 하여 맛을 내도록 유도했다. 영화에서 의미하는 바는 아주 간단하다. 의열단장 정채산 역할을 맡은 이병헌 씨가 이정출을 포섭하는 장면이 참 재미있다. 나를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은 본능이나, 이정출을 믿고 싶은 것은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건다는 점이다. 인간은합리적인 이성을 가지에 이익을 추구하나, 자신을 움직여주는 감정과 그 감정을 느끼는 마음이 있기에 불가능한 것을 알아도, 의미 없이 죽어갈 수 있어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이정출이 무사히 폭탄을 실은 열차를 경성까지 보내주지만, 그건 김우빈과 의열단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시모토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히가시 부장은 이정출을 신뢰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폭탄을 실은 열차, 경성으로 향하는 의열단원, 의열단원을 쫓는 하시모토 일행과 그 사이에 갈등하는 이정출, 위기와 갈등은 여지없이 파국의 길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황은 아주 묘하게 돌아간다. 김우진은 배신자를 찾아냈으나, 그 순간 김우진과 이정출이 공모했다는 사실이 하시모토에게 들킨다.
위기의 순간, 하시모토는 여유롭게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으나, 하시모토 부하 중에 권총을 들고 이정출에게 다가온다. 그는 상해에서 이정출에게 심한 모욕을 받은 자였다. 그는 이정출이 결국 배신할 것이고, 여기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어떤 짓을 할 것이라 여긴 점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정리되어도 이정출은 다시 경성에서 위기에 봉착한다. 처음 김우진 일행을 밀고한 배신자가 이정출을 다시 꾀어내려 한 것이었다. 히가시 부장은 처음부터 이정출을 배신했고, 이정출은 자신이 살기위해 배신했던 동지를 배신하여 일제경찰에 붙었지만, 일제경찰은 이정출을 속이고 배신했다.
상해에서 정채산은 이정출과 단 둘이 있으면서 자신을 당장 죽여보라 말하면서 그를 믿는다고 했고, 히가시 부장은 평소 베테랑 형상인 이정출을 믿는 척하면서 뒤통수를 날렸다. 어느 누군가에게 자신만의 국가는 있을 것이다. 이정출이 일본을 선택한 건 더 이상 독립될 가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정출은 조선이란 국가는 포기해도 조선인이란 인간은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 초반 연계순이 경성에 진입할 때 다른 일본경찰은 그녀를 몰랐지만, 이정출은 그녀의 얼굴을 알았으며, 그녀를 처음부터 잡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연계순이 죽어가자 이정출은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힌다. 처음 영화에 등장한 의열단원 김장옥이 죽음을 선택한 게 안타까워하던 이정출이었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조선이란 국가도 없었지만, 조선인이란 인간도 없었다. 정채산과 김우진이 이정출을 믿을 수 있던 이유는 국가를 되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을 되찾아 가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참으로 슬프다. 독립운동가들은 거사를 펼치기 전에 죽거나 체포당해 고문당했고, 차가운 감옥바닥에서 병이 들어 죽어나갔다.
그들이 왜 목숨을 걸고, 부질없는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일까?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신이란 과연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나라는 존재가 있는 이유,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 이정출은 자신은 조선 대신 일본이란 국가를 선택했던 것처럼, 김우진과 의열단원들은 조선이란 국가는 없어져도 내 마음 속에 국가는 오직 조선이었다. 대한독립만세! 외치며 죽어간 김장옥 역시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물론 고문은 힘들고 괴롭고 끔찍해도 자신이 조국을 위해 살아가고 죽었다면 그 자체만으로 자신이 살아간 길을 찾은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 혹은 자신이 자신으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밀정>은 아주 무거운 소재이고, 현대사회에서도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이야기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화감독의 센스가 참으로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서 김우진이 폭탄을 점검할 때 이정출이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눈다. 밖에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할머니가 처음에 이정출이 나오고, 그 다음에 김우진이 나오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자아낸다. 관객과 영화 속의 두 사람은 서로간의 관계를 알고 있지만, 화장실 밖의 할머니는 모르고 있으므로 황당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정채산이 이정출과 함께 술을 마시자는데, 계속 술잔이 이어지고, 나중에 술이 바닥이 나는 모습 역시 그렇다. 첩보심리와 위기상황이 닥칠 때 총격전과 암살이 일어나는 점에서 영화는 상당히 무겁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 내에 관객들에게 긴장을 잠시 풀어주는 연출을 도입한다.
영화연출과 관련해서 잘 만든 것이라 생각 드는 이유는 카메라 앵글을 참 잘 이용한 점이다. 영화 주인공은 이정출의 송강호 씨, 김우진의 공우 씨이다. 영화배우 송강호 씨는 국민배우이고, 연기력은 이미 <설국열차>로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가 연기했던 영화 중에서 가장 돋보인 작품은 영화 <변호인>이다. <변호인>에서 송강호 씨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으며, 작품 후반부 부림사건으로 잡혀온 진우 변호과정에서 카메라 앵글은 샷과 샷의 전환 한 번도 없이 약 3분 동안 롱 테이크(long-take) 기법을 적용한다. 쇼트 없이 단 한 번의 연속촬영 시간에서 송강호 씨의 연기력이 카메라의 연출을 뛰어넘은 셈이다.
그러나 <밀정>은 조금 달랐다. 송강호 씨가 주연배우지만, 그가 카메라에 담길 때 <변호인>처럼 강하게 의존한 것이 아니다. 공유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카메라 앵글은 인물이 말하는 대사보단 인물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행동을 유심하게 관찰한다. 보통 카메라 기법에서 어깨너머 샷(Over the Shoulder Shot)은 어느 인물이 다른 사물과 대상을 관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밀정>에선 그런 관찰방법은 카메라 앵글에 드러난 인물도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제3의 인물까지 반영한 몽타주 촬영기법을 보여준다.
내가 생각하던 가장 명장면은 상해로 온 이정출과 하시모토가 서로 의심하지만, 이정출은 일단 김우진과 같이 목적지로 향하고, 그 뒤로 승용차가 따르고, 그 승용차 뒤로는 트럭 하나가 따른다. 승용차는 하시모토의 부하고, 트럭은 의열단원 일행이었다. 일본경찰이 추격자를 붙일 것을 예상하여, 그 추격자의 추격자를 붙인 것이다. 김우진과 이정출이 걸어서 의열단장에게 걸아가는 것도 그렇다. 카메라를 미디엄 내지 풀 샷(Medium and Full Shot)으로 관찰하는가 싶더니 창문에서 2사람을 촬영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것은 누군가 그들이 오는 장면을 계속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메라의 시선이 곧 밀정을 하고 있는 자와 당하는 자, 그리고 그 2가지의 요소까지 모두 감시하는 자가 카메라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카메라의 시선은 경성역에 도착한 의열단원이 경찰에게 잡히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보통 정면을 주시하여 수많은 사람과 서울역을 중심으로 롱 샷(Long Shot)으로 촬영한다. 그런 다음 주요인물이 나오면 Full shot으로 전환된다. 그런데 영화장면에서 지붕 아래에서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군중 속에서 몰래 빠져나가려한 의열단원이 어디에 있는지 확연히 볼 수 있게 말이다.
미쟝센적 요소에서 무대소품이나 배경장면 역시 잘 만들었다. 1920년대는 부르주아 문화와 프롤레타리아 문화가 건축양식, 열차 내 승객차량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작된다. 부르주아 문화는 노란색 빛이 돌고, 프롤레타리아 문화는 회색빛이 도는 게 특징이다. 아지트 외부는 안개로 가려진다. 열차 내 객실 같은 경우 등급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고, 당시 기차 내에서 흡연이 가능한 점, 열차 지붕에 달린 조명이나 장식까지 잘 재현했다. 공간적 설정에서 밀정은 어느 특정지역에 의존한 게 아니라 어느 장소라도 상관없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잘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마음이 참 안타깝다. 의열단원들은 목숨을 걸어도 결국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죽거나, 죽지 않아도 해방된 조국에 오니 일제시대 친일파들은 득세한다. <대종교 천도교>라는 책을 보면, 대종교와 천도교의 종교적 가치관과 역사적 배경이 나온다. 하지만 대종교의 이야기에서 실제 대종교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종교적 신앙심보다 오히려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이 조선의 경성에 돌아오니 일제앞잡이 순사가 형사로 돌아와 독립운동가에게 뭐 하러 왔냐면서 조롱 섞인 비난을 날린다.
<밀정>이나 <암살> 그리고 <아나키스트>를 보면 잘생긴 영화배우가 멋지게 옷을 차려 입는 모습이 나온다. 독립운동가 중에 제법 잘생긴 분들도 많았고, 의상스타일은 댄디즘을 추구했다. 정돈된 양복, 화려한 코트, 멋진 구두는 이들에게 하나의 전투복이었다. 아나키스트들은 무장투쟁을 했기에 항상 멋쟁이로 등장한다. 그들이 멋진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이유는 언제 어디서 자신이 죽을지 모르기에 그 옷차림 자체가 장례식 수의였다. 그래서 핸섬하고 정돈된 옷차림은 화려하게 불타 꺼지는 촛불의 심지와 같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