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의 첫 페이지에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알려주고, 친절하게 살인의 이유까지 말해준다. 그러니 더 읽을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소설의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다. 더 큰 궁금증이 생겼으니까. 내가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게 내 일상을 불편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한 가족을 죽일 이유가 된다고 금방 떠올릴 수 있을까? 문맹이 왜 살인의 이유가 되는지, 그 궁금증이 이 소설을 더 펼쳐보게 한다.


유니스가 글을 배우기 시작해야 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성장 환경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아플 때 그녀가 간병했다. 제법 잘 해냈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자 더는 견디지 못했던 그녀는 아버지를 질식사로 죽게 했다. 들키지 않았다. 그저 죽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생존법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다. 누군가의 약점을 잡아내어 돈을 갈취하면서 협박도 일삼았다. 그녀에게 만족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그냥 살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커버데일 가족의 가정부로 일하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 되었다.


커버데일 일가가 돈이나 쓰면서 즐기는, 그저 그런 날들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면 아직 살아있었을까 싶기도 하다만. 학력이 높고 오페라도 즐기면서, 집안 곳곳에 책을 쌓아두고 즐기는 사람들이라서 유니스의 눈에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건지도 모르겠다. 서재에는 책이 가득했고, 딸은 학교 과제를 하느라 책을 읽어야 했고, 아들은 주방의 식탁에서도 책을 들고 와서 읽을 정도였다. 조지의 책상 위에는 온갖 서류가 쌓여있고, 재클린도 잡지와 책을 읽었다. 유니스는 이 많은 책과 활자들이, 이 가족이 자기를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말싸움도 아니고, 쌓여 있는 책이 누군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글자를 모르는 것을 시작으로 한 사람의 인격 형성에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하는, 문맹이 낳는 또 다른 문제를 들여다보게 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동정심을 앗아갔고 상상력을 위축시켰다. 심리학자들이 애정이라고 부르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그녀의 기질 안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74페이지)


유니스는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이후 처음으로 조지의 시체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다음에는 응접실로 다시 들어가 재클린, 멜린다, 자일즈의 시체 역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연민도 회한도 일지 않았다. 사랑, 기쁨, 젊음, 평화, 안식, 생명, 먼지, , 낭비, 가난, 폐허, 절망, 광기,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을 제거하고 생명을 파괴하고 희망을 부수며 지성의 가능성을 훼손하고 기쁨을 종식시켰다. 유니스는 매장하는 사람들조차 신음을 흘릴 정도로 커버데일 가족의 시체를 썩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훌륭한 양탄자가 엉망이 되어 안타까웠고, 자신에게는 피가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257페이지)


단순히 글자를 모르는 건, 앞서 말했듯이 한 사람의 일상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로 여겼다. 어디에 가서 내 정보를 써넣거나 필요한 내용을 메모하지 못해서 나중에 찾아보지 못하게 하는 그 정도의 불편함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불편함만 생각한다면, 유니스가 보여준 행동을 그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글자를 모르니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도 어려웠다. 타인의 감정을 읽거나 소통할 수 없으니, 자신의 필요로 저지른 일의 잘못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방법, 감정의 교류나 도덕 같은, 같이 살아가는 방식도 알지 못해서 그녀만의 생존법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거다. 그렇다고 그녀의 살인이 범죄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첫 문장에서 알려준 유니스의 살인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문맹은 일종의 시각 장애(47페이지)라는 말처럼, 그녀의 문맹을 장애로만 받아들였다면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 글자를 모른다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다방면의 지원으로 이 장애를 치료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다. 하지만 유니스가 보여준 행동으로 생각하자면, 문맹은 시각 장애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듯하다. 문맹을 부끄러워하면서, 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지경에 이른 유니스를 보면 말이다. 글자를 모른 채로 사는 일상을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습관처럼 읽고 끄적이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읽지도 않을 책을 가방에 꾸역꾸역 넣고 외출하는 습관을 보면, 어디서든 읽는 일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의 소개에서 본 김상욱 교수의 말을 곱씹어봤다. 다들 영어로 얘기하는 자리에서, 영어를 모르는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부끄러움과 분노였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있으니, 혹시나 이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것도 영어도 모른다면서 비웃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의심이 가득해진다. 그것만이 아니다. 영어를 모르는 내가 느끼는 좌절감, 이 부끄러움을 감당하게 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스쳐 지나간다. 어디까지나 상상으로 경험하는 감정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보게 되는 건 살인의 과정이 아니라, 문맹이 단순히 읽고 쓰는 일을 못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쁜 마음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재밌는 건, 누구나 글을 알고 쓰는 세상이라고 해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유니스와 대조적으로 커버데일 일가는 읽는 일에 집중한다. ‘우리 집에는 이렇게 책도 많고, 우리는 종종 오페라도 즐기면서, 주변 사람을 불러서 파티도 한다?’ 부족할 게 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서 누리는 삶이라고 과시하는 듯한 태도는, 그들이 나에게 특별히 잘못이 없다고 해도 미움 받을 행동으로 각인된다. 너는 왜 열심히 일하면서 집에서만 지내? 새로운 동네에 왔으니까 소개 좀 해줄게, 이런 것도 있으니까 좀 즐기면서 살아, 뭐 이런 우월감을 유니스에게 보이기도 했다. 주인님, 마님 호칭을 좋아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웃기긴 하다. 유니스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타인과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즐기고 싶은 사람도 있지 않나? 휴가 때 꼭 여행을 가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집콕으로 쉬고 싶다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내가 아는 방식으로 상대에게 권하는 것도 실례가 된다는 것을, 커버데일 사람들은 몰랐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유니스가 일상을 사는 방식을 이해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들처럼 살아가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두 사람은 흰색 메르세데스 자동차를 타고 출발했다. 조지는 커버데일 통조림 회사로, 자일즈는 마그누스 와이든 재단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조지는 자일즈에게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해 보겠노라 다짐했던 터라 바람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건네 보았지만, 자동차에 타고 있는 그들 위로 침묵이 내려앉을 뿐이었다. 자일즈는 소리만 내고는 언제나 그렇듯 책을 펼쳐 들었다. 제발 이번에 만나는 여자가 괜찮은 사람이기를. 재키가 이 넓은 집을 혼자서 감당하려는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그녀에게 그런 짐을 지우는 건 부당한 일이야. 어디 단층집 같은 곳으로 이사라도 가야 할 형편인데…….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어림도 없는 소리. 그러니 제발 E. 파치먼이라는 여자가 괜찮은 사람이기를. (13~14페이지)


단순히 문맹인 한 사람의 살인으로만 보여주지 않은 책이라 더 인상 깊다. 문맹이거나 문맹이 아니거나, 책을 읽고 살거나 안 읽고 살거나, 어느 틈에 파고드는 우월감이나 박탈감을 조심해야 한다. 유니스의 살인을 무조건 혐오하기에도, 커버데일 일가의 죽음에 애도만을 표하기에도 어렵기만 했다. 문맹이 한 사람의 성장과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유니스의 감정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확인하게 하면서,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그러지 못한 사람들의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를 던져주었다. 커버데일 일가는 유니스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당연한 일이 유니스에게는 언급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공포로 다가오는지 알지 못했다. 멜린다는 유니스의 문맹을 알고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선의는 선의로 다가오지 못하고 강요와 공포가 되기도 한다. 유니스에게 멜린다의 제안은 자신의 약점을 파고드는 공격이었다. 글자를 읽고 쓸 줄 안다고, 책 읽는 것을 즐긴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을 잘 읽고 선을 잘 지키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적당히 거리를 지키고,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고 살아가는 법은 여전히 어렵다. 문맹으로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인격이 결국에는 한 가족의 몰살하고, 문맹을 모르는 사람들이 저지른 실례는 파국을 불러왔다.


#활자잔혹극 #루스렌들 #북스피어 #복간할결심 #추리소설

##책추천 #개정판 #문맹 #오지랖조심 #특권의식조심 #문맹의위험 #파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LD 올드 - 50대 아들과 80대 노부모의 어쩌다 동거 이야기
홍승우 지음 / 트로이목마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0대 아들과 80대 노부모가 함께 사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어느새 부모와 자식 세대가 같이 사는 일이 드물어져 버렸으므로. 나 역시 처음에 결혼할 때는 엄마와 함께 살 집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지만, 따로 살면서 자주 들여다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실제로는 큰 집을 구할 돈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한 집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위험(?)인지 직접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갑자기 80대 노부모를 자기 집으로 모셔오고 함께 산다는 게, 결말이 궁금해지는 모험처럼 보였다.


이들에게는 특이한 사정이 있었다. 저자는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낸 후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치매에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었다. 혼자 지내는 게 걱정스러웠던 저자가 자기를 위해서 부모님을 모셔왔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첫 번째 이야기에서, ‘, 이 사람은 엄마 밥이 그리웠구나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나는 아들이 갑자기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그 시간이 서로에게 소중하고, 치매를 겪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에게 많은 힘이 되었을 거라고 느껴진다. 어디에선가 들은 얘기로는, 치매는 갑자기 환경이 바뀌는 것도 위험하지만, 혼자이거나 외로울 때 더 심해진다고. 더군다나 아무리 남편이지만 노모가 혼자 치매 아버지를 돌보는 일도 많이 힘들었을 거다. 옆에서 다른 가족이 같이 돌볼 때, 치매 진행 속도가 더디거나, 돌봄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알 것 같아서다. 가족 돌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많이 이해했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많이 어려웠을 시기. 4050세대가 자기 역할만으로도 힘이 버거웠을 때다. 자식을 키우기에도 힘든 시간, 일을 하면서도 갈등과 고민이 많을 시간, 자식으로 부모 돌봄을 걱정해야 하는 시간. 여기저기 걸쳐 있는 다리가 여러 개 필요한 시기를 이렇게 보낸 저자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곧 겪을 지도 모를 일에 대비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


이 책 속 인물들을 보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치매와 당뇨를 앓으면서 청력과 시력도 안 좋은 저자의 아버지는 항상 주의 깊게 살펴봐야할 대상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는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듯 돌보고 계셨다. 나의 아버지는 오랜 세월 당뇨가 있었고, 결국에는 당뇨 합병증을 심하게 앓다가 돌아가셨다. 지금의 시아버지는 시력이 굉장히 안 좋아서 오히려 청력이 발달한 경우다. 시어머니 역시 당뇨를 지병으로 갖고 있으며, 나의 엄마는 아프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빠를 정도다. 늙어가는 일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주변 사람을 통해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 심각함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니까, 저자의 부모님 모습이 이제 흔하게 보는 우리네 부모의 모습이니까. 억지스럽게 그려지지 않아서 오히려 더 들여다보게 되는 이야기에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정치를 주제로 부모와 갈등하기도 하고, 조심하라면서 여러 번 강조하는 엄마를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내 맘대로 되지 않은 자식의 문제로 속이 상하는 것도 잘 아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는 이야기에 저자의 이야기를 웃고 울면서 읽게 된다. 아픈 부모를 돌보는 간병기인가 싶었다가, 서로 다른 세대인 대상을 이해하는 이야기로 읽힌다. 변화하는 시대에 서로 감정 상하지 않게 소통하며 지내는 과정도 보인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면서 겪는 고충도 다르지 않았다. 빚 갚으려 일하다가 지친 날들이 버거울 만도 하다. 왕년에 잘 나가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꼰대 친구가 낡은 갑옷을 벗기 바라는 마음도 배운다. 젊은 사람들 틈에서 노인이 서러움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빈번할 수 있다. 이제 고령화, 초고령화 세상이 되면서, 젊은이보다 노인의 인구가 많아지면서, 노인이 되어서 서럽지 않을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그런 세상으로 들어선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어떻게 배우면서 늙어가야 하는지 비춰주는 거울 같은 이야기에 울컥해지는 순간이 많아서, 어제 돌싱포맨 보면서 웃었던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올드 #OLD #홍승우 #트로이목마 #웹툰 #우리시대의이야기

##책추천 #책리뷰 #나도늙어간다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24-06-27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요새 울적한 책들 자주 보시네요ㅠㅠ
당분간 요런거 말고 코믹/액션/스릴러 이런거 읽어주셔요. 여름이니깐요 ㅎㅎ

구단씨 2024-06-28 14:08   좋아요 1 | URL
울적하다기 보다는 옆에 있는 책들 손을 뻗으니 이렇네요. ^^
사실 주변에서 지금 돌아가시 분, 곧 돌아가실지도 모를 분들이 많아서 심란하긴 해요...
몰입빵빵할 것 같은 추리 소설도 쌓아두었습니다. ㅎㅎ

젤소민아 2024-07-0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당선, 축하드립니다~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복간할 결심 시리즈로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이

루스 렌들의 '활자 잔혹극'이라고 한다.


책 소개글을 보다가 재미있겠군, 하면서 뭔가 이상한데? 싶은 느낌적인 느낌이 피어오른다.

찾아보니 2011년 출간했을 당시 내가 읽은 책이었던 거다. 

리뷰까지 작성해 놨으나, 솔직히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았는데,

문맹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소개에서 사라진 기억이 돌아왔다. 

그것도 별점을 다섯 개나 줬네. 진짜 재미있게 읽었나 보다. 



다시 책 소개글로 돌아가서,

출판사 대표도 말했다시피, 살인의 동기와 살인자가 처음부터 드러난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내가 문맹인 걸 아는 사람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뭐, 살인자는 이런 마음이었던 거지.

살인의 이유가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내가 글을 모른다는 게, 내가 글을 모른다는 걸 아는 자를 죽이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게,

살인의 이유가 될 수가 있을까?


어쨌든 2011년 당시에 이 책은 잘 안 팔렸단다. 왜? 재밌었는데...

그러다가 2022년 김상욱 교수의 인터뷰에서 '혐오를 이기는 책'으로 이 책이 언급되면서 

다시 이 책에 관심이 생기는 독자들의 전화에 힘입은 출판사 대표는 다시 이 책을 내놓기로 했다는, 

이 책이 나와야만 했던, 2024 다시 복간할 결심의 배경이 되시겠다.



책 제목이 '유니스의 비밀'에서 처음 복간되어 '활자 잔혹극'으로,

폐기 처분의 운명에서 부활하듯 '활자 잔혹극'으로 다시 한번 태어난 이 책이 

독자에게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같은 출판사에서 두 번이나 복간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듯하여 이 책의 2024년 운명이 궁금하기도 하고,

이 책이 잘 안 되면 복간할 결심 시리즈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뭐 그렇다.

절판되어 중고로 고가에 돌아다니는 책 중에, 진짜 다시 만나고 싶은 책 목록을 채워가는 즐거움도 생길 듯...













#활자잔혹극 #루스렌들 #북스피어 #문맹 #신간추천 #김상욱교수추천 #복간할결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들 아시겠지만, 주변 많은 사람이 5월이 힘들다고 한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5월 5일 어린이날. 

이제 청소년이 된 조카들이 있으니 이건 따로 챙기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

하지만 조카에게는 소소하게 가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고 있는데, 이건 즐거움이다.


5월 8일 어버이날. 

힘들다. ㅠㅠ 양쪽 집 어른들 시간 맞춰 점심 식사 예약하고, 밥값도 생각해야 하고.

엄마는 자기까지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한사코 거절하셨지만, 

어버이날이라고 시부모님만 식사 대접 하기에는 기분이 거시기하여 꼭 엄마도 챙겼다.


5월 셋째 주, 엄마 생신.

어버이날 제대로 식사도 못 하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엄마 생신은 미리 식사 예약도 하고, 용돈도 드리고. 

엄마가 손을 다친 이후로 집안일 다 하기가 힘들어서, 내가 가끔 가서 할 수 있는 건 하고 오는데,

두 집 살림이 물리적인 시간이 있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고단하긴 하다.


5월 마지막 주.

옆지기와 나의 안경을 새로 맞췄다. 둘 다 이번에는 안경테와 렌즈를 동시에 바꿔야 하는 거라서,

1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했다. 

5월이 너무 힘든 달이라서 미루고 미루다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5월을 넘기지 않고 하게 되었다.

금액 결제하면서 허걱 한번 외쳐주고, 안경을 교체하는 시기에 맞춰서 만기가 될 적금을 들자고 했다.


6월 첫 주.

시어머니 생신이라고 해서 만나서 식사하고 용돈 드리고, 이런 저런 과일도 몇 가지 사고...

계속 시어머니 집의 소소한 일들을 처리해 드리면서 또 몇 만 원씩 돈이 나갔는데,

그걸 더해보니 몇 십 만원이 되었다. ㅠㅠ 

몇 년 동안 여름에 빙수 한 번을 못 사먹었는데, 나도 빙수가 먹고 싶다.


7월 첫 주.

옆지기 생일인데, 항상 시어머니가 아들 생일이라고 밥 먹자고 연락을 주신다. 곧 연락이 오겠지...

또 밥인가 싶어서, 생각만 해도 피곤해진다.


뭘 기억에 남게 한 것도 없고, 나에게 남은 건 특히 더 없는 듯한데, 진짜 너무 피곤하다.

게다가 100원 수입에 200원 지출인 날들이 계속되고 있어서 그런가. 피곤이 배가 되는 듯.

잠깐의 틈이 나면 습관처럼 눕게 되고, 나도 모르게 초저녁부터 잠이 온다. 


오랜만에 이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옆에 쌓인 책을 보니 생각나는 건 하나.

읽지도 못했는데, 도서관에 반납할 날이 되어버렸다는 거...

진짜 재밌게 읽고 싶었는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24-06-1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은 진짜... 아니 근데 5월 한달에 생신, 결혼기념일 등등 죄다 겹치는 이유는 또 뭐냐고요 하아.... 휴일다운 휴일이 없어요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

구단씨 2024-06-18 23:46   좋아요 1 | URL
이것만 있는 건 아니고요. 더 있어요. ㅎㅎㅎ
게다가 이제 장례식장 줄줄이 가게 생겼거든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요. ㅠㅠ

잠자냥 2024-06-1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여름에는 꼭! 빙수 사 드세요!!!!! 꼭!!!

구단씨 2024-06-18 23:47   좋아요 0 | URL
그럴 거야요~~ 꼭!!

Breeze 2024-06-13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나를 위해 빙수는 하나 사 먹읍시다! ㅋㅋㅋ

구단씨 2024-06-18 23:47   좋아요 0 | URL
집 근처에 빙수 파는 집이 널렸는데, 그거 하나 못 먹고 있었다니...
먹고야 말테얏!!
 
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은 시골 주택에서 사시는 시어머니의 집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주방 싱크대 위는 빈 곳을 찾아볼 수 없고, 주방 옆 한쪽 구석에는 커다란 냄비가 쌓여 있다. 안방 침대 옆 옷걸이에는 옷이 가득 걸려 있어서 안쪽에는 어떤 옷이 걸려 있는지 감춰져 있을 정도이고, 냉장고는 정리되지 않은 채로 까만 봉지에 담긴 것들이 두서없이 쌓여있다. 봉지를 열어봐야 뭔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사정이 있어서 다른 동네에 있는 집과 왔다 갔다 하면서, 말 그대로 두 집 살림하시는 시어머니에게는 총 5대의 냉장고가 있다. 그 냉장고마다 가득한 것들은 언제 냉장고를 탈출하는 걸까. 다른 방이 하나 더 있지만, 누군가 와서 쉬거나 잠을 자고 갈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집의 크기에 비해 많은 짐으로 가득해 보인다. 남의 살림이니 굳이 간섭할 필요는 없지만, 훗날 이 집을 정리해야 할 상황이 올 걸 생각하면 걱정이 가득하다.


소설은 갑자기 돌아가신 시어머니 집을 정리하러 온 모토코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하아. 한숨부터 나오는 건, 나 역시 그녀의 시선 그대로 느낄 수밖에 없어서, 가끔 가는 시어머니 집을 보는 내 마음이 그녀와 같았기 때문이다. 월세가 계속 나가는 시어머니의 집 정리를 서둘러 하고 싶은 모토코는 암담했다. 업체에 맡겨서 처리하자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고, 본인이 직접 하려고 시작하니 끝도 없이 짐이 쏟아져 나온다. 도대체 이것들로 뭘 하고 있던 걸까 싶을 정도로, 시어머니의 집에서는 한 번도 뜯지 않은 물건부터 오랫동안 입지 않았을 옷까지,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은 또 어떻고. 어쨌든 방법이 없으니 직접 해야만 했다. 빨리 처리하고자 짐을 꺼내고, 큰 가구나 가전은 수거 날짜에 맞춰 내놓아야 하니 차근차근 처리했다. 하지만, 정말 끝이 없었다. 종일 몸을 움직여 치우는데도 치워야 할 짐이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자기가 볼 때는 전혀 쓸모없는 물건들이지만, 이 집에서 나고 자란 남편에게는 다를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에게 사진으로 보여주는 물건들의 처리를 물어보는데, 더 황당한 말이 돌아온다. 버릴 수 없다고. 그럼 어떻게 해? 집으로 들고 갈 수도 없고, 집으로 들고 간다고 하더라도 놓아둘 공간이 없는데 어쩌려고?


시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면서 불쑥불쑥 친어머니의 집이 생각나는 모토코.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던 어머니의 집은 꼭 주인을 닮았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집안 모습, 딱 필요한 만큼만 갖고 있던 손수건처럼 집안의 모든 물건이나 자기 치장을 위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소장하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성정을 보고 자란 모토코가 시어머니의 생활 방식을 쉽게 이해할 리 없다. 그러니 지금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면서 한숨만 푹푹 나오는 거겠지. 그때 시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녀가 처리하기 힘들어하던 물건을 지혜롭게 같이 정리해 주기 시작한다. 기부하는 곳에 보낼 물건, 수량 제한이 있지만 사정을 봐주기도 하는 시청의 수거 담당의 일 처리,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는 이웃들까지. 평소 시어머니와 잘 지냈던 이웃들은 암담해하던 모토코의 일을 도와준다. 이런 걸 보면서 그녀는 문득 궁금해진다. 이웃들에게 시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남겨진 짐들을 정리하면서 이웃들이 전하는 시어머니와의 일화는 의외였다. 시어머니의 오지랖이 불편했던 그녀와는 달리, 이웃들은 시어머니의 오지랖으로 도움을 받은 일이 적지 않았다.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을 돕고, 어쩌면 그들에게 베풀면서 본인도 주는 기쁨을 누렸던 건 아닐까. 시어머니의 소박한 일상은 나중에 발견한 일기를 통해 더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그 일기장 역시 자기 친어머니와 저절로 비교되는 모토코였다. 일기장까지 그 주인의 성격을 닮아있으니, 누군가 남긴 흔적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보는 기분이었다. 타인과의 교류에 감정 기복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던 시어머니의 일기장과 단 두 줄로 그날의 기록을 마무리했던 친어머니의 일기장.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불쑥불쑥 끼어드는 친어머니와의 기억은 또 하나의 시간여행이었다. 죽은 후 남겨진 물건들로 그 사람의 삶을 읽는다.


물건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영혼이 깃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영혼이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264페이지)


시어머니가 남긴 물건을 일일이 손으로 직접 확인한 일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시어머니의 방에 있던 수많은 유품은 시어머니의 인생을 응축시켜 보여주었다. (392페이지)


평소 우리 삶의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로 익숙한 가키야 미우의 이번 작품 역시, 내가 걱정하던 그 순간을 미리 보는 것만 같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남겨진 사람이 그 집을 정리해야 할 텐데, 시어머니의 유일한 자식인 나의 남편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나도 남편 대신 시어머니 집을 정리하던 모토코와 같은 상황을 겪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 다 버려야 할 것들이라 오히려 업체를 부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살아온 흔적이 가득한 곳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남편은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다. 어찌 시어머니 집뿐일까. 혼자 계신 나의 엄마도 언젠가 떠날 테고, 그 집 역시 시어머니 집만큼은 아니어도 정리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답답하긴 한데, 막상 정리하면서 느끼는 마음은 사뭇 다를 것도 같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엄마의 공간이면서,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자라던 나의 공간이기도 하기에. 버려도 되는 건 바로바로 버리고 살자고, 언젠가 쓸 것 같다는 마음으로 쌓아두기엔 언젠가 쓰지 않고 버리게 될 게 너무 많다고 잔소리하는 나이지만, 한 사람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건 역시 쉽지 않으리란 걸, 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처리하는 과정에서 모토코가 알게 된 마음을 많은 독자가 같이 느끼지 않았을까? 남겨진 물건들로 그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고부 관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기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살아가는 노력으로 또 한 번 인간에 대한 이해를 쌓아가는 건 아닐까 싶다.



#시어머니유품정리 #가키야미우 #문예춘추사 #소설 #문학

##책추천 #책리뷰 #일본소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24-05-30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윽... 저는 이 책 못 읽을 것 같아요. 리뷰만 읽어도 몰입되서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데요 ㅠㅠ

구단씨 2024-05-31 21:51   좋아요 2 | URL
아닙니다. ^^ 마음이 와르르 무너질 일은 없는데요.
그래도, 언젠가 일어날 일을 미리 경험하는 기분은 들었어요.
그것도 제가 항상 걱정하던 일이어서 그런지,
가볍고 편하게 읽히는 문장과는 달리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