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애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391
김이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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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을 쓰기엔 오래 전에 읽었다.
일단 플래그를 붙여둔 부분만 옮겨 적어 놓겠다.

- 눈이 와, 여긴 함박눈이야
네 목소리를 듣고
별안간 난
한 번도 함박눈을 맞아보지 못한 걸 알았어
평범한 기쁨을 떠나 있는 것 같아
엄청난 사태로부터도
늙은 시인에게서 사랑 없는 일생을 살았다는 말을 들을 때처럼 싱거운 얘기지 - 함박눈 중

- 문학적인 선언문을 쓰자는 말은
왕에게 속한 신성한 것을 그냥 불러서는 안 되는 폴리네시아 인처럼
은유로 도피하라거나
수사적 비유를 사용하라는 뜻은 아닐 텐데
나는 한 줄 쓰는 데 좌절하고 애통함에 무기력하다
그리하여 난 또다시 적의 문제로 적을 만들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시적이지 않은 시를 쓰며
시인답지 못하게 살다
문학적이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되길 빈다 - 문학적인 선언문 중

-그러니 이 시는 내가 쓴 게 아닙니다
내 안에 침묵한 당신은 내 말의 시작
이 시의 끝이고 한계 - 제가 쓴 시가 아닙니다 중

2024. jun.

#말할수없는애인 #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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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1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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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분노가 창작의 동력이라는 작가의 말에 수긍하게 되는 단편들이다.

끊임없이 바른 방향으로 향하는지 돌아보는 노력을 하는 작가라 좋다.

자신의 이야기엔 교훈이 없다고 말하지만,
모든 단편에 생각해야 할 지점들이 담겨 있고, 그것은 꽤 살아가는데 중요한 이슈들이다.

- 그는 모든 것을 후회하고 모든 것에 통탄했다. 그러나 마음 속에 간직한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가슴 찢어지는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그 막중한 책임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았다. - 52, 나무

- 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들 판단하겠는가. - 110, 가면

-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조용조용 목소리를 낮추어 오래전 같은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과 춤과 노래와 전쟁과 피와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두 검객의 칼은 창이 되기도 하고 활이 되기도 했으며 두 거인은 형제가 되기도 하고 오랜 벗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피눈물을 흩뿌리다 뒤따라 저승길을 택하는 결말만은 누구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땅 위에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살았고, 현재의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오래전의 사람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기쁨과 슬픔이 있었고 삶과 죽음이 있었으며 세상 모든 것은 그렇게 엮이고 겹치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로 형형색색 물들 때에야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 227, 산

2024. jul.

#아무도모를것이다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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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야가의 밤 - 각성하는 시스터후드 첩혈쌍녀
오타니 아키라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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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하고 맹렬하게 달려드는 여자 신도 요리코와 조직 보스의 딸 쇼코의 이야기.

모든 면에서 남성이 우선시 되는 세계에서 이 두 여성에게 일말의 도움을 주는 사람은 조직 안의 재일 한국인이라는 점도 무시 못 할 설정이다.

소수성을 가진 이들의 연대.

슬라브 민화의 마귀할멈 '바바야가' 엄청 강하고 사람들은 무서워하는 대상이나 여자아이가 간절히 부탁하면 도움을 주는 캐릭터라니 첩혈쌍녀 시리즈에 어울리는 캐릭터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소설.

- 시쳇말로 운명을 함께하는 두 사람이지만 서로에게 상대방은 어디까지나 남이라는 의식이 분명히 있었다. 두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 아니라 도망이다. 서로 으르렁거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만큼 애착이 깊다는 말이다. 쇼코가 만약 살해되기라도 하면 신도는 남은 인생을 다 던져 복수할 것이다. 쇼코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동기와 감정에는 역시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사랑은 아니다. 사랑하지 않으니 미워하지도 않는다. 미워하지 않으니 같이 있을 수 있다. 오늘도 내일도 내년에도, 아마 죽을 때까지도. - 171

2024. jun.

#바바야가의밤 #오나티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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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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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지극히 리얼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글을 읽는데 좀 지친 상태다.

그래서인지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들 임에도 큰 흥미를 끌지 못한 채 읽어버리기만 한 것 같다.

어디에선가 자신의 삶과 운명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 겨우 스물하나였던 나는 그게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내면의 균열이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예감은 하고 있었다. 상해야 한다면 돌이킬 수 없게 상하고, 다쳤다면 그 다쳐버린 상태를 내보일 수 있는 무른 마음을 갖는 것. 하지만 그때는 그런 마음의 형질을 헤아릴 수가 없었고 너울처럼 나를 덮는 나쁜 상태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 견고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 13,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 꼬마가 담장 너머로 홀짝 넘어간 뒤 더는 달아나지 않고 대치하면서, 기오성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이라고 말할 수 없는 여러 압력들이 생각난 그는 당황했고, 꼬마가 재차 묻고 나서야 페퍼로니에서 왔어, 라고 답을 했다고 했다. 페퍼로니가 뭐였는데요? 함께 출연한 게스트가 묻자 그는 글쎄요, 하더니 잠시 말을 끌었다. 그러고는 결국 아무 데서도 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라고 했다. - 160,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2024. jul.

#우리는페퍼로니에서왔어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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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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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품이라는데, 솔직히 주인공들의 색채가 얕아서인지 심심한 편이었다.

애초에 사형수의 원죄를 무엇 때문에 그토록 믿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

상해치사로 복역하다 출소한 준이치에게 유족에게 찾아가 사죄하라는 대목에선 으악하는 기분이 되었는데....
일본은 실제로 그렇게 하는 건가? 유족이 과연 가해자를 다시 보고 싶을지... 게다가 준이치는 사실 죽은 자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데...

난고가 자신의 직업 탓에 행한 사형실행에 대한 자책이 결국 죄인으로 수감되는 결론으로 이끄는 걸까? 그렇다면 너무 가혹하다.

어쨌든 내면의 방향이 조금 다른 이야기라 몰입이 덜 되는 경향이 있다.

- 법률은 옳습니까? 진정 평등합니까? 지위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나쁜 인간은 범한 죄에 걸맞게 올바르게 심판받고 있는 것입니까? - 367


2024. jul.

#13계단 #다카노가즈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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