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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스파이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4년 7월
평점 :
서사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이, 증언이 담겨있는 이야기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서사가 있긴 하지만...
언급되는 상황들마다 언급되었으니 필히 불행한 결말에 이르를 것이라는 근거 있는 짐작이 가능한 이야기라 내내 불안했다.
1등 국민, 2등 시민, 3등 노예 라는 계급적, 제국주의적, 인종차별적 기준이 일단은 가장 불편한 역사적 지점이고,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의 국민들이 오히려 피해자, 희생양 인양 한다는 점, 그 어처구니 없는 '신념'에 불편해진다.
일본 내 차별 이야기를 접할 때 늘 듣는 재일 조선인 이야기와 그와 더불어 알게 된 오키나와 인 차별에 대해 막연하게 세세한 그들의 속사정까지는 모르지만 '차별은 차별', '동류의 차별'이라고 대충 생각해오던 나 자신의 나이브함을 느끼게 된다.
재일은 오키나와에 비할 차별의 정도가 아니다 라는 깨달음.
피곤해진다. 이런 암울한 역사.
사과도 없고, 반성도 없는 그들을 보면.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책 커버의 이미지가 일본 작가 마루키 이리와 마루키 도시가 그린 <구메지마 학살2>의 부분도였다. 커버까지 유심히 살피는 일은 드문데 이 그림은 찬찬히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정말이지... 슬픔.
- 굶주린 천적들로부터 새끼 참새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단 하나, 인간뿐이다. 그런데 오늘 밤 섬 어디에도 인간은 없다. - 8
- 요미치는 자신이 일본인이자 일본 군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본토 출신 병사들과 격전지를 헤매며 자신이 오키나와인이라는 걸 절감했다. 집들과 가축들이 불타는 걸, 오키나와 주민들이 총알이나 폭탄을 맞고 참혹하게 죽어가는 걸 눈앞에서 보면서도 안타까워하지 않는 본토 출신 병사들에게 그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너희는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너희의 부모, 친형제가 아니지만 너희와 같은 인간이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며 처참하게 죽어가는 게 너희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거야?'
'전쟁이 끝나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 그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에 다시 사로잡힌다. - 92
- "아버지, 일본군은 미군을 이길 수 없어요."
"미군은 적군이야."
"본섬에서 일본군이 우리 오키나와인을 어떻게 학살하고 있는지 아버지가 모르셔서 그래요."
"일본군은 우리 오키나와를 지키려고 싸우고 있어."
"아버지, 일본군은 오키나와 땅을 지옥으로 만들었어요." - 132
- 조선인 고물상은 떨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운다. 그는 정작 이 섬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고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 걸 느낀다. 그는 이 섬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가 있다면 '조선인'이라는 것,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조세나지라(조선인 얼굴)를 하고 있는 것, 그것이 오키나와인으로 가득한 이 섬에서 용서받기 힘든 죄인 것이다. - 213
- 긴조는 일본이 전쟁에서 진 게 억울하면서도 뱀처럼 자신을 친친 감고 있던 공포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걸 느낀다. 그는 안도하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푹 수그리고 도축업자 뒤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진정으로 슬퍼하며 흐느껴 우는 아내 옆에서 거짓으로 흐느껴 운다. - 237
- 친척들은 내가 올바로 시집갈 수 없는 처지여서 조선인 남자와 살고 있다고 수군거렸지만, 내가 당신과 살고 있는 것은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믿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히데오의 친부가 찌그러뜨린 내 심장을 펴줬어요. 내 심장은 발로 마구 밟은 깡통처럼 찌그러져 있었어요. 여보, 나는 당신의 아내인게 부끄럽지 않아요. - 273
- 모르던 오키나와, 모르고 싶었던 오키나와.... 2023년 3월, 처음 오키나와를 찾았다. 태평양 전쟁 말기 조선인 위안부 위안소가 140여 개나 있었던 곳(그곳에 있었던 조선인 위안부는 1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인 군부 1만여 명이 인력으로 동원된 곳. 대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오키나와 땅에 묻힌, 그런데 존재했던 흔적조차 덮이고 잊힌 위안부와 군부들이 생생히 살아서 존재했던 장소들을 답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 오키나와 전쟁 당시 가장 끔찍한 집단 자결이 있었던 도카시키 섬의 생존자인 85세의 요시카와 요시카쓰 선생님께서 함께 식사를 하며 들려주신 말씀도 적고 싶다. 참혹하게 죽은 조선인 위안부들을 자신들의 섬에 묻어주며 주민들이 하셨다는 그 말씀을 나는 소설에 담기도 했다. "하늘과 바다는 이어져 있으니까 고향으로 돌아가." 영혼이라도 고향에 보내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 그 마음 덕에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더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무엇에 대해, 누구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 작가의 말 중
2024. aug.
#오키나와스파이 #김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