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더위에 에어컨을 끼고 살았다. 그 결과는 다들 알겠지만, 전기요금 폭탄이다. 이번 달 관리비 고지서 보고 화들짝. 예상하긴 했지만, 참 많이 썼다. 평소에 이렇게 전기요금을 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관리비 고지서를 확인하는 손이 후들후들 떨리더라. 6월에 사용한 게 8월에 청구되는 방식이고 여름 고지서는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서너 달은 더 떨리는 마음으로 고지서를 받아들 것 같다. ㅠㅠ 매년 여름에 사용하는 전기량이 다른 계절보다 많긴 하지만, 전기요금으로 따져보면 평균 사용하는 요금보다 5천 원 정도 더 나오는 수준이었다. 에어컨을 쓰는 데도 이 정도밖에 안 나왔다고? 여름이니까 더운 건 당연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여름에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진 않았던 것 같다. 정말 더우면 약하게 설정된 찬바람 정도? 그런데 올해 여름은 시작부터 괴로운 더위였다. 밖에 나가면 뜨거운 햇살에 등짝이 탈 것 같고,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에어컨부터 켰다. 그렇다고 밤에 끄고 잘 수도 없었다. 문제의 그놈, 열대야. 이제는 정말 헤어지고 싶은데 아직 멀었다는 듯이 바짓가랑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미친 듯이 쏟아진 비에 손 흔들며 찾아온 더위의 절친인 습기까지. 이 꿉꿉한 습기라도 좀 사라졌으면 좋겠구먼. 아무래도 여름 다 가려면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더위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앞에서 책장이 더 잘 넘어갈 것 같지만, 아니었다. 더우니까 자꾸 뭔가를 더 마시게 되고, 어디서 숨어있는지 모를 습한 기운이 피부에 닿아서 손끝의 땀이 잘 마르지도 않는다. 손에 책을 들고 있어도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는 더디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기라도 하면, 살짝 졸린 기운이 돌아도 금방 손에서 책을 내려놓는다. 아무런 죄책감이나 아쉬움이 없이 말이다. 그래서 겨울보다 여름의 독서량은 훨씬 줄어든다. 나의 경우에 그렇더라. 이번 여름이라고 뭐가 다르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도서관에 신청한 책들 반납하기 전에 읽으려고 애쓴 흔적이 조금 남았다. 열대야와 싸우며, 더워도 한 페이지만 더 넘기겠다고, 그러려면 가독성 좋은 추리소설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쳤다. 읽고 보니 취향이 아니었던 책도 있었고, 정말 재미없던 책도 있었다. 다른 독자의 후기가 좋건 나쁘건, 책이 가볍든 무겁든 상관없이, 이 지독한 열대야에서 조금이나마 나를 견디게 해주었던 책들을 저장하는 중이다.
<급매 106동 101호>
이미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급매’로 나온 물건이 이유가 없을 리 없다는 의심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웠다. 같은 조건의 다른 집보다 싸게, 급하게 팔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는 거다. 얼마나 급했으면, 얼마나 안 팔릴 것 같았으면 그 가격에 내놓았을까. 층간 소음에 시달리던 부부가 급매로 나온 솔숲아파트 106동 101호를 홀린 듯 계약한다. 찾아다녔던 1층, 시세보다 저렴한 집, 임신을 준비하고 있으니 아이가 태어나면 이 정도의 공간은 필요하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계약하고 입주했다. 그 후로 이 집에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 이런 불행이 정말 우연일까?
예상했듯이 이 집에는 사연이 있었고, 그 사연은 먼저 살다가 나간 사람들을 괴롭혔다. 누군가의 안부를 물으며 “잘 살고 계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의미였는지 새삼 알게 된다. 이 집을 둘러싼 기묘한 소문과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에 관심 없이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도 느끼게 된다. 잘못하고 살았으면 반성하고, 남의 가슴에 상처를 줬으면 진심으로 사과하자. 말도 안 되는 욕심에 여러 사람에게 고통 주는 가해자로 남는 게 즐거울 리 없지 않은가. ‘급매’에 현혹되지 말고, ‘급매’의 사연에 무심하지도 말자. 이유 없이 발생하는 일은, 거의(아마도?) 없다.
<주와 연>
소개로 쓰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설정부터 이야기가 흘러가는 과정, 마지막 반전까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었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이런 식의 복수, 신선하잖아.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와 그 여자에게 복수하고자 그들의 자식으로 태어난 주인공. 이미 한번 살아봤던 십몇 년의 생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게 지겹기도 했겠지만, 자기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번 생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갈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그들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계획이 완벽하게 마무리될지도 궁금했고 말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미 살아본 시간이 반복되니 내가 우위에 있을 것 같잖아. 너희들이 아직 모르는 걸 나는 다 알고 있다, 이런 마음으로 든든한 백이 있는 것 같고. 그렇게 두려운 것 없는 시간을 살아갈 것 같지만,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있으니 그게 또 인생 아니겠나. 아, 진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건 마지막 반전이었다. 주인공의 복수가 완성되어가는구나 싶을 때, 튀어나온 또 다른 이의 복수 같은 결말. ‘내 마음, 내 상처를 너는 무시했지. 그러니 너도 내 마음 그대로 받아보면서 살아 봐. 인생 2막을 만들어낸, 지금의 너처럼.’ 그런데 말이야. 나는 좀 궁금하고 속상한 게, 살면서 누구 미워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럼 상처받은 마음은 어떻게 하라고? 그냥 상처받은 채로 놔두면, 저절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없어져?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인기몰이할 것 같다. 회귀물이 실패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고, 이 작품이 회귀물은 아니어도 인생 다시 시작한다는 거로 생각하면 비슷한 설정이니 낯설지는 않을 듯.
<개의 심장>
이 책 오래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내가 언제 이 책을 샀었나 싶게 이번에 기증으로 보내려는 책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ㅠㅠ 산 줄도 몰랐던 사실보다, 이 책 내용이 다시 떠올라 살펴보니 드는 생각, 진짜 무섭구나. 1920년대의 러시아가 배경이다. 떠돌이 개는 우연히 자기를 사랑해주는 주인을 만난다. 주인은 개를 집으로 데려와 보살펴 주었고, 개는 주인의 보여주는 사랑에 반한다. 사실 주인은 오랫동안 해왔던 연구의 완성을 위해 개를 수술시키려던 거였다. 개에게 인간의 뇌와 고환을 이식하고 수술 예후를 지켜보기 시작한다.
<프랑켄슈타인>을 보면서 어디까지가 인간의 연구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의 욕심일까 궁금했다. 이 소설도 비슷한 의문과 서늘함을 주는데, 문제는 개에게 이식된 인간의 뇌가 어떤 작용을 해도 좋은 결말이 나오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 생각이었다. 개는 점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고 인간의 말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떠돌이 개로 살던, 거리의 부랑아 같은 습성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최소한으로 갖추어야 할 예의조차 없는, 외모가 인간이어도 인간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쯤 되니, 독자도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 상태가 계속되어서도 안 되고, 계속될 리도 없으니까. 주인이 예상하지 못한 수술의 결말이 이 정도인데, 이 나쁜 상황을 되돌릴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어? 무서운 건 이 실험(?)의 의도였다. 인간 본성을 교정하겠다며 개에게 이식수술을 하고, 그렇게 새로운 창조물이 완성될 거로 믿었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었으니까.
세상 가장 위험한 건 역시, 인간이었나.
애증의 <프리다 맥파든>
이제는 그만 읽어야지 하면서도 신간 소식에 한 번쯤은 기웃거리게 되는 작가. 올해 출간작을 찾아보니 11권이나 된다. 아직 올해가 다 지난 것도 아닌데, 다른 본업도 있다는데 이 정도의 다작이 가능한지 놀라울 뿐이다. 그동안 써 놓은 것이 몰아치며 쏟아져 나오는 건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에너지가 부럽긴 하다. 올해의 그 많은 출간작 중에서도 분명 페이지를 펼친 게 있다. 다시 안 읽어야지 욕하면서 덮고서는, 스리슬쩍 또 손을 대고 있으니 이 무슨 마음인지, 참. <세입자>, <더 티처>, <친애하는 데비에게>, <대리모>까지 4권이나 손을 대고 말았다. 문제는, 이번에는 펼치는 족족 완독하지 못했다. 초반부 읽다가 덮고, 어쩌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건 기억도 못 하고. 이제 정말 그만 읽어야 할 때라는 생각에, 귀찮아서 그냥 두었던 신간 알림도 취소하고, 책장의 책도 정리하면서 작별을 고해야 할 작가로 남을 듯하다. (이렇게 말해놓고 또 읽으면 어떡하지? 연예인의 은퇴 번복 인터뷰라도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이 작가 작품 대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는 게 이제야 떠오르네. 엄마가 평일 저녁 7시 조금 넘어서인가부터 저녁 9시까지 채널 바꿔가면서 3편의 일일드라마를 보시곤 한다. 얼마 전에는 병원 진료 때문에 우리 집에서 주무신다고 오신 적이 있는데, 그날 저녁에 그렇게 드라마 3편을 연이어 보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났다. 옆에서 말동무해드리려고 같이 앉아서 보는데, 아 진짜, 너무 웃긴 거다. 드라마 제목과 채널만 다를 뿐, 내용이 다 똑같아. ㅎㅎㅎ 몰랐던 것도 아닌데, 오랜만에 본방송 사수하면서 같이 보고 있으려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생각해보면, 내가 즐겨보는 다른 장르의 드라마나 예능도 다 비슷할 텐데 말이야.
8월 한 달 동안 읽은 책이 10권은 넘은 듯하다. 대충 페이지를 넘기거나, 흐르는 땀을 잊을 정도로 푹 빠져 읽었거나. 그중 대부분은 한국 추리소설이었고, 괜히 가슴이 섬뜩해지는 이야기였고, 자주 만나지 않는 작가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설정과 문제 해결 과정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이라는 걸 알아서인지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나 역시 착한 인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상처받는 내 마음만 보이는 인간이라 그런지, 복수의 설정에 더 애정을 쏟으며 읽게 되더라. 언젠가부터 중간이나 ‘적당히’가 없는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니 모가 난 구석이 더 많아지는 것도 사실인데, 살면서 자꾸만 이기적으로 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배려하면 호구가 되는 세상이 무서워지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호의를 이용하려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걸 느끼고 싶어서 자꾸만 이야기를 찾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어떤 결말에서 한 번씩 반성하고 마음을 쓸어내리는, 아직 내 마음속에는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간절함이 남아 있는 거라고, 그렇게 안도하고 싶어서라고 안심해 본다.
거의 두 달 동안 타 죽일 것 같은 햇살과 열대야에 지쳤는데, 거기에 폭우가 합세했다. 내가 사는 이곳은 크게 가뭄이나 홍수 같은 거 없이 조용한 곳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폭우에 잠기는 곳이 생겼다. 어젯밤에도 미친 듯이 쏟아지더니, 새벽부터 사이렌 소리에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라. 지역 카페 게시글에는 폭우 피해가 넘쳐났고, 한밤중에 주차된 차를 빼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다행히 우리 아파트는 지대가 살짝 높아서 물에 잠겼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비가 내릴 때마다 이런 피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불안하긴 하다. 더위와 습기에 짜증스러운데, 피해당한 일을 회복하려고 안달복달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친 이들의 마음을 알아서. 아직 끝나지 않은 비는 지금도 폭우 예보와 안전 안내 문자를 쏟아내고 있다. 더는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이 여름이 더 나쁘게 기억되고 기록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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