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아나다
다카세 준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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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머리카락 하나라고? 아니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외모가 얼마나 자신감을 떨어트리는지, 우스갯소리로 하던 그 말, ‘돈으로 성형하고 바꿀 수 있는 범위’가 아닌 외모의 콤플렉스는 자신감 하락의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미 사라져버린 머리카락은 쉽게 되돌아오지 않으니까. 이게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가 하면, 여든이 넘은 우리 엄마도 자신의 탈모에 굉장히 우울해한다. 머릿속이 훤히 보일 만큼 줄어든 머리카락, 어떻게 해도 스타일이 잘 나오지 않는 가늘어진 모발. 탈모약이나 탈모샴푸에 관심도 많고, 돈 들여 시간 들여 머리카락의 원래 모습을 찾고 싶었지만, 안 된다.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잘 안된다. 그래서 짜증이 늘었다. 엄마도 나도. 머리카락이 풍성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더 우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내 머리카락은 언제 돌아오려나.


세상의 이런 고민을 나만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작가는 ‘탈모’가 ‘콤플렉스’인 세상을,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머리카락이 사라진, 모두가 대머리인 세상이 온 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겠지만,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리는 자기 모습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원인 불명의 전염병이 발생한다. 증상은 단 하나. 성인들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거다. 아이였을 때는 풍성한 머리카락 그대로 살아가다가, 성인이 되면서(개별 시간 차이는 좀 있지만) 대머리가 되는 세상이라니. 처음 대머리 세상으로 바뀌었을 때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민머리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없어서 집에 틀어박히거나, 비관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었다. 미용 분야의 사업을 하던 사람들은 파산했고, 이런 모습으로 출근하느니 차라리 재택근무를 하겠다는 사람도 늘었었다. 거기에 아직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 사람을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초반의 혼란스러움이 지나가자 세상은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평등(?)한 마음에, 탈모를 콤플렉스로 여기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과 외모를 가꾸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움까지. 각양각색의 가발이 등장했고 민머리 타투는 유행을 이끌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가 머리카락이 없는 세상을 순조롭게 살아가는 듯했다.


원인을 알지 못한 채 탈모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전염됐다, 라는 말이 쓰였지만 병원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전염병으로 특정된 건 아니었다. 그저 대머리가 되어갈 뿐이었다. 머지않아 모든 성인이 대머리가 되면서 ‘그깟 원이니 뭐가 중요해’ 하는 분위기가 퍼졌다. (156~157페이지)


소설의 초반부에 탈모를 겪으며 사회생활과 일상에 지장을 받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거울을 보면 머리카락보다 두피가 먼저 보이고, 사람 상대하는 일을 하는데 머리카락이 없으니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가발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데 신경 쓰고.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상에서 대머리 세상으로 변하니 새로운 세상이 꽤 만족스러웠을 테다. 평온했다. 이제 머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머리카락 한 올에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아, 얼마나 행복할까. 나만 머리카락이 없는 듯한 좌절감에 빠져 살다가, 이제 모두가 머리카락이 없는 평등한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이 혼란스러웠지 모두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하지만 이런 평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주인공 마치카의 두피 위로 머리카락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모르겠다. 처음 탈모가 전염처럼 퍼지던 때도 이유를 몰랐던 것처럼, 갑자기 마치카의 머리카락이 돋아나는 것도 분명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마치카의 머리카락이 나는 건 분명하다. 이제 마치카의 세상은 또다시 혼란이다.


모두가 풍성한 머리카락을 갖고 사는 세상에서 탈모인들은 이방인 같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외모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 있는 자기 외모를 자꾸 비교하게 된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도 변한 게 거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나뿐일까. 모두가 대머리인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속마음은 제각각이다. 모두가 같은 조건의 외모를 가지고 있어도 자기의 대머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 그냥 머리카락이 사라졌을 뿐이지 그 사람 본래의 성정은 그대로인 사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살아가는 방식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제는 머리카락 말고 다른 것으로 비교하면서 우위를 가리고 있는 거였다. 두피에 얼마나 아름다운 타투를 새겼는지, 또 가발은 어떤 걸 써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지 시선을 의식한다. 화장이나 액세서리가 머리카락이 사라진 자리의 관심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그러네. 문제는 ‘겨우 머리카락 하나’가 아니었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건 머리카락 하나가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포함한 여러 가지가 인간 세상 곳곳에 파고들어 떠날 줄 모르고 있었다. 대머리 생활이 만족스러웠는데도 다시 돋아나는 머리카락이 주인공에게 주었던 감정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외모를 가지게 되는 게 공포이기도 했다. 자라나는 머리카락은 드러내는 게 아니라 감추어야 할 대상이었고, 점점 이 머리카락을 감추는 일에 또 신경 써야 했다. 남들이 볼까 봐, 남들과 다른 외모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되어서. 이미 감출 수 없을 만큼 머리카락이 자라났을 때 주인공은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자기 머리카락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하는 법을,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친구와의 관계를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러면 곤란하죠.”

곤란하다고요? 마치카는 되물으며 사토의 눈을 보았다.

“마침내 전부 대머리가 됐는데, 새로 머리가 나는 사람이 생기면 곤란하죠. 대머리이기만 하면 돼요. 모두 대머리이기만 하면 된다고요. 가발이건 모발 이식이건 문신이건 가짜이기만 하면 돼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가짜 하나로만 각자 재량껏 겨루자는 겁니다.”

안 그러면 평등하지 않잖아요. 평등하지 않죠. 사토가 이어 말한다. 마치카는 그 말을 되뇐다. 평등. 그래요, 평등.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되지. 곤란하죠, 곤란해요. 곤란해…… (171페이지)


같은 조건의 외모를 가지게 됐을 때 모든 비교는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결국 콤플렉스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고, 하나의 비교가 사라지면 또 다른 비교 대상으로 옮겨가곤 하는 게 이 세상에서 같이 살아가는 방식인가 싶어서 우울해지고.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두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붙일 수도 있지만, 이게 과연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필요악처럼 안고 가야 하는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돌고 돌아 그 해결방식은 또 자신이 찾아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내야 하는 건가. 콤플렉스를 만드는 것도, 그 콤플렉스가 자기 삶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하는 것도, 콤플렉스를 이겨내는 것도 오직 개인의 몫이라는 듯이.


요즘 내가 심각하게 고민하던 주제여서 별 거부감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결말이 날 줄 몰랐다. 그저 한번 웃어보자고, 탈모가 고민인 이들에게 모두가 탈모인 세상을 살게 하자는 건 줄 알고 웃을 준비부터 했는데, 방향이 그쪽이 아니었다. 탈모에서 뻗어나가는 콤플렉스, 그 콤플렉스가 해결되는 것 같으니 또 다른 방향에서 삐죽 튀어나오는 또 다른 비교. 아, 살아가는 내내 우리는 비교하고 비교당하면서, 내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기를 바라면서 살아가야 안심하는 건가 싶어서 씁쓸하기는 하다. 그래도 탈모 부분에서만큼은 나는 남들과 비교 또 비교하면서 살아가지 않기로 했다. 약으로도, 미용용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았고, 안 그래도 예민한 신경을 탈모에까지 할애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너무 피곤한 일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에. 이런 일이 아니어도 병원에 갈 일은 너무 많았고, 점점 먹는 약도 많아진다. 챙겨야 할 건강이, 대상이, 일들이 더 많아졌다는 거다. 그래서 나도 머리카락보다 내 몸뚱이의 안녕이 더 먼저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이 작가가 경고하고 싶은 것도 아마 이런 거 아닐까? 탈모가 아니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자기를 갉아 먹는 삶을 좀 내려놓으라고. 뭔가를 내려놓는다는 게, 어렵지만 또 해보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다. 나라는 인간이 그래도 좀 괜찮은 부분이 있다면, 그걸 파고들어 보는 것도 즐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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