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결정을 기다리며 읽었다.이 시집의 시들에 왜 이리 공감이 되나... 싶었는데후반에 실린 산문에서 '간병'과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공감의 이유라는 걸 알게 되었다.죽음을 기다리는 사람과 그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는 관계.누구에게도 즐거운 일이 아닌 고통.그 감정이 되살아 났다.고요한 여름밤에 개인적으로 무척 와닿는 시들이었다.- 잃었다고 하기엔 애초에 없었던 _____없음으로 존재하는 _____어떤 말로도 채워지지 않는 _____을하염없이 바라만 본다 - 시인의 말- 아무 일도 아닌 거잖아 - 엔딩의 서막밤과 아침을 디졸브로 넘어가려 하지 말아 줘 섬광이 우리의 두 눈을 할퀴던 눈부신 발톱이었던 것처럼 거친 노이즈로 뒤 귀를 찢던 용기로 남아 있으려 하지 말고 먼저 일어서서 나가는 것이다 수없이 헛걸음치던 지도 속에서 펼쳐진 서막이 우리를 압도해서 우리의 발이 스스로 거기에 묶였던 것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도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아름다운 결말로 해석할 누군가를 위해 비극으로 파국으로 더 빨리 치닫게 내용은 건너뛰어 가는 것이다 단 하나의 정물로부터 단 하나의 형상을 단 하나의 형상에서 지울 수 없는 운율을 얻었지만 의미 없이 흐느끼고 의미 없이 웃으며 아무것도 아닌 듯 그저 말해 보는 것으로 쓸데없이 가득 채우고 텅 비어 가는 것이다 그토록 정교한 밤의 조각으로 조금씩 조심스럽게 쌓아 가던 대화가 표현할 수 없이 깊어지는 독백의 웅덩이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게(전문)- 나는 어떤 모종이었기에 어떤 흙에서도 자라지 못했을까? 허구의 잎. 그림자에 안겨 곤한, 몽상으로부터의 광합성.빛을 받아 자라나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다 하나의 과오 - 고독은 나의 사여서-코타르 증후군 중-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펼친다. "추상은 부재면서 고통이다. 그러니까 부재의 고통. 그런데 어쩌면 이건 사랑이 아닐까?"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나는 부재한다. 나를 애도한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부고를 쓰면서 나는 나와 작별한다. - 불빛을 지송하다 중- 눈물이 아닐 때까지 슬픔을 쓴다면 마침내 수증기에 도달하겠지 그러나 쓸 수 없음이 우리의 마지막이어서 그 여름은 너를 다시 시작하고 나는 다시 시작된 여름 속에 있어 - 그 여름의 빗물이 빈 밥그릇에 고여 가는 - 교환할 수 없는 교환 일기 중- 몰락한 세계에서 나는 이미 몰락했으므로 완전하다 이미 고독함으로 적막은 황홀하다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나를 전환한다 여기를 지속한다 머무르는 만큼 저장된다 - Reality -니트 아일랜드 중- 창백한 불빛을 지나간다 웅얼거리는 눈보라를 따라간다 닿지 못할 목소리가 서성이고 있을 어디로 이어진지 모를 다리를 건너간다 숲과 지나가다 뒤돌아보면알 수 없다 모른다는 것을 알 뿐일몰을 보다가 오늘을 잊는다 - 기억은 기억되지 않는다 - 일몰 증후군 중- 살아 있는 게 슬픔인 줄 모르고 죽음을 슬퍼하다 울다 그친다 가로등 깜박이는 풀밭에 앉아 깜박거린다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 나는 있다가 없다 없다가 있다 - - 몇 방울의 물로 너의 강에 닿을 중- 출처 없는 숲을 거닐다어쩌면 내가 아니면 네가 걷고 있다시작 없이 생겨나 끝없이 사라지던 나는어디서 얽힌지 모른 채 밝아 오던 너는이미 사라진 장소로부터 날아온 한 마리 새일지도 모른다금목서 은목서의 향으로 번져 가는 9월의 마지막 바람일지도 모른다무엇이었든 모두 어제의 일이다자기 자신에게조차 들리지 않는 얕은 바람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무엇도 원하지 않는다버리자단 한 줄만으로도 삶이 되기에 한 줄에 깃들 것출처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찾기 위해 숲을 뒤적인다이것이 너의 목소리라면 너의 목소리만으로 견딜 만하다파생된 것으로부터 파생되고 파생된 것으로부터 파생된, 끝끝내 하나로 인식되지 않는 나 너는,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면서 같이인 줄 모르게 있는, 결국 혼잣말일지도 모를 나 너는앞선 문장에서 떨어져 나온 밀알을 주워 먹으며 오늘을 버티는 문장의 유령들. 삭아 내린 페이지를 복원하기 위해 떠도는 거친 입자들.(전문)- 너의 몸이 무너질수록 나는 오로지 네 몸의 수행자로서 존재한다. 그것은 하나의 몸이 삶과 죽음을 놓고 내리는 강력한 명령으로, 나를 처절하게 굴복시킨다. 그것이 나의 삶이라면 나는 이미 포기했을 것이다. 너의 몸을 움직이기 위해 내 몸을 움직인다. 한때 너의 것이었던 몸이 누구의 몸이 아닌 채로 너를 짓누르고 나를 짓누른다. - 106-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추억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살아나 현재를 떠받친다. 추억 속에서 어린 날의 내가 얾은 너의 품속에 안겨 웃고 있다. 어쩌면 나는 이 기나긴 고통의 끝, 네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만은 추억의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네 눈앞에 펼쳐질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삶은 더 잃을 것 없는 우리에게 그 추억마저도 남겨 두질 않는다. - 108- 죽음의 고비를 넘고 넘을 때마다 더욱 처참히 부서질 뿐이었던 날들...... 더는 무너질 것이 없을 때까지 무너져야 도달할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 죽음으로써 잃은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비로소 찾아온 죽음이었다. - 1092025. jul.#나의숲은계속된다 #김다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