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린저 평전 - 영원한 청춘의 상징,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케니스 슬라웬스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문득 나는 왜 샐린저에 대한 이미지와 기대치가 이렇게나 낮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뭐 다른 누군가와 혼동하고 있는게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낮음 상태로 읽기 시작했는데,

과연 나는 샐린저를 누군가와 혼동하고 있기도 했고, 그다지 기대치가 높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도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독서체험.

호밀밭의 파수꾼 말고 뭐 있나? 하는 마음이었을까? 실제 그 책 말고 다른 건 아직 읽어보질 않기도 했고...

그런데 600페이지가 넘는 이 상당한 분량의 평전을 읽고 마음이 조금은 돌아선다.

많지 않은 샐린저의 작품을 심도있게 분석했고, 그의 생과 그의 은둔에 대해서도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말 그대로 평전 다운 평전. 정말 잘 써진 평전이다.

그저 예민한 감성의 뉴욕 작가라는 이미지였는데,

자신에 대한 확신과 의심을 동시에 품는, 섬세하고 불안한, 세상에 있지만 거기에 속하지 않은 존재로 업그레이드 되어 짠하고 나타났으니 말이다.

1941년부터 가닥을 잡고 작업해 1950년 완성된 대표작. 호밀밭의 파수꾼.

성인이 된 이후 늘 홀든 콜필드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원고를 품고, 전쟁을 겪어낸 후 돌아와 완성한 작품.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아 결국엔 작가에겐 족쇄가 되어 버리는 작품.

밀려있는 책이 산더미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시 한번 읽어야 겠다.




이제껏 그는 집과 거리를 두려고 했었지만, 참전을 계기로 가족을 하나로 묶어 주는 근원적인 힘을 알게 되었고, 가족 구성원 사이의 일상적이면서도 복잡한 역학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세계를 한 번 떠나 버리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이제 흩어지고 사라져 버릴 시대, 집과 단순한 아름다움이 있던 그 세계가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전쟁 초기 때부터 이미 샐린저 안의 무언가는, 세상이 곧 순수함을 잃게 되리라고 감지하고 있었다. - 79

홀든이 센트럴파크에서 회전목마를 보며 얻은 통찰은, 샐린저가 자신의 전쟁 상처를 치유한 것과 같은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둘 다 입을 닫고, 그 깨달음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 문장인 ˝누구에게든, 무슨 이야기든 하지 말기를. 그러면 모든 이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할 테니까.˝를 읽을 땐 샐린저와 2차 세계대전을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전사자들도. - 203

1946년 후반 샐린저의 작품에 나타난 두 가지 경향이 주목을 끈다. 공통적으로 전쟁에 뿌리를 둔 그 두 요소는, 신비주의적 경향과 자신의 직업적 글쓰기가 그 자체로 영적인 활동이라는 확신이었다. - 222

<호밀밭의 파수꾼>은 많은 독자들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미국 문화의 흐름을 바꿨고, 세대를 초월한 시대정신을 규정했다. 샐린저는 소설의 첫 문장에서부터 독창적이고 자유분방한 홀든 콜필드만의 현실을 보여 주는데, 미국 문학에 나타난 의식의 흐름 기법 중 가장 훌륭한 예다. - 294

그는 어른들의 사회를 경멸하고 거기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의 소외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홀든의 경멸이 꼭 어른들만을 향한 것은 아니다. 그는 또래의 젊은이들도 똑같은 속물들이라고 생각한다. 홀든의 문제는 사실 살아 있는 사람들, 순수했던 동생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그 삶을 계속 이어 가는 사람들과의 문제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삶의 질을 자신의 기준이 아닌, 동생 앨리의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홀든이 직면한 도전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스스로 가치 체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 299

2016.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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