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이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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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문자 T’의 성향을 좋아한다. 살다 보면 감정을 먼저 추스르고 위로해야 할 때가 분명 있지만, 과거의 나라면 그 감정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고 애썼겠지만, 지금의 나는 공감이나 위로보다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성의 감각을 선택하곤 한다. 그래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소설 속 안시찬의 상황 판단, 가끔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이성적인 말들, 전달해야 할 정보를 녹음해서 단톡방에 올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중환자실 앞에서 서성이는 비효율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아내의 상태를 확인하며 의료진의 판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의 우선순위를 먼저 판단하는 일 아닐까.


소설가 안시찬의 아내 이지수가 갑자기 쓰러졌다. 온라인 독서 플랫폼 운영자인 아내 이지수가 그날 외부 일정을 끝내고 집에 왔을 때는 그저 피곤해 보였다. 낮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그는 밤에 아내의 방문을 열어보고서야 아내의 상태를 확인한다. 침대 위 구토의 흔적과 쓰러지듯 힘이 없는 아내를 응급실로 데려간 후, 그의 시간과 기억은 자꾸만 과거를 향한다.


분명 전조 증상은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인제 와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랴. 그의 아내는 뇌출혈 진단받았고 곧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 의료진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고, 그를 알아보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검사 결과 아내의 상태는 뇌출혈뿐만은 아니었다. 결국 수술하기로 했지만,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없어졌다. 지금은 그저 더 나쁘지 않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


사실 그에게 지금 상황은 아내의 갑작스러운 질병만 신경 써야 하는 게 아니었다. 부부는 곧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매도와 매수 계약을 완료한 상태였다. 지금 사는 집을 곧 비워줘야 했고, 이사할 집의 잔금도 치러야 했다. 경제적 여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매수와 매도 완료일 사이의 며칠 때문에 은행 대출도 처리해야 했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의 처리를 아내가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아내 이름으로 집 매매 계약서를 작성했고, 아내가 대출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집안의 모든 돈은 아내의 계좌에 있었던 거다. 이런 걱정을 하는 남편이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아내가 이렇게 아픈데, 돈 걱정부터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가족이 아프다고 해서 처리해야 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 사람의 사정을 누가 봐주지도 않는다. 설령 갑자기 아내가 죽었다고 해서 그의 앞에 놓인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도 않잖아. 갑자기 찾아온 슬픔은 몇 겹으로 갑자기 쌓일지 몰라도, 현실의 문제는 그 몇 배의 감정과 노력으로 또 해결해야 할 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의 아내가 갑자기 이렇게 된 게 슬픈 일인데도, 가족에게도 밖에서 일하듯 대하던 그가,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뭐랄까, 일상의 모든 순간에, 아내가 일 처리를 하는 부분에서도 효율성을 강조하기만 했던 그가, 아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삶의 무게를 발견하면서 변한다. 그의 말 한마디가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줬을지, 아내가 그의 기대와 방식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아내가 말하지 않으면서 감내한 많은 일을, 그는 비로소 알게 된다. 그가 알게 모르게 아내를 몰아붙이면서도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지시하듯, 조언을 가장한 강한 압박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잘 읽히는 소설이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안시찬이라는 인물에 빠져들게 된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줄 안다고 여겼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작가니까 뭘 좀 아는 그가 하는 조언이 맞는 거로 확신했겠지. 그 뜻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아내를 몰아부쳤겠지. 스스로 책임감 강한 사람이라는 믿음,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효율성까지 갖춘 태도로 살아왔겠지. 그런 삶의 태도가 다른 사람을 버겁게 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다. 아내가 쓰러지고 난 후에 말이다. 이제껏 그의 삶을 지탱해주던 모든 것이, 그 ‘맞음’과 ‘옳음’에서 벗어나고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알게 된 것들이, 지금 그의 오늘을 뒤흔든다. 갑자기 그에게 휘몰아친 불안은 점점 커지고, 아내가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던 희망은 힘을 잃는다. 그저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를 믿는 일. 그의 간절함은 계속될 것 같다.


이상하게도, 못된 마음이 앞서는 나는 그가 얼마나 변했을지 궁금해서 소설이 더 이어지기를 바랐다. 아내에게 생긴 일은 너무 갑작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가 살아온 평생의 방식이 쉽게 바뀔 거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아내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진심으로 후회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믿음을 찾아 기도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해도, 이번 일로 자신을 질책하며 힘들어한다고 해도 현실의 문제 앞에서 필요한 객관성을 버리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게 참 냉정해 보이지만, 그 시간은 삶의 어느 한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건너가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 이렇게 말하는 내가 너무 못된 년인가? 아내에게 갑자기 일어난 일도 그에게 고통이었고, 앞으로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고통이었다. 후회 같은 많은 감정은 거부해도 밀려 들어오고 있는데, 현실의 문제는 그를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기도 한다. 더 나빠지지 않으려고, 더 고통스럽지 않으려면, 그가 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그는 냉정해지지 않을 수 없고, 한없이 슬픔에 빠져들 여유가 없어질 거다. 그러다가 원래 자기가 살아온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아니, 저절로 돌아가 있을지도.


말하다 보니 내가 정말 부정적인 사람인가 보다 싶기도 한데, 같은 경험을 한 사람으로 겪어낸 시간을 돌이켜보니, 나는 그렇던데. 자책과 후회, 불안이나 공포 등 많은 감정이 휩쓸고 지나가면서도, 결국은 정신 차려야지 하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의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던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은 그런 거 아닌가? 그런데도 선뜻 마침표로 끝낼 수 없는 건 확신의 몇 프로쯤 모자란 느낌이라서다. 절규에 가까워 보이는 안시찬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서. 내 자식만 생각하고 냉철하게만 얘기하는 엄마와의 대화를 놓아버린 그가 소리 죽여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라는, 공감해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걸로 보여서. 아마도 그가 장착해왔던 냉정함은 아내가 겪을 고통 앞에서, 언어의 기능을 놓치고, 어쩌면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할 아내의 절망을 보듬어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장모님과 처제, 그 자신이 함께 감당해야 할 무게를, 그들이 공유할 고통의 민낯을 마주하면서 기적을 위한 기도를 하고 인간다움을 채워갈 거로 믿고 싶은 거다. 그 믿음 속에서 나도 그런 인간이 되고 싶어서.


담백하게 읽기 시작했다가 작가의 상황을 알게 되고 좀 놀랐다. 이 책을 읽은 누구나 그 믿음,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것이다. 아직은 인간다움을 더 크게 품고 사는 우리이기에.



#서성이다 #장강명 #현대문학 #핀소설 #한국문학 #소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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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때 같으면 그냥 빵 봉지를 쭈욱 찢어내렸을 텐데,

곱게 가위질로 위를 잘라주었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편의점 지날 때마다 물어봤다.

있어요?


없단다.

발주도 못할 때가 많단다.


그런가 보다 했다.

시간이 지나니까 궁금해지지 않더라.

없으면 말지 뭐, 이런 마음?


어제 우연히 김밥 한 줄 사러 들어간 편의점에 딱 한 개가 남아있기에

고민도 없이 집어왔다. (없으면 말지, 그런 마음이라며?)

아무래도 궁금증이 사라진 건 아닌가 보다.


결론은?

빵이 너무 작아서 아쉬웠다.

약 먹어야 해서 한 달이 넘게 빵 끊은 상태였는데,

작은 사이즈의 빵이 이렇게 서운할 수가 없더라.

맛은 좋았다. 짭쪼름해서, 크림도 잔뜩 들어가 있어서, 쫄깃한 식감도 좋고.

생각보다 책갈피도 작았다. 세로로 긴 줄 알았더만.


다시 사 먹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은 할 수 있겠다.


나도 민음사빵 먹어본 독자다!




묘하게 빨려 들어가듯, 

다음 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또 하나 득템했다고 좋아하는 마음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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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10-0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 어제 남편이 드디어 구해다 줬어요. 생일선물로 구해달라 그랬거든요. 저도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표지판으로 갖고 싶었는데 저는 시집, 심지어 빵 2개에 똑같은게....
그런데 함정이 저 빵 맛있지 않나요? 편의점 빵의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6-10-01 13:11   좋아요 1 | URL
생일선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6-10-01 15:34   좋아요 1 | URL
후일담도 알려드릴까요? 남편이 직장 앞 편의점을 매일 들리다가 입고시간에 맞춰 가도 못샀대요. 그래서 편의점 아저씨한테 마누라 생일선물 줘야 한다고 한 번만 픽해주면 안되겠냐고 읍소해서 사왔다는.... ㅋㅋ
참 훌륭한 남편이죠. 그래서 저는 그가 전날 말도 안되는 소리로 제 심기를 거스른 죄를 한 번 용서해주었습니다. ㅋㅋ

구단씨 2026-10-02 12:17   좋아요 0 | URL
와아~~~ 생일 선물로. 남편 분 센스 있으시다.
저희 남편은 이게 뭔지도 모르고, 빵값 비싸다고... ㅠㅠ
근데 말씀처럼, 빵이 맛있어서. 이래도 되는 건가요?

바람돌이 2026-10-02 13:24   좋아요 0 | URL
남편 센스 아님. 제가 콕 집어서 이거 생일선물로 받도싶다 한거임. 울집 남편도 이게 뭔지도 몰랐습니다

잠자냥 2026-10-01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빵 맛이 좋았던 건 한 달 만에 드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6-10-01 15:32   좋아요 0 | URL
일주일에 2-3번씩 먹는 제가 먹어도 빵 맛있었습니다. ㅎㅎ

구단씨 2026-10-02 12:18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제가 어제까지 두 가지 빵 먹어봤는데, 맛있어요.
제 입에는 작은 사이즈 빵이 더 맛있었고요.

아이돌 팬들이 왜 카드 수집하는지 그 마음을 조금 알게 되네요. 푸하하

카스피 2026-10-01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하기 힘든 책갈피 득템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6-10-02 12:19   좋아요 0 | URL
여러 가지 책갈피 있던데, 저는 처음이라 그런지 막 신기하고 그랬어요. ㅎㅎ

자목련 2026-10-0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빵, 맛이 괜찮은 가 봐요. 빵은 먹어보고 싶어요 ㅎㅎ

구단씨 2026-10-02 12:20   좋아요 0 | URL
맛있었어요!!!!
빵 종류에 따라 가격이 좀 달라요.
이런 걸 구하러 다닐 줄이야....
 



이른 더위에 에어컨을 끼고 살았다. 그 결과는 다들 알겠지만, 전기요금 폭탄이다. 이번 달 관리비 고지서 보고 화들짝. 예상하긴 했지만, 참 많이 썼다. 평소에 이렇게 전기요금을 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관리비 고지서를 확인하는 손이 후들후들 떨리더라. 6월에 사용한 게 8월에 청구되는 방식이고 여름 고지서는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서너 달은 더 떨리는 마음으로 고지서를 받아들 것 같다. ㅠㅠ 매년 여름에 사용하는 전기량이 다른 계절보다 많긴 하지만, 전기요금으로 따져보면 평균 사용하는 요금보다 5천 원 정도 더 나오는 수준이었다. 에어컨을 쓰는 데도 이 정도밖에 안 나왔다고? 여름이니까 더운 건 당연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여름에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진 않았던 것 같다. 정말 더우면 약하게 설정된 찬바람 정도? 그런데 올해 여름은 시작부터 괴로운 더위였다. 밖에 나가면 뜨거운 햇살에 등짝이 탈 것 같고,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에어컨부터 켰다. 그렇다고 밤에 끄고 잘 수도 없었다. 문제의 그놈, 열대야. 이제는 정말 헤어지고 싶은데 아직 멀었다는 듯이 바짓가랑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미친 듯이 쏟아진 비에 손 흔들며 찾아온 더위의 절친인 습기까지. 이 꿉꿉한 습기라도 좀 사라졌으면 좋겠구먼. 아무래도 여름 다 가려면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더위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앞에서 책장이 더 잘 넘어갈 것 같지만, 아니었다. 더우니까 자꾸 뭔가를 더 마시게 되고, 어디서 숨어있는지 모를 습한 기운이 피부에 닿아서 손끝의 땀이 잘 마르지도 않는다. 손에 책을 들고 있어도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는 더디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기라도 하면, 살짝 졸린 기운이 돌아도 금방 손에서 책을 내려놓는다. 아무런 죄책감이나 아쉬움이 없이 말이다. 그래서 겨울보다 여름의 독서량은 훨씬 줄어든다. 나의 경우에 그렇더라. 이번 여름이라고 뭐가 다르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도서관에 신청한 책들 반납하기 전에 읽으려고 애쓴 흔적이 조금 남았다. 열대야와 싸우며, 더워도 한 페이지만 더 넘기겠다고, 그러려면 가독성 좋은 추리소설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쳤다. 읽고 보니 취향이 아니었던 책도 있었고, 정말 재미없던 책도 있었다. 다른 독자의 후기가 좋건 나쁘건, 책이 가볍든 무겁든 상관없이, 이 지독한 열대야에서 조금이나마 나를 견디게 해주었던 책들을 저장하는 중이다.



<급매 106동 101호>

이미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급매’로 나온 물건이 이유가 없을 리 없다는 의심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웠다. 같은 조건의 다른 집보다 싸게, 급하게 팔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는 거다. 얼마나 급했으면, 얼마나 안 팔릴 것 같았으면 그 가격에 내놓았을까. 층간 소음에 시달리던 부부가 급매로 나온 솔숲아파트 106동 101호를 홀린 듯 계약한다. 찾아다녔던 1층, 시세보다 저렴한 집, 임신을 준비하고 있으니 아이가 태어나면 이 정도의 공간은 필요하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계약하고 입주했다. 그 후로 이 집에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 이런 불행이 정말 우연일까?

예상했듯이 이 집에는 사연이 있었고, 그 사연은 먼저 살다가 나간 사람들을 괴롭혔다. 누군가의 안부를 물으며 “잘 살고 계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의미였는지 새삼 알게 된다. 이 집을 둘러싼 기묘한 소문과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에 관심 없이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도 느끼게 된다. 잘못하고 살았으면 반성하고, 남의 가슴에 상처를 줬으면 진심으로 사과하자. 말도 안 되는 욕심에 여러 사람에게 고통 주는 가해자로 남는 게 즐거울 리 없지 않은가. ‘급매’에 현혹되지 말고, ‘급매’의 사연에 무심하지도 말자. 이유 없이 발생하는 일은, 거의(아마도?) 없다.



<주와 연>

소개로 쓰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설정부터 이야기가 흘러가는 과정, 마지막 반전까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었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이런 식의 복수, 신선하잖아.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와 그 여자에게 복수하고자 그들의 자식으로 태어난 주인공. 이미 한번 살아봤던 십몇 년의 생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게 지겹기도 했겠지만, 자기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번 생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갈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그들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계획이 완벽하게 마무리될지도 궁금했고 말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미 살아본 시간이 반복되니 내가 우위에 있을 것 같잖아. 너희들이 아직 모르는 걸 나는 다 알고 있다, 이런 마음으로 든든한 백이 있는 것 같고. 그렇게 두려운 것 없는 시간을 살아갈 것 같지만,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있으니 그게 또 인생 아니겠나. 아, 진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건 마지막 반전이었다. 주인공의 복수가 완성되어가는구나 싶을 때, 튀어나온 또 다른 이의 복수 같은 결말. ‘내 마음, 내 상처를 너는 무시했지. 그러니 너도 내 마음 그대로 받아보면서 살아 봐. 인생 2막을 만들어낸, 지금의 너처럼.’ 그런데 말이야. 나는 좀 궁금하고 속상한 게, 살면서 누구 미워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럼 상처받은 마음은 어떻게 하라고? 그냥 상처받은 채로 놔두면, 저절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없어져?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인기몰이할 것 같다. 회귀물이 실패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고, 이 작품이 회귀물은 아니어도 인생 다시 시작한다는 거로 생각하면 비슷한 설정이니 낯설지는 않을 듯.



<개의 심장>

이 책 오래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내가 언제 이 책을 샀었나 싶게 이번에 기증으로 보내려는 책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ㅠㅠ 산 줄도 몰랐던 사실보다, 이 책 내용이 다시 떠올라 살펴보니 드는 생각, 진짜 무섭구나. 1920년대의 러시아가 배경이다. 떠돌이 개는 우연히 자기를 사랑해주는 주인을 만난다. 주인은 개를 집으로 데려와 보살펴 주었고, 개는 주인의 보여주는 사랑에 반한다. 사실 주인은 오랫동안 해왔던 연구의 완성을 위해 개를 수술시키려던 거였다. 개에게 인간의 뇌와 고환을 이식하고 수술 예후를 지켜보기 시작한다.

<프랑켄슈타인>을 보면서 어디까지가 인간의 연구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의 욕심일까 궁금했다. 이 소설도 비슷한 의문과 서늘함을 주는데, 문제는 개에게 이식된 인간의 뇌가 어떤 작용을 해도 좋은 결말이 나오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 생각이었다. 개는 점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고 인간의 말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떠돌이 개로 살던, 거리의 부랑아 같은 습성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최소한으로 갖추어야 할 예의조차 없는, 외모가 인간이어도 인간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쯤 되니, 독자도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 상태가 계속되어서도 안 되고, 계속될 리도 없으니까. 주인이 예상하지 못한 수술의 결말이 이 정도인데, 이 나쁜 상황을 되돌릴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어? 무서운 건 이 실험(?)의 의도였다. 인간 본성을 교정하겠다며 개에게 이식수술을 하고, 그렇게 새로운 창조물이 완성될 거로 믿었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었으니까.

세상 가장 위험한 건 역시, 인간이었나.



애증의 <프리다 맥파든>

이제는 그만 읽어야지 하면서도 신간 소식에 한 번쯤은 기웃거리게 되는 작가. 올해 출간작을 찾아보니 11권이나 된다. 아직 올해가 다 지난 것도 아닌데, 다른 본업도 있다는데 이 정도의 다작이 가능한지 놀라울 뿐이다. 그동안 써 놓은 것이 몰아치며 쏟아져 나오는 건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에너지가 부럽긴 하다. 올해의 그 많은 출간작 중에서도 분명 페이지를 펼친 게 있다. 다시 안 읽어야지 욕하면서 덮고서는, 스리슬쩍 또 손을 대고 있으니 이 무슨 마음인지, 참. <세입자>, <더 티처>, <친애하는 데비에게>, <대리모>까지 4권이나 손을 대고 말았다. 문제는, 이번에는 펼치는 족족 완독하지 못했다. 초반부 읽다가 덮고, 어쩌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건 기억도 못 하고. 이제 정말 그만 읽어야 할 때라는 생각에, 귀찮아서 그냥 두었던 신간 알림도 취소하고, 책장의 책도 정리하면서 작별을 고해야 할 작가로 남을 듯하다. (이렇게 말해놓고 또 읽으면 어떡하지? 연예인의 은퇴 번복 인터뷰라도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이 작가 작품 대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는 게 이제야 떠오르네. 엄마가 평일 저녁 7시 조금 넘어서인가부터 저녁 9시까지 채널 바꿔가면서 3편의 일일드라마를 보시곤 한다. 얼마 전에는 병원 진료 때문에 우리 집에서 주무신다고 오신 적이 있는데, 그날 저녁에 그렇게 드라마 3편을 연이어 보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났다. 옆에서 말동무해드리려고 같이 앉아서 보는데, 아 진짜, 너무 웃긴 거다. 드라마 제목과 채널만 다를 뿐, 내용이 다 똑같아. ㅎㅎㅎ 몰랐던 것도 아닌데, 오랜만에 본방송 사수하면서 같이 보고 있으려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생각해보면, 내가 즐겨보는 다른 장르의 드라마나 예능도 다 비슷할 텐데 말이야.



8월 한 달 동안 읽은 책이 10권은 넘은 듯하다. 대충 페이지를 넘기거나, 흐르는 땀을 잊을 정도로 푹 빠져 읽었거나. 그중 대부분은 한국 추리소설이었고, 괜히 가슴이 섬뜩해지는 이야기였고, 자주 만나지 않는 작가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설정과 문제 해결 과정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이라는 걸 알아서인지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나 역시 착한 인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상처받는 내 마음만 보이는 인간이라 그런지, 복수의 설정에 더 애정을 쏟으며 읽게 되더라. 언젠가부터 중간이나 ‘적당히’가 없는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니 모가 난 구석이 더 많아지는 것도 사실인데, 살면서 자꾸만 이기적으로 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배려하면 호구가 되는 세상이 무서워지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호의를 이용하려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걸 느끼고 싶어서 자꾸만 이야기를 찾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어떤 결말에서 한 번씩 반성하고 마음을 쓸어내리는, 아직 내 마음속에는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간절함이 남아 있는 거라고, 그렇게 안도하고 싶어서라고 안심해 본다.



거의 두 달 동안 타 죽일 것 같은 햇살과 열대야에 지쳤는데, 거기에 폭우가 합세했다. 내가 사는 이곳은 크게 가뭄이나 홍수 같은 거 없이 조용한 곳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폭우에 잠기는 곳이 생겼다. 어젯밤에도 미친 듯이 쏟아지더니, 새벽부터 사이렌 소리에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라. 지역 카페 게시글에는 폭우 피해가 넘쳐났고, 한밤중에 주차된 차를 빼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다행히 우리 아파트는 지대가 살짝 높아서 물에 잠겼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비가 내릴 때마다 이런 피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불안하긴 하다. 더위와 습기에 짜증스러운데, 피해당한 일을 회복하려고 안달복달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친 이들의 마음을 알아서. 아직 끝나지 않은 비는 지금도 폭우 예보와 안전 안내 문자를 쏟아내고 있다. 더는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이 여름이 더 나쁘게 기억되고 기록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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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레인 (30만 부 기념 Take your marks 에디션) ㅣ 보름달문고 82
은소홀 지음,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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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라고 오랜만에 조카가 할머니를 보러 왔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학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번 통화할 때마다 바빠서 얼굴 본 지가 너무 오래여서 그런지 더 반가웠다. 하지만 그 반가움도 잠시, 방학이라기에 시간 여유가 좀 있는 줄 알았더니, 방학이 열흘이란다. 요즘 학교는 방학이 원래 이렇게 짧아? 학교는 수업일수만 채우면 된다는 나만의 생각으로 아마 겨울방학이 좀 길겠구나 추측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무슨 방학이 이렇게 짧은 걸까? 괜히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에 한 마디 건넸다. 요즘에는 학생들 방학해도 숙제가 없다는데 맞는 거냐고. 원래 숙제가 없긴 한데, 이번에는 독후감 한편만 제출하면 된다고 하더라. 그렇게 어린 조카의 숙제를 같이하려는 목적으로 만난 책이긴 한데, 다 읽고 보니, 솔직히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마음이 급하기만 한 지금의 나에게 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열세 살의 강나루는 수영 꿈나무다. 이미 전국 대회에서 메달도 많이 땄고, 한강초 수영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어느 순간 인생 진로가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루의 미래는 수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0.1초의 기록 단축을 위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건 라이벌 초희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학교 에이스인 초희가 항상 1등을 하면서부터, 나루는 4번, 5번 레인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으니까. 자기보다 팔이 긴 초희가 수영에서 유리한 조건인 건 맞는데, 그게 1등을 만드는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그걸 알기에 나루는 더 심란하다. 속으로는 자기 팔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하는 바람이 멈추지 않고, 급기야 초희의 행운의 부적인 반짝이는 수영복에 뭔가 있을 거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나루는 왜 하필 수영이었을까. 수영을 시작하면서 당연하게(?) 잘하게 됐고, 그 결과물은 1등이라는 순위, 눈으로 보이는 메달로 증명되곤 했다. 자연스럽게 정해진 자리처럼 여겨지던 그 1등이, 어느 순간 당연하지 않게 되면서 실패를 맛보게 되는 아이의 마음을 생각했다. 부모의 마음으로 나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많이 어렵고 후회했던 건, 실패해도 괜찮다는 안심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하는 거였다. 식상하고 흔한 그 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살면서 가슴에 깊이 박혀 있다. 연습하고 도전하고 다시 뒤에서 시작하고, 우리 사는 동안 그렇게 반복되는 게 인생의 진리 같았는데, 처음에는 그걸 몰랐다. 아마도 나루의 지금은 그런 마음, 실패와 좌절이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일부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고 있는 듯하다. 자기 팔이 조금만 길었다면, 초희의 부적 같은 수영복이 없었다면, 지금 1등을 놓치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가득할 수 있는 때라는 걸, 안다. 자라는 중이니까.


그렇게 우리가 답을 찾아가는 것처럼, 나루도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그토록 치열하게 수영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무슨 의미인지 스스로 묻기 시작한다. 같이 수영했던 언니가 수영에서 다이빙으로 바꾼 것을 보고, 잘 안되는 수영을 피하려고 다이빙을 한 게 아니라, 수영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다이빙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뭉클했다. 1등을 못 해서 실패가 가득한 마음속에, 지금 이 상황이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을까? 그랬기를 바란다. 열세 살이라는 나이는, 미래의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고, 수영이라는 인생 진로가 정해진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수영을 목표로 체육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도, 자기 실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에 좌절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방향의 인생길이 있다는 걸 알기에 이른 나이도 아닌 듯하다. 그래서 더 응원해주고 싶다. 물살을 가르는 선수에게 들리지 않아도 관중석에 앉아서 목이 터지라고 응원하던 친구들처럼,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후회했던 어른의 마음으로.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내 주변의 어른들은 왜 앞을 보는 것만 알려주었을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왜 더 일찍 과정이나 도전을 응원해주는 어른이 되지 못했을까. 사실 이런 후회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한 번씩 떠올리면서 반성하는 마음이 되는 건, 그 시절에 다양한 도전은커녕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시간이 후회되어서다. 별로 실패해본 적이 없이 자라왔다. 그 말은 실패할만한 도전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대학까지 들어갔다. 학교만 다니면 되는 줄 알고 살다가, 처음 실패를 맛본 건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면서부터다. 연습이 부족하면 다시 공부하고 시험 보면 되는 건데, 그게 뭐라고 한번 떨어지고 나니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좌절감을 느꼈을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한데 말이다. 그 후로도 실패는 계속됐다. 운전면허 시험도 떨어지고, 취직시험도 막 떨어지고. 힘들긴 했지만, 세상이 무너지진 않았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으면서도 막상 현실에 적용하려니 많은 것을 세상의 잣대로 보게 되더라. 진짜 어른이 아니었던 거지.


다행히도, 나의 남동생은 자기 아이들에게 인서울 대학을 강요하지도 않고, 학원 뺑뺑이를 돌리지도 않는다.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대학도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꼭 대학을 가는 게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았다고,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 이후로 가야 하는 길을 아이들 몫이니, 자기들이 알아서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고 말이다. 이 책을 같이 읽은 조카가 곧 중학교에 입학한다. 그 아이도 나루가 찾은 것처럼, 인생의 여러 방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그 아이의 친구들이나 주변은 여전히 빡센 학습환경이고, 무조건 1등이 인생을 결정하는 분위기라 걱정되긴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부모가 1등 인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서 조금 안심이 된다. 조카가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찾고 중심 잃지 않고 갔으면 싶은 고모의 마음으로, 공부든 수영이든 그 무엇이든, 자기가 열고 싶은 문을 여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 문을 열고 직접 부딪히면서 겪을 세상을, 아이들을 응원한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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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충 사육 준수 사항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8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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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트럼펫을 불었지만, 그게 생계를 유지해주지는 않았다. 정한은 잊고 있던 현실을 직시하고 트럼펫을 내려놓는다. 막막했다. 예체능의 바다에 있던 그가 어디로 헤엄쳐서 갈 수 있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그가 발 디딜 곳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다.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국가 지원 사업인 식용 곤충 재배의 기회가 주어진다. 때가 되면 갚아야 할 빚이지만, 그에게 3억 원이라는 대출금도 준단다. 이 큰돈이 그가 새롭게 태어날 발판이 되었다. 식용 곤충 재배할 준비를 마친 그가 전에 없던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언젠가 인간의 먹거리가 될 식용 곤충, 일명 ‘빵충’ 사육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루 2시간 정도 관계 기관에서 정한 절차를 지키면서 매일 반복된 일정을 소화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빵 맛이 나는 이 벌레는 맛도 좋아서 사람들에게 인기였다. 아니, 근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 건 맞잖아. 진짜 딱 봐도 무슨 애벌레가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빵이, 그 이름마저 ‘빵충’이라는데, 선뜻 손이 갈 수 있을까? 배가 고플 때는 손가락도 빨아먹을 만큼 먹는 걸 좋아하는 나인데, 솔직히 표지만 봐도 이걸 먹는 거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책 소개 글을 보고 이게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다시 봐도 영 적응하기 어려운 비주얼이다. 암튼, 이 빵충 사업은 정말 잘 됐다. 사람들의 호기심과 만족감을 채워주었고, 홍보도 잘 되어 이대로라면 돈을 쌓아두고 사는 인생이 계속될 것 같았다. 밥벌이도 못 한다고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했던 가족들에게 명절에 선물도 사 들고 방문했다. 살면서 이렇게 만족스러울 때가 또 있었을까. 아, 행복해. 반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정한이도 행복했다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곤충을 식용으로 일상화할 수 있을까? 물론, 이미 여러 가지 곤충을 먹는 장면이 낯설지는 않은데, 아직 먹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설정이 그저 상상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되나 싶은 거부감이 생기기도 한다. 영화 <설국열차>에서도 바퀴벌레를 양갱으로 만들어서 먹는 장면을 보면서 속이 울렁거렸는데(바퀴벌레 양갱을 먹는 사람들은 그들이 먹는 양갱이 바퀴벌레로 만든 건지 처음에는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 곤충들이 단백질 풍부한 흔한 먹거리가 되는 게 실현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빵충 사업으로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주인공, 같이 이 사업에 선정된 이들을 보면서도 마냥 긍정적인 결말을 생각할 수 없었다. 원래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이들에게 주어진 행운이 조금이라도 어긋날 때 그 본성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사업이 잘되니까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이 이 사업에 뛰어든다. 그러다 보니, 수요는 한정적인데 공급이 늘어나고 빵충 가격도 하락한다. 한 달 최저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돈이 쥐어지자, 처음 빵충 사업에 참여했던 정한과 동기들은 이 위기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위반하면서 ‘자이언트 빵충’의 재배에 뛰어든다. 그리고 점점 그 준수 사항을 벗어나는 범위가 커지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분위기가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무슨 방탄복처럼 연상되는 빵충 번데기, 그 번데기에서 나오는 냄새는 무엇이기에 성충을 홀리고 있는지, (더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까 봐 여기서 그만) 빵충 사업으로 풍요로웠던 표정들은 이제 피 칠갑을 보고 뒤로 자빠지면서 살길을 찾느라 애쓴다.


좋아하는 것만으로 먹고 사는 게 어렵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 생업이 되고, 그게 돈이 되면서 생계에 지장이 없는 정도라면 금상첨화겠지. 하지만 그런 행운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현실이다. 정한이 오랜 시간 트럼펫을 불면서, 같이 음악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적은 돈을 벌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건 잠시 현실을 잊은 채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현실을 마주했을 때는, 발버둥 치는데도 벗어날 수 없는 실패의 늪이었다. 인생의 처음 주어진 행운처럼 창업의 세계에 뛰어들고 성공 가도를 달릴 때는 독자인 나도 같이 신났다. 이렇게 긍정적인 결과를 봐야 같이 으쌰으쌰 살아갈 맛이 나는 거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목숨을 건 전쟁 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때는 숨 차는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것뿐이었는데 왜 이렇게 흘러가지? 주어진 규칙을 성실하게 지켰는데, 나중에 보니 그 규칙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했을 때는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인생 실패도 겪어보고 잘못 살아온 시간에 속죄도 했는데, 사랑 하나만 믿고 새로운 시작에 뛰어들었는데, 왜 세상은 내가 그리는 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 건가. 살아보겠다고 욕심 좀 부린 결말이 이렇게 처참해도 되는 거냐고.


내 취향의 소재는 아니었지만, 너무 흥미로웠다. 많은 관객이 봤다는 영화 <부산행>도 나는 그저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취향은, 괴물이 나오고 뭐가 막 잡아먹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그러니 열차 안의 좀비들이 그냥 웃기게만 보였겠지. 그런데도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말았다. 그놈의 빵충, 인간의 먹거리를 대신해줄 단백질 덩어리의 변화가 어떤 결말로 최후를 맞이할지 궁금해서 말이다. 처음 빵충 사육의 성공을 보면서 주인공과 같이 기뻐했고, 어제까지 망한 인생 좀 피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생이 어디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상기해주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주인공의 인생이 변화하는 것만큼 빵충이 변화하면서 일으킬 또 다른 사건이 기대되면서 긴장감이 몰아치더라. 아, 진화하는 건 인간만이 아니었구나. 진화하는 만큼 욕심이 다양해지고 커진다는 것 역시 어느 개체나 비슷하게 적용되는 본심이었다는 걸.


저자의 말처럼, 사육종으로 살면서 야생종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순간을 목격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길러지듯 수동적으로 좀 편하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으면서도, 길들여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살면서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겪는 순간들이었다. 정한의 말대로 그가 마지막에 붙잡은 게 미래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고’ 붙잡았으니,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살아온 인생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이 한 편씩 들려올 때마다 리듬을 타는 듯했던 이야기는, 다양한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도 있게 한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봤던, 삶의 궤적이 그대로 비쳐서 누구 하나 미워할 수도 없게 하는 게 참, 아이러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재난 영화인가 싶었는데, 세상살이의 잔인한 교훈으로 가득한 이야기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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