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그의 법명은 '현소심(玄素心)'이었다


    


 

김형경씨의 소설에 대한 기억을 따라 올라가면 군 생활의 막바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의 겨울이 딸려 나온다. 강원도의 추위는 매서웠다.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야 할 만큼 조심스러운 말년 병장의 시절. 하루하루의 시간은 너무나 길었고 지루했다. 그 시절에 뜻하지 않게 만난 것이 바로 장편 「세월」이었다.
매케한 석탄 가스를 뿜어대는 페치카 옆에 웅크리고 앉아 「세월」을 읽었다. 분명 활자에 그리고 이야기에 목말랐을 게다. 그렇게 김형경이란 이름은 나와 첫 대면을 나눴고, 수년을 뛰어넘어 지난 토요일 사진으로만 바라봤던 그와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는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놓여 있었다.

1000매의 정신분석, 모험을 감행하다


"이번 소설은 막바지 작업이 다급하게 진행된 탓도 있겠지만 글쓰는 일이 직업이다보니 매번 새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설레거나 특별한 소감을 갖게되지는 않아요."
3년만에 전작 장편을 내놓은 작가의 첫마디치고는 정말 싱겁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아예 할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2,600매 중에서 1,000매 가량을 주인공의 정신분석치료 장면으로 채웠는데, 일종의 모험이었죠. 그 과정을 읽어가면서 독자들도 자신들이 안고 있는 심리적인 장애나 어려움을 함께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랬으니까요."
1,000매의 정신분석치료 장면의 주인공은 바로 '세진'이다. 세진의 직업은 건축가. 건축사무실의 밑바닥에서 시작해 당당한 전문 직업인으로 대접받는 성공한 30대의 여성이다. 매사에 빈틈이 없어 보이고 묘한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세진은 이성적이고 당당한 겉 모양새와는 달리 내면에 복잡한 상처와 아픔을 숨겨둔 그런 여성이다.
세진에게는 일종의 분신과도 같은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인혜'. 학창시절 함께 자취를 했을만큼 가까웠던 사이였지만 세진의 마음이 견고하게 닫혀 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각자의 길로 떠나야 했던 그런 친구다.
그렇게 십년간의 떠도는 풍문에 의지해 서로의 안부를 듣던 두 친구는 '오늘의 여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준말인 '오여사'라는 모임의 결성식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 그 즈음 세진은 심한 정신적 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어두운 과거와 고통스러운 만남을 갖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과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랑의 결핍과 성폭행, 그 때문에 자라난 이성적이고 강력한 자기 방어 의식들. 그 견고한 틀을 조금씩 깨고 나온 세진은 이제까지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던 허울을 벗어버리고 '야하고 뻔뻔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여행길에 오른다.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인혜도 마찬가지. 세진과의 이별 후 한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감행했지만 남자의 성 불능에서 오는 폭력과 음주를 견디지 못해 이혼하고 말았던 것. 그 대신 인혜에게 남은 사랑이란 삶을 생기 있고 역동적이게 하는 일종의 게임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인혜의 이런 의식은 진웅과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고, 성적 장애를 가진 진웅에게서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그가 가진 사랑에 대한 순수함과 열정에 새롭게 동화되기 시작한다.

    



'성'의 코드로 정체성을 찾아간다

 "성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가장 본질적인 코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성 불능은 곧 억눌린 무의식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결국 억눌린 무의식은 분열된 자아로 나타나고 짐짓 욕망하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자신을 기만하고 만다. 욕망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결핍의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인 사랑의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상처와 갈등을 만들어 내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상실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주인공인 세진과 인혜가 과거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그 안에 억눌려 있던 자아를 마침내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은 억눌렸던 욕망의 이면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과정인 동시에 그동안 잊어왔던 자신의 정체성을 비로소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동전의 양면은 서로에게 어떤 위협이나 억압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존재하고 있잖아요.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정체성과 사랑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 모두를 포용하는 보다 큰 인간의 문제로 다가서고 있는 셈이지요."
이제 제목이 담고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 비로소 드러난 셈이다.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그 무엇, 내면에 엄연히 도사리고 있지만 결코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바로 선택을 결정하는 '특별한 기준'으로 우리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또 그 작용이 원활할 때 비로소 결핍의 충족과 함께 정체성에 대한 완결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 이제야 비로소 '나를 숙일 수 있는 마음으로 종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김형경씨는 자신의 법명이 '현소심(玄素心)'이라고 귀뜸한다. 한자의 뜻 그대로를 옮겨 보면 '검고 흰 마음'이 된다. 하나의 마음 안에 검고 흰 두 가지 속성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삶이라는 것은 이렇게 상반된 양면성을 고스란히 인정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이어가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와 작별하고 돌아서는 순간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언뜻 낯설지만 익숙한 얼굴 하나가 스쳐지나간다. 짐짓 모른척 발길을 돌려보지만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영하의 체감온도를 기록한 비오는 오늘. 그 낯설고 익숙한 얼굴의 또 다른 '나'는 어느 동네 어느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1,000매의 처방전을 읽고 난 지금도 그 낯설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내 안의 억눌린 욕망이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일까?

 

- 웹진 부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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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안 에르보



안느 에르보는 1976년 벨기에 위클리에서 태어났다. 왕립 브뤼셀 미술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를 전공했고, 1997년에 첫 번째 단행본 <보아 뱀>을 출간했다. 이후부터 에르보는 자국 내에서 수여하는 도서상을 휩쓸었다. <나의 어린 왕자>로 프랑스어 작품상을 받았고, 1999년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로 볼로냐 어린이 그림책 부문 예술상을 수상했다. 에르보는 부드럽고 시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지만 실제 작업에 들어가면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하다. 그녀는 높은 감성으로 그레용과 연필, 수채화 물감과 꼴라주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넘나든다. 또한 문법을 배우기 위해 다양한 연수와 현장 실습도 마다하지 않는다. 에르보는 깨어있는 호기심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책을 창작해 왔다. 지난 이년간 <에두아르와 아르망> 시리즈 세 편을 완성했고, <가벼운 공주> <파타프는 적이 많아요> <엄마는 작아질 거야> 등 다수의 책을 쓰고 그렸다. 국내에는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 <파란 시간을 아세요?>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 <작은 걱정> 등 총 다섯 권이 번역 출판되어 있다. 에르보는 현재 그림책 작업과 동시에 일러스트레이션 교사로 일하고 있다.


이야기 실을 되찾은 마녀, ANNE HERBAUTS

안 에르보는 아름답고, 감각적이고, 세련된 그림책을 쓰고 그린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을 해석해 놓는 실력이 놀랍다. 낮과 밤 사이를 '파란 시간' 이라 하고, 정해진 시간을 엄수하는 '꼬박꼬박 아저씨'가 시간을 어기고, '늘그렇듯 씨'가 이름과 달리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은 에르보가 생활 속 틈새에서 발견한 이야기이다. 에르보는 다양한 판형을 적절히 활용하며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탁월하게 그리고 있다.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부드럽고 따뜻한 선

안느 에르보(1976~)는 브뤼셀 미술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를 전공했고, 글쓰기와 그래픽 디자인 등 출판에 필요한 지식을 배웠다. 비교적 어린 작가인 것을 감안하면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에르보는 넘치는 재능과 놀라운 상상력으로 다양한 그림책을 창작해 왔다. 첫 번째 단행본 (보아 뱀)에 나온 에두아르와 아르망은 이후 시리즈물로 연결되었다. 처음 만든 캐릭터가 계속 등장하는 것에서 그녀가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우수를 담은 듯한, 사색에 잠긴 듯한 키다리 인물과 귀여운 상상력이 가미된 괴물은 한 눈에 에르보를 알아보게 한다. 길고 가느다란 선, 작은 머리, 마르고 긴 팔 다기, 커다란 몸통, 이 모든것이 그녀를 대신한다. 그녀는 해와 달, 낮과 밤, 하늘고 구름 등 주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을 소재로, 부드럽고 따뜻한 곳선을 이용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완성시킨다. 에르보는<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 이나 <엄마는 작아질 거야>처럼 부드러운 선에 몽환적인 색조가 어우러진 작업을 선보였다.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것 또한 그녀스타일이다. 푸르스름하고 불그스레한 색조가 만드는 화풍은 그녀를 확실히 기억하게 만든다.


<파란 시간을 아세요?>



앨리스, 앨리스

에르보는 지난 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그리기도 했다. 창작 그림책 위주로 작업한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선택이었다. "카스테르만 출판사에서 제게 명작 일러스트레이션을 해 보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앨리스!'라고 대답했습니다. 루이스 캐럴 문학을 잘 모르지만 그가 상상한 세계는 무척 매혹적입니다. 저는 영어로 된 원본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막연히 이해하고 그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있게 들어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저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연결시켜 그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작을 완벽하게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언니와 상의하면서 앨리스가 경험한 것을 저의 세계, 제가 해석한 이미지, 프랑스어의 보석같은 유희로 다시 쓰고 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린 루이스 캐럴이 일상과 옥스퍼드 시절에서 보편적이고 영원한 세계, 부조리하지만 논리적인 세계를 영국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에르보는 자기 문화에 맞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완성시켰다. 이 책에서 그녀는 텍스트를 분석하듯 이미지와 색을 깊이 있게 풀어 놓았다.





철학이 담긴 그림책

에르보는 놀라우리 만치 정확한 관찰력으로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형상화 시켰다. <파란 시간을 아세요?>에서 그녀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그렸다. 원제는 <텅빈 시간> 불을 켜기에는 너무 밝고 책을 일기에는 너무 어두운 파란 시간 이야기이다. 에르보는 태양 왕(남자)과 밤의 여왕(여자)을 보여주며 시간을 낮과 밤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하루가 정확히 둘로 나쥐지 않는 것에 착안하여 낮도 밤도 아닌 시간을 '파란 시간'이라 불렀다. 해가 뉘엿 뉘엿 지는 이른 오후와 어스름한 새벽은 파란 색과 잘 어울린다. 책 속에서 파란 시간은 정체불명 인물로 말이 없다. 에르보는 이 어중간한 시간을 머리는 빛이 가득하고 몸통은 어둡게 표현했다. 그녀가 지은 이야기에는 종종 전능한 힘을 가진 인물과 나약한 인물이 대비되는데, 부모와 아이를 상징할 때가 많다. <파란 시간을 아세요?>에서도 막강한 힘을 가진 태양 왕과 밤의 여왕은 부모로, 이곳저곳에서 내쫓김 당하는 파란 시간은 아이로 그려지고 있다. 시간이라는 소재를 조금 다르게 해석한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똑같은 일을 꼬박꼬박하는 아저씨가 등장한다. 어느 날 아저씨를 빼쭉이를 만나 '꼬박꼬박 하지 않은'하루를 보낸다. <이상한 나무>가 원제인 이 이야기에서 아저씨와 빼쭉이는 커다란 방울, 멈춰버린 회중시계, 먹음직스런 살구, 쓴 사과, 마법 달걀이 달린 이상한 나무를 발견한다. 이를 통해 둘은 음악, 시간, 사랑, 슬픔, 상상으로 가득 찬 세상을 발견하며 새로운 오늘을 경험한다.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에르보느 밤이라는 시간을 소재로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를 선보여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주인공 달님은 온몸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하늘에 별을 그리는 일이 즐거운 달님, 누가 깰까 조심조심 걷는 달님, 힘센 병사처럼 악몽을 쫒는 달님,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하는 달님 등 이야기하기 어려운 개념을 에르보는 섬세하게 그려냈다. 아이가 걱정하는 데서 착안한 <작은 걱정>은 아기 곰 악쉬발드가 느끼는 걱정을 구름으로 표현한 멋진 작품이다. 실제로 아이들 걱정은 어른의 그것과 달리 적당히 넘어갈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 걱정도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지이다. 에르보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지 않는 구름을 통해 아이들 걱정을 절묘하게 그렸고, 아름다은 색채로 가득한 감동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남겼다. 더욱 놀라운 것은 <파랑 시간을 아세요?> <작은 걱정>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무형의 시간과 걱정은 에브로에 의해 완벽하게 의인화된다. 관념적인 개념이 사람으로 바뀐것을 독자는 전혀 깨닫지 못한다. 정형화하기 어려운 개념이 쉽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 그림책 작가가 된 계기 ? - 중 고등학교때 수업이 끝나면 미술학원에 갔습니다. 브뤼셀에 있는 오뤼에 셍 피에르 학원이었는데 방과 후에는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후 4년 동안 브뤼셀 미술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를 전공했습니다. 우연히 카스테르만 편집자 눈에 띄어 졸업과 동시에 그림책을 낼 수 있었고, 그 때를 인연으로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 작품 속에 등장하는 키다리 주인공에 대해 ? - 국적도 없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망토를 두른 듯한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단순하고 연약하면서 어딘가 부자연스럽습니다. 네 키가 커서 그런지 작품 속 등장인물은 연약하고 길쭉한 채로 이야기 속을 산책하고 합니다.

☞ "시간"이라는 소재를 즐겨 사용하는데.. ? - 시간은 제가 특히 좋아하는 소재중 하나입니다. 저와 시간은 이상한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시간이 저를 엄청나게 괴롭히기도 하고, 제가 시간에 대해 기준이 없기도 합니다. 가끔은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초연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미지와 텍스트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고, 잡을 수 없는 것을 움켜쥐고, 보이지 않는 것에 깊이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시간은 여기에 알맞은 소재입니다. 오브제인 책 또한 시간의 장소입니다. 독서하는 시간, 한 페이지씩 넘어가는 과정, 이미지 속 여행 등을 생각해 보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리듬을 거치며 만들어지는데 그 역시 시간의 일부입니다.

☞ 글 그림 작업에 순서가 있다면 ? - 글과 그림 모두 중요합니다. 저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시에 구상합니다. 떠오르는 문장과 색각을 적는 동시에 이미지도 간단하게 그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점차 이미지와 텍스트 윤곽을 잡아갑니다. 아름다운 이미지나 훌륭한 텍스트를 남기는 것보다 그 둘을 어울리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책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고, 저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충돌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 기발한 아이디어 -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서 지속적으로 영감을 받습니다. 얘기를 듣거나, 대상을 보았을 경우, 머리속은 벌써 그것을 변형시키기에 바쁩니다. 항상 은유에 대해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거나, 일상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은 그리스를 추천하는 여행 잡지에서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하얀 집을 보고 떠오른 생각입니다. 만약 저 집이 파랗다면, 사진 속에서 파란 이미니밖에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느낌과 대상 사이를 보다 철학적으로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 <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이나 <파란 시간을 아세요?>를 보면 선호한느 색이 분명히 보이는데..? - 저는 뜨거운 빨간색과 먼 파란색을 아주 좋아합니다. 대개는 네 가지 색으로 출발해서 혼합된 색을 만들어 냅니다. 연한 색을 쓰든 짙은 색을 쓰든, 항상 무언가 이야기하려 합니다. 기법과 타이포는 이야기의 일부이며 독립된 요소입니다. <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은 상당히 뜨겁습니다. 저는 건조한 열기를 이미지에, 재잘거리는 새들을 텍스트에 담고 싶었습니다. <파란 시간을 아세요?> 에서는 하늘, 색감, 약한 윤곽선, 투명함 등을 애용해 낮과 밤을 해석했습니다. 색은 하늘을 막아서는 안 되고, 종이와 그 위에 떨어지는 빛 사이에 놓여야 합니다.

☞ 작업한 책 중에서 애착이 가는 작품은 ? - 모든 책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없습니다. 종종 제 그림과 마주하면 비평적 입장이 되곤 하는데, 그림 놀이와 책의 관계를 좀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 싶습니다. 모든 책은 세계의 일부, 겨우 윤곽이 잡힌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시간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단어와 이미지를 더 찾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란 시간을 아세요?>를 좋아합니다. 쓰고 그릴 때도 그랬지만 이 책은 저를 진정시켜 줍니다. 저는 평소 생활할 때나, 새로운 책을 구상할 때, 상당히 열을 내는 편입니다.

☞  좋아하는 예술가 ? - 그림책 작가이며 화가인 크베타 파코브스카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고 그녀 그림에 매료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이미지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볼프 에얼브루흐도 좋아합니다. 영화감독 펠레시안, 장 뤽 고다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많은 작품으로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타티오 잉그마르 베르히만 영화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저는 풍부하고 창의적인 아시아 현대 영화도 상당히 좋아합니다.

☞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 계속해서 이야기 세계를 탐사할 것입니다. 현재 어린이 책과 만화를 준비 중이고, 앞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이나 데생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 분야를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 독자에게 -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받으면 항상 감동 받습니다. 인쇄상태도 좋습니다. 한국어를 읽을 수는 없지만, 직선으로 네모 반듯한 타이포가 제게 새로운 것을 말해 줍니다. (저는 각진 것을 좋아합니다.!) 제 이야기가 세계 반대편 독자에게 읽혀지고 제 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자문해 볼 때도 있습니다. 보편성을 띠도록 애쓰는 것도 그러한 까닭입니다. 한국 독자가 가진 어떤 부분, 추억, 생각, 고통 등을 어루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따금 한국 독자가 벨기에 독자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제 작품을 보는 한국 독자는 이야기 속을 함께 여행하는 믿음직스러운 친구입니다.



 

- 산그림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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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그림은 내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 - 김점선

대학을 졸업하고, 나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하는 때가 되었을 때, 나는 죽음 밖에는 떠오르는 말이 없는, 낙오자가 되어 있었다. 머릿속에는 잡념과 잡지식 만이 썩은 지푸라기처럼 쑤셔 박혀 있는 아웃사이더가 되어 있었다.
학교 다니는 일 외에는, 아무 준비가 안된 미숙아인 채로 졸업을 당했다. 나는 그런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공부를 더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외쳐댔다. 그리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한숨을 쉬면서 등록금을 줬다. 그렇게 큰소리 치고 들어간 대학원에서 한 학기만에 제적당했다. 맘에 안 드는 과목을 수강 거부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나를 가르치던 미국인 선생님이 나의 제적을 안타까와하면서 동료와 일할 기회를 주었다. 통역 일을 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받았지만 모으지 않았다. 다시 죽음과 마주섰다. 나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 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림! 그림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그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림 그리는 일뿐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행복했다. 제대로 된 길을 찾은 기쁨을 느꼈다. 다시 회화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때 내 나이는 27살이고 지금부터 31년 전 일이다. 아버지는 나를 금치산자 취급을 했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나는 헝클어진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럴 때 엄마가 나섰다. 무조건 나를 지원했다. 열심히 그림 그리고 학교 다니는데 그것만으로는 예술가가 안 된다고 했다. 결혼을 해서 인생의 쓴맛을 이겨내고 나서야 진정한 예술가가 된다고 했다. 맞는 소리 같아서 결혼했다. 집 나온 청년과 이름도 나이도 묻지 않은 채 결혼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의 행동에 경악했다. 아이도 생겼다. 매우 가난했다. 우리가 굶는다고 해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굶는 줄 알았다. 재미나 멋으로. 그럴 때 사는 길은 극도로 아끼는 것이다. 어쩌다 5만원 주고 그림 한 점을 팔면 정부미만 사고 반찬 사는 데는 돈을 한푼도 안 썼다. 동네에서 얻은 된장에 산에서 캐온 풀은 넣고 끓여서 먹었다. 그림 그릴 캔버스도 돈을 아끼려고 광목을 사다가 합판에 붙여서 그렸다.

그런 그림을 모아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림이 꽤 팔렸다. 일년 먹을 쌀을 사고 물감과 광목을 살만할 돈이 생겼다. 작업실이 따로 있을 리가 없다. 지붕에서 물이 새는 좁은 셋방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 그린 그림은 제일 큰 게 30호를 넘지 않는다. 100호 짜리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게 꿈이었다. 비만 오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고인 물을 버리느라고 밤을 새야 했다, 그럴 때 멍히 물을 바라보느니 그림 그리면서 밤을 샜다. 내가 살던 마을의 산과 들에 대해서 환하다. 어디에 무슨 나물이 있는지 언제 어떤 먹을 만한 풀이 나는지를. 그 마을에서 산을 식량창고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그림 그리다가도 하루에 한시간 쯤 은 산을 헤메면서 반찬감을 구해야 했다. 그렇게 살면서도 해마다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꼭 일년을 버틸 만큼씩의 돈을 벌었다. 내 행동은 변함이 없는데 차츰 그림이 더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100호 캔버스를 100개나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해마다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는 내가 먹고살 돈을 버는 길이면서 또한 그림을 보여주는 기회이다. 그림은 경건한 예배다. 자신의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다. 내 영혼은 하늘이 내게 내린 숙제다. 평생 풀어나가야 할 대상이다. 내 영혼 속에는 가깝게는 나와 나의 부모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멀리는 구석기시대의 내 조상의 경험까지도 흔적으로 남아있다. 나는 내 영혼의 시각화에 몰두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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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낭만적 현실주의자 바바라 쿠니(Barbara Cooney)

 

아이가 어렸을 때, 우리말로는 ‘수목원’이라고 번역하면 될 듯한 ‘Nature Center’에서 하는 ‘그 때 그 시절’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6-25때 경험을 해 보세요’하는 프로그램에서 꽁꽁 얼어붙은 주먹밥을 먹어 본다면 참 마음이 아프겠지만, 바바라 쿠니 Barbara Cooney 미국이란 동네는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한 것 외엔 ‘외적의 침입’을 받아 본 적이 없어 옛날 생활 경험 여행도 그저 한가하고 재미날 뿐이지요.

아이는 손으로 돌려야 하는 ‘짤순이’에 빨래도 넣어 짜 보고, 옥수수알을 분리해 내는 기계에 여러 색 알이 단단히 박혀 있는 옥수수도 연신 집어넣어 보았습니다. 물론 주변에는 한 150년 전쯤 되었을 듯한 그 때 그 시절 옷을 입은 아주 아주 촌스런 아줌마와 아이가 조그만 아시아 아이를 쳐다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고…….

바바라 쿠니(Barbara Cooney)의 사진을 보면서 그때 그, 완벽한 촌아낙네가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햇볕에 탄 동그랗고 붉은 얼굴, 땋아서 한바퀴 돌린 머리, 일찌감치 하얗게 세어 버린 머리칼, 그리고 100% 면임에 틀림없는 질박한 윗도리까지도!

 

 

 

도날드 홀 (Donald Hall)이 글을 쓰고 이 아낙이 그림을 그린 『달구지를 끌고 (Ox-Cart Man)』에서 저는 남의 나라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깊어가는 10월에 한 해 동안 온 식구들이 애써 일한 것들을 소가 끄는 달구지에 실어 큰 마을의 장터에 내다 팔기 위해 농부는 언덕을 넘고 계곡을 지나 시냇가를 따라 걸어가지요. 그의 여행길을 작가는 아주 세세하게 묘사해냅니다. 가을이 아름답게 내려앉은 첩첩이 겹쳐 있는 둥근 산, 빨간 색 외양간, 하얀 색 교회, 노랗고 하얀 집들, 돌담, 단풍든 나무, 하늘색이 그대로 비치는 호수, 그리고 좁다란 노란 길…….

열흘 만에 도착한 포츠머스 마을의 장터는 길도 널찍하지요. 그곳에서 그는 4월에 깎아 두었던 양털과 아내가 만든 숄과, 딸이 짠 벙어리 장갑과, 모두 함께 만든 양초와, 직접 쪼갠 널빤지와, 아들이 부엌칼로 깎아 만든 자작나무 빗자루와, 감자와 사과와 꿀과 단풍나무 설탕과 거위털 한 자루를 다 팝니다. 그것만 파나요? 단풍나무 설탕을 담아 간 나무 상자도 팔고, 사과 통도, 빈 달구지도, 소와 멍에와 고삐도 다 팔지요.

이제 두둑해진 주머니……. 농부는 장을 봅니다. 딸에게 줄 수예 바늘, 아들에게 줄 주머니칼, 식구들 모두가 나누어 먹을 사탕을 새로 산 무쇠솥에 넣고 그 솥 손잡이에 막대기를 걸어 어깨에 척 걸치고는 남은 돈을 주머니 안에 넣고 그는 다시 여러 농장과 마을을 지나, 언덕을 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옵니다. 도합 이십 일이 걸렸을 그 길의 나무들은 이제 잎을 다 떨구었습니다. 저녁 서리는 허옇게 내렸는데, 하늘에는 푸른 빛, 붉은 빛 저녁 놀만 화려하군요. 작가는 너무나도 섬세하게 펜실베니아 산 속에는 겨울이 빨리 온다는 것까지 그림에 다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제 식구들은 겨우내 일을 하지요. 농부는 송아지에게 씌울 새 멍에를 깎아 만들고, 널빤지를 켜고, 농부의 아내는 천을 짜고, 딸은 아버지가 사다준 수예 바늘로 수를 놓고, 아들은 주머니칼로 빗자루를 만들고……. 4월에는 양털을 깎고, 5월에는 감자와 순무와 양배추를 심는데(그 페이지에 나와 있는 사과나무 꽃 그림이 기막힙니다) 뒷마당에서는 거위들이 부드러운 깃털을 떨구지요. 이렇게 뉴잉글랜드 농부의 한 해를 한 바퀴 돌아 그려낸 작가는 이제 그림의 배경을 매사추세츠 주의 암허스트 (Amherst)로 옮깁니다.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라는 시의 제목만 겨우 기억하고 있는 제게, 참 오랫만에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이란 시인이 그림책을 통해 모습을 보여 주는군요.

 

 

 

마이클 베다드(Michael Bedard)가 글을 쓰고 바바라 쿠니가 그림을 그린 『에밀리 (Emily)』라는 제목의 이 책의 첫장에는 백합 알뿌리가 보입니다. 봄이 되면 꽃으로 피어날 알뿌리는 자신이 죽고 난 뒤 많은 사람들에게 뛰어난 시인으로 사랑받는 에밀리 디킨슨을 뜻하겠지요.

이 책의 화자는 ‘신비의 여인’ 과 같은 동네에 사는 어느 꼬마 여자애입니다. 파란 겨울 외투를 입고 빨간 장갑을 낀 아이가 눈썰매 줄을 잡은 채 눈 속에 서서 길 건너편 노란 집을 쳐다 보지요. 거의 20년 동안 자기 집을 떠난 적이 없어 미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듣는 그 여자는 이 꼬마에게는 그 누구도 아닌 ‘에밀리’입니다.

어느 날 피아노를 치는 엄마 앞으로 편지가 한 장 들어오지요. 아파트 현관에 우유투입구가 있듯이 이 시대에는 현관에 우편 구멍이 있군요. 그 편지는 바로 그 신비의 여인에게서 온 초대장이었어요. 납작하게 말린 꽃이 동봉된 편지에는 “저는 마치 이 꽃과도 같답니다. 당신의 음악으로 저를 소생시켜 주세요. 그 음악이 저에게 봄을 가져다 줄 거예요.”라고 씌어 있었지요. 엄마와 아이는 그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아이의 호주머니에 뭔가 불룩한 게 들어 있군요.

그 집으로 들어가니 동생 아줌마가 접대를 하고 하얀 옷을 입은 언니 아줌마는 바람처럼 2층 계단을 돌아 올라가 버립니다. 엄마가 연주를 하는 동안 아이는 계단을 올라가 계단 위에 앉아 있는 언니 아줌마에게 다가갑니다. 그 아줌마는 눈처럼 하얀 옷을 입고 종이와 연필을 들고 있었지요. 아이는 그 아줌마에게 봄을 내밉니다. 뭐냐고요? 바로 백합 알뿌리 두 개였지요. 아줌마도 급히 종이에 뭔가 써서 아이에게 내밀지요. ‘아마 머지않아 둘 다 꽃이 필 게다.’ 하며. 물론 마지막 장에는 새하얀 백합꽃과 에밀리 디킨슨의 자필 시가 나란나란 나와 있습니다.

작가의 그림은 아주 세밀해서 노란 불이 따스한 벽난로, 그 위의 촛대 둘, 특이한 모양의 빨간 셰리주 병과 잔, 은쟁반, 레이스, 고색창연한 시계, 섬세한 장식의 의자 등이 아주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시인의 글씨는 상당한 악필이군요. 천재는 악필이라는 것을 지금은 믿기로 하겠습니다. 작가는 말하지요. ‘나는 알고 있는 것만 그릴 뿐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아낙은 에밀리 디킨슨이 살던 집과 길 건너 집을 조사하고 스케치하기 위해 암허스트에도 다녀 왔군요.

억센 시골 아낙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섬세하지요? 증권업자인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1917년에 태어난 바바라 쿠니는 복 받은 셈입니다. 그 시절에 어머니의 방에는 물감, 붓, 종이 등 그림 재료가 풍부했으니까요. 거의 반세기 이후에 태어난 저도 갱지를 연습장으로 썼고 어쩌다 맨질맨질한 하얀 종이가 생기면 안 쓰고 보물처럼 아껴 두곤 했는데 말이죠.

 

                     

 

그녀는 스미스 대학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후에 뉴욕 대학에서 동판과 에칭을 공부합니다. 색깔을 아주 좋아하는 그녀가 할 수 없이 동판과 에칭에 시간을 쏟게 된 이유는 편집자가 그걸 요구했기 때문이었지요. ‘무채색으로 한 번 해 보세요.’

그러나 좋아하는 것을 해야 그림도 잘 되는 법. 목탄이나 동판, 에칭을 이용한 그림들은 별 조명을 못 받은 반면 자신이 좋아하는 ‘full colors’로 그린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Chanticleeer and the Fox)』로 1959년 칼데콧 메달을 받았고, 앞서 말한 뉴잉글랜드 농부의 생활을 그린 『달구지를 끌고(Ox-Cart Man)』로 또 칼데콧 메달을 받았지요. 그밖에도 『바구니달(Basket Moon)』 『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The Remarkable Christmas OF THE COBBLER'S SON)』 『미스 럼피우스(MISS RUMPHIUS)』에 그림을 그렸지요.

 

     

 

바바라 쿠니의 특징은 아무래도 정확한 세부 묘사와 최대한 자연색에 가까운 색을 쓰는 데 있지요. 그녀는 『달구지를 끌고 (Ox-Cart Man)』을 최대한 진실성 있게 그리기 위해서 머리 스타일이나 의상뿐 아니라 풍경과 건물 세트까지 만들어 보았다고 합니다.

스스로도 ‘나는 낭만적인 면도 있긴 하지만, 상당히 현실적이다. 나는 오직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그렸다. 실은 난 다른 방법으론 그리지를 못한다. 나는 사실을 만들어 내거나, 모호한 선으로 무언가를 암시하지도 못한다.’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사실을 사실대로 그릴 수 있는 것도 미국이란 나라의 역사가 짧고, 또 자료와 역사적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새 천년 들어와 저 세상으로 일터를 옮겨갔습니다. 지금쯤 하늘에서 이 땅을 내려다보며 정밀화를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글쓴이 서남희 - 웹진 [열린 어린이]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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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님들을 초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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