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비아 페미니즘
박가분 지음 / 인간사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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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면서

전에 친한 동생 녀석하고 같이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때 내가 질문한 것이 있다. “사람이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생은 여기에 대해 형님, 그건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내가 그러면 병원에 가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동생은 아무래도 의사가 필요하겠죠.”라고 대답을 했다. 물론 상식적인 보통 인간이라면 그 대답은 정답이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있다. 병원을 진료를 받을 때 진료를 하는 주체는 의사이고, 의사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다.

 

병원을 하나의 미디어(media)라고 보면, 의사는 콘텐츠(Contents)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미디어콘텐츠의 관계성에서 인터넷의 각종 문화적 매체만을 미디어와 콘텐츠로 보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 접하는 요소조차 미디어와 콘텐츠로 볼 수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을 보강해주었다. “환자가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이 맞지. 하지만 병원을 가려면 병원이라 그 건축물이 필요하고,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도로가 필요하지. 즉 도로와 병원이라 기반시설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말을 한다면 보통사람들은 왠지 지나치게 멀리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SOC(social overhead capital) 이른바 사회간접자본(社會間接資本), 인프라는 것이 구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간접자본은 병원시설부터 시작하여 도로, 철도, 공항, 항만, 상하수도, 전기통신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점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이다. 즉 사회기반시설이 도심지에 구비되지 않으면 도심지의 기능을 할 수 없으며,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 역시 사회생활에 많은 문제가 따른다.

 

우리가 일화로서 전기가 정전이 되거나, 혹은 겨울철 상수관로가 동파되어 물이 공급되지 않을 경우가 있다. 그때 겪는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회간접자본은 시설물, 즉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형태 구조물을 통해 유틸리티가 끊임없이 제공된다. 병원에 가는 병원이란 건물이 없으면 진료가 어렵다. 가령 대도시가 아니라 산골이나 농촌 같은 벽지에 사는 마을주민은 종합병원을 찾아가려면 몇 십 를 차로 가야하며, 하다못해 섬에서 사는 주민은 배나 헬리콥터를 이용하지 못하면 생명에 큰 위협을 받는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시설이 없고, 병원시설에 가야하는데 교통기반시설이 구축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일부일 수 있으나 상당한 큰 불편함을 겪어야 하고, 그런 시설이 구비되어도 인프라 시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그 역시 불편함을 겪는다. 여름철 폭우로 교통사고가 났는데 구급차가 사면부 옆 도로가 유실되어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사고를 당한 사람은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결론은 사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거기에 따른 문명적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제대로 구비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인프라의 보충과 유지의 업무는 녹녹치 못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인프라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은 건설계통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건설계통 노동자 중 설계엔지니어링을 제외한 대부분 기술 인력은 현장에 상주한다. 현장에 상주한다는 것은 시공과 감리, 관리업무를 한다는 점이다. 현장세계는 늘 위험과 안전사고가 마주하고 있다. 한 해 안전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수 천명에 이른다. 제일 유명한 사건은 서울2호선 구의역에서 일어난 스크린도어 노동자 사망사건이다.

 

또한 거제조선소에서 붕괴된 크레인이나, 고속도로에서 도로정비를 하던 노동자가 고속주행 중인 차에 부딪혀 사망한 사례들이다. 우리가 늘 현실에서 마주하는 인프라시설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노동자의 노력과 희생이 따른다. 특히 철도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에서 철로를 수리하던 노동자들의 사고는 늘 문제가 되었다. 그들의 사고를 유심히 보면 안전관리 미비, 근로기준 시간 초과, 휴식시간 보장 미비 등 다양한 사유가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다. 대한민국의 하루를 만드는 자들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희생당하는 현실이다.

 

이들의 희생은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이윤만을 추구하는 회사 운영진, 사회적으로 관심 받지 못한 채 소외받는 서민들이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버스 정류소에 가면 새벽부터 운행하는 버스기사가 있고, 자가용을 이용하여 출근할 때 도로를 보수하는 건설노동자가 있다. 게다가 도로와 관련된 업무는 대낮보단 심야시간에 주로 이루어진다. 야간작업에 따른 노동 집약도가 높으며, 시야의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에서 안전관리가 무척 어렵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서민이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다. 다행히 버스는 준공영제가 되었다고 하나,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가 무척 심각하다. 그렇다면 난 왜 이들의 현실을 말하고 있는가?

 

2. 페미니즘이 아닌 페미니즘

2016년 강남역에서 묻지가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 문제가 여성혐오로 일어난 범죄인지 아닌지 모르나, 적어도 상당히 잘못된 일이고, 그것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다. 내가 이 사건에서 그 살인자를 두고 여혐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일부 여성 진영에서 여성혐오라고 하나, 경찰과 범죄정신분석에서는 약물의존과 정신병에 의한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어디가 논리이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는 피해자의 가족들이다. 이 사건의 최고 희생자는 살해당한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과 주변사람이다. 인간이 사망하면 그 자신이 피해를 받았다는 인식과 판단을 할 수 없으며, 범적인 절차와 행정적 절차 역시 피해자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여성 진영에서 이 사건을 두고 모두 공포와 공허감을 느끼며 페미니스트운동을 펼쳤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슈를 건넨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가고 있었나는 것이다. 죽은 피해자의 가족에게 찾아와 그들의 고통을 대해 서로 다독거리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이야기만 하고, 그들의 가족이 남성이란 이유로 남성이 여성의 죽음을 두고 슬퍼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 것이 그렇다. 인간이 억울하게 죽어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 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가이다.

 

혹은 누군가 이런 일에 충격을 받거나 과거 성폭행 내지 성추행에 당한 분이 있더라도,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가족에게 그런 식의 발언을 하는 것도 문제고,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것 역시 심각하다. 게다가 일반남성들은 이유 없이 여성을 구타하거나 성폭행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타인을 헤치거나 모함할 이유는 없다.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이나 혹은 비인간적인 사람만 그런 행위를 한다. 문제는 모든 남자를 범죄자로 모는 것과 그것이 곧 범죄는 어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늘 현실에서 24시간동안 이루어진다는 점과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공포의 심리는 사회적 큰 이슈를 남겼고, 인터넷은 서로를 비난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반대로 구의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남성이 작업 중 안전사고로 젊은 삶을 마감했다. 그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추모를 했고, 비정규직에 대한 안전관리 및 대우가 무척 심각한 것은 다시 보여주었다. 월급도 적고 근무시간은 빡빡하여 점심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다. 그가 죽었을 때 정상적인 사람, 그중에 일반 여성들은 어떻게 보겠는가? 그 청년의 죽음을 두고 안타까워하고, 그의 죽음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사측에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청년의 죽음을 두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부류가 있었다. 심지어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희롱하고,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을 조롱했다. 메갈리아 워마드는 미러링 수법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불만으로 남성혐오 발언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에서 여성혐오는 전혀 상관없고, 그저 안타까운 죽음이다. 이들의 죽음을 조롱하는 부류는 일베나 극우성향의 네티즌이었다. 만일 메갈리아 워마드가 여혐을 미러링 한다면 남녀간의 젠더적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데, 그들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혐오발언을 했다.

 

일베가 여성을 비하한 말을 했다고 해서 남성들이 그것을 동조하는 것은 아니고, 메갈리아가 남성을 비하한다고 여성 전체의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엘리트 진보진영에서 메갈리의 담론을 페미니즘이론으로 전환하여 혐오적 담론과 사회적 이슈를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가 이들의 행위에 회의감을 느끼는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도래 이후 (권력이 없는)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는 것은 정당화되어도 그것이 윤리적 한도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윤리적 한도를 초과하여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고 그것이 문제라고 말하면 오히려 여성운동을 저지하는 남성권력이라고 말한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권력이 있었다면 저렇게 될 리가 있을까? 이들의 착각이 심각한 이유는 바로 이렇다. 일베가 죽은 (남성)노동자를 조롱하면 그것은 메갈리아 워마드가 추구하는 유아적 페미니즘과 분명히 다르다. 일베가 조롱한 사람을 메갈리아 워마드 역시 조롱했다. 흔히 페미니즘 세력에서 말하는 너희 남성이 우리를 조롱했으니 우리도 여기에 대해 조롱한다.”라는 전략이 틀린 것이다. 국가주의적 발상과 시장자본주의에서 경영자 마인드를 지지하는 극우적 발언이 이제는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나왔다.

 

페미니즘이 진보진영에서 담론화 하는 형국에서 극우적 발언이 진보의 꽃이라고 보던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나온 점에서 한국 진보진영의 엘리트들은 이미 좌파세력으로서 상식과 도덕을 배반한 것이다. 여성학자들이 대부분 진보진영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남녀 간의 불평등에서 기존 기성세대가 지닌 문제는 거의 틀리지 않고, 때로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지적한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문제가 점차 20대 내지 30, 그리고 10대로 내려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회적 약자라던 여성이 점차 사회적으로 요직에 나가게 되면서 그 자리를 사회적으로 직급이 높은 자들이 차고 올라간다. 하지만 하부에는 그렇지 못하다. 계급적 박탈감은 남녀를 모두 떠나 사회 그 자체의 문제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여성이 약자라고 본다. 분명 신체적으로 남성이 유리한 부분이 있으나. 사회적으로 남성만이 유리하지 않다. 대부분 권력자가 남성인 것은 사실이나, 그 권력자의 권좌를 모든 남성이 앉는 것도 아니고, 일부 남성이고, 대다수 남성들은 거기서 소외된다.

 

3. 진보의 문제

한국에서 좌파와 우파 문제를 다룬 것만큼 피곤한 문제가 없다. 한국적 시선에서 정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정식이론이 있어도 좌우 이데올로기는 둘째 치고, 자유주의 사상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다. 아직도 자유주의 사상을 두고 반공이데올로기로 보고 자유주의는 70년대 군부독재가 지배하던 구조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의 진보운동의 시작은 이상하게 시작되었다. 자유주의사상은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자유주의이고, 사회주의는 그렇지 못한 체계로 본 것이다. 자유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모두 자유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는 완전 같은 것이 아닌데도 같은 것으로 보는 오류가 존재한 것이다. 가령 한국의 유교사회라 하여 조선의 성리학을 제대로 알고 있는 노인도 없으며, 공자의 <논어>조차 읽은 어른도 없다. 어른이 말하면 무조건 아랫사람은 토를 달지 못하는 구조는 이른바 꼰대사회로 만들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중요하지 않다. 사회 직장생활과 학교의 선후배 사이에도 존재한다. 계급이 깡패라는 의식은 군대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깔린 체계이다. 남성중심의 사회구조에서 시작된 계급적 억압은 일부 남성만에게 권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정권에서 피우진 보훈처장이 내각에 오르면서 그분이 예전에 군대생활을 기반으로 작성한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에서 고급 장교들의 행패를 다루고 있다. 영관급 장교는 군대 내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다. 장관급 장교는 상상을 초월한 권력을 가진다. 여군이 군대 내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고, 그들이 처한 입장도 불리했다. 간호사관 같이 군병원을 중심으로 체계화된 조직이 아니라면 언제나 소외될 수밖에 없는 처지인 점은 분명하다. 이런 사례를 두고 군대는 남성위주이니 한국의 남성이 모두 예비적 성추행범 내지 무뢰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아도, 일반 사병들은 초콜릿을 매우 좋아한다.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나, 피우진 처장님이 책을 쓸 시기나 혹은 책에서 묘사한 시기에 사병들은 초코파이에 열광을 했다. 일반사병들이 여군에게 과연 행패를 부릴 수 있는가? 군대는 계급이 깡패이기 때문에 피우진 처장님이 말한 일들이 벌여진 것이다. 일반사병이 밖에서 술을 마시고 여군을 부를 수 있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남성이 역차별을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성차별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 분이 말하는 내용은 모든 사회적 전반이 아니라 어느 특이한 상황과 구조를 봐야 한다는 점이다. 전후맥락을 놓치고, 일방적으로 여성만 약자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남성이 징병되고 여성은 징병되지 않는다. 여성이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약하다는 이유이다. 리뷰를 적는 본인은 부사관으로 입관할 때 여군동기와 같이 훈련을 받았다. 내가 본 여군들은 훈련과정에서 도태되는 인간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에 충분히 이겨내는 훌륭한 사람이다. 피우진 처장님은 헬리콥터 조종사면, 더욱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이 지니고 있다.

 

단지 내가 여성징병에 반대하는 것은 징병이 되는 기준은 사병부터 입영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인프라 구조가 전혀 구비되지 않은 점이다. 아무 준비 없이 실행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21세기 중반으로 가면 인구절벽을 맞이하면 군사력 보전을 위한 징병 대상 인구를 점차 확대할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CCTV나 군사장비를 보강한다고 하면 되지만, 현재 군사조직을 본다면 거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충분한 예산이 되면 점차 개선하겠지만, 사병들이 사용하는 군장비가 한국전쟁 때 사용하는 수통이 있다. 예비군들이 사용하는 총기는 칼빈소총이다.

 

단순히 남녀의 문제로 보는 감정적 대립보다, 현실적으로 전후맥락과 상관관계 그리고 기본적 토대를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제대로 하려면 바른 토론문화가 성립되고, 거기에 따른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진보진영에서 일부 페미니즘 담론만 받아들이면 사회구성원 국민들에게 과연 인정을 받을까? 진보진영의 문제는 바로 시대적 맥락에 많이 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진보를 두고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 시대이다.

 

일제는 만주나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중국인과 조선인을 이간질하기 위해 조선 내 중국인과 조선인에게 노동문제를 제공했다. 서로 다른 임금을 주고, 각 민족별로 험담을 내어 임금문제를 서로 노동자끼리 다투게 한 점이다. 이들의 갈등은 당연히 외부에서 항일운동 하는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위협을 주게 되며,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임금을 적게 받는 쪽에 주는 경쟁방식을 도입하여 노동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진보운동과 관련하여 일본의 자본독식과 노동환경을 대해 저항한 세력이 있었다. 조선공산당(북한과 전혀 무관함)은 독립운동과 노동운동을 동시에 진행했으며, 그 타도세력은 일제였다.

 

여기에 대종교 신도를 중심으로 백산 안희제가 설립한 백산상회는 독립군의 군자금이 되어주었으며, 조선에 대한 일본의 자본침식을 저지하려 했다. 조선이 독립하여 대한민국으로 되고, 대한민국은 다시 한국전쟁으로 역사의 운명을 맞이한다. 이때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그 후 전두환 정권이 한국사회를 지배한다. 이때의 진보가 내세운 투쟁의 슬로건은 국민주권과 노동운동이다. 노동환경이 열악하면 노동자가 시위를 하거나 파업을 하면 사업자는 이에 대한 문제를 같이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여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10.26사건 시작점은 DH사건이다. 여성노동자들(그것도 나이가 어린 여공들!)이 임금의 적정성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다가 경찰에게 진압당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창문으로 떨어져 그 삶을 마감했다. 진보진영이 추구한 노동인권은 단순히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를 탄압하던 국가라는 그 자체, 국가주의 파시즘을 타도하는 조류였다. 6월 항쟁과 대통령직선제,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로 옮기면서 노동운동은 민주화보단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투쟁한다.

 

특히 IMF 시기로 경제적 퇴보와 신자유쥬의의 도래는 노동시장 유연화란 단어로 많은 노동자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 신자유주의 노선은 국제사회 흐름이고, 현재 그 노선을 따라가지 않을 경우 외교와 통상무역도 문제가 발생한다. 결론은 비정규직의 양산화, 임금의 저하, 노동환경의 부조리 등은 계속 유지된 셈이다. 진보진영은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국가와 합의하여 유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가정책으로 반영되어 법적 제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장구조에서 노동자는 100% 불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보수화로 인해 노동환경은 가혹해졌다. 작년은 한국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어 파면되었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에서 봐야 할 개선안은 무엇인가? 당연히 노동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페미니즘 이론을 내세우는 진보진영 엘리트들은 이런 문제를 두고 진보의 길이 아니라 보수세력을 옹호하는 형국이 되었다. 메갈리아 워마드 발언 중 가장 문제가 남성 그 자체만이 아니라 남성이 살아가는 그 삶의 형태를 조롱하기 때문이다. 200충이란 단어가 있다. 1달에 200만원 가량 버는 남성을 두고 조롱하는 단어으로 그 대상은 돈도 많이 벌지 못하는 중소기업 내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20178월 기준 연봉 2,600만원 가령 받는 노동자가 상위 50%로 기록되었다. 세금과 공제금을 제하고 20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다면 연봉 3,700 이상이 상위 30% 이상이다. 200만원이라 하여 200만원 딱 숫자가 아니지만, 그 내외에 해당되는 노동자 대상자이다.

 

한국 노동운동이 중요한 것은 이들이 국민이기도 하나, 국민들의 생활경제가 어려우면 나라 역시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 인구의 감소는 국방력 보전만 아니라 경제적 수요도 문제이다. 최근 교대 학생들이 임용으로 사회적 이슈를 남겼다. 학교에 교대생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는 인구의 감소이다. 국가가 어느 정도 해결해줄 부분이 있겠지만, 근본적 문제는 인구감소의 절벽이다. 산부인과와 소아과 의원이 감소하고, 이에 반해 한의원과 노인요양병원은 증가한다. 인구의 문제는 그 시대적 흐름에서 보여주는 실태이다.

 

인구의 감소는 경제소비능력이 감소하고, 내수구조를 어렵게 하고, 더 나아가 시장 그 자체를 감축된다. 인구감소로 인한 국가경제력이 심각한 사태에 이른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에서 본다면 한국은 쇠퇴하는 국가이다. 물론 기계의 대체화로 노동력을 그만큼 줄이면 기업은 유지가 가능하나, 고용된 노동자 입장에서 생계가 문제이다. 비정규직으로 인한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한데, 진보진영 엘리트들이 계속 물고 늘어지는 페미니즘 이론이 한국사회에 과연 좋은 길을 열어주는가?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시하고, 더 나아가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가족을 무시한다. 맘카페 내지 다수의 인터넷동호회에서 가난한 남편과 같이 사는 기혼여성을 두고 명예자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성이 여성보다 남성의 편을 드는 기혼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거기에 대하여 메갈리아를 비판하면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진보진영에 대한 도전이란 프로세스로 만드는 진보언론의 관점은 매우 심각하다. 진보언론이 노동자들의 편이라면, 그들이 처한 문제를 다룬 것은 분명하다.

 

노동환경과 메갈리아 워마드 문제의 순환도를 보자면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그것이 남성(재해율이 95% 이상)메갈리아 워마드가 남성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두고 조롱을 함 일부 네티즌이 여기에 대하 비판하고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함 진보진영이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하는 사람을 두고 안티페미니즘으로 몰아세워 일베로 몰아세움

 

이런 도식이 결국 진보진영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최근 오마이뉴스의 후원자가 계속 감소하여 2016516,570명에서 20171013,930으로 감소했다. 메갈리아 논쟁으로 시작하여 진보진영의 대표언론기관인 오마이뉴스의 후원자 수가 2,600명 가량 낮아진 것이다. 전체 비율의 15.7% 되는 후원자가 빠진 것이다. 시사인의 행태 역시 후원자 내지 구독자로 운영되다가 인터넷 배너 광고를 달기 시작했다. 이들을 보는 시민사회의 눈총이 그리 고운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라 해도 어느 커뮤니티 내지 기관에 속해진 사람이 아니라 네티즌으로 참여하여 꾸준히 사회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역시 시민사회의 일원이다.

 

4. 마르크스주의 쪽으로 생각해 보자.

좌파의 시작은 어디인가? 좌파라고 한다면 노동운동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좌파의 핵심을 차지한 인물과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이다. 마르크스가 저술한 <공산당 선언><자본>이 토대가 되어 엥겔스, 룩셈부르크, 레닌, 알튀세르, 마르크스주의에서 새롭게 탄생한 프랑크푸르트학파 및 구조주의 사상사단들도 그 여파들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소비에트 붕괴 이후 몰락할 것이라 했지만, 오히려 21세기는 마르크스주의가 세계적으로 다시 학문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으면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강도를 올리며, 기계의 개선으로 노동임금을 감소시키며, 도구의 발달은 노동착취 대상자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모시킨다. 마르크스의 서적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저술하고, 남성노동자와 같이 사는 여성들의 삶 역시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 이론 중에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 같이 자유주의 이외에도 마르크스주의에 따른 페미니즘 역시 존재한다.

 

만일 진보진영에서 노동문제와 여성문제를 마르크스주의에서 본다면, 임금문제와 노동환경을 중심으로 볼 것이다. 그리고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며, 노동문제를 개인 기업만이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법적 강제집행기구가 있기에 국가와 기업을 동시에 고찰대상으로 봐야 한다. 올해 201711월은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볼셰비키혁명의 성공은 러시아 민중의 지지도 있지만, 볼셰비키 당원들이 대부분 노동자였고, 그들은 철도와 전기, 통신, 도로 등의 인프라를 통제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 전자식이 아니라 수동식으로 통제했기에 군부세력은 볼셰비키세력을 무력화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이 결국 사회적 인프라를 통제하면 그 사회는 바로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렇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국가와 기업의 통제를 받고 착취당하는 피지배계급이다. 임금수준이 삶을 지탱하기도 어렵고, 노동환경이 열악하여 언제 어디서 사고로 죽거나 다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마르크스주의적 담론을 페미니즘에서 인지하여 노동자 삶 그 자체를 본다면 메갈리아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대다수 여성학자는 좋은 학벌을 가진 엘리트들이다. 그들이 보는 남성이란 이미 혐오발언과 행위를 일으키는 문제아들이다. 노동여건과 임금 그리고 그들 삶 그 자체를 두고 본다면 포비아 페미니즘을 공론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갑자기 튀어나온 존재가 아니라 기존 인터넷 카페에서 혐오적 발언을 하던 일부 여성들이 세력화한 부류이다. 단지 메갈리아의 발언을 페미니즘이란 옷을 입고 사회로 나온 것이다. 페미니즘의 전사로 둔갑한 이들의 혐오발언은 처음에 사이다로 느꼈을 것이나, 점차 이들의 행패나 문제는 이슈화 되었다. 강남패치, 한남패치 같은 경우 타인의 신상정보를 무단으로 노출시켰으며,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낙인을 찍게 만들었다.

 

소라넷 운영자가 잡히지 않고, 자신만 잡혔다는 이유로 여성혐오로 다시 말하고, 유족무죄 무족유죄라는 발언도 만들었다. 하지만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남자의 성기가 있든 없든 죄를 지은 것은 변함이 없다. 사회적으로 모든 범죄를 남성으로 몰고가나, 최근 학원폭력을 봐도 남학생과 여학생 구분 없이 일어나는 점, 인천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사건 등을 봐도 범죄는 여자라서 남자라서가 아니라 그 개인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문제를 두고도 현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불리함을 알아달라는 인정투쟁이 결국 정치적 올바름이 되고, 그것을 위한 발언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어도 문제의식을 제대로 간판하지 않는다.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참한 사건 중에서 세월호 침몰을 보자.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의 계기를 내어주었다. 물론 직접적 탄핵사유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국민들의 불신이 도화선이 되어 최순실 국정농단이 폭발로 일어나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박근혜와 최순실의 구속을 두고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여자라서 대통령에서 떨어지고 구속되었다고 한다. 박근혜의 파면과 구속은 극우 사이트 일베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인데, 그들의 미러링인 메갈리아 워마드도 일베가 추구한 가치와 같은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가?

 

페미니즘이론을 서구 저명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사상가의 책을 봐도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 본인이 자질과 능력이 되면 그 자리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여자라서 남자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발언은 비단 메갈리아 워마드의 의견이 아니다. 여자도 대통령이 되어야지 하는 발언은 박정희를 통해 박근혜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말하던 방식이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던 박근혜 지지자들은 모두 페미니스트인가?

 

심지어 박근혜 탄핵 전 특검의 조사 중, 청와대로 전화하여 박근혜에게 응원했다고 하는 메갈리아 워마드 유저도 있으니, 이게 진보에서 말하는 페미니즘인가? 여성학자 정희진과 최근 서민교수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과거 이들은 박근혜는 여자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기고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인권을 추락하고 노동시장은 악화되고, 세월호 희생자들은 억울하게 죽는 것도 모자라 그 가족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했다. 그런 악의적 행위를 한 사람들을 두고, 최순실 국정농단을 두고 과거 그런 식으로 발언했던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5. 나는 인간의 얼굴이 보고 싶다.

나하고 친한 여자교수님이 계신다. 아주 똑똑하시고 내가 좋아하는 분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추천받고(마르크스주의 도서 몇 권) 읽어보았다. 작년에 이분이 메갈리아 이슈에서 페미니즘의 형태에서 그들의 행위에 대해 문제가 다소 있어도 발언의 의의가 있기에 좋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올해이다. 메갈리아는 군대에서 의문사 내지 사고사로 당한 장병들을 조롱한다는 점이다. 군장병들 중 영관급 장교 내지 부사관은 상사원사 이상 아니면 모두 하위계급이다. 특히 사병들은 절대적인 약자이다.

 

그들이 사고사로 희생당할 때 잘 죽었다고 말하는 그들의 멘탈이 궁금하다. 어째든 나하고 친한 여자교수님의 아드님이 군복무 중이다. 최근 철원에서 일어난 사격장 사고로 접하고 나서 무척 불안하다는 SNS 글을 보았다. 당연히 그런 일이 무섭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당시 메갈리아 워마드를 페미니즘의 발언이라 지지하신 분이다. 그리고 그 페미니즘은 군대에서 죽은 병사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사람이다. 이제 자신의 아들이 군에서 그런 위기의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예전부터 나는 사병들의 죽음을 두고 남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남자의 가정과 기존 커뮤니티의 붕괴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기혼여성 중 아이를 낳는다면 남성이 태어날 확률은 최소 50% 이상이 된다. 왜냐하면 여자아이나 남자아이 하나만 출산하는 게 아니라 2명 이상 다수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딸이 1, 아들이 1명인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년 군부대에서 일어난 구타사건이 일어나고, 어느 병사가 총으로 내무반 사병들을 사격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가장 두려움에 떨던 사람은 기혼여성이었다. 주변에 아는 기혼여성에게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몇 년 뒤 징병되어 군에 가서 저런 일이 생길까봐 하는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형은 강원도에 무장공비가 나타나서 유서를 작성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집에 보냈다고 한다. 작전 중 사망할 경우 그것이 곧 자식의 마지막 소식이 될 것이다. 이를 받아든 어머니는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밤낮으로 울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강남역 사건에서 피해여성의 오빠와 남자친구가 있었고, 구의역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어머니가 있었다. 도대체 누가 가장 불쌍한 인간인가? 인간의 얼굴이라면 희생자와 희생자 주변에 있는 그들을 가장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메갈리아 워마드에 대한 포비아페미니즘은 인간의 얼굴이 아닌 단지 종교적 주술력으로 넘어간 셈이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하니 너네도 해야 한다는 신념은 전체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인류의 시작에서 여성이 처한 부조리가 많았지만, 남성이 처한 부조리를 두고 조롱하고 야유하며 심지어 부정하는 관점에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것은 여성이 처한 사회적 모순의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그 대립의 각을 올리는 형국이 된 것이다. 어느 영화인지 만화인지 모르나 남자는 전쟁에 나가 죽으면 영웅이 되고, 살아 돌아와도 영웅이 된다. 살아와도 몸이 멀쩡하지 않아도 영웅이 된다고 한다. 이런 말은 참으로 비겁한 말이다. 그러면 반대로 여자가 전쟁에 가서 총에 맞아 죽고, 폭탄에 팔다리가 잘린 채 돌아와서 계속 살아야 한다면 그게 좋은 것인가?

 

전쟁은 결국 정치적 행위를 말이 아닌 무력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전쟁이 좋아 당장 총을 들고 신나서 전쟁터에 달려가는 남자들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남자의 불리한 요소를 말하면 그들은 당장이라도 남자들에게 찌질 하다고 말하거나 조롱한다. 여자가 말하는 불편함을 당연하나 남자가 말하는 불편함을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역차별을 당하는 남자를 구제하기 위해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발언을 위에서 언급했지만, 전쟁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 죽거나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죽는 남자들이 무슨 성차별을 했는가? 일상생활의 대화나 행위들의 문제라면 당연히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 치부하여 어느 하나라도 자기합리화한다면 논리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기존 남녀 간의 문제를 다룬 점에서 제일 문제는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그저 남녀만으로 본다는 점이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여학생들이 월 1일 생리로 인해 조퇴가 가능하고, 출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고, 혹은 좋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해준 분이 학교의무실 간호사선생님이고, 그분이 이야기하기를 그것을 악용하여 어디 놀러가는 학생이 많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다시 생각하면 생리휴가는 나쁜 것이 아니라 여겼다. 미혼남성이 아닌 기혼남성 입장에서 아내가 월경으로 힘들어 한다면, 하루 쉬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결혼준비를 하는 동갑내기 직장인 남녀가 임금을 보니 여자는 돈의 액수가 높으나 남자는 낮다. 그래서 결혼준비에 소요될 예산문제(대출)에 봉착되어 있다면 그것 역시 남자가 군복무한 시간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이다. 예비군을 가는 남성이 장사를 한다면 그 일수만큼 생계수단을 잃는 것이다. 결혼하여 아내가 임신 및 출산상태라면 그 여성의 입장에서 예비군 제도가 좋을 수가 없다. 과거 임금과 관련하여 남성이 높았다. IMF 전에는 남자 혼자 평균 4인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점을 현재 통하지 않는다. 고소득 연봉수익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연봉 3,700만원이 상위 30%라면, 그가 집 구매와 식자재, 기타 공납금을 낸다면 남는 것이 얼마나 될까? 과거 대학은 남성만이 특권이고, 여성은 여대 정도 갈 수 있는 정도지만, 이제 여성이 대학진학률이 올라가고, 조금 더 좋은 직장에도 많이 들어간다. 단지 들어간 상태에서 간부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하지만 자신과 같이 입사한 동기 남성 중에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부류는 극히 일부이다.

 

20대 청년세대는 임금수준이 좋지 못하고,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생계가 보장되지 않아 결혼을 둘째 치고 연애조차 포기한다. 약자는 여자와 남자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현재 사회적 구조에서 경제적으로 사회적 기반이 약한 부류이다. 남녀 간의 대립에서 이득을 볼 자는 누구인가? 이택광 교수의 <마녀프레임>을 보면 마녀사냥의 근원은 사회적 문제를 만들거나 방치한 권력자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일반 민중에게 화살을 돌린다고 한다.

 

민중들은 피지배계급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같거나 비슷한 무리이다. 이른바 왕따문화 내지 인신공양이 튀어나오는 상황과 같다. 동급생 사이에서 왕따와 이지메가 나온 점을 생각하면 결국 문제의 해결보다 문제의 회피로 이어진다. 마녀사냥은 왕따문화와 비슷하다.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일련의 문제는 사회적 경제적 모순과 부조리에서 일어난다. 임금 역시 노동문제이고, 성차별적인 상황에서 남성이 역차별을 받는 이유는 권력의 중심과 변두리에 있는 남성이 다른 점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메갈리아 워마드 행위와 발언을 두고 그대로 페미니즘 전체로 물고 늘어지면 어떻게 될까? 일부 페미니즘 진영(그것도 오랫동안 운동하신 분들)에서 메갈리아 워마드 논쟁은 불편한 상황이 되었다.

 

한국 여성주의 운동은 단순히 여성주의로 시작한 게 아니라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세력과 많이 연접되었기 때문이다. 기존 독재세력에서 가부장 군사문화를 주입했기에 그에 대한 해체의식으로 여성의 인권도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화 이후로 노동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노동자의 인권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고, 특히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거의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연애와 결혼보다 삶 그 자체의 생계가 다급한 부류이다. 이들은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조롱하는 200충이란 단어 축에 들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이다. 현재 한국은 노동시장의 변화를 맞이한다. 한국 자본산업화가 축척되던 70년대의 노동자들이 이제는 노인이 되었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인만 남아있다. 통계자료를 보면 선원들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고, 자원이 부족하여 수출입으로 재원을 확보한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지만, 그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여 위기를 넘지 않으면 국가부도로 이어진다.

 

6. 삶의 선택은 자유, 그러나 답이라고 말하지 마라.

내가 살아가든 일상에서 비혼 내지 자녀계획을 세우지 않은 분이 있다. 물론 개인이 그것을 하든지 말든지 개인의 자유이나, 그것이 마치 답이거나 혹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싫다. 최근 비혼주의자 선언을 하는 책이 나왔다. 결혼을 하지 않아야 세상의 부조리를 끊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참 위선자라고 본다. 그들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자유이다. 문제는 내가 이 글을 서두에 위치한 글이다. 이들은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좋은 음식이나 좋은 집은 물론이나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길 바란다. 이들이 만일 산에서 채집과 수렵, 자급자족 하여 산다면 불만이 없다.

 

좋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여유를 즐기고, 맛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캐리어 가방을 끌고 공항에 가서 외국의 멋진 장면을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점이야 상대가 그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자유라고 본다. 단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에서 좋은 커피가 생산되지 않고 수입 된다. 음식재료도 반 이상이 수입에 의존한다. 외국에 가려면 공항시설이 유지되어야 한다. 물론 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일단 차와 요리를 위한 커피와 식자재를 수송해야 할 배가 필요하다. 그 배를 움직이는 것은 한국의 선박회사이다. 배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선원이 필요하다.

 

선원이 1번 멀리 나가면 길게는 1년 동안 한국에 귀국하지 못한다. 나의 아버지는 40년 가까이 배를 타신 선원이다. 30년 넘게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화물선의 기관을 수리하던 분이다. 해외를 누비는 선원이 없다면 우리는 건물을 세울 공사자재도, 차를 움직일 기름도, 전기도 만들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선박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선박회사가 외국회사가 다 장악하면 한국경제는 후퇴하고, 외국인 선원만 고용하면, 선박의 통제와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사회 현상유지를 위한 노동력이 필요하다.

 

사회에 필요한 노동력을 두고 노인들로 한다는 발언에 할 말이 없었다. 장시간 운전이나 노동강도가 높은 업무는 노인들에게 미룰 수 없다. 편의점 알바나 간단한 매표나 행정이야 가능하나, 사회적 기반시설 유지에서 한계성이 있다. 만일 그들이 버스와 전철을 안 타고, 방안에서 전기기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관계가 없다. 누군가 계속 유지관리를 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도 그런 유틸리티의 가치를 향유할 수 없다. 분명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고, 여성에 대한 부조리한 처사는 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문제에 몰두하여 다른 문제를 배타적으로 다루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극단적 페미니즘 내지 자치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메갈리아 워마드 여성은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 하자, 그러나 그것을 두고 뭐라 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그런 여성이 남성과 결혼하여 결혼생활이 제대로 될 리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여전히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키며, 따뜻한 물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런 인프라를 구비하고 유지하는 노동자를 노예 내지 200충으로 보겠지만 말이다.

 

세상은 200충으로 만들어진다. 가진 것이 없어 힘든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 우리 사회의 토대라는 사실에 왠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런 노동문제, 경제문제, 남녀 간의 문제 역시 삶이 점점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개저씨 내지 맘충이 대두되고 있는데, 맘충의 문제는 남녀 간의 문제가 아니라 왜 여성과 아이가 가게로부터 외면을 받았는 가이다. 전부터 생각하여 글로 정리했으나, 부동산이 폭등하여 가게를 내는 점주들이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영업을 문을 닫는 사례에서 봐야 한다.

 

그러나 진보언론은 이런 문제에 대해 깊게 논의하지 않는다. 임금과 이윤 그리고 지대는 애담 스미스의 <국부론>부터 시작하여 마르크스의 <자본>, 케인즈의 이론까지 이어진다. 결국 자본의 소득창출은 임금과 이윤에서 많은 것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대에서 시작된다. 잘 나가는 가게가 문을 닫는 원인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임금을 많이 줘서인가? 아니면 가게의 매상이 낮아져서인가? 아니다 임대료가 상승 즉 지대의 문제이다. 지대의 임대료를 해결하기 위해 매상의 회전율을 올려야 하고, 11식이 아닌 21, 그것도 1130분이 아닌 211시간이라면 회전율을 채울 수 없다.

 

이것이 기업인의 논리인가? 아닌가 하는 논의에서 이런 문제를 갖는 사람은 소상공인 같은 영세업자이다. 이들도 프롤레타리아로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사람이고, 원래 프롤레타리아에서 시작한 부류도 많다. 작은 가게를 내어 생계를 책임지어야 하는데,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니 결국 문을 닫는 점포를 두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경제적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해결될 리 없고, 지금의 진보진영이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조차 하지 못하고 일반화 논리만 매몰되니 그 무엇이 해결될 수 있는가?

 

7. 페미니즘은 필요하나 포비아 페미니즘은 필요 없다.

어느 누가 페미니즘이 남성에 공손하고 착하여야 하냐는 말을 했다. 기존 권력자에게 자신의 입지를 떳떳하게 주장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그 대상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21세기 헬조선 청년이면 곤란하다. 모든 진보진영,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전에 메갈리아 워마드 이슈가 SNS에서 화제가 될 때 어느 분이 메갈리아 워마드 지지발언과 남성중심사회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내가 어떤 강의에서 그 분을 알게 되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강연준비하는 그분이 친구하고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친구(여성)분이 어느날 선을 봤는데, 그 선자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처음 물어본 것은 뭐하는 사람이지만, 결국에 물어본 것은 연봉이 얼마냐는 것이다. 답변으로 대략 6,000~7,000만원 정도인 것 같았다. 남성의 종속화를 거부하고,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분이 친구가 선을 보자 그 남자의 연봉부터 물어본 점에서 이중적 잣대를 느꼈다. 물론 연봉 정도 충분히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소신이라고 말한 네티즌의 입장과 현실에서 친구하고 나눈 대화에서 괴리감이 느낀다.

 

이런 식을 느낀 남성에게 다소 찌질 해 보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다고 하여 자신 내면에 새겨진 자본주의 속물근성이 부정할 수 없다. 남성에게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의존하지 않겠다며 그런 발언 자체가 문제이다. 그런다고 나는 이런 사람만 페미니스트로 보지 여기지 않는다. 대학학부 시절 시간이 남아 우연히 들은 여성학 강의시간에 오신 여교수님은 이미 자신은 결혼을 하여 남편과 같이 자녀를 키우고, 서로의 상황에 따라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한다고 했다. 한국은 성적인 담론이 너무 조심스러워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피해주지 않을 정도라면 서로 격식 없이 성적인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설명했다.

 

21세기 초반 내가 처음 접한 페미니즘은 그랬다. 그러나 10년 지난 후에 네티즌 세계의 페미니즘은 내가 처음 접한 페미니즘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분야도 많고 생각도 많으며, 인간이 많은 만큼 여성과 남성도 많다. 그래서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기는 어렵고 그 나라와 민족, 사회와 현황 속에서 각가지 이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페미니즘은 인간을 위해 나온 사상이지 인간이 페미니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저술한 <공상에서 과학으로>라는 책자에서 정말 맞는 말을 했다.

 

인간이 사상을 만들었지만,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사상이라고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진리와 사명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에 따라 순국자내지 애국자로 볼 수 있고, 때로는 테러리스트 내지 광신도로 볼 수 있다. 다시 여성학 강의시간에 돌아간다. 당시 교수님은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만큼 그런 여성과 같이 동반자로 살아가는 남성의 인권도 생각한다고 했다. 남성이 가부장제도에서 자신의 감정을 죽이며, 군대화 된 직장사회에서 노동력이 착취당한다고 말이다.

 

내가 접한 페미니즘 도서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만 아니라 어린이, 노인, 장애인, 외국인, 소외된 그 모든 사람을 위해 필요한 사상이라고 했다. 장애인을 비하하고, 어린아이가 쉬는 어린이집에서 행패를 부리며, 518에서 사망한 사람을 조롱하며, 산업재해로 죽은 노동자를 두고 페미니즘 실천가라 지칭하고, 거기에 옹호하는 엘리트 진보들을 볼 때마다 내가 처음 페미니즘이 이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일베에 대항한다던 그들이 이제는 일베처럼 되어버렸고, 일베의 미러링이 아니라 일베의 메아리의 대상에게 같이 메아리를 보내는 현상도 보여주었다.

 

진보진영 사람들이 메갈리아를 지지하던 말든 자유이나, 그들이 노동자의 입장을 두고 운운하는 것은 차마 두고 볼 수 없다. 산업재해를 당하여 사람이 죽거나 다칠 때 그 당사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 역시 정신적 충격에 빠진다. 내 친구는 생선가공공단 폐수처리장을 관리하다가 호흡곤란 증세로 사망했다. 안전도구도 없이 21조라는 안전규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채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내 친구처럼 허무하게 죽은 노동자들은 너무 많다. 이들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면 누가 약자인가? 올해 친구의 1주기 제사에 가고 싶었다는 말을 친구 여동생에게 문자로 보내니, 답장이 친구의 어머니가 우리를 보면 당신의 아들이 너무 생각나서 견딜 수 없어 차마 부를 수가 없다고 했다.

 

내 친구가 일하는 폐수처리시설은 생선을 이용하여 만든 가공식품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묵을 먹거나 통조림을 먹을 것이다. 대국민을 위한 노동자는 아니나, 대국민을 위해 필요한 노동자였다. 그런 사람들이 년 간 수천명씩 생명을 잃고, 그들의 가족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간다. 그 중에서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으며, 특히 그들의 어머니들이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인터넷 페미니즘을 보면 주패턴은 기혼여성이 배제되고 있으며, 기혼여성의 부조리를 말할 때는 어린아이를 달고 다니는 산모들에 대해서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하면 나 자신도 한심하게 여기지만, 아이를 낳지 않을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을 두고 입장대변하면서, 한편으로 남자와 같이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여성을 두고 명예자지를 운운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누구의 말처럼 임산부와 산모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상은 맞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만든 원인이 뭔지에 대한 고찰과 담론 없이 민폐사례만 열거만 하는 짓에서 에너지 낭비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전에 우리 회사 직원의 아내분이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직원이 집에서 그의 아내를 돌보고 있었다.

 

휴가를 내어 집에 머무는데, 저녁 7시 정도 전화 와서 업무를 처리해달란 말을 하고, 8시 정도 사무실에 와서 업무를 하고 간 일이 있었다. 육아휴가를 남성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 노동시간을 조금 더 축소하여 집안일을 분담해주는 남편이 되려면 결국 노동문제와 경제문제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정작 중요한 해결방안을 이러하나, 이데올로기의 정점에서 주장하는 일부 엘리트들은 자신의 입지만 굳히기 위해 서로를 혐오하게 만들고 있다. 이 세상에서 여성만 약자가 아니다. 이 세상의 강자는 남성만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열악하고 어려운 여성과 남성이 약자인 것이다.

 

페미니즘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가난한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고 싶다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은 무엇인가? 가난으로 여성이 그 남성과 결혼하지 못하고, 결혼해도 아이를 가지지 못한 채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면 그 여성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아니라면 사회적 기반시설을 유지하지 못한 채 자신은 계속 문명과 벽을 쌓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것은 아니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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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9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29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0-29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회문제에 접근할 때 ‘부당하게 억압 받는 이‘들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문제‘가 아닌 ‘계층‘문제로 접근했을 때, 문제 해결보다 계층간 대립으로 잘못 옮겨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10-30 08:46   좋아요 3 | URL
예전에 세월호 희생자 중에 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았죠.
보통 남자고등학생들이 활달하여 선실 내부보다 외부에 있어서 생존자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구조자 중 남학생이 많고, 희생자가 여학생이 더 많으니 여성혐오로
밀어붙이는 그들의 모습에 그저 할말을 잃었고, 그런 비정상적 발언을 해대는
부류에게 마치 페미니즘 전사라고 칭송하는 진보 학자 내지 언론들의 무뇌아적인
발상에 기겁했습니다. 과연 세월호 여자고등학생 희생자 어머니가 저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싶더군요....참....

HG.Chris 2018-04-29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살아오긴 했는데, 최근의 행태들을 보면 제가 알고있던, 그리고 추구하던 페미니즘과는 너무 달라서, 어디서 감히 페미니즘의 페 자도 못 꺼내겠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05-09 08:49   좋아요 1 | URL
요새 홍익대 미대 누드 사건을 보면서 본질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메갈리아 워마드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알라딘 여성유저들도 그런 환상에서 벗어나면 좋으려만 참 아깝씁니다.
오늘 기사를 보니 한겨례에서 워마드와 페미니즘은 다르다는 식으로 꼬리자르기를 하던데, 과거 그들이 패륜질을 일삼은 부류를 쉴드친 점에서 반성의식이 없는 그 어떤 사상은 인류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ㅇㅇ 2018-05-15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9-03-16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것에 있어 참고가 많이 될 것 같네요 !

사실 페미니즘에 관련된 유명한 책들 중에서는 ‘메갈리아‘에 관한 내용은 별로 없고 가부장적인 남성문화 혹은 성고정관념, 대상화와 인식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읽으면서 심히 공감하고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메갈리아‘의 방식에 대해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상을 알고나니 조금은 당황스럽더군요. 아무렴 저는 그렇기 때문에라도 군대에서부터 이어진 남성들의 소위 ‘강간문화‘를 근절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고, 양 측의 주된 타겟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치는 암울하지만 논외로 치부하고 사회적으로라도 방향성을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인권을 공부하면서 ‘정치적 올바름‘의 개념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졌는데 혹시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책이 있으시다면 추천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만화애니비평 2019-03-17 18:52   좋아요 1 | URL
사실 강간문화의 문제는 남성만의 세계로만 치부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시스템에 있다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문화적 여건도 있다고 여깁니다. 외국 드라마와 혹은 연예계 방송을 보면 여성 방송인들이 야한 옷을 입고 서로 섹시 섹시 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가끔 저도 의아하게 느끼는 것은 성에 대한 대상화인가 아니면 개방화인가 어느 게 옳은가? 라는 고민입니다. 제가 2000년 초반 여성학 수업을 받을 때 여성교수님이 성적인 대화가 개방되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야하지만 상대방에게 극히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 말하는 것도 성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여성학 관련 도서에서 주로 메릴린 옐롬 교수 책을 보면서 지금의 현실과 다른 괴리성을 느낍니다.

어째든 강간문화가 문제되는 건 그 사회의 경직성이라 봅니다. 군대 특히 육군 중심편제 한국은 원래 일본 관동군 만주군의 장교들이 이끌고, 육군사관학교 같은 경우 친일파 후예와 독재자들의 세력이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강간문화의 문제점은 바로 군대에서 전체주의적 발상에서 약자인 하급자도 강자의 힘을 부여하려면 약자를 누군가 부여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가장 자행하는 행위는 여성에 대한 성폭행입니다. 남성들은 대부분 죽지만, 여자는 그 자리에서 성폭행당하죠. 이건 심리적 압박행위이기도 합니다. 518 당시에도 여성에 대해 성폭행하고, 민주화 투사 중 여성들은 성고문을 자행했죠. 강간문화가 하나로 밀집되는 게 문제가 있고, 남성이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을 부정하는 것 역시 문제지만, 그런다고 그런 성향을 강압적 드러내도 되는 문화는 역사적으로 이어온 과거의 잔재가 심하게 깔려있다고 봅니다.

혹은 그 교수님이 오히려 성을 개방되어야 하는데, 서로 감추니 억압된 성적 학대가 사회적 도덕적으로 해리된 게 아니냐는 말도 하네요.
 


(1) 영화 <남한산성>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봐서는 안 된다.

 

문학가 김훈의 원작소설 <남한산성>이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극장에서 개봉했다. 사극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2007년 초반에 하던 <대립군>과 비교하여 흥행한 편이다. <대립군><남한산성>의 흥행도와 작품의 완성도에서 후자가 우월했다. 연기자들을 봐도 후자 쪽이 더 높은 수준을 가졌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도 실력이 좋은 배우가 나온 것은 분명하나, 후자 쪽에 더 연기력과 수준이 높은 배우들을 중역으로 내세운 점이다. 영화의 메시지를 본다면 <대립군>은 임진왜란 당시 영웅을 이순신과 같은 장수가 아니라 이름도 없이 가난을 이기지 못해 군역을 대신 복무하는 민중이었다.

 

영웅주의를 소재로 한 서사에서 민중주의 서사로 넘어가는 점에서 영화의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무리한 소재나 상황연출이 한계로 나타났다. 그러나 2작품을 보면 확실히 생각해야 한다. 광해군이 분조를 지휘하던 왕세자로 활약한 시기는 임진왜란이고, 인조가 청국의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올릴 때는 병자호란이다. 당시 동북아시아의 군사, 정치, 경제, 문화적인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진 시기이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생각하나, 당시 조정에서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의병들, 그리고 분조를 맡으면 목숨을 내건 광해군보다 명나라 군대를 더 우대했다.

 

사당은 죽은 이를 기리는 주술적 공간이다. 명나라가 왜군을 치는데 도와준 이유로 그들의 장수를 기리는 생사당을 만든 지경이니 얼마나 한심한가? 선조는 알고 있었다. 도성을 떠난 자신보다 왜란의 위기를 모면하고 수습한 이순신과 광해군의 활약을 말이다. 선조는 백성에게 원망은 대상이나, 이순신과 광해군은 백성에게 큰 덕망을 보였다. 이게 화근이었다. 영화 <남한산성>을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보는 게 참 위험한 이유는 바로 여기부터이다.

 

정묘호란 이후 병자호란이 발생된 시기는 인조가 군림할 때이고, 인조가 군림 전에 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켰다. 광해군의 정책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관계성을 긴밀하게 유지하여 전쟁에 최대한 휘말리지 않는 것이다. 인조반정 명분이 폐모살제, 국정운영의 부패가 있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명나라의 사대정신이다. 광해군의 중요 집권세력은 북인이고, 그 중에서 대북이었다. 북인이 가장 광해군을 따르는 이유는 임진왜란의 활약이다. 북인의 이이첨은 임진왜란 때 임금의 어진(초상)을 수습한 덕분에 출세했으나, 북인의 학문적 정통성을 받은 정인홍은 경상도에서 곽재우와 함께 활약한 의병장이다.

 

남명 조식 아래 실천적 도학을 추구한 그들은 다른 사림세력과 달리 직접적으로 왜란을 억누르는데 활약했다. 북인과 남인이 분당 전, 동인이던 그들에게 조식의 영향은 막대했으며, 조식의 수제자 정인홍이 광해군 집권 시기 중요한 인물이었다. 선조가 북인 이산해를 이용하여 남인의 영수 류성룡을 탄핵시키고(이날 이순신 장군이 서거하심), 다시 북인과 서인이 조정을 움직이고 있으나, 북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광해군이 북인을 손잡은 것은 결국 명나라를 절대적 지존으로 보는 퇴행적 성리학자들에게 큰 반발을 주었다.

 

서인이 반정을 일으킨 이유는 광해군의 정책이 아니다. 그가 명나라를 섬기지 않은 이유고, 명나라를 섬기지 않은 이유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거부하는 것이다. 명나라가 왜란을 종식하는데 도움을 준 것도 맞으나, 한편으로 방해도 많이 했다. 이순신과 권율의 군사작전수행 과정에서 트러블이나, 민가의 약탈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서인이 재조지은을 노려야 하는 이유는 지배이데올로기의 명확성이다. 만일 임진왜란을 조선민중의 힘으로 했다면, 자신들의 통치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해군은 명나라와 관계에서 트러블이 많았고, 명나라가 청나라를 공격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은 부분 역시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청나라는 조선이 하던 외교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청나라는 이미 첩자를 풀어 조선의 현실부터 시작하여 내부 정치적 상황까지 모조리 알았다. 청나라가 조선을 집어삼키는 일은 이미 정해진 일이다. 문제는 우리는 그 침략에 어떻게 대응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전쟁의 깊은 상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이 심각했다.

 

<남한산성>을 두고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인조를 중심으로 의견이 2가지로 나눈 최명길과 김상현이 같은 서인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인조방정을 통해 조정에 큰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고, 모두 서인이다. 서인이 분당한 것은 송시열과 윤증의 갈등에서 노론과 소론으로 구분된다. 노론과 소론은 같은 서인의 뿌리지만, 숙종부터 시작하여 영조까지 피로 피를 씻는 붕당정치의 모순을 보여준다. 노론이 보수고, 소론이 진보라면 그럴 수 있다. 사도세자를 옹호한 소론이 시파계열이고, 사도세자를 부정한 노론이 벽파계열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조는 오로지 서인만 존재했고, 고관대신이 인조를 두고 서인이 만든 임금이라 당당히 말한다. 보수라고 해도 국제정세가 어두운 법이 없고, 진보라고 하여 국제정세에 모두 밝은 것은 아니다. 정치적 권력에서 추구하는 방향성이 차이가 있고, 가치관이 다르다. 단지 <남한산성>2가지의 조류는 국제정세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현실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탄핵되어 파면될 때, 진보정당만 탄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보수에서도 탄핵을 추구했다. <남한산성>을 두고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은 어리석다. 만일 우리나라가 전쟁 나서 불리한 상황이 온다면 끝까지 항쟁할 것인지 아니면 더 나은 좋은 조건으로 협의할 것인지에 대한 차이점이다.

 

(2) <남한산성>, 국제 정세를 모르는 이들의 권력지향

<남한산성>은 소설이고, 다소의 실재 사료기록과 차이점이 있지만, 병자호란을 조금 더 자세히 알려면 한명기 교수의 서적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병자호란> 등을 말이다. 청나라가 조선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던 계기는 명나라의 장수들 덕분이다. 명나라는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빚었고, 무능한 임금에 부패한 신료들이 뇌물로서 정치를 움직이고 있었다. 명나라의 영웅에게 모반죄로 무고하여 죽게 만들고, 전방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장수를 없애려 했다. 자국의 주군에게 충성할 이유를 잃은 명나라 명장들은 청나라에 투항하여 이신(貳臣)으로 활동하여 명나라의 군사를 격파하는데 도움을 주고, 게다가 조선의 군사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청나라는 주로 기마부대를 운용하기에 수군은 매우 약했다. 조선은 수군이 강한 편이기에 인조와 조정대신을 그것만 믿다가 봉변을 당한다. 명나라 장수 중에 수군을 다룰 줄 아는 자가 있기에 강화도를 점령하고, 많은 문제를 이겨낼 수 있었다. 청나라는 모든 정보를 모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능력을 완벽히 수행할 수 있는 인재까지 포섭했다. 많은 조선인들이 청나라 군세에 붙은 점도 그렇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의병장이 사대부들이 차지했으나, 병자호란 시기 의병활동이 너무 잠잠했다. 명나라에 대한 무조건 충성심이 권력을 정당화의 수단이 되었지만, 권력의 몰락도 되었다.

 

하지만 웃긴 점은 인조가 삼전도에서 굴욕을 보이게 만든 것은 서인인데, 나중에 그 책임을 인조에게 미루고, 인조가 죽고 효종이 등극하자 효종조차 무시했다. 인조의 수치와 봉림대군 효종이 청국에 끌려간 이유가 서인의 무능함인데, 스스로의 문제를 왕에게 전가한 것이다. 효종이 서인도 한당보단 산당에 눈을 돌린 이유는 명나라 붕괴이후 조선이란 국가가 중화주의를 계승한 유일한 조정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청나라를 욕하던 서인이나, 추후 서인들이 가장 청나라의 권력에 충성한다. 하지만 청나라로 유입되는 신문물을 제대로 찾지 않았다.

 

<남한산성>을 보면 최명길은 외로운 전쟁을 한다. 그의 목을 치라는 유생의 상소가 매일 어전에 올라오고, 내부 고관대신도 최명길을 파직하라고 한다. 그러나 인조는 최명길을 버리지 못한다. 최명길만 오직 청나라와 소통할 수 있는 외교라인이기 때문이다. 최명길이 청나라 장수를 만나 외교문제를 논하고 오자, 오랑캐와 내통했다고 난리치는 인간을 보면서 정치적인 본질보다 권력의 정당성을 찾는 행위만 보여준다. 이런 한심한 행동에 누가 죽어 나가는가?

 

(3) <남한산성>, 백성이 녹아 없어지네.

조선은 왕조시대지만, 사대부들의 도움 없이 절대로 운영될 수 없다. 왕 혼자서 정책을 내리지 못하며, 정책을 수행할 인재도 필요하다. 신권이 지나치게 강하면 왕은 정사를 주도하는 자가 아니라 이끌려가는 보조자에게 불과하다. 인조가 무능하지만, 서인의 무능함은 백성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영화에서 김상현은 우연히 알게 된 남한산성의 대장장이의 청을 국조에 언급한다. 급하게 조달된 군사들이 추위에 떨고 있으니, 그들을 위한 볏짚을 바닥에 깔고 몸에 걸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의 먹이가 부족하자, 농사보병의 볏짚을 빼앗아 말 먹이로 주고, 그것도 모자라 초가집을 헐어 그 짚을 말 먹이로 준다. 땔감을 위해 짚이 없는 집의 나무를 헐어 연료로 사용한다. 무능함 정치가가 군림하면 그 문제는 그대로 피지배계층인 백성에게 돌아간다. 영화도입부 김상현은 인조가 계신 남한산성으로 향한다. 이때 산성 아래 강을 건너는데 뱃사공의 도움을 받는다. 뱃사공은 임금을 피신시킬 때 자신이 길잡이를 했는데, 김상현을 도와주면서 당시 아쉬움을 토로했다. 원래 이 일을 먹고 사는 자이니 임금을 피신할 때 좁쌀 정도 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러나 청나라 군세가 오면 길을 건너게 해주어 식량 정도 얻고 싶다고 한다.

 

김상현은 노인을 죽이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군사적 전략을 고려하여 노인을 죽인다. 임금이 도망치고, 백성이 굶주리는 이유는 조정의 문제지만, 그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보단 단지 눈 앞의 화근을 없애고 싶은 심정에 칼을 휘두른다. 그 이후 산성으로 뱃사공의 손녀 나루가 찾아오고, 그 아이를 인조에게 알현 후 김상현이 거두어 키우게 한다. 김상현은 어린 소녀를 보고 갈등을 느낀다. 나루를 보호하고 조선의 백성으로 살게 해줘야 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나, 오히려 그 나루의 명줄인 뱃사공을 죽였다. 김상현은 처음에 최명길과 반대의 각을 세우나, 이후 다른 관점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뱃사공 손녀 나루가 보여주는 희망의 봄을 들었기 때문이다. 뱃사공은 나루를 위해 강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음식을 해준다. 그 생선 맛이 좋아 눈이 녹고 개나리가 피는 봄날이 오면 나루는 김상현에게 그 물고기를 잡아 대접해주고 싶다고 한다. 김상현은 실제 정사에서 청국으로 끌려간 후 병으로 죽지만, 영화에서 자살을 한다. 그의 자살은 무엇인가? 최명길이나 김상현은 인조반정이 신세계를 열어 나가지만, 결국 자신들이 늙은 시대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리뷰 서두에 위치한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남한산성>을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21세기에 와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전쟁을 수행하거나 계획할 경우 그 정권을 바로 망한다. 국가가 당장 망하는 게 되었는데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20세 초 조선이 멸망할 때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이 진보와 보수가 나누어져 있었던가? 자유주의 내지 사회주의자들은 진보라면, 성리학자들은 보수주의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다.

 

(4) <남한산성>, 임금은 어찌 되던지 백성은 살아간다.

영화 <남한산성>은 비참한 조선의 운명을 보여준다. 인조가 청나라 칸에게 패배를 시인한 후 청국에 끌려간 조선인은 50만 명이다. 이중 일부는 다시 돌아오지만, 여성들은 청나라 놈에게 몸을 팔았다는 누명을 받아 환향녀가 되어 비극의 삶을 마감하고, 청국의 문화를 영향을 받아 간첩으로 취급당하는 남자도 많았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가서 성실히 몸과 마음을 다스려 백성을 두둔하고 조선에 돌아와 새로운 문물을 전파하려 했지만 인조의 질투심에 온 가족이 몰살한다. 인조는 수치를 겪고, 조선은 전쟁의 피해로 큰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을 보면 뱃사공 손녀 나루는 대장장이 집에서 같이 살면서 봄을 맞이한다. 대장장이는 정묘호란 시기 가족을 모두 잃었고, 나루는 할아버지 손에서 외롭게 컸다. 김상현은 나루를 대장장이 날쇠에게 부탁한다. 가족을 모두 잃은 날쇠와 나루, 그들은 부녀가 아니나 부녀가 되어 남한산성에서 다시 봄을 맞이한다. 나루는 동네친구와 화창한 봄을 맞이하며 놀러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남한산성 내 어전에서 인조와 고관대신의 고민과 방황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봄을 맞이한다. 최명길이 말한 그 수치는 결국 백성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고, 패배자의 굴욕을 받아들이는 것은 만 백성을 지켜야 하는 임금의 책임인 것이다. 처음에 작은 것을 내주기 싫다가 점차 큰 위협으로 오자, 비로소 조선은 청나라에 굴복한다. 남한산성 내 피신한 자들의 기록을 보면 사실 비참하다. 먹을 것도 없고 추위는 여전히 온 몸을 얼게 만든다. 고립되어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강화도에서 들려온 포로가 된 왕세자 가족의 기별은 인조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지경이 된다.

 

국가에서 살아가는 것은 백성 혹은 국민이나, 어떻게 국가적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가의 일이다. 정치가가 어떤 상황에 문제가 발생하여 자신의 입장이 난처할 때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자신에게 더 큰 장애물이 다가오고, 국민들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남한산성>에서 서인들은 무능했지만, 그들의 눈에서 광해군 역시 무능한 임금이고, 광해군 시절 사대부가 아닌 천민들도 벼슬자리를 준 것에 대해 매우 거슬리게 생각한다. 어느 누구는 돈을 주고 관리직을 받았다고 하나, 그런 점은 명종시대가 더 심각했다.

 

백성들 입장에서 왕이 누가 되는지가 관건이 아니라 전쟁이 나지 않고 세금을 마구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좋은 것이다. 때로는 자신들의 말이 위로 가서 언로가 막히지 않은 것이 중요했다. <남한산성>에서 보면 백성의 언로가 철저히 막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솔직히 인조와 조정대신, 유생이 없어도 백성들은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의 사소한 자존심이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가장 한심한 장면은 인조반정을 주도한 김류가 청나라 군대를 습격하라고 지시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불찰을 부하에게 떠맡기는 모습이다. 실제 정사에서 김류는 청나라 군대가 매복 유인을 위한 보급물자를 군사를 풀어 가져오게 하다가 모두 몰살시켰다고 한다.

 

병자호란은 결국 명나라의 재조지은에 대한 충성심에서 자초한 사건이고, 청국과 전쟁을 피하기 위해 국제정세를 판단한 광해군을 폐위한 것은 김류이다. 김류를 비롯한 많은 조정대신은 백성의 삶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전쟁에 내몰린 것은 백성으로 이루어진 병사이지 자신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조 이후 효종과 헌종, 숙종과 영조로 넘어가면서 정치권력이 누가 되던 백성은 상관이 없었다. 단지 그 권력자들이 백성의 삶을 좀 먹는 자가 아니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권력자가 없으며, 그런 짓을 저지하려던 정치가들은 모조리 숙청된다.

 

영화 <남한산성>을 두고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풀이하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사실 역사를 두고 비슷한 사례로 들어 이야기하는 것은 자유이다. 하지만 그것을 두고 어느 하나에 매몰된 이유는 없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작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역사는 2번 반복된다. 1번은 비극으로 1번은 소극으로말이다. <남한산성> 영화는 그 영화 자체로 본다면 비극이나, 이미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의 입장에서 소극에 불과하다. 정치적 상황과 배경, 인물만 다를 뿐 반복되는 역사는 늘 우리 앞에 등장했다.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을 논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두고 <남한산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한 착오일 것이다. 최명길과 김상현의 대사에서 위에서 말한 것처럼 김상현은 과거에 불과한 인물이고, 최명길 역시 그런 과거와 함께 퇴장해야 할 존재이다. 최명길이 진보이고, 김상현이 보수라고 프레임을 나누고, 보수와 진보의 눈으로 모든 것을 정하는 순간, 그 담론조차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물론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을 넘어 진보적으로 갈 수 있지만, 그 진보적인 성과란 나루와 날쇠의 삶이다. 삶이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를 말할 수 있겠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서 과연 그것이 올바른 답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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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7-10-23 0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회되면 정도전,서경덕,조식,이황,이이,정약용 같은 조선 유학자들에 대해서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듯 하네요^^

만화애니비평 2017-10-23 09:22   좋아요 0 | URL
아 너무 할 게 많습니다!!
 
미수 허목 - 청빈한 대쪽 선비
허찬무 지음 / 진한엠앤비(진한M&B) / 201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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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이용하여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기 전에 제대로 시청하지 못한 드라마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 드라마는 <불멸의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을 다룬 작품인지라 우리 민족이 겪은 최대 위기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의 고통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이순신 장군이라 강직하고 지혜가 넘치는 명장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 이순신에 대한 위인전을 읽으면 가난한 사대부집안에서 태어나 무관시험 도중 말에서 떨어져 낙방하여, 이후 다시 합격 후 수군 장수가 되어 왜군을 물리치고, 노량해전을 마무리하여 서거한 것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막상 이순신 장군의 일기를 재구축한 <불멸의 이순신>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은 달라진다. 20세기 이순신과 21세기 이순신은 다르다. 2세기 모두 이순신은 성웅이고 명장이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인 것은 분명하다. 전자는 영웅주의에 대한 모습만 강조했다면, 후자는 고뇌하는 인간, 그리고 성찰하는 인간, 모두와 뜻을 나누는 인간 이순신을 다루었다. 이순신 장군은 신은 아니나, 우리 민족이 망하는 그날까지 바다의 신이 되어 줄 것이다.

 

이순신의 죽음을 보면서, 그의 죽음은 교전 중에 잃은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때를 맞추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순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것은 왜군의 조총이나, 이순신이 심장을 멈추고자 결심하게 만든 것은 조정의 권력다툼이었다. 이순신은 이미 조선의 영웅이었고, 당시 군왕인 선조보다 더 높은 존재였다. 선조는 그가 자신보다 우월하고 뛰어난 영웅임을 알고 있었고, 그가 조선에서 가장 필요한 인재라는 사실도 알았다. 또한 선조는 이순신이 자신에게 가장 필요 없고, 지금 당장 제거해야할 역적으로 삼았다.

 

이순신의 친구 서애 유성룡은 말한다. 진실로 말했는지 모르겠으나, <징비록>을 저술하면서 끊임없이 조선의 백성을 걱정한 그의 태도를 보자면 충분하다. 드라마에서 선조에게 이르길 나는 군왕을 섬기지 않으며, 내가 섬기는 것은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는 군왕을 섬기고 싶다고 말한다. 드라마에서 가장 미화(美化)될 수 있는 인물은 광해군이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선조 내지 조정대신과 같이 회의석상에서 그가 전하는 말이 실록 내지 사료에서 충분히 기재될 수 있으며, 심지어 <난중일기>에도 이순신 장군이 광해군을 걱정했다고 하니 말이다. 광해군은 민심은 천심이고, 백성을 무시하는 자신이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을 질투하는 아버지 선조 앞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수군지휘관 선발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하는 장면도 그렇다. 조선시대 반상의 차이로 과거는 사대부만 할 수 있으나, 일개 군졸이 지휘관으로 삼으려 하는 이순신의 정책은 선조나 조정대신에게 큰 반발심을 일으켰다. 모두 반대할 때 광해군은 세종대왕 때 장영실을 당상관을 임명할 사례를 말하며, 이순신의 정책을 지지한다. 반상의 양천에 얽매이지 않고, 백성 그 자체로 사랑하자는 것이다. 광해군이 얼마나 백성을 사랑했는지 몰라도, 적어도 선조나 인조 이상으로 사랑했을 것이다.

 

태조와 태종을 제외한 나머지 군왕과 달리 직접 전쟁을 수행했으며, 전쟁에서 함께 뜻을 나눈 자와 관련하여 태조와 태종은 장병과 소통했다면, 광해군은 백성과 소통했다. 광해군이 모든 것을 잘 한 것은 아니나, 그가 백성을 사랑한 임금이란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권력과 백성의 관계는 다르다. 권력을 사랑하는 자는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 백성을 사랑하는 자는 언제나 권력으로부터 소외받기 때문이다. 힘을 가져야 백성을 사랑할 수 있다고 여긴 선조도 결국 백성보단 권력을 선택했다.

 

이순신의 죽음과 유성룡의 파직, 그리고 수많은 의병장의 몰락은 그 증거이다. 조선시대 역사에서 권력의 패자들은 정말 많다. 말도 안 되게 파직, 장형, 유배, 사사, 참수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피의 역사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조선이 대한제국을 걸쳐 대한민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이고, 왕조시대는 아니나, 대한민국이란 이름은 대한제국의 한 글자의 차이다. 대한의 나라는 주인이 왕에서 국민이 되었을 뿐이다. 조선이란 역사와 문화가 대한민국의 모습을 갖추게 한 원동력이다.

 

조선의 역사에서 좋은 일도 있지만, 나쁜 일은 정말 많았다. 권력의 패자는 비참하게 운명을 맞이했다. 권력의 승자와 후예들은 일제강점기 시대를 넘어 현대사회에 와서도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까지나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없다. 돈으로 사람을 살 수 있어도, 민심 그 자체를 움직이는 것은 무리이다. 역사의 기록에서 권력의 패자가 이제는 영원한 승자가 되었다. 이번에 읽은 서적이면서 그 인물인 <미수 허목> 역시 그렇다. 가난한 선비고, 늙은 나이에 벼슬에 올랐지만, 조선 역사에서 위대한 정승으로 이름을 남겼다.

 

물론 그는 숙종 시기 경신환국으로 벼슬을 잃었다. 자신과 같은 당인 남인은 사사 내지 유배, 장형을 당해 죽거나 몸을 상했다. 정조에 이르러, 정조에게 깊은 존경심을 받은 인물이 되었고, 정약용 선생에게도 큰 감명을 주기도 했다. 가난하지만 대쪽 같은 선비, 조선은 유학 성리학을 토대로 국가가 돌아가는 세상이다. 성리학으로 시작한 조선이 성리학으로 망한 이유는 성리학의 기본적 학문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철학이 부족했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리학이 보수보다 더 보수적인 수구형태로 될 수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진보적 성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를 말하고자 하는 점에서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기본 진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책에 하늘이 보는 것은 우리 백성으로부터 하며, 하늘이 듣는 것도 우리 백성으로부터 한다.” 지금은 국민이나 그 당시에는 백성이다. 백성은 군왕의 하늘이어야 존재이고, 민심을 뒤로 하는 군왕은 폭군(暴君) 내지 혼군(昏君) 같은 어리석은 임금이다. 백성이 삶에 힘들어 곤충을 말하는데, 나라님에 대한 원망이 없을 수 없다. 만일 그 원망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으면 성군이 되나, 그 말을 듣고 증오하여 칼을 휘두르면 수 천 년의 역사가 그를 손가락질 한다.

 

서양의 근대 민주주의를 성립하게 만든 장 자크 루소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미수가 말하는 국가관은 다스려진 나라는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쇠퇴한 나라는 대부를 부유하게 하고, 망하는 나라는 정부를 부유하게 한다.” 루소 역시 민주정, 과두정, 군주정에 대한 정치제도를 <사회계약론>을 통해 설명했으며, 참주정과 과두정에 대한 문제를 잘 설명했다. 폭군은 참주가 아니나 참주는 언제나 폭군임을 말하듯이 말이다. 왕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신하들끼리 당파싸움을 통해 서로 피를 물들게 하고, 자신의 권력의지와 신하들의 권력의지가 일치하면 동조하기도 했다.

 

고관대신들은 사대부들이다. 미수 허목은 사대부라는 선비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 이유는 천하에서 선비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고 재앙을 없애주며 다툼을 풀어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보상을 받는다면 이것은 장사꾼의 행위이다.” 하지만 자칭 선비라는 사대부들은 걱정거리와 다툼을 풀어주어 보상받는다면 다행이다. 아무 것도 하지도 않고 보상을 바라니 참으로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가 없다. 이미 황구첨정과 백골징포는 시작되고 있었다. 배냇물도 마르지 않은 아이가 군적에 오르고, 시아버지 죽은지가 몇 해가 지나도 군포를 내고 있다.

 

세금을 내지 못해 이웃에 세금을 내게 하거나 그들의 친척에게 물리도록 하여, 어떤 마을은 아예 사람조차 살지 않는다. 모두 가렴주구라는 관리들의 횡포에 참지 못해 고향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진다. 병으로 죽고, 굶어 죽고, 매에 맞아 죽는 이 원통한 비극에서 선비들이 해야 할 임무는 그들을 마을에 다시 모여들게 하여 생업에 힘쓰도록 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을 겁박하니 참으로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허목이 가난하게 살고, 직접 몸소 근검하여 절약하는 이유는 권력자가 하나를 더 가지면 누군가는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고, 가난함을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버림받은 백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비들이 부에 집착하면 농민의 농지를 빼앗고, 백성의 딸과 아내를 빼앗아 간다. 백성은 글을 모르며 고을사또가 있는 관아의 담장은 높고 문 앞의 포졸은 성난 이리와 같다. 하소연하지 못하고 그저 신음하며 세상을 원망하니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권력을 잡고 이권을 챙기는 자들과 대적해야 한다. 허목이 반대당인 노론에게 상당히 좋지 못한 자로 낙인이 찍힌 이유는 바로 그러하다. 권력의 패자로 될 수밖에 없었지만, 죽어서 칭송받는 이유는 바로 그런 연유이다.

 

허목은 세종 때 황희, 선조와 광해군 시절의 오리 이원익과 더불어 임금에게 직접 집을 하사받은 정승이다. 게다가 허목은 오리 이원익의 손자사위였다. 이원익은 이 글의 초반부 이순신 장군을 위해 목숨을 걸고 선조에게 충언을 드린 인물이다. 백성을 사랑하고, 언제나 검소하며, 백성과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과 벼슬자리가 박탈되어도 소신을 전하는 사람이다. 이원익은 가난하지만 영민한 허목을 아껴 제자를 삼고, 그에게 손녀를 주었다.

 

그들은 청백리로 인정받고자 선비의 정신을 보여준 게 아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비로 살아온 것이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로 오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양반이 되었다. 그 성씨가 원래 반가의 집안도 있지만, 너나 나나 연애는 서로 간 자유이다. 여자가 반가의 후손이든, 남자가 반가의 후손이든 모두 반가의 후손이다. 하지만 선비의 정신을 그대로 가진 자는 얼마 없다. 고리타분한 시대착오적 발상만 하는 인물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제를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 하는 인물이 선비이다.

 

허목은 예라는 것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겼다. 효종과 헌종 시대에 예송(禮訟) 논쟁은 조선 성리학의 큰 당쟁 중 하나였다. 예송에서 상복의 착용기간이 얼마나 중요 하겠는가 라고 말하지만, 군왕을 사대부와 동일하게 보는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보는지에 따라 왕권과 신권의 권력관계가 성립된다. 허목은 왕권을 추구했다. 왕의 권력을 높이고자 할 때 개혁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서로 간의 당파적 이익도 있으나, 당론의 채택되지 않으면 정책의 실현이 어렵다. 남인의 반대세력인 노론 역시 대동법을 두고 산당(山黨)과 한당(漢黨)으로 나누어 대립했다.

 

대동법이 도입된 이유는 정치 권력가와 상인들의 농간을 막기 위해서이다. 백성에게 요구되는 진상품을 상인에게 억지로 사게금 만들고, 그 상품의 가격을 너무 높이게 되면, 백성에게 따르는 생활고는 당연히 힘들어진다. 그래서 일정한 세금납부 방법을 정하여 세금을 부과한다면 백성에겐 그 고통이 사라질 것이다. 거기에 두고 노론 내부에도 서로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같은 당 내에서 당론이 대립되니, 다른 당끼리의 당론은 더 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론을 두고 조정과 군왕, 조선의 종조를 논하는 자들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며, 당론을 두고 백성의 기근과 고충을 걱정하면 충신이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는 언제나 권력을 원한다. 조선 백성이 당해온 그 억압의 시간이 사라질 수 없는 것은 결국 시스템의 문제였던 것이다. 미수 허목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적 대안이 필요했고, 남인의 영수로 활약한 것이다. 물론 제일 중요한 시작은 인사이고, 인사의 시작은 과거이다. 과거에서 이루어진 부정부패는 광해군 시절보다 심하다고 한다. 물론 광해군 이전인 명종시대의 부정 과거는 더욱 심각했다. 조선은 척신과 권신들의 농간을 피하지 못해 망했다.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자신의 기반이 되는 자들을 뽑아 올려준다.

 

그들의 능력과 성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권력에 얼마나 충성할 수 있는지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 이런 자들이 올라오니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에서 사라질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이 허물이 없을 수만은 없을 것이나, 적어도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현실이 가진 문제의 본질을 안다면 그 역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나. 그조차 반성하지 못하고 부와 권력을 탐닉하고 스스로 붕괴하는 권력가의 마지막을 종종 본다. 미수 허목은 그런 본질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살아왔다. 허목은 인자한 늙은이의 눈썹처럼 미수(眉叟)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 미수(米壽)의 인생으로 살아갔다. 그의 길고 긴 하얀 눈썹이 그려진 초상화는 국가의 보물이 되어 우리 삶에 새로운 감동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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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0-11 0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라톤의 「국가」에서 말한 철인정치가 잘 구현된 시대가 조선시대였다고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주리론‘의 한계를 넘지못한 철학자들이 집권한 시대에, 서양에서는 과학문명이 융기했다는 점이 한국 근대사의 비극이라 생각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10-11 09:04   좋아요 1 | URL
국가라는 책을 보면 단순히 군주제보단 정치력과 무력을 동시에 가진 철인군주이나, 조선의 왕은 철인군주로 될 만한 임금은 얼마 없었지요. 정말 권력을 위해서라면 피를 피로 씻는 당파싸움까지 이용하니 철인에서 철이 哲이 아니라 鐵이라 생각 듭니다. 성리학에서 공자의 기본철칙을 생각했다면 저래 되지 않았겠죠
 
광해군 - 하
이기담 지음 / 창작시대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광해군을 소재로 하던 소설에서 <대왕 광해군>은 광해군 이혼보다 어느 서얼이던 동명이인 이혼을 중심으로 내려간다. 물론 한자로 이름은 다르더라도 이혼이라는 맥락일치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목표로 하는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보여준다. 이와 달리 이번에 읽은 그냥 <광해군>이란 소설은 주인공 자체는 광해군으로 둔다. 우리가 아는 광해군이란 조선임금 중에서 연산군과 더불어 종조를 붙이지 못한 사람이다. 우리가 대부분 아는 것은 광해군이 명나라가 지고 청나라가 오를 때, 중립외교를 했다는 점, 그리고 영창대군과 임해군을 죽인 것, 인목대비를 폐서인으로 하여 불효를 했다는 점이다.

 

하늘의 도를 내세워 광해군을 비판하면 어느 모순이 생긴다. 태종 이방은 형제와 사촌을 죽이고, 세조는 단종을 죽였으며, 인조는 소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다. 그뿐인가?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 안에서 죽도록 만든다. 그냥 편하게 독약을 내리는 사사(賜死)가 좋다. 반란이 있거나 예상되는 인물 그리고 정치적 숙적들은 항상 죽음을 당한다. 왕가의 친척들은 든든한 아군이기도 하나 절실한 적이기도 하다. 모든 일이란 전후맥락이 존재하고, 원인에 대한 결과에서 그 원인에 대한 근원이 있다.

 

광해군을 본다면 정말 난해한 인물이다. 혼군(昏君)이라 하나, 조선시대에서 내려온 유산 중 그가 만든 업적은 탁월하다. 궁을 복위하고, 전쟁으로 사라진 도서를 재편찬하고, 지금 한국의 의술 한의학을 정립한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편찬하게 만든 인물이다. 동의보감의 가치는 현대의학에서 그대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외의 서적도 역시 한국의 중요한 유산이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된 서적을 복원하고, 실록도 1곳에 보관한 것을 4곳으로 늘려 보관하게 한 것도 광해군의 업적이다. 실록을 현대 한국에서 국가의 보물로 삼았고,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다. 400년 전 그가 하던 일들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었는가?

 

E.H Carr<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에 있던 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재 사회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있다고 한다. 광해군 시대는 북인과 서인이 공존하고, 서인이 열세하자 인조반정으로 북인이 몰락한다. 서인이 주도로 작성한 광해군일기나 서인에서 노론이 중심이 되던 조선의 정치사에서 광해군의 존재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소설 <광해군>에서 어느 정도 실화이고 어느 정도 가정인지 모르나, 적어도 실록의 기록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 광해군의 말이나 강홍립의 의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적어도 강홍립이 없었다면 병자호란 이전 정묘호란에서 큰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전쟁영웅이 모두 제거되는데, 그 대부분은 선조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임진왜란 의병장 김덕령이나 영원한 해군제독인 이순신 장군을 봐도 그 죽음이 부당하기 짝이 없다. 전쟁에서 주요활동인물은 동인세력이 주축이 되는데, 동인도 남인과 북인이 나누어져 남인 유성룡 세력이 퇴각이 북인이 급성장한다. 북인이 다시 소북과 대북으로 갈리고, 대북은 다시 또 분당한다.

 

광해군은 붕당정치가 시작될 때 그 당쟁의 희생자였고, 폐위와 그 이후의 삶 역시 당쟁의 희생자였다. 당쟁의 문제는 유학이 백성을 도학으로 치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론의 이익을 따라 모두 따른다는 점이다. 당쟁의 문제는 전쟁의 대응력까지 문제되고, 임진왜란 당시 순국지사 학봉 김성일은 분명 훌륭한 유학자이나, 일본 왜국 방문 시 서인과 반대되는 당론을 추구하다 전쟁의 화를 만들었다. 전쟁이 나면 가장 문제인 건 전투보단 국민, 백성의 안위다. 선조는 혼자 살기 위해 도망치고, 그 아들인 광해군을 남겨 분조를 이끌게 했다.

 

<광해군>에서 광해군은 분조를 기회로 보나, 최근 개봉한 영화 <대립군>에서 광해군의 모습은 그저 힘없이 내몰린 희생양이었다. 선조가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할 의지가 없다가 전쟁이 나자 신성군을 마음에서 버리고 광해군을 선택한다. 전쟁을 지휘하라 하나, 막상 전쟁터에서 언제 참극을 피할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광해군은 임금시절만 보나, 사실 광해군의 탁월함은 전쟁이었다. 분조를 이끌며 의병을 독려하고, 전쟁을 지휘했으며, 한양을 되찾은 후 남쪽으로 내려가 다시 백성들은 다독거렸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저잣거리에서 형편없는 밥상을 백성과 같이 먹어주던 임금은 오로지 광해군이었다. 인조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올라가 도망치기만 바빴다. 결국 체면과 생존에서 체면을 버리고 삶을 택했다. 대신 백성 수십만명이 청국으로 끌려가 죽음을 당하거나 평생 돌아오지 못했다. 설사 돌아와도 수많은 돈이 지출되고, 아녀자들은 환향녀가 화냥년으로 바뀌어 창녀 취급을 받았다. 어찌 슬프지 않을 수가 있을까?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추구한 것이 드러나는 것은 곧 지배계층이 어리석다는 것은 반증하고, 임진왜란 당시 명의 황제가 칙서를 선조가 아닌 광해군으로 내린 것은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여 조선을 흔드려 했다.

 

소설에서 광해군은 선조에게 명군을 파견하지 말 것을 청하는데, 유성룡도 그런 말을 한 것을 보면 그 고증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단지 명이 오는 이상 조선은 그 이상의 대가를 줘야할 것이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오면 큰 빗으로 쓸고 간다면, 명나라는 참빗이 쓸고 가는 형국이라 했다. 가는 길마다 강간, 살인, 약탈이 끊이지 않으니 천군이란 명성은 그저 강도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선조가 재조지은을 내세우고, 대신들도 광해군에 이르러 그 뒤에도 재조지은을 말하는 이유는 지배계층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사실 임진왜란은 명군의 도움은 초반에 없었고, 전쟁의 승리가 눈에 보이자 공을 내세우기 위해 움직인다. 후에 명군을 분명히 왜군을 소탕하였지만, 임진왜란의 승리는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의 장수와 의병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선조와 인조반정 세력은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광해군이 분조를 지휘한 것은 만 백성이 알고, 거기에 의병이 나와 왜군을 격퇴한 것은 타국도 알았다. 영화 <광해>에서 광해군의 가슴에 흉터가 있는데, 그것은 전쟁 중 활에 맞은 상처이다. 가슴이 활에 공격당했다면 죽을 공비를 넘겼다. 일국의 왕자가 죽음을 당할 뻔 했는데도, 그는 도쿠가와 막부와 외교를 맺었다.

 

전쟁을 다시 일어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소설 <광해군>은 오로지 백성의 편을 생각하는 군주로 묘사된다. 실제 한명기 교수의 연구도서를 보면 광해군이 폐위될 때 백성들은 모두 놀라워하고 두려워했다. 이때 오리영감 이원익이 한성부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진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무리수는 내부 권력의 다툼이었고, 백성들은 궁궐의 권력암투는 일상화가 되었기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광해군이 토목공사로 재정을 많이 낭비했지만, 명나라에 군을 파견하여 여진족에게 몰살당하는 것보다 났다. 만 명 중 7000여명이 살아왔다면 오히려 그게 더 큰 이익이다.

 

궁궐 토목공사 자체를 긍정적이지 않으나(물론 현대 한국인들은 이런 것이 있기에 즐겁게 한양나들이를 돌아보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많은 장정을 잃는 게 국력의 훼손이 크다. 광해군은 역대 임금 중 태조와 태종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전쟁을 수행한 군주이다. 그는 직접 백성들 상대하고, 그들의 원한을 들었다. 아니 들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백성을 지켜주지 않으면 전쟁에서 광해군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탐관오리에 의해 배를 굶고, 포악한 사대부에게 딸을 빼앗기며, 그 원통한 사연은 어디 가서 호소조차 못한다.

 

파주현감 조명식이 실존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대동법 초안이 임진왜란 당시 백성을 만나 그 의미를 찾았는지 알 수 없다. 단지 대동법이 김육이 제안했다고 하나, 사실 남인영상 이원익이 시작했고, 이원익은 광해군 북인시대에 초라한 남인세력이다. 그는 성격이 워낙 온순하고, 백성들에게 친절한 청백리였으며, 전주이씨 후손으로 종실이었기에 그만큼 추종을 받았다. 하지만 권력과 무관한 인물이었기에 단순히 이원익이 주장한다고 하여 그 세에 따라 대동법 시행이 되었다면 논리가 서지 않는다.

 

당시 양반들은 농지지주가 되어 많은 이익을 차지했고, 김육이 대동법을 주장할 때 산당의 서인들이 모두 반대했다. 광해군이 폭군으로 등록이 된 이유는 겉으로 폐모론과 골육상잔이겠지만, 그 뒤에는 자신의 이익을 원하는 자들의 물밑작업이다. 소설은 그런 광해군의 고뇌가 잘 드러난다. 광해군이 물러나자 정묘호란이 일어날 때 여진족 군사는 협약을 맺지 않을 경우, 남하할 때마다 백성들의 집을 모조리 없애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도륙한다고 했다. 여진족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그들은 항복하지 않으면 모조리 밟아버렸다.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단 일말의 자비를 내리지 않는 것이다. 전쟁을 몸소 겪은 광해군의 입장에서 전쟁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병사로 차출되어 비명을 질렀는지, 하얀 옷을 입은 백성들의 시체가 너무 많아 흰 무덤을 보았다는 말이 나올 때 전쟁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도 한국전쟁을 겪으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지만, 더 슬픈 것은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다. 상대진영에 조금이라도 협력하면 모조리 길가에 끌고 와서 총살시키던 그 사진은 너무 끔찍했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현재 북핵문제로 한국은 전쟁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미국에서 연구한 결과, 한국이 전쟁이 날 가능성은 50%이고, 하루 민간인 사망자는 2만명이라 하는데, 사실 2만명은 최소이다. 장기전이 되면 전쟁의 폭격이나 화생방 상황만 아니라 식수와 식량문제, 전염병 각종 범죄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다. 21세기 전쟁은 16세기 임진왜란처럼 활과 조총, 그리고 칼과 창이 아니다. 20세기 한국전쟁처럼 총과 대포, 프로펠러 전투기도 아니다. 제트전투기가 폭격하고, 지대공 내지 지대지 미사일이 수백 내지 수천를 강타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또 다시 역사의 반복이란 시련에 빠져든다. 광해군이라면 현대의 한국을 어떻게 할까? 외교적으로 어떻게 하고, 전략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군대는 대부분 활로 사격을 했으나, 왜군의 조총에 밀렸다. 조선에도 화약제조에 관심을 가진 것과 조총 정예부대를 만들어 전쟁의 불화를 번지지 않게 한 것도 대단한 혜안이다. 국방력은 그 나라의 운명은 좌우하고, 외교에 대한 정보처리는 일각을 좌우한다. 소설 <광해군>은 그런 심정에서 광해군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흘러간다.

 

분명 정치적으로 실정이 있었고, 그가 실수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대북 이이첨은 처음에 광해군을 도왔지만, 후반부에는 광해군은 그를 멀리하려 했고, 중국과의 외교문제에서 이견을 보였다. 광해군을 지지하는 것은 노론의 입장에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재조지은의 명나라를 올리지 않은 점은 임진왜란 당시 명군을 파병시킨 자신들의 입지가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명군을 그렇게 올린 이유는 임진왜란의 문제가 정치적 무능함을 상기시키고, 왜란의 해결사가 조선의 백성이라면 사회적 모순에 대한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결사가 명군이고, 그것이 선조와 권력층이고, 의병의 활동이 들러리라면 기존의 정치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명나라가 존재하기에 그 명분을 들먹일 수 있는 것이고, 명나라가 망하면 자신들의 입지 역시 좁아지는 것이다. 조선 개국 이후 을묘왜변 같은 큰 전쟁이 있지만, 한양이 함락된 사례가 없었기에 섞은 물은 그대로 고여만 갔다. 소설에서 광해군의 말년이 나온다. 늘 우울하고 비참하며 슬픔에 젖은 그는 어느 조정의 신하가 올린 장계처럼 비참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광해군의 비참함 이상으로 조선의 백성은 더욱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광해군은 대신에게 내 나라 백성이 소중하고, 그깟 사대가 무엇이 중요하냐? 식으로 이야기한다.

 

남한산성에 몰려 척화파와 주화론자들이 분열할 때 조정은 아직도 권력 또는 명분에 집착했다. 명분이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명분은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지 백성의 입장은 전혀 없었다. 임진왜란 이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재미있는 사실 1가지를 생각했다. 임진왜란 당시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고 근왕병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시기 의병과 근왕병이 거의 없었다. 백성들은 왜란에 따른 후유증이 너무 큰 것도 있지만, 그래도 의병이 전국적으로 창궐하지 않은 것은 의아한 일이다. 왜 그럴까? 광해군 분조시기에 의병이 전국적으로 넘쳤다. 광해군의 평가는 모두 긍정적일 수 없다.

 

그러나 민심에 의해 움직이는 의병활동은 생각해볼만하다. 그 이후의 의병은 기존 왕조에 동조하여 일어난 의병보단 항일운동 및 동학운동과 같은 민중봉기가 더 많이 발생된다. 조선이 망하자 조선독립을 위한 의병활동이 있었지만, 조선의 군주보단 조선의 백성을 위한 의병이 더 많이 나온 점을 생각하면 광해군이 보여준 분조활동, 그리고 거기에 얻은 경험을 정치로 활용하는 점에서 그가 혼군이라는 평은 너무 지나치다. 그는 혼군이 되어야 했던 군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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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퇴근길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치 노 키드 존에 대한 의견이 나왔다. 진행자와 패널, 그리고 시청자의 전화까지 받아보면서 노 키드 존에 대한 열렬한 의견이 오고갔다. 기본적으로 노 키드 존에 대한 내 의견을 밝히자면 찬성이다. 진보성향이 있지만, 진보언론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은 것이 의아하겠지만 그렇다. 그런데 진보신문사의 글을 보면서 내심 의구심이 들었다. 나중에 정리하겠지만, 진보성향 언론은 뭔가 핀트가 일괄적이지 못하고 점차 파상적으로 흩어진 맥락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이 소고를 적어 내려가는 이유는 언론과 방송에서 모든 원인을 제대로 간파하지 않았다. 어느 유명한 식당의 주인의 인터뷰를 보면서 답은 이미 그곳에 나와 있는데 말이다. 노 키드 존에 대한 인식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한 사회현상이다. 그 전에 아이들이 오면 어떠한가? 그렇게 심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 키드 존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 것이 과거라고 한다면 어떻게 보는가? 어린이에 대한 훈육과 어머니에 대한 태도의 문제는 분명히 있다. 가정주부로 고생하여 아이하고 같이 집밖에 나와 산책도 하고 맛있는 차 한 잔을 하고 싶으며, 게다가 자신 역시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을 것이다.

 

그런 것은 문제가 없다. 아이가 옆에 울고 보채면 달래주어야 하나, 가끔 매장을 보면 그것을 무시하고 서로 수다 떨기 바쁜 분도 있다. 하지만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의 몰지각한 분들로 노 키드 존이 완성될 수가 없다. 단지 노 키드 존이 생성될 수밖에 없는 변증법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은 우리가 분명히 가져야 한다. 전에 어느 유명한 식당 인터뷰를 보았는데, 서울 중심상가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식당이다. 점심시간에 발 딛을 틈도 없이 바쁘며, 손님은 가게 안에 늘 왕래했다.

 

이 가게가 처음에 노 키드 존을 시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11식을 원하지 않았다. 어느덧 11식에 노 키드 존까지 이어졌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임대료가 올랐다고 한 것이다. 내 기억에 인터뷰를 진행할 때, 한 달 임대료가 약 2,000만원 가까이 된 것으로 기억한다. 2,000만원 임대료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4명을 고용한다고 생각하자. 급료는 1인당 약 150만원이면, 1달 최소비용은 2,600만원이고, 거기에 음식재료, 전기, 수도, 세금, 각장 감각상각비를 고려하면 최소 월 매출은 5,000만원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임대료가 처음에 2,000만원이 아닌 1,000만원이라면 최소매출은 4,000만원으로 보면 되고, 지금 가게를 방문해주는 손님의 80% 정도면 충분하다. 가게를 이용하는 손님이 오고가는 전환비율만 제대로 되면 문제가 없다. 1인당 주문 및 식사시간이 40분이고 좌석이 20개 정도라면 점심시간 12:00~14:00 사이 20 × (120÷40) = 60명이 온다. 1인당 1만원이라면 60만원의 매상이 오르는 것이다. 만일 1인당 1식단이 아니라면, 그것도 2인이 1개만 시키고, 식사시간도 많지 않고 부수적인 것까지 제공한다면 가게 입장에서 손해가 오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시간당 비율 손님이 오는 것과 매상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단지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왜 문제인가? 라는 설정에서 문제는 가게를 찾는 손님이 아니라 가게에 손님이 전환비율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전에 유명 치킨 메이커가 비싼 가격으로 상품을 팔았다. 2만원이 넘어가는 가격에 막상 원자재 육계의 가격은 2만원의 101조차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비용은 무엇인가? 치킨집 인건비를 생각해도 아르바이트생이 200만원 이상 될 리 없고, 다른 재료비를 다 합쳐도 육계 1마리의 반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대기업에서 영업점에 요구하는 상품메이커 가격이고 나머지 임대료이다. 가령 2만원 짜리 메이커 통닭이 있다면 메이커 없는 치킨은 15,000~18,000원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 명확한 답이 있어도 언론은 부모의 자질이나 사회적 소통문제로 여긴다. 물론 그것도 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과정에 대한 고찰은 없다. 진보언론의 문제는 가게 점주의 의견을 제대로 피력하지 않았고, 진영적 논리로 따지고, 보수는 자본주의적 문제가 가진 본질을 피한다.

 

요새 새로 지은 아파트 1채 가격이 서울에서 5~6억이 기본이라 말을 들었다. 강남이 아닌 지역에서 그렇게 요지부동으로 가격이 오르니 임대료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서민들의 시장물가는 엉망이고, 집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형이 얼마 전 통화하면서 앞으로 젊은 사람들은 집 사기가 어렵다는 말을 하면서 부동산 투자하지 않으면 돈 벌기 어렵다며 한 번 재고하라는 말을 한다. 문제는 알면서도 문제해결보단 문제의 본질을 두고 이익을 챙기려 하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문재인 정부가 전번 정권처럼 부동산경기를 엉망으로 하지 않겠지만, 부동산을 잡기가 어려울 것이라 말에서 주변 사람의 말을 들으니 과연 그렇다. 내 아이가 나하고 좋은 곳에서 먹기 어려운 이유는 No-Kid Zone이 생긴 이유도 있지만, No-Kid Zone이 생기기까지의 한국현실은 외면하고, 거기에 동조하여 부동산투기에 빠진 현 실태에서 가게점주를 탓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집 옆에 메이커 브랜드 아파트가 오는 것은 좋아해도, 영세한 시민을 위한 임대주택이 오는 것은 반대이다. 그런데 이런 점을 논하지 않는 언론이다. 그들은 밑바닥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진영의 논리에 억지로 끼워 맞추기 놀이만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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