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고요히
김이설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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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

압도적으로 빨아당기는 이야기. 상당히 클리셰이긴 한데 그럼에도 압도적인 뭔가가 있다.

대물림되는 폭력과 적자생존. 음습한 새벽 낚시터의 비린내가 고스란히 느껴져와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블루길이나 배스가 토종 물고기를 박살낸 외래 어종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곤 꼭 덧붙였다. 버텨 살아남은 놈이 주인이 되는거야. 알겠어? - p. 14

노파들은 혀를 찼다. 내 손으로 네 아비 밥 끓여 먹였는데, 그놈 자식까지 내가 먹여. 나는 노파들이 하는 말이 듣기 싫었다. 죽지 않도록 살려주는 게 싫었다. 내 가족사를 꿰뚫고 있는 늙은 여자들의 기억이 고맙지 않았다. - p. 28


부고...

두 번의 부고와 다섯번의 죽음 덕에 장마철의 공동묘지같은 분위기가 그려진다.

한 사람의 아집으로 허물어진 가족이라는 공동 운명체가 한국 사회에선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닐것이다.

결국은 이해받고 감싸 안아주는 것은 유사한 고난을 겪은 생존자들 뿐인 것일까.

글의 분위기도 그렇지만, 고립감, 외로움. 이런 여운이 길게 남는다.



폭염...

트럭을 몰다 죽은 남편을 따라 운송업에 뛰어든다는 일.

그 일로 고된 생을 간신히 꾸려 나가는 일.

결국 되돌아오는건 세상의 차디찬 시선 뿐이라는 일.

푹푹 찌는 어느 여름날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받아드리는 일.


울고 싶으면 더 울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슬픔을 대신 덜어줄 순 없다. 대신 앓을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도 없듯이, 온전히 자기 혼자 버텨내야 했다. - p. 89

뺨을 때려도, 고함을 쳐도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의 손목을 수건으로 감싸고, 있는 힘껏 쥐었다. 그 순간, 아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두 팔에 안긴 아이의 무게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죽지 마, 나 혼자 두고 죽지 마. 너, 이대로 죽으면......˝
나는 아이를 더 세게 안았다.
˝나도 따라 죽을 거야.˝
그렇게 되뇌니, 세상처럼 마음도 고요해졌다. - p. 109



흉몽...

차라리 흉측한 꿈이라고 믿고 싶어질 현실. 아... 김이설 이런 작가였어? 싶다.

아주 극한의 극한. 바닥까지 다 드러내고도 사람을 미치고 팔짝 뛸 지경까지 몰아부치는 힘.


어쩔수 없다는 건 언제나 한계를 마주하는 일이었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건 도망칠 데가 없다는 의미였고, 도망쳐서도 안 된다는 뜻이었다. - p. 130

한파 특보...

툭 까놓고 말해서, 여자 나이 마흔이면 결혼 안 쉽다. 서로 허물 보듬어주면서 사는 거야.
나이 먹은게 왜 허물이에요?
옆에 있던 수학이 발끈했지만 나는 그냥 슬쩍 웃었다. 나이 많은게 왜 허물이 아닌가. 그보다 더 큰 허물이 어디 있다고. - p. 153


내가 이렇게 다채롭다!라며 전시된 불행들이 너무 현실적이라서

차마 단숨에 읽지 못했다.

절대로 마음에 드는 내용들은 아니지만,

분명하게 마음에 남겨지는 이야기.

끔찍한 현실들이 한권안에 빼곡해서 더 묵직했나보다.


2016.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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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보내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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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숨결 - 개정판
로맹 가리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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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의 주간인가...

두권으로 일단 마무리 짓고 밀린 한국 문학을 읽으려던 계획을 뒤로 하고, 미발표 유작 모음집을 들었다.

`숨가쁘게`라는 원제를 살렸으면 좀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우선 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유작, 특히나 미완성 유작을 출판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회의감? 같은게 있는데.

아무래도 글로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는 작가에게 미완성 작품이란 것은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일기 같은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나라면.. 싫을것 같아서.

시간이 좀 지났지만 전에 읽었던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으면서 느낀 탈고 전 혼돈의 원고를 마치 훔쳐본 것만 같았던 죄의식과 으악..함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러나 미완이라는 단편 <마지막 숨결>과 <그리스 사람>은 초고이지만 자체로 완결성을 갖춘 느낌이랄까. 뭐 작가의 생각은 영 다를 수도 있겠지만.

7편의 단편들은 인생의 어떤 면을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캐릭터들 내면은 케케묵은 고통들이 존재하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겠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도 우울에 가깝다.

그래서 또 한번 인간 로맹 가리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아.. 이 우울한 양반. 삶의 살아내는 내내 외로웠을 것만 같다.

아직 책장에 대기 중인 다섯 권 정도의 로맹가리와 에밀아자르가 남아있는데.

아무래도 좀 쉬어야 할까보다. 내 생에도 우울이 전염될 우려가 있다. 안그래도 몇 주간 충분히 우울했는데.

작품간의 발표 시기가 1935년 부터 70년 까지 광범위해서, 스타일이랄까 그런 면이 들쭉한 면도 없지 않다.

짚고 넘어가자면,

<마지막 숨결>은 월등히 좋았다.


사실 내가 알던 사람 가운데 개인적인 이유로 살인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세대가 어쩌면 그 문제에 관해 지나친 환상을 품어왔으며, 인간 존재가 낭만적이고 시적인 개념이며 현실에 맞서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예술적인 창조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누군지에 대해 전혀 관심 갖지 않는 암살자를 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 p. 73 마지막 숨결 중.


뭘 해서 먹고 사냐니? 그건 정말 어이없는 질문이다. 당신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건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질문이다. 그 질문은 삶 자체를 하찮은 것으로 만든다. 만약 이렇게 말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 질문은 삶을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낸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또다른 공물을 지불해야 한다는 듯이. - p. 161 그리스 사람 중.

2016.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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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을 습관화하면 이거 차리는데 십분쯤 걸림 ㅋㅋㅋ 한끼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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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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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부연되어야 할 것같은 기분이 계속되니 이 책을 안 읽을 수가 없게 된다.

애잔하고 역설적이기로 치면 외딴 바닷가에서 펼쳐지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비할 수 없고, 정교한 세공을 자랑하기로는 `류트`를, 진정성과 유머를 담은 문학적 비망록으로는 `새벽의 약속`을 당할 수 없으며, 감동으로 치면 `자기 앞의 생`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고, 작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로는 도미니크 보나의 전기 `로맹 가리`에 미치지 못하는 이 책.(옮긴이의 말 중)

이라고 소개된 이 책을 말이다.

일생을 정체성을 찾아 방랑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작가이기에, 이 소설(이라지만 자전적 회고?에 가까운) 안에서의 병적인 자기 분열이 충분히 이해되는 바이다.
철저히 가면을 쓴 세상 속에서 위장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실상(p.10)이라고 선언하는데 말해 뭐하겠는가.

지속적인 이명을 만들어 자신 위에 또다른 자신을 덧씌우는 과정이 페르난두 페소아를 떠오르게도 한다.
로맹 가리도 정치적인 입장과 끊임없는 자기 부정의 과정에서 분열적 자아를 창조해내는 것이었을까?

작가적인 자존감이 엄청난 사람이었음에도 틀림없고, 그 만큼 남들의 이목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셀럽이었음에도 틀림없다.
이 둘 사이에서의 고뇌가 익명에 대한 염원?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환각과 현실이 혼재하는 글안에서 무엇을 믿고 이해해야 하는지가 난감할뿐.

그래서 다 읽고 난 후에도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소설로`만` 읽어야 할지.


나는 익명으로 남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익명의 시골 익명의 마을에서 익명의 여자와 익명의 사랑을 나누어 역시 익명의 가족을 이루고 익명의 인물들을 모아 새로운 익명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 들어가는 말

내게는 타고난 언어감각이 있다. 침묵에 귀를 기울이면 침묵의 말까지 알아들을 수 있다. 침묵은 특히 끔찍한 동시에 가장 알아듣기 쉬운 말이기도 하다.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 울부짖는 말이야말로 무관심 속으로 떨어져 아무도 듣지 않는다. - p. 19

두번째에다 다시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을 썼다. 그 편이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서명하고 체념해버렸다. 이제 그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 일은 나를 매혹시켰다. 위장꾼, 허풍쟁이, 편집광, 그리고 과대망상증 환자까지 된 것이다. 나는 이제 안전했다. - p. 79

성냥하나에 불을 붙이자마자 내 환각은 사라지고 그 대신 그리스도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의 옆에는 모모, 다시 말해서 구트 도르 가의 유태계 아랍 꼬마 모하메드가 있었다. 구트 도르, 구트 도르, 구트 도르, 그러니까 알다시피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그 구트 도르가 말이다. 무엇이 인종차별주의인지, 무엇이 유태인 배척주의인지 모르는 이들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인종차별적인 동시에 유태인 배척적이라고 한다. 그들이 유태인 배척주의나 인종차별주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법이다. - p. 82

넌 광장한 재능이 있어.
아마 유전일 거예요.
그가 시가를 빨았다.
네 작품에 대한 평이 무척 좋아.
내가 아니라 내 책을 좋게 평한 거죠. 사람 자체가 쓰레기라도 좋은 책을 쓸 수는 있으니까요. - p. 108

나는 비단뱀이 되었다가 그다음에는 어딘가에 덜 소속되기 위해 책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통제하고 장악하고 저작권을 챙겼다. 내 안에는 서로 싸우는 두 사람, 내가 아닌 인물과 내가 되고 싶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 죄의식은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며 줄곧 나를 압박했고, 주위에서는 일상성과 익숙함이 계속되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서 좀 더 멀어지기 위해 날마다 나 아닌 존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 p. 154

2016.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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