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이반지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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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깔 대며 웃기는건 아니고,
그저 작가와 한자리에 있게되면 끊임없이 즐거울 것만 같은 그런 사람의 에세이다.

그걸 그냥 웃긴애. 라고 구분하기에는 좀 아깝지 않나 싶다.

끊임없이 사유한 사람이 뱉어낼 수 있는 냉소와 자학의 유머.

- 복싱을 시작하자, 길지 않은 한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을 쥐어패고 싶었는지 깨달았다. 그냥 다 대놓고 쥐어팰 수만 있었다면 모든 것은 차라리 깨끗하고 선명했을는지 모른다. 그간의 삶에서 채워지지 못했던 욕망 하나가 위험한 고개를 들려하고 있었다. 관장과 코치가 미트를 끼고 주먹을 받아줄 때마다 그 욕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더, 더, 더, 때리고 싶다, 또, 또, 또, 때리고 싶다. 그저 세상의 대부분을 다 쥐어패버리고 싶다.
관장은 나에게 처음 오셨는데도 참 잘한다며 길에서 많이 싸워보고 오셨나봐요, 농을 쳤다. 마스크 밖으로 드러난 두 눈을 동시에 적당히 반달 모양으로 감아주며 아무렴, 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쥐어패지 못했을 뿐이다. 다만 아무도 쥐어패주지 못했을 뿐이다.
(...)
그러다 결국 깊은 깨달음에 다다른다.
나,
복서 될 수 없다.
나,
조금도 맞고 싶지 않다.
나,
오로지 패고만 싶다.
그저 때리고 또 때리고,
그러고도 또 때리고만 싶다.
모두를 쥐어팰 수만 있다면,
한 대도 맞지 않고 그런 것이 허락되는 지금이 오늘 내게 와준다면.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만의 쨉쨉 유토피아를 꿈꾼다.- 18

-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만사가 힘들어진다.
(...)
살아 있는 상태를 잊어야 자연스럽게 살아진다. - 36

- 분명 누구에게나 위험하고 어려운 자리에 적어도 나보단 앞서서 방패막이가 되어주길 기대하며 그들의 옆구리를 습관처럼 찔러댔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너무나 온당하고 그럴 법한 일이었다. 어느 커뮤니티에나 있을 법한 흔하디흔한 세대와 마음의 역동이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우리 모두가 평생토록 온당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잊는 듯했다. - 45

- 제법 다수의 남들이 하는 고생을 안 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라도 고통의 개수를 줄여냈다는 것이 무척 뿌듯했다. - 93

- 나는 그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작품이나 전시에 덧붙여진 갖가지 수사와 설명을 어떻게든 무시하고 읽지 않으려 애써왔다. 세상에는 가능한 한 가장 무식한 상태에서 즐기고 싶은 작품이란 게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 어떤 세상도 맥락도, 심지어 삶까지도 없기를 바라게 만드는 작품. 그런 거짓말을 믿고 싶게 하는 작품들은 관객이 그만큼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흠모를 이어가게 한다. 어떤 경우에도 이 작품을 향한 마음을 멈추지 않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 그저 칼더가 웬만한 그 시대 아트 마스터들이 했을 만한 대중적 나쁜 짓 외에 크게 뭘 안 하고 살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여전히 그에 대해 알고 싶지만 깊이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득 안고 미술관을 나섰다. - 260

- 앞으로도 계속 웃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삶의 근본이고 라이프스타일이며 젠더이고 섹슈얼리티이자 커뮤니티이다. - 289

2023. may.

#나는왜이렇게웃긴가 #이반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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