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조카와 함께 살 때 알게 된 게, 새학기 시작할 때마다 아이들 교재비(그것도 기본이라고 하는 것만)가

참 많이 든다는 것이다.

 

새학기 시작할 때 보통 30만~40만원 사이의 교재비가 든다.

말 그대로 기본. 학원이나 기타 교재는 빼고, 대부분 학교 수업에 관련된 참고서나 문제집 위주.

각 과목당 수업에 필요한 것, 혹은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교재 약간.

그나마 가을 학기 시작이 이 정도였고,

새학년 시작할 때(봄)는 더 많은 비용이 지출되더라.

 

학교가 바뀌는(중학교나 고등학교 입학할 때) 때는 더 난리다.

교복부터 이런 저런 것들, 새로 준비할 너무 많다는 걸 알았다.

그때 들어가는 비용은 더 하고...

 

 

평소에는 가끔씩 단행본으로 구매해서 선물하곤 하다가,

이번에 초등학교 꼬맹이 조카들이 개학하는 게 생각나서

기본 중의 기본으로만 몇 개 구매해 줬는데,

표도 안 나게 쑥쑥, 비용이 올라가더라.

전과 3권, 월간지 1년 정기구독 2개 했더니 35만원이 훌쩍~

(그나마도 할인된 가격인데...)

35만원은 돈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나마 꼬맹이들이 초등학생이어서, 내가 가진 도서상품권이 있었기에 다행이었지...

학년 더 올라가면 상상도 못할 듯...

 

부모님들 정말 허리 휘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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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식
조수현 지음 / 청어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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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와 두 남자로 구성된 이 소설의 시작에서 얼핏 지저분한 삼각 스캔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텐데, 의외였다. 내가 접한 뻔한 흐름으로만 간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타난 낯선 소녀 설리. 이 땅의 끝 히말라야에서 왔단다. 열여덟의 그녀가 세상 물정 모르고 오직 노래 하나만을 부르기 위해 무대에 섰다. 모든 것이 이국적으로 보이지만 그녀에게 흐르는 피는 지극히 한국적이고, 또 사랑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조용히 이어지는 한 남자의 고백 같은,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

고등학교 동창이자 서로 다른 매력으로 그려진 주인공들이 여기 있다. 학교의 유명한 야구선수 이선우는 메이저리그로 인생이 정해졌다. 학교의 핵주먹 강민은 울분을 참지 못한 결과로 자퇴를 선택했다. 그 사이의 신소라. 이선우의 여자친구이자 강민의 짝사랑의 대상인 그녀. 곧 스무 살이 되고 성인이 되어 마음껏 꿈을 펼치고 세상을 활보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삶을 살아오고 사랑을 품어왔는지, 이십여 년의 간극을 둔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의 이력을 먼저 보았던 탓인지, 소설을 소설로 읽으면서 영화 같은 장면들이 먼저 떠오른다. 여기서 이런 장면, 이런 표정, 이런 흐름으로 다음 장면을 그리면서 읽게 되곤 했다. 선입견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어떤 부분은 예상했던 그대로, 또 어떤 부분에서는 의외의 전개로 조금 놀라기도 하면서 궁금해졌다. 저자가 풀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그대로 전해 받고 있긴 한 건가 싶은 궁금증, 혹은 염려 같은. 지독한 사연을 가진 이들로 묶인 흐름이, 마지막 순간에 보여줄 게 뭔지 확인하고 싶어서 끝까지 읽게 되는데, 결국은 '아, 그렇구나.' 싶은 인정. 그게 좋은 거라면, 좋은 거겠지 싶은 이해.

 

스포일러가 될까봐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운데, 매 순간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선택에 있어서 반반의 시선이었다. 이해와 불이해. 그리고 이어지는 인생의 다음 페이지가 삶의 아련함을 불러올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들이 하는 사랑이 그렇게 흘러갈 때마다 기억에, 추억에 묻어야 할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도 들고... 고전, 혹은 올드한 느낌의 옛것을 통칭하는 클래식이란 단어를 사랑에 붙인 저자의 의도가 뭔지 알 것도 같다. 첫사랑, 옛사랑은 추억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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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 주세요!

 

몇 년 전에 알라딘 신간평가단 활동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 신간평가단에 응모한 적이 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마지막 도서까지 리뷰 완료하지 못 했다. 마음 같아서는 늦게라도 해야지 했는데, 어디까지나 그냥 마음에 머물던 일로 끝났다. 이른바, 먹튀. 아, 나는 6개월의 이 긴 레이스에 맞지 않는구나 하는 결론만 얻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신청한 도서가 거의 선정이 안 되고 있기에 애정을 담고 처음 시작했던 마음이 사라졌던 거다. 활동자도 많고, 신청도서도 많으니까, 내가 신청한 도서 한 권쯤 선정이 안 될 수도 있는 건데, 매번 선정에서 미끄러지는 걸 투덜투덜하면서 마무리마저 그렇게 하고야 말았다. 그 후로 알라딘 신간평가단은 아예 응모하지 않았다. 나란 인간이 어떻게 이어갈지 알 것 같아서...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성실한 서평단이 될 거임~!’이란 각오로 도전했다. 나는 예전에 활동했던 분야를 바꿔 에세이로 신청했다. 소설 부분 말고, 관심 1순위가 아닌 2순위 분야로 응모했다. 혹시 선정된다면, 간절히 읽어보려고 했던 책이 아니라 ‘이런 책도 괜찮다’는, 좀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신간평가단 15기 에세이 분야로 선정되었고, 나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6개월 동안 총 12권의 책을, 마감 한 번 어기지 않고, 이렇게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게, 바로 기적. 처음 신간평가단 신청하면서 다짐했던 마음을 잘 이뤄낸 거다. 선정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다짐은, 최소한 ‘먹튀’는 하지 말자는 거였다. 혹시 나랑 맞지 않는 책일 수도 있지만, 내 관심 밖의 책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읽어서 편식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그 편식을 줄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요한 것은 성실하게 임하는 것. 어떻게 이어갈까, 잘 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이렇게 활동을 마무리 한 것으로 끝났다. 여전히 내가 신청한 도서는 잘 선정되지 않았지만 좋은 책도 많이 만났다. 그래서 다행이다. ^^

 

 

 

- 15기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책이 좀 많습니다

윤성근의 책이 많이 출간된 건 알고 있었지만,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실제로 읽어본 적도 없다. 도서관 서가에 쭉 꽂혀있는 걸 보고 그 자리에서 휘리릭 넘겨본 적은 있어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이 책으로 그의 글을 만나게 된 거다. 책 좋아하고 책 아끼는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웃음도 났다. 규모나 마음의 정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나와도 많이 달랐지만, 그 바탕에 깔린 독자들, 애서가들, 장서가들의 마음은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이렇게 아끼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근처에도 못 가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아직은 책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 15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 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떠나는 이유 /

밥장의 책 역시 내가 완독한 적이 없다. 그림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저자가 여행의 의미를 들려주고 있어서 의외이기도 하고, 그래서 좋기도 했다. 사진과 글, 그림으로 만나는 그의 여행기가 선선한 바람처럼 불어왔다. 그가 그동안 쓴 책보다 나에게는 이 책이 더 맞는 것 같다.

 

 

 

 

태도에 관하여 /

내가 신청한 도서 중에서 처음으로 선정되었기에 마음에 더 담는다. ^^ 임경선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에세이는 처음 만났다. 저자의 상담 같은 이야기가 듣기 편해서 좋았다.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시간 날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었다. 저자의 글을 좋아해도 저자에 관심은 거의 없었는데, 이런 말을 하는 저자는 어떤 사람인지 자못 궁금해졌다.

 

 

 

조지프 앤턴 /

아, 이 책. ^^ 받자마자 상당한 두께가 압박했는데, 막상 펼치고 보니 참 재밌었다. 자서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그래서 만나지도 않는데, 이 책으로 자서전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다. 이런 이야기로 자서전을 풀어갈 수도 있구나 싶어서 호감이 생겼다. 시간도 없었고 마음이 급해서 활자를 읽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다시 한 번 펼칠 기회가 오길 바라고 있다.

 

 

 

나의 사적인 도시 /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했다. 뉴욕이란 도시를 이렇게 보고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저자의 뉴욕생활기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번역가로만 알고 있던 저자의 글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것 같다. 담담하게 들려오는 말투가 좋아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다 읽고 보니 ‘좋네’ 라는 여운이 생기더라.

 

 

 

 

다정한 편견 /

저자의 소설을 다시 꺼내게 만든 책이다. 그의 산문을 읽고 나니, 그의 소설을 읽다만 게 괜히 마음에 걸렸다. 재밌게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 깃든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유쾌했지만 쓸쓸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로 만나는 사람 냄새는 어떤지 궁금해졌다.

 

 

 

 

 

 

 

6개월이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한 달, 또 한 달. 도서 받고 읽고 마감하고. 그렇게 여섯 번이 지나고 나니 다 끝났다. 시원섭섭. 리뷰 마감일에 허덕일 때는 부담스럽더니, 끝났다고 하니 괜히 더 섭섭해지는 건 무슨 심보인지... ^^ 재밌게 잘 읽었고, 내 눈에 들지 않은 책까지 읽게 되어 더 알뜰살뜰한 15기 활동이었다.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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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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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필요한 시절이다. 아름답고 올바른 편견이 절실한 시절이다. 해서 나는 편견을 사랑한다. (287페이지 / 편견을 사랑함)

 

짧게 쓴 에피소드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웃음이 피식피식 났다. 연재로 저자의 글을 만났던 독자라면 다음에 어떤 글이 올라올지 궁금해했을 것 같다. 그의 소설 한 권을 읽다만 게 전부인 내가 그의 산문을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소설가가 쓴 산문, 특히 내가 접하지 않았던 소설가의 산문을 처음 만나는 거니 궁금했던 책이지만, 기대는 거의 없이 펼치게 된 거라 더 재밌게 읽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문장이 춤을 춘다. 장면이 저절로 그려진다는 말이다. 이 짧은 글에서도 소설처럼 문장으로 그리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살아가는 순간의 모든 것을 이 책 속에 담으려고 작정한 것처럼 들렸다. 잠깐씩 쪼개 읽기 좋으면서 가볍지 않게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삶의 모습들이기에 더 애틋하고 아프게 바라보게 된다. 그의 고향의 소박한 사람들, 그의 글이 가고 싶은 길, 그의 여유롭지 못한 도시 생활,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 겪는 불우한 모습들, 그가 소설가로 살아가야 할 이유 같은... 그의 경험으로 이루어낸 글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그리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을 담았다.

 

언제 어느 때 만나도 좋을 책이지만, 사는 게 왜 이렇게 팍팍한가 싶을 때 펼치면 좋겠다. 그 우울한 감정에 동참하라는 게 아니다. 울어야 할 순간에 웃게 만드는 글이 곳곳에 녹아 있어서 그렇다. 소 팔아서 대학 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대로 드러냈다. 그의 아버지가 우시장에 그를 데리고 간 이유를 알아서 눈물 나다가도 그의 학점관리 태도를 보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난다. (근데 정말인가? All F 학점 받으면 등록금 되돌려줘? 이건 한 번 물어봐야겠다) 음식 배달을 하면서 넘어지고 길 위에 널브러진 음식의 잔해를 보면서 부끄럽고 서글픈 감정에 화가 나서 눈물이 나기도 전에, 괜찮으냐고, 다치지 않았느냐고 묻는 한마디에 웃을 수 있는 게 또한 세상이라는 것을 들려준다. 예전보다 조금 여유로운 형편이 되어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건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시간의 맛있기에 그런 게 아닐까. 나는 지금도 가끔, 아주 가끔 분홍 소시지를 산다. 엄마는 그게 무슨 맛이냐고, 맛도 없는데 뭐하러 먹느냐고 핀잔을 주곤 한다. 예전에 이 소시지를 넉넉히 못 먹고 살아서 한이 맺혔다고 하면서 다들 좋아할 거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명절에 음식 준비하면서 그 소시지를 꼭 사는데, 누가 먹느냐고 하면서도 막상 상 위에 올려놓으니 식구들 젓가락이 그리로 간다. 언젠가 제부가 그 소시지를 집어먹으면서 맛있다고 하니까, 그제야 엄마가 내 말에 동의했다. 그때 간절한 마음으로 먹던 맛은 아니지만, 지금 이것보다 더 좋은 음식이 많지만, 굳이 젓가락이 그리로 가는 이유를 마음은 알고 있다. 저자가 아버지의 설탕물 맛이 지금과 다르다고 하는 건 그 시간, 그때 그 자리의 맛이 아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나를 매혹시킨 풍경들에는 예외 없이 공통점이 있다. 그러니까 그 풍경들 속에는 반드시 누군가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었고 부모처럼 무척 가까운 누군가일 수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이처럼 과거를 추억하기에 이르러서야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 (18페이지 / 감정의 귀환)

 

잘 배우고 있다고, 잘 살아가기 위한 것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부딪히며 겪어다가 보면 그런 것들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곤 한다. 그 '잘'의 기준이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아닌 나만을 위한 기준이 될 때가 많다. 점점 그게 옳은 선택의 기준이 된다. 지나간 일들은 거추장스러우니 잊으면 그만이고, 지금 나를 가로막고 있는 어떤 문제가 있다면 나는 그것만 해결하면 된다. 저자가 말하는 타락이 이런 거라면, 나는 너무 빠른 속도로 타락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타락하지 않아서 인간다운 게 아니고, 타락의 속도를 늦출 힘을 가진 게 인간이어서 존재감 있는 거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겠다.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함의 과정에서 보이는 태도가 삶의 진짜 모습인 거다. 아무리 급해도, 누군가에게 괜찮은지 물어볼 수 있는 한 마디가 절실히 필요한 게 사람 사는 이곳에 진짜 필요한 마음인 것.

 

문학과 소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볼 때면, 독자인 내가 알 수 없는 감정을 어느 선 안으로 들어가 듣고 있는 기분이다. 글, 책, 문장, 관찰, 이해, 비유 등등 그가 써내려간 많은 말이 어떻게 그려져야 하며, 어떤 의미와 자세를 품고 있어야 하는지 말한다. 뭐든 가볍고 진지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특히 글을 쓰는 일은 더 무겁고 진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시대를 반영하고, 사람의 마음을 뚫고, 더 잘 이해하게 할 수 있는 문장의 구성까지 염려한다. 20여 년을 소설과 함께한 저자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좋은 기회다. 나 개인적으로는 읽다 만 그의 소설을 다시 읽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 어쩌면 그의 소설에서 산문보다 더한 인간 냄새를 맡을 수 있겠구나.' 싶은 기대감으로 방 한구석으로 밀어놓았던 그의 소설을 찾아 바로 옆에 놓아두었다. 저자에 대한 이 감정과 기대가 사라지기 전에 다시 펼쳐봐야 할 어떤 의무가 생긴 것처럼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대가 어떤 원칙을 품고 사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그대에게만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타인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지키고 살아야 한다. 시련이 없을 때 우아해지기란 퍽 쉽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우아해지기란 쉽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만의 원칙을 허물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뇌하는 그대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희생을 감내한 그대가 누구보다 우아하다. (153 / 고난 속의 우아함)

 

오래전 연재했던 글을 묶은 거라고 해도, 지금 공감하지 못한다고 말할 게 거의 없다. 사람들 사는 모습이, 세상이 보이는 태도가 그리 변하지 않아서인지도. 눈물을 흘리는 이유마저 변함없는 것 같아서 쓸쓸하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절박해서 서글프다. 그런데도 묵묵히 견디는 삶을 버티는 건, 이런 글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자기 역할인 듯, 임무인 듯 한마디씩 쏟아내고 있는 저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이 글들이 더 애틋하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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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푸어 소담 한국 현대 소설 5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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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언젠가부터 '사랑=연애=결혼'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순수하게 마음의 소리 하나만 듣고 연애하기에는, 인생을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되는 분위기. 소설이나 영화 속 로맨스는 그 안에서 품는 바람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짙어진다.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 이 현실에서 마음 하나만 봐달라고 말한다면 허황되고 지독한 꿈인 걸까.

 

그 지독한 꿈에 현실의 공포를 더 하게 만들고 있는 소설이 『로맨스 푸어』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떠올리기만 해도 무서운 '5포세대(5포시대)'의 인생에서 무엇을 더 도려내란 말인가. 여기서 더 포기할 게 남아있기는 한 건가? 주인공 유다영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도 기대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린다. 그녀가 지금 처한 배경이 살아갈 만한 세상은 아니라는 것에 격한 공감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유다영만이 아닌, 나에게도, 주변의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현실에 섬뜩하고 쌉싸래한 시선을 던지게 한다.

 

서른둘의 은행직원 유다영. 위에서 까이고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 어정쩡한 나이와 위치에서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열심히 다닌다. 여유 부릴 돈도 없다. 남자친구도 없다. 그래서 머릿속 계산기를 굴렸다. 은행 고객으로 왔던, 40대 후반을 달려가는 남자 이성욱에게 여자로 어필하려 애쓴다. 강남 120평의 유토피아팰리스에 입성하기 위해 비위 상하는 식사자리에서 소화할 수 없는 상대의 말까지 꼭꼭 씹어 넘긴다. 그 정도쯤이야 뭐, 참으면 된다. 인생 안정권으로 스며들기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릴 수 있다. 이 남자만 꽉 잡으면 전염병처럼 좀비가 창궐하는 서울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가 준 백신은 생명줄이고 그의 유토피아팰리스는 단단한 성벽이다. 그녀를 감싸줄 안전지대다. 방심하면 나 혼자 죽는 세상에서, 없는 사람만 당하는 현실에서, 그녀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다.

 

편의점도, 약국도, 커피숍도, 내 뒤를 노리는 좀비보다,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문을 걸어 잠그는 사람들이 더 무서웠다. 솔직히 나도 좀비가 돼서 저 인간들 목덜미를 물어뜯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거리 쪽 사람들도 밀리진 않았다. 격분한 사람들은 유리문을 부수고 쳐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어느 쪽에도 끼고 싶지 않았다. (67~68페이지)

 

유다영은 전염병이 창궐하여 좀비가 공격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았을까?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부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을 방법을 유유히 찾아가고, 폐쇄된 강북을 방치하며 강남을 안정권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음모론이 사람들 사이를 돌며 와해를 불러온다. 누군가 빠져나간 자리가 내 자리가 되어야만 하는 간절함과 이기심이 힘을 발휘한다. 그 과정을 보여주며 적나라한 현실을 비추는 게 이 소설의 포인트인데, 섬뜩하다. 안타깝지만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 하는 삶의 진실을 그대로 쏟아낸다. '누구라도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과 '아마 나도 그랬을 거'라는 답을 동시에 내놓는다. 그 가운데서 또 우리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며,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을 이야기한다. 그게 꿈으로만 머물 로맨스일지라도 말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버리는 게 의리였다. 오늘날, 함께 잘살아 보자고 부르짖는 '연대'는 목숨을 앞에 두고 떠올리기 힘든 단어다. 말 그대로 각박한 시대, 타협의 선은 없다. 오직 내 목숨 지키는 게 나에 대한 의리고 소신이다. 정의가 세상을 구하는 게 아니라 정의를 버려야 내가 사는 세상이 되어버린 거다. 좀비가 내 목을 물어뜯고, 내가 하루하루 버티기 위해 아이볼을 획득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시쳇말로 영혼이라도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건 어느 영역에서나 공통으로 적용되는 방식이다. 전쟁터 같은 전염병이 발악하며 공격하는 지금, 안전지대로 입성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인 거다. 그래서 다영은 사랑 운운하며 의리와 정의를 말하는 우현에게 선뜻 진심을 보일 수 없다. 열정적으로 연애했던, 돈이 없어도 좋다는 20대의 연애를 품기에 현실은 냉정했다. 적당한 온도의 연애와 돈이 필수라고 여기는 30대의 여자 다영은 현실을 대하는 소신을 지키고 싶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땐 옆에 있어줄 사람이 중요하지만, 명확한 목표가 생기면 옆에 있는 사람이 거치적거리는 법이다. 우현은 한참 동안 방문을 긁어댔지만,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223~224페이지)

 

답이 나와 있는 쉬운 선택 같지만 늘 그렇듯, 인생에서 딜레마의 늪에 빠지는 순간이 온다. 좀비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백신을 놓아줄 남자 이성욱, 함께 좀비와 맞서 싸우며 목숨을 지키고자 했던 남자 우현. 한 남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 로맨스는 빠진 상태로 오직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선택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복병은 여기서 등장한다. 다영이 지키고자 했던 인생의 소신이 오작동하면서 계산기의 고장이 다른 삶을 열기 위해 꾸물대고 있었다. 그 선택의 문제가 단순히 사랑에서만은 아니다. 다영이 보여주는 것은 지금 처한 상황을 타개하며, 오늘, 내일을 살아갈 어떤 방식을 선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바로 1초 후에 후회하게 될지라도 말이다. 아직은 정의가, 의리가, 희망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나는 괜찮다, 괜찮다, 진짜 괜찮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포기해야 할 게 생긴다. 경제학 수업을 얼마나 들었는데, 여태 이 기초적인 공식을 부정해왔던 거다. (309페이지)

 

맨스를 선택하며 '푸어'의 길로 들어서는 것도 기회의 문제와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포기하며 기회비용을 생각하는데 '로맨스'가 해당되는 문제라는 게 조금 씁쓸하다. 그게 현실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어서 더 암담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여러 가지가 갈수록 늘어나는 걸 부정할 수 없어서 서글프다. 그 간극의 크기를 느낄 때마다 좌절한다. '정말 이것 밖에는, 정말 다른 선택의 길은 없는 걸까?' 싶은, 답이 없는 물음표를 계속 던지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무섭다. 좀비나 메르스보다 더한 공포인 거다. 백신도, 마스크도, 손세정제도, 비타민이나 홍삼도 구해주지 못할 양심과 의리, 정의가 사라진 시대를 묵묵히 살아가야 한다고 답을 던져준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고, 희망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 또한 간절하다. '왜?'라는 물음에 명확한 이유를 댈 수 없는, '본능'의 소리를 들었던 우현과 다영의 선택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희망을 그려본다. 많은 것에서 '푸어'를 노래하는 세상이지만, 그래, 아직은, 아직은...

 

로맨스가 주를 이루는 소설일 거란 기대와는 다르게 살아가면서 놓지 말아야 할 것, 아직은 품고 살아야 할 것에 대한 희망을 부르는 생존모험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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