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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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절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모든 작품을 즐겁게 읽었었는데,
이제 그의 마지막 작품을 읽었다.
삶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 쓰여지는 그의 글.

- 그녀의 눈에는 볼 때마다 죽은 애나를 떠올리게 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그녀의 눈에서 사라진 적이 없지만, 정확히 그게 무엇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빠릿빠릿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그보다 훨씬 큰 것이지만. 어쩌면 늘 깨어 빛나는 상태라고 묘사할 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아주 간단하게 환하게 빛나는 자아의 힘, 감정과 사고가 서로 얽혀 복잡하게 춤을 추는 가운데도 안에서 밖으로 한껏 뿜어져 나오는 인간의 살아 있는 상태- 아마도 그 비슷한 것일 듯하다, 말이 되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애나가 가졌던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몰리도 그걸 갖고 있다. - 8

- 바움가트너는 지금도 느끼고 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지금도 살고 싶어 하지만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은 죽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 66

- 9년하고 여덟 달 동안 서로 파괴하는 두 개의 모순된 정신 상태 사이에서 살아 보려고 애쓴 뒤에야, 자신이 이 모든 일을 얼마나 철저하게 엉망으로 만들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 68

- 그런 식으로 책은 태어나기 시작했다. 바움가트너의 생각으로는. 그러니까, 인간 삶이란 외로움과 잠재적 죽음이라는 고속 도로를 따라 빠르게 달려가는 통제 불가능한 차라는 독한 비전으로부터. - 228

2025. may.

#바움가트너 #폴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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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 하트 GD 시리즈
티아구 호드리게스 지음, 이단비 옮김, Nyhavn 사진 / 알마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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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에 읽은 <소프루>의 감동만큼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깊이 새기는 사랑, 기억, 저항의 편린들...

이런 것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들은 제대로 체화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이야기다.

- <아름다움과 위로>, 조지 스타이너.
우리는 기억을 통해서 존재하며 우리가 내면에 지니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우리는 20세기를 살아가면서 그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집, 가족, 생계.
우리 모두는 방랑자들로,
이 세상에서 그저 사냥감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실이 이번 세기의 역사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말하자면 유대인과 같은 처지나 다름없습니다.
사냥감이 되는 것이죠. 사냥꾼이 되거나.
하지만 우리 내면에 지는 것은 놈들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 18

-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시나 산문에 바칠 수 있는 가장 값진 헌사는 그것을 외우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온 마음으로. - 25

- 감미롭고 고용한 명상에 잠기어
지나간 옛 기억을 불러올 때면,
내가 찾던 많은 것들을 이루지 못함에 한숨짓고,
옛 슬픔이 밀려와 귀한 시간 허비했음을 새삼 한탄하네.
죽음의 끝없는 밤 속에 묻힌 소중한 친구들을 위해
메말랐던 눈이 눈물에 잠기고,
오래전 끝난 사랑의 고통에 다시 눈물짓고
사라져간 여러 모습들의 상실을 애도하네.
그러면 지나간 아픔을 다시 아파하며,
무거운 심정으로 비통한 사연을 일일이 헤아려
그 슬픈 사연들을 되풀이하여 말하고,
진작에 그 값을 치렀는데도 다시 치르네.
그러나 친구여, 그대를 생각하면,
모든 아픔은 치유되고 슬픔은 끝이 나네. - 68

2025. jul.

#바이하트 #티아구호드리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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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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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적인 이야기가 너무나도 현실에 발 딛고 있어서 도무지 가상, 판타지로는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너무나도 잘 직조하는 작가.
글로써 행해지는 진짜 투쟁.

- 스페인의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 y Jugo, 1864~1936)는 역작 <인생의 비극적 의미>(1912)에서 상실이야말로 인간 존재를 특징짓는 가장 커다란 특성이며 그러므로 상실을 겪었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은 그 상실된 것을 대체하거나 복구하기 위해 빨리 움직이는 게 아니라 멈추어서 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러시아의 소설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도 상실과 트라우마만이 모든 인간의 삶에 공통적인 요소이며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상실에 대한 애도와 트라우마의 경험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이렇게 명시적으로 딱 말한 건 아닌데 플라토노프 작품을 여럿 읽어보면 대충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상실하면 애도해야 하고, 상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서는 생존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상실된 사람들을 누가 기억해 줄 것인가. 그리고 행동으로 애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런 상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작가 에세이 중

- 소중한 삶이 부당한 이유로 짓밟힌 사정을 점차 알아가게 되면 공감하고 애도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가 인터뷰 중

- 대화란 본시 성립되지 않는다. '협상'이니 '의견 조율' 따위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더라도, 결국 끝에 가서는 어느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들)이 굴복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의견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관련자 모두가 100퍼센트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상대를 위해 '양보'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더 많이 양보하고 더 많이 참아야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타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대화는, 모든 협상은 결국 전쟁이고, 그 결과는 언제나 어느 한쪽에게 강압적이고 때로 폭력적이다. - 108, 여행의 끝

- "우리는 절대 잊지 않습니다."
나도 절대 잊지 않ㅇ르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것은 잊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동지들의 모습이, 마음에 불로 새겨진 줄 알았던 그 소중한 이름들이 세월 속에 희미하게 바래다가 사라졌다. 절대 잊지 않는 건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었다. 기억도 논리도 이성도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감정이다. 그 분노와 공포와 충격과 슬픔과 원한과 거대한 상실감만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직접 만난 적이 없는데도, 그녀를 알지 못했는데도 지하철을 나와서 광장에 서서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 그녀를 기억한다고 모두 입을 모아 외칠 때에 목이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경찰이 나타나서 신고되지 않은 불법 집회이니 해산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집회하겠다고 신고해도 애초에 받아주지도 않던 팬데믹 2년 차의 봄날이었다. 그 봄날에 그녀는 없었다. 조용하고 조금은 나른했던 지하철 안의 풍경과 광장에서 얼굴을 스치던 찬 바람을 나는 가끔 아무 맥락 없이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결코 잊지 않는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삶의 엉뚱한 순간들 속으로 과거의 상실이 비집고 들어오는 걸 받아들이면서 그래도 잊지 않고 세상을 이렇게 만든 빌어먹을 새끼들이 골로 가는 꼬라지를 보고야 말겠다고 나는 살았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 246, 그녀를 만나다

2025. may.

#너의유토피아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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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딱 좋은 날 - 정끝별의 1월 시의적절 13
정끝별 지음 / 난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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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와 산문이 담겨있는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는 고요하게 읽기 좋은 시리즈다.

- 내게 밀려오는 것들이 벅찰 때, 내게서 떠나가는 것들이 아릴 때, 떠올려보는 장면이기도 하다. 제 소중한 걸 부려놓고는 홀연 거두어 제 습성에 맞는 곳으로 자리바꿈을 한, 나의 너와 너와 너를 풀어내 여기 두서없이 앉혀놓는다. 내게 잠시 머물렀다 이만 총총 사라지는 숱한 나의 너들의 목록이랄까. - 9

- 그래, 지나가고 지나가는 건데...... 어차피 지나가고 지나가는 것일 뿐인데 그것도 성큼성큼...... 이렇게 되뇌로라면 몸속에 가득찼던, 날 선 분노나 갈애, 쪼잔한 근심들이, 싸- 하니 빠져나가곤 한다. 지나가는 것들에 의지해 나는 간혹 철이 들기도 하고, 끝인 듯 지나가는 것들과 함께 문득 가벼워지기도 한다. 물론 순간이다. 순간이 아니라면 나는 철이 너무 들어 무거워지다 못해 땅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 50

-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앙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111

2025. may.

#시쓰기딱좋은날 #정끝별의1월 #정끝별 #시의적절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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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20 - 5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20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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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들의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희망차지는 않다.
막바지에 이르러 기력을 다한 듯한 서희에 대한 서술이 고통스러운 세월이 흘러왔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막상 한 권을 남겨두고 나니 읽기가 더뎌진다.

- 그래 맞다, 맞어. 일본인에게 항복이란 있을 수 없지. 정복, 정벌이라는 그 달콤한 말에 길들여져 왔으니까, 정말 일본인들은 모두 죽을 각오가 돼 있는 걸까?
천만에요. 다만 죽을 각오를 강요당하고 있을 뿐이지요. 죽음을 강요하는 그 열렬한 분자야말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려 할걸요? 국민을 제물로 삼으려는 의도가 ㅜ멉니까? 바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본능 아니겠어요? 그 본능 때문에 눈이 어두워 이미 사리판단을 못하고 있어요. 만일 자신들이 죽겠다 한다면 국민은 살릴 수 있겠지요. 군부나 황실이나. - 91

- "굉장해요. 모든 게 다 넓어요. 굉장히 넓어요."
"그래 모두가 다 넓지. 생각이 아득해질 만큼 만주벌판은 넓어. 일본의 국토도 이렇게 넓고 섬이 아니었던들 좀 더 멀리 세상을 내다볼 수도 있으련만."
"그렇지만 일본은 이 넓은 대륙을 정복하지 않았습니까."
쇼지의 그 목소리는 일본인의 목소리였다.
"이 땅의 사람들은, 그러나 결코 정복되지 않았다."
"어째서요? 일본의 지배 밑에 있는데도."
"일본은 다만 왔다가 가는 사람이야. 이 땅의 임자는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 이 땅에서 태어난 민족이지. 그것은 쇼짱도 알아두어야 해." - 134

2025. jul.

#토지 #5부4권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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