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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평점 :
sf 적인 이야기가 너무나도 현실에 발 딛고 있어서 도무지 가상, 판타지로는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너무나도 잘 직조하는 작가.
글로써 행해지는 진짜 투쟁.
- 스페인의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 y Jugo, 1864~1936)는 역작 <인생의 비극적 의미>(1912)에서 상실이야말로 인간 존재를 특징짓는 가장 커다란 특성이며 그러므로 상실을 겪었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은 그 상실된 것을 대체하거나 복구하기 위해 빨리 움직이는 게 아니라 멈추어서 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러시아의 소설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도 상실과 트라우마만이 모든 인간의 삶에 공통적인 요소이며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상실에 대한 애도와 트라우마의 경험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이렇게 명시적으로 딱 말한 건 아닌데 플라토노프 작품을 여럿 읽어보면 대충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상실하면 애도해야 하고, 상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서는 생존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상실된 사람들을 누가 기억해 줄 것인가. 그리고 행동으로 애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런 상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작가 에세이 중
- 소중한 삶이 부당한 이유로 짓밟힌 사정을 점차 알아가게 되면 공감하고 애도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가 인터뷰 중
- 대화란 본시 성립되지 않는다. '협상'이니 '의견 조율' 따위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더라도, 결국 끝에 가서는 어느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들)이 굴복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의견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관련자 모두가 100퍼센트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상대를 위해 '양보'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더 많이 양보하고 더 많이 참아야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타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대화는, 모든 협상은 결국 전쟁이고, 그 결과는 언제나 어느 한쪽에게 강압적이고 때로 폭력적이다. - 108, 여행의 끝
- "우리는 절대 잊지 않습니다."
나도 절대 잊지 않ㅇ르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것은 잊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동지들의 모습이, 마음에 불로 새겨진 줄 알았던 그 소중한 이름들이 세월 속에 희미하게 바래다가 사라졌다. 절대 잊지 않는 건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었다. 기억도 논리도 이성도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감정이다. 그 분노와 공포와 충격과 슬픔과 원한과 거대한 상실감만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직접 만난 적이 없는데도, 그녀를 알지 못했는데도 지하철을 나와서 광장에 서서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 그녀를 기억한다고 모두 입을 모아 외칠 때에 목이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경찰이 나타나서 신고되지 않은 불법 집회이니 해산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집회하겠다고 신고해도 애초에 받아주지도 않던 팬데믹 2년 차의 봄날이었다. 그 봄날에 그녀는 없었다. 조용하고 조금은 나른했던 지하철 안의 풍경과 광장에서 얼굴을 스치던 찬 바람을 나는 가끔 아무 맥락 없이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결코 잊지 않는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삶의 엉뚱한 순간들 속으로 과거의 상실이 비집고 들어오는 걸 받아들이면서 그래도 잊지 않고 세상을 이렇게 만든 빌어먹을 새끼들이 골로 가는 꼬라지를 보고야 말겠다고 나는 살았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 246, 그녀를 만나다
2025. may.
#너의유토피아 #정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