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아나다
다카세 준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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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머리카락 하나라고? 아니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외모가 얼마나 자신감을 떨어트리는지, 우스갯소리로 하던 그 말, ‘돈으로 성형하고 바꿀 수 있는 범위’가 아닌 외모의 콤플렉스는 자신감 하락의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미 사라져버린 머리카락은 쉽게 되돌아오지 않으니까. 이게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가 하면, 여든이 넘은 우리 엄마도 자신의 탈모에 굉장히 우울해한다. 머릿속이 훤히 보일 만큼 줄어든 머리카락, 어떻게 해도 스타일이 잘 나오지 않는 가늘어진 모발. 탈모약이나 탈모샴푸에 관심도 많고, 돈 들여 시간 들여 머리카락의 원래 모습을 찾고 싶었지만, 안 된다.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잘 안된다. 그래서 짜증이 늘었다. 엄마도 나도. 머리카락이 풍성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더 우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내 머리카락은 언제 돌아오려나.


세상의 이런 고민을 나만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작가는 ‘탈모’가 ‘콤플렉스’인 세상을,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머리카락이 사라진, 모두가 대머리인 세상이 온 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겠지만,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리는 자기 모습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원인 불명의 전염병이 발생한다. 증상은 단 하나. 성인들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거다. 아이였을 때는 풍성한 머리카락 그대로 살아가다가, 성인이 되면서(개별 시간 차이는 좀 있지만) 대머리가 되는 세상이라니. 처음 대머리 세상으로 바뀌었을 때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민머리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없어서 집에 틀어박히거나, 비관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었다. 미용 분야의 사업을 하던 사람들은 파산했고, 이런 모습으로 출근하느니 차라리 재택근무를 하겠다는 사람도 늘었었다. 거기에 아직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 사람을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초반의 혼란스러움이 지나가자 세상은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평등(?)한 마음에, 탈모를 콤플렉스로 여기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과 외모를 가꾸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움까지. 각양각색의 가발이 등장했고 민머리 타투는 유행을 이끌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가 머리카락이 없는 세상을 순조롭게 살아가는 듯했다.


원인을 알지 못한 채 탈모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전염됐다, 라는 말이 쓰였지만 병원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전염병으로 특정된 건 아니었다. 그저 대머리가 되어갈 뿐이었다. 머지않아 모든 성인이 대머리가 되면서 ‘그깟 원이니 뭐가 중요해’ 하는 분위기가 퍼졌다. (156~157페이지)


소설의 초반부에 탈모를 겪으며 사회생활과 일상에 지장을 받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거울을 보면 머리카락보다 두피가 먼저 보이고, 사람 상대하는 일을 하는데 머리카락이 없으니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가발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데 신경 쓰고.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상에서 대머리 세상으로 변하니 새로운 세상이 꽤 만족스러웠을 테다. 평온했다. 이제 머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머리카락 한 올에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아, 얼마나 행복할까. 나만 머리카락이 없는 듯한 좌절감에 빠져 살다가, 이제 모두가 머리카락이 없는 평등한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이 혼란스러웠지 모두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하지만 이런 평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주인공 마치카의 두피 위로 머리카락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모르겠다. 처음 탈모가 전염처럼 퍼지던 때도 이유를 몰랐던 것처럼, 갑자기 마치카의 머리카락이 돋아나는 것도 분명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마치카의 머리카락이 나는 건 분명하다. 이제 마치카의 세상은 또다시 혼란이다.


모두가 풍성한 머리카락을 갖고 사는 세상에서 탈모인들은 이방인 같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외모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 있는 자기 외모를 자꾸 비교하게 된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도 변한 게 거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나뿐일까. 모두가 대머리인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속마음은 제각각이다. 모두가 같은 조건의 외모를 가지고 있어도 자기의 대머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 그냥 머리카락이 사라졌을 뿐이지 그 사람 본래의 성정은 그대로인 사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살아가는 방식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제는 머리카락 말고 다른 것으로 비교하면서 우위를 가리고 있는 거였다. 두피에 얼마나 아름다운 타투를 새겼는지, 또 가발은 어떤 걸 써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지 시선을 의식한다. 화장이나 액세서리가 머리카락이 사라진 자리의 관심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그러네. 문제는 ‘겨우 머리카락 하나’가 아니었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건 머리카락 하나가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포함한 여러 가지가 인간 세상 곳곳에 파고들어 떠날 줄 모르고 있었다. 대머리 생활이 만족스러웠는데도 다시 돋아나는 머리카락이 주인공에게 주었던 감정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외모를 가지게 되는 게 공포이기도 했다. 자라나는 머리카락은 드러내는 게 아니라 감추어야 할 대상이었고, 점점 이 머리카락을 감추는 일에 또 신경 써야 했다. 남들이 볼까 봐, 남들과 다른 외모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되어서. 이미 감출 수 없을 만큼 머리카락이 자라났을 때 주인공은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자기 머리카락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하는 법을,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친구와의 관계를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러면 곤란하죠.”

곤란하다고요? 마치카는 되물으며 사토의 눈을 보았다.

“마침내 전부 대머리가 됐는데, 새로 머리가 나는 사람이 생기면 곤란하죠. 대머리이기만 하면 돼요. 모두 대머리이기만 하면 된다고요. 가발이건 모발 이식이건 문신이건 가짜이기만 하면 돼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가짜 하나로만 각자 재량껏 겨루자는 겁니다.”

안 그러면 평등하지 않잖아요. 평등하지 않죠. 사토가 이어 말한다. 마치카는 그 말을 되뇐다. 평등. 그래요, 평등.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되지. 곤란하죠, 곤란해요. 곤란해…… (171페이지)


같은 조건의 외모를 가지게 됐을 때 모든 비교는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결국 콤플렉스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고, 하나의 비교가 사라지면 또 다른 비교 대상으로 옮겨가곤 하는 게 이 세상에서 같이 살아가는 방식인가 싶어서 우울해지고.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두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붙일 수도 있지만, 이게 과연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필요악처럼 안고 가야 하는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돌고 돌아 그 해결방식은 또 자신이 찾아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내야 하는 건가. 콤플렉스를 만드는 것도, 그 콤플렉스가 자기 삶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하는 것도, 콤플렉스를 이겨내는 것도 오직 개인의 몫이라는 듯이.


요즘 내가 심각하게 고민하던 주제여서 별 거부감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결말이 날 줄 몰랐다. 그저 한번 웃어보자고, 탈모가 고민인 이들에게 모두가 탈모인 세상을 살게 하자는 건 줄 알고 웃을 준비부터 했는데, 방향이 그쪽이 아니었다. 탈모에서 뻗어나가는 콤플렉스, 그 콤플렉스가 해결되는 것 같으니 또 다른 방향에서 삐죽 튀어나오는 또 다른 비교. 아, 살아가는 내내 우리는 비교하고 비교당하면서, 내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기를 바라면서 살아가야 안심하는 건가 싶어서 씁쓸하기는 하다. 그래도 탈모 부분에서만큼은 나는 남들과 비교 또 비교하면서 살아가지 않기로 했다. 약으로도, 미용용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았고, 안 그래도 예민한 신경을 탈모에까지 할애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너무 피곤한 일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에. 이런 일이 아니어도 병원에 갈 일은 너무 많았고, 점점 먹는 약도 많아진다. 챙겨야 할 건강이, 대상이, 일들이 더 많아졌다는 거다. 그래서 나도 머리카락보다 내 몸뚱이의 안녕이 더 먼저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이 작가가 경고하고 싶은 것도 아마 이런 거 아닐까? 탈모가 아니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자기를 갉아 먹는 삶을 좀 내려놓으라고. 뭔가를 내려놓는다는 게, 어렵지만 또 해보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다. 나라는 인간이 그래도 좀 괜찮은 부분이 있다면, 그걸 파고들어 보는 것도 즐거울 수 있다.



#돋아나다 #다카세준코 #책 #책추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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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선뜻 바라지 않을 일이었다. 그 대상이 가족이어도 말이다. ‘간병’이란 단어가 이렇게 무서울 수가 있을까. 상대적으로 다른 가족보다 시간 내기가 더 자유롭다는 이유로,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상황이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때로 의문이 든다. 정말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인가? 왜 나만? 내가 안 하면 누가 하지? 간병인을 고용하면 그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지? 다들 대출금 갚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각자 먹고 사는 일에 바쁜데, 돈 얘기 앞에서 싸우겠지? 그럼 비용을 절약하려면 또 누군가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내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근데 왜 내가?


“세상에 병이란 병은 왜 이렇게 많은지. 내 주변은 왜 이렇게 하나둘 아픈 건지. 삶이 온통 돌봄이었다.” (케어러, 232페이지)


각 단편의 모든 상황이 답답했다. 어디 대나무숲이라도 달려가야 힘껏 소리쳐도 답답함이 해소될 것 같지도 않았다. 이게 현실이라는 게, 겪어보지 않은 누군가는 소설 속 이야기로 마무리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경험한 사람들의 속을 읽어주는 듯한 이야기에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러다 결국 멈췄다. 마지막 단편 속 주인공의 이 한마디에 페이지를 계속 넘길 수 없었다. 사실 그럴 일도 아니고, 나란 인간이 화자의 독백에 마음이 크게 쓰일 정도로 공감이 넘치는 인간도 아니어서 무딘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금 폭발하기 직전인 내 마음을 후벼놓는 것 같았다. 한마디만 더하면 나의 인내심이 끊어질 것만 같아서,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돌봄의 역할을 하는 게 괜히 억울할 것만 같아서.


4편의 소설 속 주인공도 그와 비슷했다. 주인공 모두 여자, 저마다 다른 간병 상황에 놓여있었지만, 그들의 역할은 같았다. 누군가를 돌보는, 예상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집안일에 손끝도 대지 않는 남편과 삼수생 아들을 뒷바라지하며 인생을 보냈던 ‘나’는 아들의 한마디에 밖으로 나선다. 이제 엄마 인생 살아요. 그동안의 삶이 어땠을지 눈에 훤하다. 우리네 엄마들과 다를 바 없는 인생이었을 거다. 이제 한숨 돌리나 싶을 때 거울을 보니 웬 노인이 서 있는 충격도 잠시, 자신의 인생을 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줄 이어 환자가 된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간병한 세월로도 모자라 기다렸다는 듯이 친정 부모님이 환자 이름표를 단다. 「내 이름은」 화자의 한마디에 공감할 수밖에 없던 나의 지금이, 그래서 더 공포였다. ‘삶이 온통 돌봄이었다.’ 혹시 몇 년 후 내 모습이 또 저럴까 싶어서. 이럴 때 혼자 있으면 안 되는데, 괜히 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속이 상하는데, 지금 옆에 아무도 없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와 함께 아버지를 돌보는 세월이 지나니 이제 엄마가 아프다. 어제는 저기가 아프고, 오늘은 여기가 아프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때마다 전화 한 통에 달려가야만 했고, 여러 병원을 돌아야 했다. 5년여의 세월 동안 두 번의 입원, 수술이 있었다. 한 달에 몇 번씩 병원에 가는 것은 꾸준한 일상이었고, 2주 전에는 넘어져서 발목을 다치니 또 치료받고 있다. 허리 통증으로 서울 병원에 예약했던 것도 취소하고 눈앞의 치료에 또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제 두세 달 후에는 또 다른 내과 검사가 있을 거고, 큰 변동이 없다면 또 입원과 수술이 있을 터였다. 병이 크든 작든, 나는 또 병원 안에서 누군가의 보호자로 불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겠지. 부모니까, 어떤 면에서 나는 엄마한테 채무자의 마음이기도 하니까, 괜찮다, 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지난 8월부터 한 달의 거의 3분의 1을 병원에 가는 시간으로 채웠다. 예약된 일정이기도 했고, 갑작스러운 병원행이기도 했다. 나의 일상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만 굴러가는 날들이었다. 아닌 줄 알았는데, 아닌 척하는 거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힘들다.


잘하고 싶지만, 그 누구도 잘할 수 없는 게 돌봄이다. 가족이든 일이든, 어떤 이름으로 간병을 한다고 해도 완벽할 수 없다. 돈을 주며 간병인을 고용한다고 해도 그게 온전할 수 있을까. 그 돈은 또 누가 내나. 온전히 개인의 일로 감당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요양등급도 받고 집으로 방문하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등급 받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 그 집에서 누군가 한번 가족 돌봄의 역할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그 자리가 굳어진다.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보호자라는 이름은 또 다른 공포이기도 하다. 「나를 돌보며 너를 돌봄」의 모녀는 동네 진상인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며 병원 생활을 시작한다. 엄마는 다른 사람 손에 못 맡긴다며 아버지의 보호자로 병원 생활을 이어가고, 딸은 한 번씩 엄마와 교대하며 그 돌봄을 돕는다. 소설의 결말은 아버지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못된 성격도 온순해지면서 부드럽게 마무리된다. 어설프게 계획했던 가족사진도 찍고, 가족여행까지 준비하면서 돈독해지는 이야기가 되었는데,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가 싫었다. 현실 속 이런 배경이라면 이런 훈훈함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를 보지 못해서 말이다. 이 상황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을까 싶지만, 희망을 생각하기에 이 현실은 너무 혹독하니까. 그런데도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병원 상황, 생활에서 조심이 손을 내미는 다른 환자 보호자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다른 단편에서도 이런 조력자(?)들이 등장한다. 같은 돌봄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마치 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 곁에 누군가」의 주인공은 항암 치료 중인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다. 일하다가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병원으로 달려간다. 아버지는 항암 후유증으로 입원하고, 주인공도 덩달아 병원 생활이 시작된다. 일하다가 말고 왔으니 마무리도 해야 하고, 앞으로 또 해야 할 일의 일정도 있다. 병원에서 상주하며 일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마침 조건 맞는 간병인을 만나서 아버지를 맡기고 집으로 가게 되지만, 동시에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간병인에게 지급해야 할 돈은 상당했고, 간병인이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 그 대책도 세워야 했다. 언젠가 나도 겪었던 일을 이렇게 활자로 마주하니 생생하다. 이런 부분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아버지가 입원했을 때도 나는 병원에서 환자의 보호자였다. 종일 병원에서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 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퇴원하면서 전원했던 요양병원도 금액이 만만치 않았다. 알아서 다 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했지만, 그때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요양병원에 드나들어야 할 일도 계속 생기니까. 돌봄도 끝이 없고, 돌봄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이게 돌봄의 현장에서 감당해야 하는 가족, 보호자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 문제를 감당하는 것 역시 개인의 몫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간병인의 역할로 등장한다. 각자의 사정, 역할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환자를 돌보는 것 자체는 똑같다. 각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간병’이라는 단어에 갇혀 있는 모습은 너무 닮았다.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일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게 슬플 정도다. 그 당사자는 얼마나 또 우울할지, 언제 이 상황이 끝나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은 또 얼마나 숨이 막힐지. 아무리 이 답답함을 호소해도 누군가의 지루한 하소연으로 들릴까 봐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어렵다. 그저 소설 속 많은 간병인(보호자)처럼 서로가 같은 역할을 하면서, 병원 생활이 조금은 수월하도록 정보를 공유하면서 숨을 좀 쉴 수 있게 되면 다행일까. 작가들이 직접 경험한 일이기에 더 생생하게 들렸고, 지금도 누군가 이런 상황을 겪어내고 있을 것이기에 마음 한쪽 쓰다듬어 주는 듯했다. 돌봄의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것 같지만, 나에게는 돌봄의 방식에 대해 더 큰 고민의 무게를 갖는다. 이미 해봤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또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어려운 시간을 좀 더 잘 건너갈 방법을 찾고 싶다. 내가 보호자로 간병인으로 보호받고 도움받을 수 있는 제도가 충분하기를, 개인이 감당하는 부담이 좀 덜어지기를.


이 책의 작가들이 겪었을 그 마음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와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어울리기보다는, 유병장수의 시대가 맞는 말 아닐까. 누구의 앞에 이런 문제가 놓여도 이상하지 않을 시대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듯하다. 돌봄의 상황에 놓인 개인이 덜 절망하도록 제도의 변화를 기대하는 게 맞지만, 제도의 변화보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같은 상황에 놓인 개인의 연대에 더 의지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어쩔 수 없다면, 그 절망의 크기를 줄이는 일에 애쓰는 게 더 현명한 일일지도. 입원 준비할 거 싸갈 캐리어가 멀쩡한지 꺼내 봐야겠다. 피해 갈 수 없다면 머릿속에 긍정적인 생각만 가득 채워야지 별 수 있나.











#케어러 #조경아 #정명섭 #최하나 #천지윤 #상상스퀘어

#나는멜버른의케어러 #우리의관계를돌봄이라부를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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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다니는 길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겼다.

처음 오픈 예정 플랑카드를 봤을 때도 설마 했는데, 진짜였구나.


지난 주에 여기 시립도서관에서 독서의 달 행사를 했는데,

딱 그날과 맞춰서 문을 열었구만.


전에 서울에 가끔 갈 때는 참새방앗간처럼 들르곤 했는데,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막상 살게 없어서 그냥 나오기 일쑤.

그래도 가끔 아쉬운 책 한 권씩 주문해야 할 상황에서

내가 사는 곳 근처에도 중고서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드디어 생겨버렸다.


지난 토요일, 궁금해서 가봤다.

오래된 건물의 4층에 차려 놓은 중고서점이 어떨지 걱정됐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넓었고, 깔끔했다.

역시 한 바퀴를 다 돌았는데 이번에도 딱히 구입 목록은 없었고,

하지만 새 책도 판매하고 있다는 게 장점인 듯하다.

한 권 주문하고 싶지만 가격이 애매해서 배송비 붙을 때, 새 책 사러 가면 유용할 듯.


자주 지나는 길에 있어서 종종 가보게 될 것 같다.



근데 혹시 00서점 바로 구매처럼, 

알라딘 중고서점에도 온라인에서 결제한 새 책 중고서점에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나?

막상 알라딘 중고서점 가보니, 새 책을 판매하긴 하지만 많지 않더라.

내가 찾는 새 책이 온라인에서 판매하는데 오프라인으로 없다면,

온라인 결제하고 지정한 중고서점에서 찾아가는 시스템 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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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10-20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있습니다!
새 책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하실 때 보면요... <배송 방법 선택> 부분이 있어요.
거기 맨 마지막 줄에 ˝중고매장 방문 픽업˝ 이 있고요. 거기 누르시면 원하는 매장 선택하실 수 있어요.

이거...... 책을 너무 사서 동거인한테 좀 눈치 보일 때 매장에서 가져오기로 아주 좋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10-20 11:1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그런 용도로 ㅋㅋㅋㅋ 꿀팁 감사합니다!! 저도 몰랐어요.

잠자냥 2026-10-20 11:13   좋아요 1 | URL
매장으로 가서 찾으면 알라딘 택배 상자에 담아서 주거든요?
상자는 꼭 버리고 책만 가방에 쏙....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10-20 11:52   좋아요 1 | URL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여!!

구단씨 2026-10-23 17:16   좋아요 0 | URL
뎡말요?!!!!
그동안 알라딘 중고서점 없는 동네에 살다 보니 그런 건 또 관심이 없어서 몰랐네요. ㅎㅎㅎ

자목련 2026-10-20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동네에도 생겼으면 좋겠는데, 스벅도 없고 피자헛도 없으니 안 생겨요 ㅋㅋㅋㅋ

구단씨 2026-10-23 17:17   좋아요 0 | URL
솔직히 가보니까 제가 살 건 거의 없었어요.
그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야 할까요. ^^
지방의 이 작은 도시에 스타벅스가 7개나 있어요.
유지가 될까 싶었는데, 언제 어느 시간대에 지나가도 항상 사람이 많습니다. ㅡ.ㅡ;;
 
서성이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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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문자 T’의 성향을 좋아한다. 살다 보면 감정을 먼저 추스르고 위로해야 할 때가 분명 있지만, 과거의 나라면 그 감정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고 애썼겠지만, 지금의 나는 공감이나 위로보다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성의 감각을 선택하곤 한다. 그래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소설 속 안시찬의 상황 판단, 가끔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이성적인 말들, 전달해야 할 정보를 녹음해서 단톡방에 올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중환자실 앞에서 서성이는 비효율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아내의 상태를 확인하며 의료진의 판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의 우선순위를 먼저 판단하는 일 아닐까.


소설가 안시찬의 아내 이지수가 갑자기 쓰러졌다. 온라인 독서 플랫폼 운영자인 아내 이지수가 그날 외부 일정을 끝내고 집에 왔을 때는 그저 피곤해 보였다. 낮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그는 밤에 아내의 방문을 열어보고서야 아내의 상태를 확인한다. 침대 위 구토의 흔적과 쓰러지듯 힘이 없는 아내를 응급실로 데려간 후, 그의 시간과 기억은 자꾸만 과거를 향한다.


분명 전조 증상은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인제 와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랴. 그의 아내는 뇌출혈 진단받았고 곧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 의료진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고, 그를 알아보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검사 결과 아내의 상태는 뇌출혈뿐만은 아니었다. 결국 수술하기로 했지만,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없어졌다. 지금은 그저 더 나쁘지 않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


사실 그에게 지금 상황은 아내의 갑작스러운 질병만 신경 써야 하는 게 아니었다. 부부는 곧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매도와 매수 계약을 완료한 상태였다. 지금 사는 집을 곧 비워줘야 했고, 이사할 집의 잔금도 치러야 했다. 경제적 여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매수와 매도 완료일 사이의 며칠 때문에 은행 대출도 처리해야 했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의 처리를 아내가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아내 이름으로 집 매매 계약서를 작성했고, 아내가 대출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집안의 모든 돈은 아내의 계좌에 있었던 거다. 이런 걱정을 하는 남편이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아내가 이렇게 아픈데, 돈 걱정부터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가족이 아프다고 해서 처리해야 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 사람의 사정을 누가 봐주지도 않는다. 설령 갑자기 아내가 죽었다고 해서 그의 앞에 놓인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도 않잖아. 갑자기 찾아온 슬픔은 몇 겹으로 갑자기 쌓일지 몰라도, 현실의 문제는 그 몇 배의 감정과 노력으로 또 해결해야 할 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의 아내가 갑자기 이렇게 된 게 슬픈 일인데도, 가족에게도 밖에서 일하듯 대하던 그가,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뭐랄까, 일상의 모든 순간에, 아내가 일 처리를 하는 부분에서도 효율성을 강조하기만 했던 그가, 아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삶의 무게를 발견하면서 변한다. 그의 말 한마디가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줬을지, 아내가 그의 기대와 방식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아내가 말하지 않으면서 감내한 많은 일을, 그는 비로소 알게 된다. 그가 알게 모르게 아내를 몰아붙이면서도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지시하듯, 조언을 가장한 강한 압박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잘 읽히는 소설이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안시찬이라는 인물에 빠져들게 된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줄 안다고 여겼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작가니까 뭘 좀 아는 그가 하는 조언이 맞는 거로 확신했겠지. 그 뜻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아내를 몰아부쳤겠지. 스스로 책임감 강한 사람이라는 믿음,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효율성까지 갖춘 태도로 살아왔겠지. 그런 삶의 태도가 다른 사람을 버겁게 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다. 아내가 쓰러지고 난 후에 말이다. 이제껏 그의 삶을 지탱해주던 모든 것이, 그 ‘맞음’과 ‘옳음’에서 벗어나고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알게 된 것들이, 지금 그의 오늘을 뒤흔든다. 갑자기 그에게 휘몰아친 불안은 점점 커지고, 아내가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던 희망은 힘을 잃는다. 그저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를 믿는 일. 그의 간절함은 계속될 것 같다.


이상하게도, 못된 마음이 앞서는 나는 그가 얼마나 변했을지 궁금해서 소설이 더 이어지기를 바랐다. 아내에게 생긴 일은 너무 갑작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가 살아온 평생의 방식이 쉽게 바뀔 거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아내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진심으로 후회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믿음을 찾아 기도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해도, 이번 일로 자신을 질책하며 힘들어한다고 해도 현실의 문제 앞에서 필요한 객관성을 버리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게 참 냉정해 보이지만, 그 시간은 삶의 어느 한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건너가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 이렇게 말하는 내가 너무 못된 년인가? 아내에게 갑자기 일어난 일도 그에게 고통이었고, 앞으로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고통이었다. 후회 같은 많은 감정은 거부해도 밀려 들어오고 있는데, 현실의 문제는 그를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기도 한다. 더 나빠지지 않으려고, 더 고통스럽지 않으려면, 그가 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그는 냉정해지지 않을 수 없고, 한없이 슬픔에 빠져들 여유가 없어질 거다. 그러다가 원래 자기가 살아온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아니, 저절로 돌아가 있을지도.


말하다 보니 내가 정말 부정적인 사람인가 보다 싶기도 한데, 같은 경험을 한 사람으로 겪어낸 시간을 돌이켜보니, 나는 그렇던데. 자책과 후회, 불안이나 공포 등 많은 감정이 휩쓸고 지나가면서도, 결국은 정신 차려야지 하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의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던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은 그런 거 아닌가? 그런데도 선뜻 마침표로 끝낼 수 없는 건 확신의 몇 프로쯤 모자란 느낌이라서다. 절규에 가까워 보이는 안시찬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서. 내 자식만 생각하고 냉철하게만 얘기하는 엄마와의 대화를 놓아버린 그가 소리 죽여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라는, 공감해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걸로 보여서. 아마도 그가 장착해왔던 냉정함은 아내가 겪을 고통 앞에서, 언어의 기능을 놓치고, 어쩌면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할 아내의 절망을 보듬어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장모님과 처제, 그 자신이 함께 감당해야 할 무게를, 그들이 공유할 고통의 민낯을 마주하면서 기적을 위한 기도를 하고 인간다움을 채워갈 거로 믿고 싶은 거다. 그 믿음 속에서 나도 그런 인간이 되고 싶어서.


담백하게 읽기 시작했다가 작가의 상황을 알게 되고 좀 놀랐다. 이 책을 읽은 누구나 그 믿음,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것이다. 아직은 인간다움을 더 크게 품고 사는 우리이기에.



#서성이다 #장강명 #현대문학 #핀소설 #한국문학 #소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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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때 같으면 그냥 빵 봉지를 쭈욱 찢어내렸을 텐데,

곱게 가위질로 위를 잘라주었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편의점 지날 때마다 물어봤다.

있어요?


없단다.

발주도 못할 때가 많단다.


그런가 보다 했다.

시간이 지나니까 궁금해지지 않더라.

없으면 말지 뭐, 이런 마음?


어제 우연히 김밥 한 줄 사러 들어간 편의점에 딱 한 개가 남아있기에

고민도 없이 집어왔다. (없으면 말지, 그런 마음이라며?)

아무래도 궁금증이 사라진 건 아닌가 보다.


결론은?

빵이 너무 작아서 아쉬웠다.

약 먹어야 해서 한 달이 넘게 빵 끊은 상태였는데,

작은 사이즈의 빵이 이렇게 서운할 수가 없더라.

맛은 좋았다. 짭쪼름해서, 크림도 잔뜩 들어가 있어서, 쫄깃한 식감도 좋고.

생각보다 책갈피도 작았다. 세로로 긴 줄 알았더만.


다시 사 먹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은 할 수 있겠다.


나도 민음사빵 먹어본 독자다!




묘하게 빨려 들어가듯, 

다음 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또 하나 득템했다고 좋아하는 마음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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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10-0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 어제 남편이 드디어 구해다 줬어요. 생일선물로 구해달라 그랬거든요. 저도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표지판으로 갖고 싶었는데 저는 시집, 심지어 빵 2개에 똑같은게....
그런데 함정이 저 빵 맛있지 않나요? 편의점 빵의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6-10-01 13:11   좋아요 1 | URL
생일선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6-10-01 15:34   좋아요 1 | URL
후일담도 알려드릴까요? 남편이 직장 앞 편의점을 매일 들리다가 입고시간에 맞춰 가도 못샀대요. 그래서 편의점 아저씨한테 마누라 생일선물 줘야 한다고 한 번만 픽해주면 안되겠냐고 읍소해서 사왔다는.... ㅋㅋ
참 훌륭한 남편이죠. 그래서 저는 그가 전날 말도 안되는 소리로 제 심기를 거스른 죄를 한 번 용서해주었습니다. ㅋㅋ

구단씨 2026-10-02 12:17   좋아요 0 | URL
와아~~~ 생일 선물로. 남편 분 센스 있으시다.
저희 남편은 이게 뭔지도 모르고, 빵값 비싸다고... ㅠㅠ
근데 말씀처럼, 빵이 맛있어서. 이래도 되는 건가요?

바람돌이 2026-10-02 13:24   좋아요 0 | URL
남편 센스 아님. 제가 콕 집어서 이거 생일선물로 받도싶다 한거임. 울집 남편도 이게 뭔지도 몰랐습니다

잠자냥 2026-10-01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빵 맛이 좋았던 건 한 달 만에 드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6-10-01 15:32   좋아요 0 | URL
일주일에 2-3번씩 먹는 제가 먹어도 빵 맛있었습니다. ㅎㅎ

구단씨 2026-10-02 12:18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제가 어제까지 두 가지 빵 먹어봤는데, 맛있어요.
제 입에는 작은 사이즈 빵이 더 맛있었고요.

아이돌 팬들이 왜 카드 수집하는지 그 마음을 조금 알게 되네요. 푸하하

카스피 2026-10-01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하기 힘든 책갈피 득템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6-10-02 12:19   좋아요 0 | URL
여러 가지 책갈피 있던데, 저는 처음이라 그런지 막 신기하고 그랬어요. ㅎㅎ

자목련 2026-10-0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빵, 맛이 괜찮은 가 봐요. 빵은 먹어보고 싶어요 ㅎㅎ

구단씨 2026-10-02 12:20   좋아요 0 | URL
맛있었어요!!!!
빵 종류에 따라 가격이 좀 달라요.
이런 걸 구하러 다닐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