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세계문학의 숲 49
셔우드 앤더슨 지음, 김선형 옮김 / 시공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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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단편집.

막막한 외로움의 연작.
그로테스크로 대변되는 환멸의 정서.

찰나의 행복?의 순간을 지나면 그저 살아가야할 나날들인 삶.

- 그 시절 젊은 여자들은 자기 동네를 떠나 동부의 대학으로 공부하러 가지 않았고 사회 계급에 대한 생각은 아직 존재하지조차 않았다. 노동자의 딸은 농부의 딸이나 상인의 딸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사회적 입장에 있었고, 유한계급은 아예 없었다. 젊은 여자는 ‘참하’거나 ‘참하지 않았’다. - 95

- 그녀는 생각했고, 얼굴을 돌려 벽을 바라보고는 억지로 마음을 가다듬어, 심지어 와인즈버그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혼자 살고 또 죽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용감하게 대면하려고 애썼다. - 133

- 옛것들의 유령들이 소년의 의식 속으로 슬며시 비집고 들어온다. 그의 외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삶의 한계에 대한 메시지를 속삭인다.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해 굳건한 확신을 품고 있던 소년은 갑자기 불안해진다. 상상력이 뛰어난 소년이라면 급작스럽게 문이 활짝 열리고 처음으로 세상을 내다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시간이 무로부터 생겨나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이미 주어진 삶을 다 살고 무로 돌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행진하듯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성숙의 슬픔이 소년을 찾아온 것이다. 살짝 숨을 몰아쉬며 그는 자기 자신이 바람에 날려 마을의 길거리를 헤매는 낙엽 한 장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친구들의 허세 섞인 장담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고 살고 죽어야 한다는 걸 안다. 바람에 흩날리는 존재, 옥수수처럼 땡볕 아래서 시들어가야만 하는 존재로서. - 279


2023. may.

#와인즈버그오하이오 #셔우드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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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
김보현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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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아포칼립스지만, 조금 귀엽고, 다정하고 친환경적이며 목가적인? 이야기.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진 펜싱 소녀 원나는 시상대에 오르기 싫어 4등만 하는 아이. 그러나 마을 어른들의 다정한 돌봄으로 좌절할 틈없이 살아간다. 그러다 닥치는 좀비의 세계 속에서 살아남고, 사랑하는 멋진 소설이다.

식물인간이었고, 심한 부상으로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일 때,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추후 백신으로 부활? 할 수 있는건 좀 멋진거 같다.

그리고 아무리 귀엽고 다정한 이야기라도 등장하는 약자위에 군림하려는 자들과, 편협하고 삐뚤어진 생각에 함몰된 자들이 등장하는데, 사실 등장만으로도 너무 짜증이 났다. 안보고 싶었달까.

- 모두가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시상대에 올라가려고. 그걸 우습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냐.
네.
원나는 조그맣게 대답했다. 잘 알고 있었다. 철종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맹세컨대 단 한 번도 그런 마음을 우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 62

- 원나가 유미를 안고 일어서는데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원나, 우리가 원나를 돌아가며 괴롭혔습니다ㅏ. 미워서 그런 것 아닙니다. 나중에 말하려고 했습니다. 모두가 우리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이제 원나가 혼자 돌아가면서 우리 모두를 괴롭혀야 합니다. 꼭 그래줘야 합니다.”
원나는 마리아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원나는 알았다고,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고, 괜찮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
원나의 머릿속에서 기억의 파편들이 하나씩 맞춰졌다. 아무 때고 전화해서 귀찮게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한꺼번에 여러 개의 일을 한 적은 없었다. 곤란할 정도로 힘든 일이나 무리가 되는 일 역시 없었다. 부탁 받은 물건을 기껏 사 들고 갔더니 창고나 마루 밑에 똑같은 게 있던 적도 많았다. 모든 게 노인네들의 건망증이나 부주의함이 아니라 계획된 것이었다는 소리였다.
“원나한테 심부름 시켜야 원나가 자꾸 움직이고, 자꾸 움직여야 웃을 수 있고, 원나가 웃어야 우리가 모두 행복합니다. 그래서 그런 겁니다.” - 155

- 돌아가며 괴롭혔다는 마리아의 말이 원나의 귓가를 맴돌았다. 마을 사람 모두를 돕고 있다는 우쭐한 기분에 도취되어 있었는데 사실은 그조차도 빚진 것이었다. - 158

- 원나는 주춤주춤 움직이는 마리아의 어깨를 눌러 앉힌 뒤 텔레비전 위에 올려놓은 펜싱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마리아가 그랬다. 이제 원나 혼자서 마을 사람들 전부를 ‘괴롭혀야’한다고. 원나는 마리아를 번쩍 안아 올렸다.
‘진짜 가만 안 둘 거예요. 각오하세요!’ - 159

- ”그래. 꼭 만들어. 성공하면 그땐 진짜 오빠로 인정해줄게.“
사소한 욕망과 계획을 가져야 한다고. 그래야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고 철종도 늘 말했다. - 240

2023. jul.

#누군가이름을부른다면 #김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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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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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입장의 기록이 얼마나 역사를 납작하게 보여주는 것인지 새삼 느낀다.

그 일방적 입장은 예외없이 강자의 기록인데, 그 강자는 진정한 강자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이야기다.

베벨인 아이다의 개인적인 경험을 스스로에게 덧입혀 떠드는 장면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 마지막 파트만이 모든 사실의 진실에 가깝다고 느끼지만, 그렇기에 입맛이 씁쓸해진다.

해석의 주체가 누구인지와 내가 믿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늘 경계해야 한다는 소소한 교훈.

초반의 지루함이 있었지만, 중반 이후 급속도로 빨려들어가는 이야기다.


- 벤저민은 돈의 뒤틀림에 매료됐다 - 돈을 뒤틀면, 돈이 자기 꼬리를 억지로 먹도록 만들 수 있었다. 투기의 고립되고도 자족적인 성질은 그의 성격과 잘 맞았고, 경이감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목표였다. - 23

- 둘의 신비주의까지 더해지자, 부부는 그들이 절대적으로 경멸하는 뉴욕 사교계의 신비로운 생물이 되었다. 둘의 엄청난 위상은 둘이 보이는 무관심 때문에 더욱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그들의 가정생활은 화목한 부부라는 이미지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았다. 벤저민이 헬렌에게 느끼는 존경심은 경외감에 가까워졌다. - 84

- 사람들은 대부분 각자가 승리에 있어서는 적극적 주체이지만 실패에 있어서는 수동적 객체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승리하는 건 우리지만, 실패하는 건 우리가 아니다- 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난 힘 때문에 망가지는 것뿐이다. - 88

- 모든 인생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삐걱거리다 멈추게 하는 소수의 사건을 중심으로 정리된다. 다음번의 강력한 순간이 찾아오기 전까지, 우리는 그런 사건들의 결과로 혜택을 보거나 괴로워하며 그런 사건들 사이의 세월을 보낸다. 한 사람의 가치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처럼 결정적인 상황의 수에 따라 정해진다. 늘 성공을 거둘 필요는 없다. 패배에도 위대한 영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서사시든 비극이든 결정적인 장면의 주연이어야 한다. - 201

- 이 다이어리와 달력들에서는 그처럼 천진난만하고 어린애 같으며 ‘여성적’이라고 깔볼 만한 그림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 서류에 따르면, 밀드레드는 결혼하고 일 년 뒤에 은둔에서 벗어나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와 연주자, 지휘자 들과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앤드루가 음악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한들, 그가 적극적으로 음악을 싫어했다 한들, 이건 언급할 가치가 있는 일 아닐까? 자기 아내가 파블로 카살스에서 에드가르 바레즈에 이르는 음악가들을 초대하곤 했다는 사실을 누가 빼놓겠는가? 왜 그녀를 어설픈 취미생활이나 하는 소녀로 그린단 말인가? - 342

- 자서전을 써야겠다는 베벨의 결심은 많은 부분 아내의 오명을 벗기고 그녀가 배너의 소설에 나오는 은둔한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글을 읽어보니, 베벨은 밀드레드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보다 그녀를 완전히 특징 없고 안전한 인물로 바꿔놓는 것을 더 원했던 것 같다. - 베벨의 목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내가 당시에 읽었던 위대한 남자들의 자서전에 나오는 아내들과 똑같이 말이다. 밀드레드를 그녀의 자리로 돌려놓으려고. - 346

- 나는 이 방 저 방을 오갔다. 이곳은 남편에게 “가정을 만들어준” 사람의 “부드럽고” “따뜻한” 공간이 아니었다. 연약한 어린 신부가 사는 곳이 아니었다. 집안의 나머지 공간과 대조를 이루는 이곳에는 수도원 같은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 돌이켜보면, 나는 그것이 현대적이고 진정으로 전위적인 분위기였다고 생각한다. - 383

- 그런데 지금 베벨이, 내 얼굴에 대고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직장에서든 사생활에서든 무수히 많은 남자들이 내 아이디어를 자기 것인 양 내 앞에서 되풀이해 말하는 경험을 했다 - 처음에 그 생각을 떠올린 사람이 나라는 걸 내가 기억하지 못할 것처럼 말이다.(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허영심이 기억을 가리는 바람에, 그들이 선택적인 기억상실에 힘입어 양심에 한 점 부끄럼 없이 문득 떠오른 깨달음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시에, 어린 나이에도 나는 이런 기생적 형태의 가스라이팅을 잘 알고 있었다. - 404

- 시작은 1922년이었다. 그때 A는 교향악단에 기부하라며 주었던 소액으로 내가 자기 기금보다 더 나은 수익을 올린 것을 보았다. 내 장부를 살폈다. 나한테 설명하라고 했다. 몇 주 뒤, 자기도 내 접근법을 시도해보았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했다. 자기 작업을 보여주었다. 살펴보니 그저 내가 했던 일을 훨씬 더 큰 규모로 복제했을 뿐이었다. 시장 충격을 고려하긴 했지만, 그 모든 일을 생기 없고 인공적인 대칭적 감각에 따라 했다. 아무 박자감 없이 맞는 음정만을 누른 격. 자동 피아노처럼. 나는 A의 규모에 어울리는 새로운 스케치를 해주었다. 그 방법이 통했다. - 445

- 나는 점점 더 그림자 속으로 밀려나고 + 오직 그를 통해서만 말하는 게 싫었다. - 446

- 나는 나 자신의 지시에 따랐다.
그 시절 우리의 수익은 베벨 가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재산을 압도했다.
나는 끈적임 원칙 + 거미줄 구조를 A와 무수히 여러 번 의논했다. 그는 내 설명을 따라오는 척하거나 인내심을 잃었다. 내 잘못이다. 수학을 설명하는 데는 늘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로써 A의적개심이 더 강해졌다.
우리는 많은 돈을 벌어들일수록 사이가 멀어졌고 + 앙심을 품었다.
그는 남성성을 잃은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허영심을 역겹다고 느꼈다.
하지만 우리의 기이한 협력은 이어졌다. 나는 과정에 집착했고 그는 결과에 중독됐다. 하지만 그것이 오직 지적인 활동일 뿐이었다고 주장하는 건 정직하지 못한 일이다. 나는 그 안에서 깊은 야망의 우물을 발견했다. 그로부터 어두운 연료를 시추했다. - 452

2023. jun.

#트러스트 #에르난디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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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먼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7
에벌린 워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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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사회의 허울뿐인 삶을 풍자하는 소설.

후반부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기억만 조금 남은...

읽은지 반년이 지난 ....

- 아침에 네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나는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 줌의 먼지 속 공포를 너에게 보여 주리라. - T.S엘리엇. <황무지> 중

- 그들은 자신들이 라스트 가문의 사람이기 때문에 헤턴 저택에 대한 권리를 브렌다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랄한 프랜시스 숙모가 재빨리 문제를 눈치채고 “얘, 그런 예민한 감정들은 다 쓸데없는 거야. 오직 부자들만이 자신과 가난한 사람 사이의 간극을 아는 법이란다.”라며 브렌다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그녀의 불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 95

- 사람들이 밖으로 나다니기 시작하면 늘 그게 문제예요. 아무도 모르거나 모두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사실은 폴리나 시빌 같은 몇몇 사람들이나 남의 사생활을 캐내려고 하지, 대부분은 관심도 없어요. - 149

- 정말 믿기 어려운 일 아닙니까?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건가요? 이렇게 한 순간에?
사람 사는 게 원래 그렇죠. - 170

2023. dec.

#한줌의먼지 #에벌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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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 20호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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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를 지속적으로 보진 않았지만, 노르딕 느와르가 테마인 호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

노르딕 지역에서도 대중소설, 장르물로의 범죄스릴러 소설들이 1990년대 하이컬쳐 로우컬쳐의 벽을 허물었다. 이른다 사소한 문학과 일반적인 문학의 구분이었달까.
이런 구분이 참 우습지 않은가 생각하는 편이라 공감공감.

<악의 해석자>에 관심이 있었는데 카카오스토리 연재물이었네..

1950년대의 사회상을 분석한 곽재식 작가의 칼럼?도 매우 흥미롭다.

- 주어진 사회적 체계 내에서 살아가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묘사함으로써, 작가는 명백하게 바로 그 공동체, 소설이 취하는 체제의 초상을 그려낼 수 있다. 나는 언제나 당부하곤 한다. 당신 한 번도 가본적 없는 나라를 방문한다면, 떠나기 전 그 나라의 실내 인테리어 잡지나 범죄소설을 읽으라고, 그 어떤 여행 가이드북보다 더 많은 걸 알게 될 것이다. - 노르웨이 작가 안네 홀트

2023. jun.

#미스테리아 #20호 #노르딕누아르의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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