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 탐조 클럽
에이미 탄 지음, 조은영 옮김 / 코쿤북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운 책이다.
아름다운 관찰일지, 아름다운 새 그림.

조류 관찰 일지 자체는 일상의 반복처럼 단조롭지만, 그 안의 생명들은 다채롭게 다가온다.

상처 입고 죽음에 이르는 새들의 에피소드는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충격이 온다.
예전에 비해 이제는 그런 부상과 죽음을 못 견디게 되어 가는 것 같다.

책을 구매할 때는 작가가 <조이럭클럽>의 작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탐조일지라는 것 때문에 샀는데,
작가에 대해 깨닫고 새삼 존경스러웠다는 점도...
엄청난 전문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이를 먹고 새로운 분야를 끝없는 수련으로 공부해나간다는 점에서 그랬다.
동식물의 그림을 학부시절 많이 그려봤기에 더욱 그랬다.

최근 관심이 높아진 탐조활동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걷기와 관찰 행위로 자연과 연결되는 순간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져서일까?
그런 열망의 일부로 아름다운 새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에 한발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아..
추천의 말에 박참새 시인이 있었다는 것이 조금 재밌었다.

- 눈이 퉁퉁 부은 쇠황금방울새가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 새는 다른 새들과 함께 날아갔을까? 아니면 가지에 혼자 앉아 있을까? 모이통까지 가는 날갯짓 횟수까지 기억하는 그 새가 습관적으로 헛된 사냥을 떠났을 생각을 해 본다.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비에 젖고 허기가 지고 쇠약해져서 결국 땅에 떨어져 숨을 거두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것 같다. 그런 마음 아픈 일은 사랑과 상상력에 동반된다. - 128

-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무심할 수 없다. 그들을 생각하며 고민하는 것은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 300

2025. jul.

#뒷마당탐조클럽 #에이미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 오늘의 젊은 작가 48
박대겸 지음 / 민음사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는 시리즈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제목과 책 소개도 흥미를 유발하고 표지도 꽤 귀여워서 기대하며 읽기 시작.

어느 날 갑자기 외계인이 일주일 후 인류의 멸절을 예언하며 극히 일부의 인류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영상이 등장하고, 뭔가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그저 일상을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이 그려진다.

주인공의 무덤덤한 듯한 태도와 소소한 일상들도 평범함이 주는 안도감을 주며 캐릭터에 대한 호감도 슬슬 쌓여가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잉? 하게 되는 진행이... (주인공이 정말 산으로 가버리는)

뭐랄까 좀 어수선하달까...
좀 더 등장인물들을 집중해서 그렸다면 나았을까?

평범한 주인공이 인류 구원의 히어로화되는 지점도 충분히 있을 법한 설정이긴 한데.
이야기의 무드와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젊은 작가 시리즈 초반에는 정말 보석 같은 작품을 종종 발견했는데 요즘은 타율이 좀 떨어진 느낌... 아쉬워...

- 우리가 개발한 딜리트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면 자신이 죽는다는 걸 인식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 테니까. 통증을 느낄 새도 없고, 거의 실시간으로 주변 사람들도 같이 죽을 터이기에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없을 테니까. 고통이나 두려움이나 절망 따위 없는 순식간의 죽음. 모든 생명체가 원하는 죽음의 형태 아닌가. 말 그대로 소멸이다. - 10

- 그래, 여기서 중요한 건, 힘 없고 나이 어린 소녀가 불가능해 보이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점이야. 그리고 그것이 아주 값진 성과를 이뤄 냈다는 점이야.
물론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인해 본인의 삶은 해피하다고도 새드하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긴 하지만, 근데 인생이란 게 그런 나날의 연속 아닌가? 그건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 것 같아. - 83

-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신의 의자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라고. 나의 의지라고. - 103

- 나는 내가 있는 이 세계가 제일 소중해. 내가 온전히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이 세계가 소중하고, 내 곁에 있는 친구들, 가족,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 소중해. 이들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세계가 진짜 나의 세계고, 진짜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세계야. 그렇기 때문이 이틀 뒤 이 세계가 정말로 사라진다면,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나도 사라지는 거야. 가족과 친구들이 없는 나는 더 이상 나라고 할 수 없겠지. 그러니까 살아 보겠다고 나 혼자 다른 세계로 떠나거나 하는 일은 없어. 그것보다는 이 세계가 사라지기 직전까지, 이 세계가 사라지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 아등바등할 거야. 이것이 나의 의지고, 어쩌면 이것이 신의 의지라고도 생각해. - 115

- 그럴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점점 지구에서 멀어지기만 하는 우리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인류의 미래는 앞으로 지구에 살아갈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 225

2025. jul.

#외계인이인류를멸망시킨대 #박대겸 #오늘의젊은작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기 결정 -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일상인문학 5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도서여서 고른 측면이 있는데...

좀 어린 연령층의 추천 도서인 듯?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내가 읽기엔 좀 뻔한 내용의 강연 3회차.

2011년도의 강연이라는 점도 팬데믹 이전의 세계와 지금은 뭔가 다른 차원의 세계이지 않나. 그런 측면의 통찰은 또 다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자기 자신과의 이러한 거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인식과 이해의 거리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원하는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 생각과 느낌과 소망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러한 성찰의 사고방식에는 아주 중요한 생각이 하나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것을 느끼고 원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인식입니다. 자기 결정이 가능한 우리 같은 존재에게 가능성이라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이것은 인간이 삶을 이끌어나가는 데에 하나의 방식, 자기만의 방식뿐 아니라 수많은 전혀 다른 방식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기 결정은 가능성에 대한 인지력, 즉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 14

- 내가 가진 것 중 나는 보지 못하지만 타인은 볼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타인의 시선은 나의 자기기만을 발견하는가?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자신의 자아상을 점검하고 자기 인식에 새로운 전환점을 선사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 확인에도 우리가 거리를 둬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라브뤼예르가 꼬집었던 것으로,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불과하며 그들이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오직 그들만의 문제인 수만 가지 요인에 의해 그 평가가 왜곡되고 부정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결정적 삶은 이러한 낯섦도 견뎌낸다는 것을 뜻합니다. - 36

- 내 모국어는 그저 시대적, 지리적으로 우연히 내가 쓰는 언어가 된 것뿐이며 다른 것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문화적 정체성이란 우연한 것이며 항상 대체물이 있습니다. 교양은 바로 이러한 우연성을 인정하는 것이고요. 교양은 자만심과 독단론, 외부의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인과 평가절하로부터 우리를 방어합니다. 여기에 기회주의적이며 말만 번지르르한 관용과 구별되는 진정한 관용의 뿌리가 있습니다. - 78

2025. jun.

#자기결정 #페터비에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 속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친밀하고 다정한 관계 속에서 까발려지는 내면의 누추한 감정들...
달갑다고 선뜻 받아들이기 쉽진 않지만, 정곡을 푹푹 찌르고 있으니 허탈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날카로움이 담긴 단편들.

우리 시대의 안녕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저 나 홀로 잘 살아나간다는 것으로는 부족한 사회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된다.

김애란의 통찰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 거기 있는 걸 없는 척하고 없는 걸 있는 셈 치는 건 연극의 중요한 약속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건 가식이나 위선과는 다른 거였다. - 홈 파티, 18

- 사실 해방 이래 한 번도 돈을 욕망하지 않은 적 없으면서, 겉으로는 노동과 근면을 미덕인 양 가르쳐온 사회가 갑자기 저더러 문맹이라니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그간 저나 제 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을...... 응, 실존을 부정당한 것 같아서. - 홈 파티, 38

- 이연은 이 밤이, 그리고 또 이 계절이 낯선 듯 익숙해 마치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이기 전 한 말처럼 '몸이 차가우면 더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 많은 이들이 다 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처럼 느껴졌다. - 홈 파티, 42

- 지호에게는 뭐랄까, 어려서부터 몸에 밴 귀족적 천진함이 있었다. 남으면 버리고, 없으면 사고, 늦으면 택시 타는 식으로 오래 살아온 사람이 가진 무심한 순진함이. 학부 땐 그게 귀엽고 가끔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당당해 보여 끌렸는데, 결혼 후 같이 살다보니 결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번 여행 계획을 세우며 내가 예산을 맞추려 전전긍긍할 때도 지호는 "그냥 대충대충 해. 별 차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별 차이'에 대한 감각이 지호와 나의 큰 차이였다. - 숲속 작은 집, 58

-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 좋은 이웃, 142

-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 - 이물감, 175

- 순간 "나도"라고 답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큰 교훈 없는 상실. 삶은 그런 것의 연속이라고. 그걸 아는 사람을 만나 정말 반갑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아무튼 별거 없었어. 우리 아버지 부고 안에는. 그 사람이 그렇게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는 거. 전혀 몰랐던 사실도 아닌데, 이미 알고 있던 걸 한번 더 확인한 것뿐인데, 그런데도 이 허전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
이런 걸로도 뭔가 배우는 게 인생일까?
......
하긴 뭘 꼭 배우지 않으면 또 어때. - 안녕이라 그랬어, 246

- 앞으로도 저는 여전히 삶이 무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 작가의 말 중

2025. jul.

#안녕이라그랬어 #김애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숲은 계속된다 타이피스트 시인선 4
김다연 지음 / 타이피스트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구속 결정을 기다리며 읽었다.

이 시집의 시들에 왜 이리 공감이 되나... 싶었는데
후반에 실린 산문에서 '간병'과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공감의 이유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과 그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는 관계.
누구에게도 즐거운 일이 아닌 고통.
그 감정이 되살아 났다.

고요한 여름밤에 개인적으로 무척 와닿는 시들이었다.

- 잃었다고 하기엔 애초에 없었던 _____
없음으로 존재하는 _____
어떤 말로도 채워지지 않는 _____을
하염없이 바라만 본다 - 시인의 말

- 아무 일도 아닌 거잖아 - 엔딩의 서막

밤과 아침을 디졸브로 넘어가려 하지 말아 줘 섬광이 우리의 두 눈을 할퀴던 눈부신 발톱이었던 것처럼 거친 노이즈로 뒤 귀를 찢던 용기로 남아 있으려 하지 말고 먼저 일어서서 나가는 것이다 수없이 헛걸음치던 지도 속에서 펼쳐진 서막이 우리를 압도해서 우리의 발이 스스로 거기에 묶였던 것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도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아름다운 결말로 해석할 누군가를 위해 비극으로 파국으로 더 빨리 치닫게 내용은 건너뛰어 가는 것이다 단 하나의 정물로부터 단 하나의 형상을 단 하나의 형상에서 지울 수 없는 운율을 얻었지만 의미 없이 흐느끼고 의미 없이 웃으며 아무것도 아닌 듯 그저 말해 보는 것으로 쓸데없이 가득 채우고 텅 비어 가는 것이다 그토록 정교한 밤의 조각으로 조금씩 조심스럽게 쌓아 가던 대화가 표현할 수 없이 깊어지는 독백의 웅덩이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게
(전문)

- 나는 어떤 모종이었기에 어떤 흙에서도 자라지 못했을까? 허구의 잎. 그림자에 안겨 곤한, 몽상으로부터의 광합성.
빛을 받아 자라나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다 하나의 과오 - 고독은 나의 사여서-코타르 증후군 중

-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펼친다. "추상은 부재면서 고통이다. 그러니까 부재의 고통. 그런데 어쩌면 이건 사랑이 아닐까?"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나는 부재한다. 나를 애도한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부고를 쓰면서 나는 나와 작별한다. - 불빛을 지송하다 중

- 눈물이 아닐 때까지 슬픔을 쓴다면 마침내 수증기에 도달하겠지 그러나 쓸 수 없음이 우리의 마지막이어서 그 여름은 너를 다시 시작하고 나는 다시 시작된 여름 속에 있어 - 그 여름의 빗물이 빈 밥그릇에 고여 가는 - 교환할 수 없는 교환 일기 중

- 몰락한 세계에서 나는 이미 몰락했으므로 완전하다 이미 고독함으로 적막은 황홀하다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나를 전환한다 여기를 지속한다 머무르는 만큼 저장된다 - Reality -니트 아일랜드 중

- 창백한 불빛을 지나간다 웅얼거리는 눈보라를 따라간다 닿지 못할 목소리가 서성이고 있을 어디로 이어진지 모를 다리를 건너간다 숲과 지나가다 뒤돌아보면
알 수 없다 모른다는 것을 알 뿐
일몰을 보다가 오늘을 잊는다 - 기억은 기억되지 않는다 - 일몰 증후군 중

- 살아 있는 게 슬픔인 줄 모르고 죽음을 슬퍼하다 울다 그친다 가로등 깜박이는 풀밭에 앉아 깜박거린다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 나는 있다가 없다 없다가 있다 - - 몇 방울의 물로 너의 강에 닿을 중

- 출처 없는 숲을 거닐다

어쩌면 내가 아니면 네가 걷고 있다

시작 없이 생겨나 끝없이 사라지던 나는
어디서 얽힌지 모른 채 밝아 오던 너는

이미 사라진 장소로부터 날아온 한 마리 새일지도 모른다
금목서 은목서의 향으로 번져 가는 9월의 마지막 바람일지도 모른다

무엇이었든 모두 어제의 일이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들리지 않는 얕은 바람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무엇도 원하지 않는다

버리자

단 한 줄만으로도 삶이 되기에 한 줄에 깃들 것

출처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찾기 위해 숲을 뒤적인다

이것이 너의 목소리라면 너의 목소리만으로 견딜 만하다

파생된 것으로부터 파생되고 파생된 것으로부터 파생된, 끝끝내 하나로 인식되지 않는 나 너는,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면서 같이인 줄 모르게 있는, 결국 혼잣말일지도 모를 나 너는

앞선 문장에서 떨어져 나온 밀알을 주워 먹으며 오늘을 버티는 문장의 유령들. 삭아 내린 페이지를 복원하기 위해 떠도는 거친 입자들.

(전문)

- 너의 몸이 무너질수록 나는 오로지 네 몸의 수행자로서 존재한다. 그것은 하나의 몸이 삶과 죽음을 놓고 내리는 강력한 명령으로, 나를 처절하게 굴복시킨다. 그것이 나의 삶이라면 나는 이미 포기했을 것이다. 너의 몸을 움직이기 위해 내 몸을 움직인다. 한때 너의 것이었던 몸이 누구의 몸이 아닌 채로 너를 짓누르고 나를 짓누른다. - 106

-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추억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살아나 현재를 떠받친다. 추억 속에서 어린 날의 내가 얾은 너의 품속에 안겨 웃고 있다. 어쩌면 나는 이 기나긴 고통의 끝, 네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만은 추억의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네 눈앞에 펼쳐질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삶은 더 잃을 것 없는 우리에게 그 추억마저도 남겨 두질 않는다. - 108

- 죽음의 고비를 넘고 넘을 때마다 더욱 처참히 부서질 뿐이었던 날들...... 더는 무너질 것이 없을 때까지 무너져야 도달할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 죽음으로써 잃은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비로소 찾아온 죽음이었다. - 109

2025. jul.

#나의숲은계속된다 #김다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