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하면 생각나는 것은 아주 웅장하게, 매우 거대하고 그리고 상당히 잔혹한 4륜 전차 경기일 것이다. 영화사에서 <벤허>는 상당히 유명하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벤허>1959년에 제작된 것이고, 이래저래 알아본 결과 무성영화 시절 15분 정도 내외로 상영된 적이 있었다. 흑백영상에서 컬러영상, 그리고 카메라 기계 및 기술의 발전에 컴퓨터 그래픽까지 더해지니 2016<벤허>Activity 느낌을 불어넣은 영화인 것 같았다. <벤허>는 본래 종교적인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진 소설 원작이고, 영화로 제작되면서 거의 1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로마시대의 영광과 몰락, 그리고 그들의 저력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로마보다는 그리스 문화권에 대해 조금 더 관심 있게 보았다. 주로 플라톤이 살던 시절이고, 살라미스 해전 이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로 통한 그리스 패권이 아테네에서 스파르타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보았다. 로마에 대해서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앞부분 정도 보았다. 로마에 대해 깊이 알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시오미 나나미의 <로마 이야기>를 보는 게 정답일 것 같은데, 그 부분까지 들어가지 못한 점이 아쉽기도 하다.

 

<벤허>라는 영화는 서기 원년, 즉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시각부터 시작되는 영화고, 영화의 말미 역시 예수가 죽고 나서 벤허가 길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다소 영화에 대한 내용이 유출되고 있는 점에서 스포일러가 나올 수 있는 게 다소 매너위반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도 이미 <벤허>라는 영화는 오랫동안 전 세계의 영화 팬들에게 사랑받았기에 중요한 건 스토리가 아니라 스토리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어떻게 찾아가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평점을 보았다. 관객들에게 제법 좋은 점수를 땄어도,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거의 바닥을 면하지 못했다. 내가 만약 <벤허>라는 영화에 점수를 몇 점을 줄 수 있는 가에서 10점 만점에 대략 4점이면 많이 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제법 잘 나온 부분은 볼거리이다. spectacle이란 어떤 이미지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반영되는 것이다. 이미지가 매개되어지는 사회, 그리고 그 이미지가 강하게 다가오는 매체 중에 하나가 영화라면, 영화 역시 강렬한 spectacle로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벤허>가 종교의 목적성을 만들어진 작품이라도 세계 속의 관객이 열광하는 것은 역시 경마경주다. 내가 별을 4개를 줄 수 있는 것은 경마경주의 강렬함, 그리스와 벌이는 해전의 묘사, 초반에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부임할 때의 웅장함, 그리고 이런 장면들을 시시각각으로 잡아내는 카메라의 쇼트들이었다. 영화의 쇼트가 지나치게 많았다. 초반 벤허와 메살라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갈등을 빚는데 계속 카메라가 클로즈업(Close-up)으로 정면을 보다가 어느 순간 벤허의 등 뒤에서 메살라를 바라본다. 어깨너머 샷(Over the Shoulder Shot)은 벤허의 시각으로 본 메살라는 상당히 불만이 차 있는 모습이었다.

 

도중에 카메라 기법에서 메살라와 벤허의 갈등은 Walking-out side로 등장한다. 이 촬영기법은 카메라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반대로 돌아간다. 그 뜻은 피사체의 사이가 큰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벤허>는 로마에 의해 몰락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 역사적인 맥락으로 본다면 기독교적인 우월주의를 나타낸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 작품세계, 즉 서구의 사상이 매우 가부장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의 권능, 그리고 아버지의 권능을 인정받은 큰아들에게 영광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서사구조는 유럽신화에서 그리스로마신화 소재로 만든 영화가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만든 것처럼 북유럽 신화로 만든 <토르> 역시 그렇다.

 

주신인 오딘은 정신을 잃고, 토르는 몰니르를 잃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몰니르를 찾은 순간, 아버지와 자신을 배신한 동생을 물리치고, 다시 아버지의 권능 아래 살아간다. 한국이 가부장제도가 서구사회에 의해 깨진 것처럼 보이나, 오히려 서구영화들이 문화적으로 가부장의 권위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권력이란 주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인 요소, 즉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아들보단 아버지에 의해(혹은 그 대리인에 의해) 거세당한 자만이 남아있다.

 

<벤허>는 유대인들의 왕자, 벤허의 삶과 모험으로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는 민중과 다른 왕자였으나, 민중이 품고 있는 분노와 증오를 느꼈고, 민중과 같이 예수의 운명적인 날을 보고 회개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자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의 영향력이 너무나 컸다. 옛날에 나병에 걸린 환자들은 길가에서 돌멩이를 맞아 죽거나 이를 피해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나병에 걸린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예수가 죽은 후 비가 내리자, 그 빗물에 의해 병이 나았다는 점은 종교영화에서 비과학성을 하나의 정당성으로 내세우는 것과 같다.

 

물론 영화 이전에 소설부터 그런 요소를 집어넣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장면들이 뭔가 부드러운 요소보단 지나치게 억지스럽게 진행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서사구조나 연출력의 한계성을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는 액션을 강조하는 해전과 전차대회가 최고라는 점은 분명하다. 영화는 이미지와 소리로 이루어진 멀티미디어지만, 영상과 소리는 결국에 시나리오라는 서사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방법이다. 그렇다면 서사적인 관점에서 <벤허>는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가?

 

<벤허>는 실제 인물과 가상의 인물 벤허로 통해 만들어낸 Fact + fiction이다. 사실적인 내용에 허구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이기에 최근에 이런 영화를 두고 Faction 장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 로마제국의 거대함을 볼 수 있었고, 로마제국은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 예수를 죽였지만, 초기 기독교도를 박해했다. 하지만 이후 로마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다.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전후관계성,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은 영상의 시작과 끝만을 생각하지만, 영화의 끝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다. 서사는 끝으로 끝맺음 하는 게 아니라 다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벤허>가 종교성에서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의 문화가 결국 승리했다는 점이다. 유대인의 왕자 벤허가 예수를 신봉하는 점이나, 전차대회에서 로마를 누르고 이기는 것도 그렇다. 전차대회는 로마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이집트, 터키, 게르마니아 등 수많은 종족과 국가들이 출전한다. 그 안에서 벤허가 이기고, 기독교를 신봉하는 벤허가 승리한다. 이 영화의 이면에는 기독교 문화가 존재하는 백인들이 앞으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점을 은밀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사회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게 2가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는 기독교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로마 신화이다. 처음 벤허가 말에서 낙마하여 크게 다칠 때 가족들은 그들의 유일신을 향하여 소원을 빈다. 하지만 메살라는 다른 신에게 빈다. 미네르바라는 단어가 메살라의 입에서 나온다. 로마인이었던 그에게 미네르바는 지혜와 무용의 여신인 아테네를 의미한 것이다. 아테네 여신의 이름을 딴 그리스 국가에서 아테네 도시국가가 있다. 그리스 아테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배출한 국가였고(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지만, 마케도니아 인간이다), 살라미스 해전 이후 그리스의 최고의 강대국이었다.

 

그리스로마의 문화에서 그들의 신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서 최고는 번개의 신 제우스이고,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신은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이었다. 번개와 포도주에서 그리스 문화가 농경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들은 유일신이 아니라 다양한 신을 믿은 것이다. 로마가 다양한 신에서 유일신으로 바꾼 이유는 한국에서 무속신앙이 삼국시대까지 활발하다가 불교로 바꾼 것과 같다. 종교가 다양하면 신앙이 저마다 다르고, 군중들은 신앙에 달라지고, 중앙정부에서 통치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기에 정치는 종교적인 요소를 항상 동원한다.

 

이스라엘에 처음 온 빌라도나 로마의 관료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를 박해한 이유는 종교라는 신앙심은 강력한 정신적 에너지로 바뀌어 과격한 행동을 할 수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세상이 사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사상의 위력은 육체적 고통까지 초월하는 전투적 메시아니즘을 발휘한다. 빌라도는 종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관점을 말한다. 사실 종교가 철학과 인류애하고 연결되면 위대한 사상으로 연결되나, 군중에 의한 집단심리로 이어지면 파시즘이 되고 만다.

 

아프리카나 혹은 원시민족의 전사들이 왜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직 창 하나를 들고 적진을 향하여 돌격할까? 그들의 의식을 보면 조상과 신이 전사를 지켜주며, 전사의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한다. 원시적인 주술행위지만, 그 모습은 근현대적인 사회에서 볼 수 있다. 개인은 죽어도 개인이 속해있는 사회는 영속한다. <벤허>가 전차대회에 관객을 유도했다면, 그런 종교적인 부분은 은밀하게 관객에게 침투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 제작진이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사란 점이고, 영화의 맹점은 할리우드 방식은 너무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이나 전차대회 장면은 상당히 당시 상황을 고증하려 하지만, 남녀(밴허와 에스더) 간의 관계는 현대 미국을 많이 반영한 것 같았다. 이스라엘은 영미문화권이 아니라 중동문화권이다. 영화에서 시대적 배경은 중동이지만, 삶의 형태는 최대한 영미문화권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내가 주장하는 바에서 이 영화는 백인의 우월주의 요소를 상당히 배경에 깔고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신이란 이름, 신의 이름과 권위 그리고 사명까지 받은 아들과 왕자라는 점, 메살라는 로마의 인간이고 벤허의 의형제(동생)이란 점에서 미국의 기독교 문화는 그리스로마 문화까지 포용한 위대한 문화를 가진 곳이란 점을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논리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미국의 백인만이 아니라 유대인들도 제법 많은 경제력과 정치적 권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하고 있는 가혹행위를 생각하자면, 기독교적인 사랑과 포용능력은 왠지 모를 가식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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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2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참 교묘한 장치가 많더군요...

만화애니비평 2016-09-21 21:57   좋아요 1 | URL
저는 묘한 야응이가 좋으냐, 영화를 보니 겉만 번지르하지 안은 거의 구시대적 가치관으로 가득했습니다.

기억의집 2016-09-2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보다는 에드워드 기번이 서구 학자들에겐 더 인정 받는다 하더라구요. 시오노 나나미같은 경우는 일본 우익 역사사관을 가지고 있어 일본의 제국주의의 눈으로 로마 제국주의를 서술했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미국 영화사가 백인우월주의가 강하죠. 올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흑인배우들이 불참석을 선언할 정도면 여전히 미국은 백인우월주의가 득세인 것 같아요. 제가 미드 로앤오더 열혈 팬이어서 거의 다 봤는데 미드 보면 그나마 kkk단같은 백인우월주의를 범죄로 보는 시각이 강해서... 많이 나아진 듯 하긴 해요.

저는 요즘 미국에서 출판된 책을 연달아 읽고 있는데, 그래도 미국애들은 기존의 구시대적인 프레임을 깨려고 엄청 싸우더라구요. 한국언론에서 보도되는 것과는 또 다른 면모를 보는 것 같았어요. 앨러바마 이야기같은 영화가 오늘날 다시 봐도 재밌잖아요. 하퍼 리같은 작가가 지금 시대에 봐도 대단한 것 같아요!

만화애니비평 2016-09-22 08:28   좋아요 0 | URL
기번 <로마제국쇠망사>, 아직 읽지 못했는데, 목록이 올라가는군요.
나나미 역사 같은 경우 그런 식민사관이 문제라고 들었습니다.

벤허가 지나치다 못해 어설프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미국이 기존 구시대적 가치관을 깨려고 하나 대중매체는 여전하고, 지식인들의 저술활동은 활발하고, 그러고 보니 촘스키 같은 지식인들의 노년화가 참으로 마음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