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가도 문학의전당 시인선 7
이상옥 지음 / 문학의전당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고성 가도”를 집어 들어 소파에 비스듬하게 드러누워 오랜만에 시집을 읽는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이곳에는 나의 입가를 절로 미소 짓게 하는 이  내 고향이 숨쉬고 있다. 마산, 고성, 통영, 진주 등 낯설지 않은 도시 속에서 펼쳐진 눈에 보이는 향연은 내 가슴을 뛰게 한다. “고성 가도”를 달리면서 찍은 가등은 얼마 전 내가 대평으로 달리면서 찍은 모습과 흡사해서 “이 무슨 인연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꼬불꼬불한 대평길. 양 옆으로 진양호의 잔잔한 물결에 하얀 백로는 떼 지어 놀고 길가에 핀 백일홍의 잔치에 넋이 빠진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한 손으로 핸들을 한 손으론 디카를 잡았다. 그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보니 이 시인도 나와 같은 심정에서 위험한 감수를 하셨나 보다하는 생각도 든다. 우린 모두  디카의 매력에 빠졌나 보다.  시인처럼 그 속에 내 마음을 담은 시 한편만 있다면 금상첨화겠는데......


 작년에 디카를 샀다. 아이들의 커 가는 모습을 담으면서 디카의 매력에 빠졌다. 보이는 곳 마다 온통 찍어댔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얼굴을 담았지만 나중에는 모든 것을 다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쪼그리고 앉은 산”에서처럼 같은 산골짜기를 담았어도 음문조차 환하다고 생각도 못했지만, 전깃줄에 앉은 참새를 담으면서 “푸른 색종이 같은 하늘 누가 긴 금 죽죽 그었나”고도 감히 상상도 못했지만, 카메라 속에 담아 놓은 모습과 메모는 뒤돌아서서 보면 충분히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디카속의 영상과 시가 어우러져 있는 이 책을 보니 세상에 쫓기어 살아가는 그저 살아간다는 곳에 의미를 둔 한 인간의 삭막함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시골에 가서 뛰노는 닭을 봐도 평화를 느낄 수가 없었고 그저 닭이라고 하는 단어만 떠올리고 매일 보는 “남강”에서 실루엣이라고는 발견하지 못하는 삶. 아파트 사이에 푸른 도화지 같은 하늘을 발견하지 못하는 삶, 도심의 한복판은 그저 시끄러울 따름이라고 느꼈던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담아 놓은 사진을 꺼내어서 한 줄 갈겨 본다. 굳이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을 담아 놓은 이 시집처럼 나또한 내 주위의 사진 속에 생명을 주고 싶다. 가느다란 실눈을 좀 더 크게 떠서 인도의 모퉁이에 쏟아 오른 하트 잎 애기똥풀에게도 노래를 불러 주고 싶다. 저 멀리 폐지 줍는 노인을 디카로 찍어 그 정지한 순간에 마음을 곁들여 나도 한 살림을 차려야겠다.


 얼마 전 천왕봉 등반을 위해서 산을 오르는 걸음마다 나도 그 한 살림을 차렸다. 바위 속을 뚫고 나오는 나무와 물줄기를 찍어 “너 일찍이 이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달픔을 이겨내었는가?” 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밟아서 창자를 드러낸  뿌리가 그래도 파아란 잎을 피우는 것을 찍으면서 “너도 이렇게 살아가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인 내가 무엇인들 못 이겨내겠는가?” 하고 시인처럼 노래하였다. 디카로 찍은 사진의 한 편에 마음을 심어 놓으면 그 절절함과 그 순간의 심정을 더 자세히 간직할 수 있겠다는 뜻에서 말이다. 이 디카 시집을 보지 않고는 그저 흘러 보내는 하찮은 물이었을 것인데 나는 엄마의 젓줄처럼 고요히 간직했다고 본다. 그래서 난 이 시집을 본 감회가 남달리 새롭다.


 이 시집은  기존의 시집에서 보이는 알 수 없는 시인들의 깊이는 모두 파괴되었다고 본다. 어려운  낱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시인의 머릿속을 파고들어야 만 비로소 해석이 가능한 수많은 시집과 대조적인 이 시집은 누구나 보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군단이었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할지라도 읽는 이로 하여금 어렵게 만들어 느낄 수 없다는 그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상을 끌어 와서 자연스러운 말로 나를 이끌어 준 이 시집은 디카를 가지고 무엇이든지 찍어대는 곳에 위안을 삼는 나에게 “시는 언어예술이면서도 언어를 넘어 선다”라는 문덕수 시인의 말처럼 내가 디카로 찍어 둔 모든 사진들에게도 “언어 너머 시”로 이끌어준 반가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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