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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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 빛은 언제 사그라든 것일까?

예상치 못한 불행의 구멍에 빠진 남자.

불행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연민한다.

그를 제외한 세상 모두가 그를 내팽개친 것만 같고, 실제로 그러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갈수록 난 이 `오기`라는 남자를 점점 믿을수 없게 된다.

그는 자신 외에 누구에게라도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자신만을 변호하는 일관성.

그의 부모, 장인, 장모, 동료, 제자,

그리고 적어도 한 웅큼의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다가가려고 했어야 할 한 사람 그의 아내.

업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기의 불행은 분명 업일것이다.

비가시적이고, 물리적이지 않은 폭력에 대한 업 말이다.



초반부터 어? 이거 읽었던 단편아닌가? 했는데

<식물애호>라는 단편으로 시작된 이야기다.

결코 편치 않고 뒤숭숭한 기분이다.



그 밤의 빛은 지금 오기가 누워있는 병실만큼이나 밝고 환했다. 불빛 때문에 잠을 뒤척이더라도 침실의 형광등 역시 밤새 끄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새벽에 오기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전등이 모두 꺼져있었다.
도대체 그 빛은 언제 사그라든 것일까? - 28


2016.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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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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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 마저 그녀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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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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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다. 라는 단어가 주는 완결의 느낌.

이전에 시인의 시 한편을 낭독으로 들어 본 적이 있다.

낭독자의 목소리 톤이 그래서였는지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마지막 시집 <충분하다>를 읽고나니, 시인에게 남겨진 시간들이 과연 충분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열정적으로 생을 바라보는 시인에게 정말 충분했을까.

미처 다 쓰지 못한 시간들이...

마음에 와닿는 여러 시들이 있었는데, 유독 <신원 확인>과 <상호성>이라는 시가 콕 와서 박혔다.

폴란드라는 마음속에 뭐라 규정짓기 애매한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그 전엔 그저 쇼팽 뿐이었는데. ㅎㅎㅎ

이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추가.



존재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존재했다, 그래서 사라졌다.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 형이상학 중

꽤 오래전부터 그들에 관해 쓰고 싶었지만,
워낙 복잡한 주제라
계속 훗날로 미뤄왔다.
어쩌면 나보다 더 뛰어나고,
세상에 관해 더 많이 경탄할 줄 아는 시인에게 적합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절박하다. 그래서 쓴다. - 마이크로코스모스 중

2016.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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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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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이 출간되었다.

무척 좋아하는 작가라서, 매번 새 작품을 기대하고, 이미 씌여진 작품을 다시 읽고,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을 책장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두고 아끼며 읽기를 미루게 된다.

아직 읽을 작품이 남아있다는 데서 오는 아이러니한 안도감이랄까.

이 책도 사면서 나중에 읽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예약판매가 뜨자마자 주문했다.

그 사이 작가는 유명한 상을 하나 수상했고, 언론은 새삼스럽게 그녀를 조명했다.

그 새삼스러움이 작가에게는 참 안어울리는 구나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생각난 김에, 포털창에 한강이라는 이름을 쳐보았는데, 수상 소식을 제외하면 여전히 김포한강아이파크나, 한강 둔치 주차장 같은 것들이 상위에 자리한다.

이것도 역시 뭔가 되게 그답게 느껴져서 또 한번 웃음이 난다.

<흰>이라는 책은 그 자체로 작가와 닮은 듯하다.

작가에게 색이 있다면 바로 이 색일것이라는. 가만가만 차분한 목소리도 어쩌면 흰 색의 목소리같다는.

읽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지고, 순식간에 읽어버린 몰입도도 있고.

그 고요한 흰 색들 안에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돌풍도 있다.

미처 날이 밝아오기 전 새벽에 읽기 아주 좋았다.

익숙하고도 지독한 친구 같은 편두통 때문에 물 한 컵을 데워 알약들을 삼키다가 (담담하게) 깨달았다. 어딘가로 숨는다는 건 어차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 11

누군가가 - 아마 그동안 이 집에 세들었던 사람들 중 하나가 - 송곳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그 문의 표면을 긁어 숫자를 기입해놓았다. 획순을 따라 나는 곰곰이 들여다보았다. 세 뼘 크기의 커다랗고 각진 3. 그보다 작지만 여러 번 겹쳐 굵게 그어 3보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0. 마지막으로 가장 깊게, 온힘을 다해 길게 긁어놓은 1. 난폭한 직선과 곡선들의 상처를 따라 검붉은 녹물이 번지고 흘러내려 오래된 핏자국처럼 굳어 있었다. 난 아무것도 아끼지 않아. 내가 사는 곳, 매일 여닫는 문, 빌어먹을 내 삶을 아끼지 않아. 이를 악문 그 숫자들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얻으려 하는 방, 그 겨울부터 지내려 하는 방의 문이었다. - 15

엉망으로 넘어졌다가 얼어서 곱은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던 사람이, 여태 인생을 낭비해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씨팔 그 끔찍하게 고독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게 뭔가, 대체 이게 뭔가 생각할 때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 - 54

상처가 없는 발이어야겠지, 사진을 들여다보다 그녀는 생각했다. 곱게 아문 두 발이라야 거기 얹을 수 있다, 그 소금 산에. 아무리 희게 빛나도 그늘이 서늘한. - 68

어떤 기억들은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그게 모든 걸 물들이고 망가뜨린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 83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 128

2016.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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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린저 평전 - 영원한 청춘의 상징,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케니스 슬라웬스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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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득 나는 왜 샐린저에 대한 이미지와 기대치가 이렇게나 낮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뭐 다른 누군가와 혼동하고 있는게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낮음 상태로 읽기 시작했는데,

과연 나는 샐린저를 누군가와 혼동하고 있기도 했고, 그다지 기대치가 높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도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독서체험.

호밀밭의 파수꾼 말고 뭐 있나? 하는 마음이었을까? 실제 그 책 말고 다른 건 아직 읽어보질 않기도 했고...

그런데 600페이지가 넘는 이 상당한 분량의 평전을 읽고 마음이 조금은 돌아선다.

많지 않은 샐린저의 작품을 심도있게 분석했고, 그의 생과 그의 은둔에 대해서도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말 그대로 평전 다운 평전. 정말 잘 써진 평전이다.

그저 예민한 감성의 뉴욕 작가라는 이미지였는데,

자신에 대한 확신과 의심을 동시에 품는, 섬세하고 불안한, 세상에 있지만 거기에 속하지 않은 존재로 업그레이드 되어 짠하고 나타났으니 말이다.

1941년부터 가닥을 잡고 작업해 1950년 완성된 대표작. 호밀밭의 파수꾼.

성인이 된 이후 늘 홀든 콜필드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원고를 품고, 전쟁을 겪어낸 후 돌아와 완성한 작품.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아 결국엔 작가에겐 족쇄가 되어 버리는 작품.

밀려있는 책이 산더미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시 한번 읽어야 겠다.




이제껏 그는 집과 거리를 두려고 했었지만, 참전을 계기로 가족을 하나로 묶어 주는 근원적인 힘을 알게 되었고, 가족 구성원 사이의 일상적이면서도 복잡한 역학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세계를 한 번 떠나 버리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이제 흩어지고 사라져 버릴 시대, 집과 단순한 아름다움이 있던 그 세계가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전쟁 초기 때부터 이미 샐린저 안의 무언가는, 세상이 곧 순수함을 잃게 되리라고 감지하고 있었다. - 79

홀든이 센트럴파크에서 회전목마를 보며 얻은 통찰은, 샐린저가 자신의 전쟁 상처를 치유한 것과 같은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둘 다 입을 닫고, 그 깨달음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 문장인 ˝누구에게든, 무슨 이야기든 하지 말기를. 그러면 모든 이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할 테니까.˝를 읽을 땐 샐린저와 2차 세계대전을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전사자들도. - 203

1946년 후반 샐린저의 작품에 나타난 두 가지 경향이 주목을 끈다. 공통적으로 전쟁에 뿌리를 둔 그 두 요소는, 신비주의적 경향과 자신의 직업적 글쓰기가 그 자체로 영적인 활동이라는 확신이었다. - 222

<호밀밭의 파수꾼>은 많은 독자들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미국 문화의 흐름을 바꿨고, 세대를 초월한 시대정신을 규정했다. 샐린저는 소설의 첫 문장에서부터 독창적이고 자유분방한 홀든 콜필드만의 현실을 보여 주는데, 미국 문학에 나타난 의식의 흐름 기법 중 가장 훌륭한 예다. - 294

그는 어른들의 사회를 경멸하고 거기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의 소외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홀든의 경멸이 꼭 어른들만을 향한 것은 아니다. 그는 또래의 젊은이들도 똑같은 속물들이라고 생각한다. 홀든의 문제는 사실 살아 있는 사람들, 순수했던 동생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그 삶을 계속 이어 가는 사람들과의 문제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삶의 질을 자신의 기준이 아닌, 동생 앨리의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홀든이 직면한 도전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스스로 가치 체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 299

2016.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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