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구론산바몬드 지음, 루미 그림 / 홍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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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밥 먹여주는 시절이 있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믿음도 굳건했다. 부모가 가난해도, 명문가의 자녀가 아니어도 성공의 길로 갈 수 있던 날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서 그때 많은 부모가 공부 노래를 불렀나 싶기도 하다.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않았지만 말이다.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데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한 적이 없다. 그저 숙제는 하고 놀라고 했을 뿐. 공부를 잘 하면 원하는 학교 선택할 폭이 넓어지니 당연한 거겠지만, 공부를 잘 해야만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을 무조건 믿었다. 어렸을 때는 그랬다. 지금도 많은 부모가 공부와 성적을, 좋은 학벌을 노래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공부 못 해서 불안하고 걱정만 가득하지는 않을 거 아닌가. ㅎㅎ 공부를 잘 하는 것도 분명 중요한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뭔가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명확하다면, 나는 굳이 공부나 대학이 인생 진로의 순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학의 과정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대학이 필수 코스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학이 인생 필수 코스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졸업장을 목표로 학교 다녔던 시간이 가끔은 후회되곤 하니까.


제목이 재미있어서 읽게 됐는데, 저자가 바로 공부 못 했던 그 친구. 뭐 하는 사람인가 하고 책날개에 적힌 이력을 살펴보니 영어 선생님이다. 지금은 교감선생님이라는데, 공부 못 했는데 어떻게 선생님이 되고 이렇게 오랫동안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가 싶었다. , 그 과정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그의 인생 흐름 순서대로 담겨 있으니 읽어보면 되는데,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이 이렇게 유쾌하게 읽히기도 오랜만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책을 썼나 싶겠지. 어느 날, S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된 초등학교 동창이 저자에게 40년 만에 문자 한 통을 보냈다고 한다. “, 밥은 먹고 사니?”라는 단 한 문장에 자격지심이 들었다고, 공부를 지지리도 못 했던 저자가 지금 밥벌이는 하고 사는 것인지 묻는 것으로 느껴졌단다. 하긴, 내가 봐도 그렇게 들리긴 한다. 내 마음이 비뚤어져서 그런가, 뜬금없이 40년 만에 받은 문자가 저런 내용이라면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보내는 거로 들리진 않는다. 어쨌든, 저자는 그 문자에 직접 답하고 싶어서, 저자 역시 공부 못했던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게, 이 책의 탄생 배경이다. 한 권의 책이 나온 이유 치고는 참 재미있다.


읽으면서 깨알 웃음을 놓치지 않는데, 그 웃음이 전혀 가볍지 않아서 무겁게 읽힌다. 한 사람의 생이 이렇게 진지하고, 그의 인생 참 파란만장 하면서도 기가 막히다. 여유롭지 못한 가정 환경에, 초중고 시절을 거쳐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힘들었을 것 같다.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가난한 생활이 끝난 건 아니다. 스스로 학비를 벌고 공부까지 해야 했다. 30여년 전 얘기지만, 학자금 대출을 필수처럼 안고 살아가는 지금의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다. 몇십 만원 들고 상경하여 대학을 다니고, 그를 살려준 운명인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선생님이 되었어도 사정은 비슷했다. 출근하려고 새벽 5시에 버스를 타러 나가는 하루를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그 아침의 출근길이 아니라 그날 퇴근 후가 더 염려스러웠다. 그 정도 출퇴근 시간이 소요된다면, 퇴근 후에는 그냥 기절하면 다음 날 아침이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공부 바보가 영어 선생이 되겠다고 인생 전환점을 만들어 놓았으니 책임져야 했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 이 정도의 힘듦 쯤이야 하는 마음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차하고 운전자하고 똑같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욕은 묘한 특징이 있다. 그딴 짓을 어디서 배웠느냐?(사교육의 출처를 묻는다).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가정교육의 수준을 묻는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단박에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 야 이 양반아!(상대방의 신분을 높여준다). 개 같은 놈!(비유법을 즐겨 사용한다). 아무튼 차는 그 사람이 아니다. 차는 그냥 차다. 그리고 이건 상식이다. (151)


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건강하게 잘 자랐다. 돈 벌면서 공부하고 자기 진로 만들어 탄탄하게 닦아 놓았으며,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많은 경험을 하고 세상을 배웠다. 공부 바보의 과거 기억은 잊고 인생을 책임져줄 공부도 열심히 했다. 임용고시에 합격해서도 그의 시작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교사 연수에 가서도 머물 곳이 없어서 목욕탕 아르바이트 하면서 숙박을 해결했다. 그 덕분에 매일 샤워하면서 연수 받으러 가니, 연수생 중에 가장 깨끗했다나 뭐라나. 이렇게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곳곳에서 묻어 나는 긍정의 에너지가 저절로 보인다. 선생님이 되겠다고 연수 받으러 가는데도, 돈이 없어서 머물 곳도 못 찾게 되니 막막하기만 한데, 그 와중에 다짜고짜 목욕탕에 아르바이트 하겠다면서 재워 달라고 말하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상황의 막막함은 뒤로 하고 그 위기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걸 보면, 안 될 거라는 부정보다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긍정의 마인드가 뿜어져 나오는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선생님이 되어서도 인생이 쉽지는 않았다. 학교라고 회사와 다를 바 없었다. 상사(교장, 교감)에게 잘못 찍혔을 때 아침 출근길이 괴로웠고, 실수로 넘어져 교감 선생님의 바지 자락을 붙잡은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충성심을 인정받기도 하는, 그저 우리가 하는 밥벌이와 똑같은 시간을 저자는 학교에서 보내는 거였다. 그렇게 차곡차곡 사회생활 만랩을 쌓으면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양상으로 사람들을 경험했다. 젤 타입의 파스를 교장의 치약과 바꿔 놓으며 소심한 복수를 하고, 학생 스파이를 고용하여 인성부장 교사의 명성을 드높이고, 자기를 괴롭히는 부장 교사에게 삭힌 홍어로 향수 냄새를 덮어버리기도 하는, 선생님이지만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랄 때는 공부 바보로, 성인이 되어서는 생활 바보로 살아간다는 저자 스스로의 표현에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는, 어른이 되고 선생님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 아내에게 잔소리 듣는 남편으로 살아가면서도 계속된다.


그의 성장(?) 에피소드를 듣고 있자면,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정말이지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웃기다. 가볍게 웃기면서도 그 의미가 무거워서 중심을 잡는다. 80년대에 초중고와 90년대의 대학 학번이라는 소개에 더 공감하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나도 저자와 비슷한 나이를 살아가는 세대로, 저자가 들려주는 요즘의 경험 역시 비슷해서 놀랍기도 했다. 요즘에 주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오랜만에 동창이나 친구를 만나도 친구라는 관계의 어렸을 적 편안한 이야기는 멀어지곤 했다. 집값 얘기, 주식 얘기, 자식 공부 얘기 등, 기본적으로 자기가 가진 것을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글쎄, 나는 돈도 없고 주식도 못 하고 자식도 없어서 그들의 이야기에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 했는데, 그보다 더 아쉬웠던 건 그런 주제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가 그렇게 없었나 싶은 거다. 나이를 먹으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서로 가진 거 자랑하듯 꺼내 놓는 거 말고는 할 얘기가 없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뭐 그렇더라.


그래서인가,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그 배경, 변호사 동창이 40년 만에 보낸 문자 한 통에 대한 답을 이렇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때 공부를 지지리도 못 했던, 네가 궁금해 하던 공부 바보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답을 하고 싶은 거 아니었나 싶은 마음.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별일 없이 이렇게 잘 살아왔고, 그때 못 했던 공부가 내 인생에 해를 끼치지도 않았고, 열등한 성적이 삶의 성적과 비례하지도 않는다는 걸 증명하듯, 잘 살고 있다! 됐냐?!’


가끔 나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나는 과연 올곧은 감성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 가족에게는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가장이며, 교사로서는 학생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해 주는 사표였는가? 장학사가 된 지금 학교 현장과 민원인에게 해갈의 물 한 모금 건네는 소통가인가?

아내의 폰을 자주 빌려야겠다.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말 한마디 던지는 방법을 빅스비에게 배워야겠다. 시리 기능은 영원히 꺼두는 걸로. (256)


저자가 직접 등장한 책 소개의 한 장면을 옮겨본다. 오늘 일찍 일어났다고 해서 하루를 잘 보낸다는 보장도 없고, 오늘 늦게 일어났다고 해서 하루를 망친다는 것도 아니라는, 공부를 잘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우리 삶의 평범한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것.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면 정말 잘 살고 있다는 것 아닐까 한다고. 정말로, 가볍게 읽힌다고 의미를 상실한 책이 아니라고, 위트와 유머, 감동이 더해져 무거운 책이 되어버린 이야기에 빠져들어 읽었다.


#공부못했던그친구는어떻게살고있을까 #구론산바몬드 #루미 #홍림출판사

#문학 #에세이 ##책추천 #공부못해도밥벌이는한다 #웃으면서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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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24-03-11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의 글을 읽고 하루 일정을 시작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환경적 영향과 개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며 지냅니다. 35년째 교직에 있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몇몇 제자와는 여러 고민을 함께하는 인생 선배, 동료 교사에게는 권위를 인정받고 싶지만 쉽지 않은 듯합니다.

구단씨 2024-03-11 23:35   좋아요 0 | URL
어렵죠? ^^
그래도 그 오랜 세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이 만들어준 무언가가, 분명 단단하게 자리 잡았을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자서 해야 할 일을 한 가지 놓쳐서 신경 쓰였는데, 그저 삶의 평범한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웃으면서 다시 해야지, 했습니다...
 
소설 보다 : 겨울 2023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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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경칩이란다. 봄이 오나 싶었는데 아직은 겨울 같은 날씨에 외출을 망설이게 된다. 그래도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가방에 넣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비가 오는 듯 아닌 듯, 우산을 챙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하는 마음으로 가방에 작은 우산 하나를 챙겨 넣었다. 이래서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건가 싶어 또 한 번 웃어본다. 얼마 전에 만난 지인의 작은 가방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는데, 그냥 보기만 하고 말았다. 작은 지갑 하나, 휴대폰 하나 정도만 간신히 소화할 것 같은 가방은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꾸역꾸역 챙겨 넣은 것들로 빈틈없는 가방에 이 책 한 권 더 넣어 가지고 나갔다. 미처 다 읽지 못한 작품들, 오늘이 지나면 날씨도 포근해질 거라고 하니 겨울을 보내는 마음으로, 마저 다 읽어보자는 다짐으로. 알다시피 소설보다 시리즈 안에는 짧은 소설 세 편이 담겼다. 매번 읽을 때마다 갸우뚱하기도 하고, 새롭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세 편의 작품 중에서도 김기태의 보편 교양이 가장 많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고등학교 선생인 고전 읽기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요즘 같은 때 고등학교 수업 중에 고전 읽기가 있나 궁금했는데, 내신에 필요한 한 과목으로 개설되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안 되는(?) 아이들이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하는 과목쯤으로 보인다. 글쎄, 라떼 얘기를 해보자면, 그때도 문학 수업은 있었으나 관심이 없었다. 그때의 내가 책을 좀 읽는 인간이었다면, 문학 수업 참 재밌게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 시대에 고등학교에서 열리는 고전 읽기 수업에 당첨된 은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한다. 그 자신이 엄선해서 고전 목록을 고르고, 수업 계획을 전달하고, 교실도 예쁘게 단장하여 고전 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준비했건만... 현실은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엎드려 자는 학생, 교재 밑에 다른 교재를 두고 공부하는 학생, 인강 듣는 학생 등 이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이 거의 없음에도 그의 역할을 열과 성을 다해 이 수업을 이끄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선생도 이 수업을 포기하지 않을까 싶지만, 아니다. 그는 그 환경을 이해하고 그가 준비한 수업을 진행한다. 아무도 들을 것 같지 않지만, 그의 역할은 그가 준비한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학부모의 항의를 전달 받는다. 자기 아이가 자본론을 읽고 있는 게 걱정스럽다는 학부모의 염려스러운 말을 듣고 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주눅이 들어 이 수업에서 아예 그의 영혼을 내보내는 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걱정의 주인공 학생과 대화를 하던 은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된다. 자본론을 읽고 있다고 소문이 나면 빨갱이 만든다고 소문날까 봐 걱정하던 교장의 말이 무엇인지도 알겠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의 방향과 다를 수 있겠지만, 어쩌면 이 이 수업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의의를 학생이 그대로 찾아내 준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다.


이 그 학생의 수행평가 내용에 최고의 평가를 남기면서 서울대 진학이라는 결과를 내었는지는 모르겠다. 버려진 아이처럼 진행되었던 고전 읽기수업이 인기 과목이 되어버린 것도 조금 우습기는 하다만, 더 웃긴 건 주변 선생들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머리에 빨간 띠도 매주고, 공산당 선언도 읽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선생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이 사람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더 궁금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이상과 현실 그 사이에서 주저하면서, 이상의 실현을 위해 마음이 향하는 곳과 현실이 확인 시켜 주는 선택에 혼란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오늘이 그대로 보이는 듯했다. 이상한 건, ‘이 느끼는 혼란에 모범생 은재가 더 침착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앞으로 이 진행할 인기 수업 고전 읽기만큼이나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가는 은재의 행로가 궁금해진다. 이상을 좇고 있는지, 현실과 타협하면서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던 아이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서울대 권장 도서라는 말로 은재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준비하던 이나 모범생 은재가 컨설턴트의 한 마디로 아버지의 걱정을 차단하면서 이 시대의 보편적 인물로 표현되었다는 게 이 소설의 인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서로를 더 살피며 보게 된다. 불안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과 읽고 싶은 권리를 가진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순간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지켜보게 되는 소설이다.


#소설보다 #소설보다겨울2023 #김기태 #보편교양 #문학 #한국문학

##책추천 #단편소설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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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김준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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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모두가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현실에 타협하는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먹고 살 걱정만 아니라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때도 있는 걸 보면, 오랫동안 바라고 준비하면서 닿은 목적지라도 그 일의 사명감이라는 것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건가 보다 싶기도 하다.


좋은 상황에서, 좋은 조건으로 캐나다로 향한 건 아니다. 바닥을 치고 일어서는 마음으로, 이게 아니면 더는 붙잡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간절함으로 캐나다의 파라메딕으로 채용된 그의 삶을 듣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한국인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이방인으로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란 더욱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다. 그렇게 마주한 응급구조사로 일하는 그의 역할은 누군가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함께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가 그 일을 하면서 겪은 일과 감정으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에 가까이 닿을 뻔한 순간에 생의 영역으로 다시 돌아온 환자를 볼 때는 기뻤다. 심각한 외상 환자를 이송하게 된 후에도 다행이다 싶었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절망에 빠지다가도 곧 회복하는 의식을 확인하고 안도하기도 했다.


그것 뿐일까? 혹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그의 한 마디가, 어쩌면 그를 살게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은 나만 하는 걸까. 생으로 이끄는 그의 역할에도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다. 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과 죄책감, 가족의 죽음에 슬퍼할 이들의 마음을 가늠하는 것 역시 그가 꼭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혼란스러운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해서 모른 척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먼저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바뀐 그의 이야기는, 그저 누군가의 작은 변화쯤으로 여길 수 없었다. 그의 직업 때문에 생긴 습관인가 싶다가도, 그의 업무 시간이 아닐 때도 스스럼없이 나오는 그 말에 그의 진심을 느낀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선뜻 내미는 손이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그 마음이 그에게 그대로 되돌아온 경험 때문에 그는 잊을 수 없는 경험과 습관을 갖게 된 건 아닐까? 어떤 이유로든, 그의 이 아름다운 습관이 부디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러 번 드나들었던 응급실, 다급한 환자와 보호자와는 다르게 절차에 따라 치료를 시작하는 병원의 방식, 그 사이에 또 여러 번 마주치는 구조대원들을 볼 때마다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저 하나의 직업으로, 그들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거겠지 싶은, 나와 다른 일상을 사는 그들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르지만 비슷한 역할을 하는, 주변에서 자주 보는 그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한국과 캐나다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르기도 하고, 총기나 마약 사고가 빈번해서 그 잔혹함이 그에게도 충격이었을 테다. 내 눈앞에 펼쳐진 타인의 비극과 고통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업무에 뛰어 들겠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사건 현장을 마주하고 지켜낸다. 그가 하는 일에도 규정이 있지만, 때로는 그것을 무시하고 간절한 마음이 앞서 나갈 때가 있다. 그것이, 그가 타인의 고통과 비극 앞에서 취하는 태도였다. 올바르다 그르다 판단하기에 앞서,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마음 자세가 아닐까 싶다.


죽음을 앞둔 여러 환자가 자신의 마지막을 보내는 다양한 방식을 듣고 있노라면, 나 역시 마지막을 보내는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매번 그 상상에서 멈추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마주할 그 순간에 타인과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혼자 쓸쓸하지 않게, 내 앞의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면서, 이렇게 가는 순간까지 즐거웠다고, 앞서 경험한 슬픔도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게 말이다. 호스피스 시설로 이동하는 시한부 환자의 웃음에 어떻게 인사를 나눌지 혼란스러워하는 저자의 표정을 그려보기도 하지만, 그 순간마저 한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쓰는 태도가 아름다웠다. 죽음을 앞둔 많은 환자가 자신의 마지막을 보내는 다양한 방식 앞에서 우리가 저절로 배우게 되는 것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죽음 너머에 있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언젠가부터 병원에 드나드는 횟수가 늘었다. 나는 환자와 보호자로 병원에 익숙해졌지만, 그 익숙함에 점점 무던해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죽음에 조금씩 가까워진 기분 때문이다. 언젠가 닿을 그 순간을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어떻게 닿을 것인지 생각하는 건 낯설다. 저자가 만난 많은 환자와 가족이 보여준 것들로, 저자가 자기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과정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는 우리를 더 아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게 하는 이야기다. 요즘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로 많이 힘들었는데, 정신적으로 피로하니 몸까지 내 말을 듣지 않는 시간이 계속되어 울고 싶었는데, 나를 더 소중하게 대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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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책리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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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동생의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처음 발령 받고 근무하던 중, 평소처럼 사건 신고 접수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마주친 시신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고. 그날은 제대로 식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이미 여러 번 사건 기록으로, 사진으로 남겨진 처참한 광경들을 봤지만 쉽게 적응하기는 어려웠다고 말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건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과 마주칠 때마다 이게 지금 사람 사는 모습인가 싶어서 씁쓸해질 때가 있단다. 일상을 지내면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세상살이와 사람들인데, 사람들의 신고와 사건 접수로 현장 출동과 사건 해결로 하루를 채우는 경찰은 오죽할까 싶은 마음이다.


나는 도대체 뭘 보고 저자를 남자라고 생각했을까. 남자라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저자가 남자일 거로 여기며 읽기 시작했다. 앞선 출간작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 작품들은 뒤로 하고, 이번 작품이 먼저 손에 간 이유는 간단하다. 있었지만 사라진 존재들, 저자의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만 했던 이유가 궁금해서다. 어떤 죽음이든 그 과정과 이유가 있을 테지만, 사건이라는 기록 속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는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다. 현직 경찰관이 썼다고 하니 단순히 그가 접한 사건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흥미로운 사건의 소개가 아니라, 변사자로 처리된 이들이 여기 있다가 갔다는, 왜 가야만 했는지, 그 이유가 우리에게 전해져야만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건 신고도 해보고, 신고한 문제의 처리를 위해 담당 경찰관과 대면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왜 일을 이렇게 하는 거지?’였다. 오전에 얘기 다 끝내고 해결될 줄 알았던 문제를 오후에 확인하려니, 교대 근무자가 응대하면서 오전의 내용을 반복해서 말해야 했다. 그때도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확인하려고 하니 또 다른 교대 근무자가 해당 내용을 묻는다. 녹음한 것처럼 그에게 또 전날의 상황을 반복해서 설명해야 했다. 나의 개인정보를 확인하면서도 신고 내용은 확인 안 하나? 기록에 남겨진 것을 보고 확인하면서 응대해 주면 안 되나? , 그들 나름의 일하는 방식과 절차가 있겠지만, 민원인으로 그 상황들을 보자면 여전히 이해가 안 되기는 하다만...


대한민국의 많은 경찰관이 저자와 같은 마음일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경찰관에 대한 불신이 더 많았다. 내 가족이 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가족이 아니라 그의 직업으로만 보자면 호감이 안 생기는 건 여전했으니까 말이다. 막상 마주한 저자의 이야기는 이 사회의 한쪽 구석에서, 이 세상을 살아볼 단단한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떠나버린 이들의 마지막 순간에 집중하게 했다. 어디 뉴스에서 볼 법한 내용인데도, 그 내용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살피며 그의 생을 유추하게 하는 시간을 직접 겪고 들려주는 이야기다. 어떻게 다가오는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속이 꽉 막힌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내 가까운 곳의 장면들이었다. 모른다고 하기에는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안다고 하기에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의 주춤거림이 내 발목을 잡는 일. 그래도 듣고 싶은, 들어야 하는 이야기.


읽으면서 정말 놀랐던 게,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자살로 처리된 변사자 수가 하루에 34.8명꼴이라고 한다. 이게 정말인가 싶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았다. 뉴스에서 보던 변사자의 이야기는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던 걸까. 살면서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여러 번이건만, 누군가는 정말 죽음으로 고통을 끝내야 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이었던 거다. 죽어도 자기 신원을 확인시켜줄 신분증을 방수팩에 넣고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린 사람, 아내의 부활을 믿으며 방치해 부패하게 만든 지적장애 가족, 평범한 외출로 보일 정도로 이상할 게 없었는데 그대로 투신해버린 청년. 이들의 사정은 힘든 현실을 누구도 알지 못해 소외된 자들이었다. 자살의 이유가 그것 뿐은 아니다. 사기로 돈을 다 날리고, 생산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하고. 과학수사요원이 마주한 죽음의 사연은 제각각이면서도 비슷했다. 잔혹한 현실을 살아내려던 이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묻는 일이 반복 됐다. 그 안에서 진실을 찾으려고 애쓰는 몸부림이 문장의 곳곳에서 묻어난다. 저자는 말한다. 잔인한 현실 앞에 우리가 그간 외면해왔던 진실을 깨닫는 일. 그가 경찰관으로 목도한 일을 계속 쓰는 이유라고.


다양한 변사 사건의 사연들은 제각각이지만, 우리 민낯을 보여주는 듯해서 얼굴이 달아오르기를 여러 번이다. 아파트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했고, 조사를 위해 주차장에 주차하고 사건 현장으로 가려고 하는데도 쉽지 않다. 아파트 관계자와 입주민들은 난색을 표하고, 수사 차량을 안 보이는 쪽에 세우고 들어가라고 하는 정도면 어느 정도인 걸까. 신고 받고 가서 보니 죽은 지 한참 지난 경우도 많고, 자기를 발견해줄 경찰관에게 남기는 말을 유서로 써 놓고 죽은 이의 사연은 또 뭐기에, 몇 번의 실패에도 결국 목을 매고 말았던 이는 다시 살아갈 기회를 붙잡고 싶지 않았던 건지. 이 많은 상처가 어디에서 온 걸까, 이렇게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는지 궁금해지는 것도 잠시, 그 누구도 함부로 그들의 삶을 논할 수 없다는 마음만 남았다. 그저 저자가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 한때 있었던 존재들의 목소리를 남겨주고 싶은 마음을 살피게 된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는 기도가 얼어붙은 사기를 녹일 수 있는 자애로운 햇볕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희망이 없다는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희망과 변화를 소망하게 되는 게 모순적이긴 하다. 그러나 인생은 결국 예측할 수 없는 일의 총합이기에 생의 가능성을 믿어본다. 바람의 향기를 맡는다. 바람에 흔들려야만 씨를 부릴 수 있는 민들레처럼 강력한 태풍이 지나가면 낙원이 펼쳐질 거니까. (있었던 존재들, 176페이지)


불편한 일을 소리 내어 말하고, 부당한 상황을 알리고, 자칫 잊히기 쉬운 이야기를 기록하며 들려주고 싶은 이의 진심을 읽게 되는 책이다. 잔인한 현실 속 억울한 죽음들, 안타까운 상황의 선택들, 분명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도 쉽지 않아서 머뭇대다가 포기해버리는 삶. 이런 이유들로 법과 보호의 사각지대에 머물던 되는 이들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날을 기대하게 된다. 한 생명이었던 그들이 어쩌면 지금 우리와 같이 숨 쉬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날들을 만드는 건, 우리의 용기가 아닐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연대일지도 모를 일이다. 희망이 없기에 더욱 희망과 변화를 소망하게 되는 모순을 품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것인지... 그러한 인생이 결국 예측할 수 없는 일의 총합이기에 생의 가능성을 믿고 싶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을 저자의 이 책 속 문장으로 대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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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2-29 0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이 사회가 글러가는 것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 아닐까요?

구단씨 2024-03-01 23:38   좋아요 1 | URL
그렇죠? ^^
저 역시 주변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렇더라도. 그 관심을 멈추지 않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호시우행 2024-03-02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시간되세요
 
별빛 창창 - 2024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우수선정도서
설재인 지음 / 밝은세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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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계의 스타 작가 곽문영의 딸로 살아가는 일이, 썩 괜찮을 거로 보였다. 부족할 거 없는 현실의 풍요로움과 쓰기만 하면 중박 이상을 터트리는 엄마의 명성에 자식까지 저절로 뿌듯해질 것 같은데. 아니었나?


곽문영의 딸 곽용호는 용과 호랑이가 나왔다는 태몽처럼 이름이 지어졌다. 위풍당당, 어디에서도 그 힘을 발휘하며 살아갈 거로 보였던 이름이었건만, 현실의 곽용호는 그저 스물아홉의 백수일 뿐이다. 삼수 끝에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도 매번 취업에 실패한 패배자로 살아가는 중이다.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 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 그가 바로 곽용호다. 엄마의 유명세만큼이나 그 자신도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채로 성장했다. 엄마에게 관심 받지 못하고 자라왔고, 그의 인생에 비치 비춰지는 순간은 엄마 곽문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뿐이라니. 어째 형제자매 사이의 비교도 힘들다고 여겼는데, 능력 있는 작가인 엄마와의 비교도 힘들 것 같긴 하다. 그래서일까,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 매번 다투고, 서로의 인생 참견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던 어느 날. 새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엄마가 사라졌다.


이 사실에 당황스러운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 엄마의 수족인 오혜진이 곽용호에게 제안을 한다. 엄마의 새 드라마의 대본을 대신 써 달라는 것.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곽용호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여기까지 읽고 나면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 이제 엄마 대신 대본을 쓰는 곽용호는 엄마보다 더 재밌는 드라마를 완성한다. 그동안 엄마의 기세에 눌려 발하지 못한 그의 능력이 화산 터지듯 폭발하는 순간이다. 그럼 다음 문제를 해결해야겠지. 사라진 엄마는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이 드라마의 완성에 곽용호의 이름이 들어갈 수 있을까 없을까. 엄마 대신 유령 작가로 드라마를 쓴 곽용호의 인생은 이제 날아오를까? 사실 어릴 적 곽용호의 꿈은 작가였다. 자꾸만 엄마의 재주에 비교하다 보니 그의 재능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걸 일찍 깨달았을 뿐이다. 그런 꿈마저 사라지니, 저절로 존재감 없는 인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순간, 엄마 대신 대본을 쓰고 있는 지금 그의 재능은 어떻게 평가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치 숨겨졌던 어떤 길을 여는 기분이다. 문제는, 곽용호가 엄마의 대본을 대신 쓰는 이 문제를 해결해도 문제, 해결 못 해도 문제라는 거다.


엄마 대신 드라마 쓰기에 한창 빠져있을 무렵, 잊고 있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집중해서 글을 쓸 때는 생각나지도 않았던 엄마의 부재. 엄마를 찾아야 했다. 곽용호가 엄마를 찾기로 결심하고, 같이 글을 쓰던 함장현과 배우 주민호까지 함께 엄마를 찾아 나선 여정은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궉산의 광혜암. 사람들의 발길도 뜸하고 암자 같지도 않게 흉흉한 외관, 수상한 관리인 스님까지 의심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다. 이곳에 엄마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단서로 곽용호 일행 역시 이곳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놀랍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다.


죄책감이 원인이 되는 치매, 상당히 오랜 시간 죄책감이 쌓이면서 기억을 잃어버린단다. 실제로 이런 치매가 있는지 소설 속 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치매 환자가 기억을 잃는다는 게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죄책감이 쌓여 기억을 잃는다는 게 왜 이렇게 무서운지 모르겠다. 얼마나 미안한 게 많았으면, 얼마나 그 마음 끌어안고 살아왔으면 이렇게 기억을 잃게 되는 걸까. 더군다나 그런 이유로 기억을 잃은 이들은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는 마음만 남아 있다고 한다. 밥을 먹이고 씻기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가만히 앉은 채로 살아갈 수 없게 누군가의 한마디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더 아픈 건, 그들 자신을 돌보는 법을 잊었다는 거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게 그들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일이라면, 자신을 돌보는 법을 가장 먼저 잊고야 말았다. 스스로 먹고 씻고 하는 것조차 잊은 채로 살아간다. 처음 곽용호가 아파트 현관 문 앞에 쌓여 썩어 가는 배달 음식을 보고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더라면, 일하느라 바빠서 음식 배달 시킨 것도 깜빡할 정도로 엄마가 대본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었더라면, 지금 뭐가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도 단정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 혼자 곽용호를 키우면서, 자식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만 하면서 이기적으로 살아왔다고 보였을 지라도, 곽문영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그 죄책감을 우리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면 마음의 병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 생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곽문영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광혜암에 모여든 사람들의 병이 왜 시작되었는지 추측하게 된다. 해주고 싶은 건 많고 시간은 없고, 아빠 없는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게 인생이었고, 아이 키우며 살아가기 위해 죽을 것처럼 일했고 성공도 했는데, 그렇게 살아오고 보니 남은 건 혼자 자라듯 성장한 딸에게 미안함과 죄책감 뿐이었다는, 그런 거 아닐까. 서른이 다 되도록 아무 색깔도 가지지 못한 채로 실패자로 살아온 곽용호의 인생을, 엄마인 자신이 만든 것 같아서.


결국, 이 모든 사건과 진실을 파헤치는 동안 곽용호와 그의 친구들이 마주한 것은 괜찮다는 말이었을 거다. 인생 왜 이렇게 꼬질꼬질한지, 그 창창했던 꿈은 어디에서 무너져 버렸는지, 성공하고 싶은 인생은 어쩌다 매번 실패만 하게 되는지. 그동안 살아오면서 계속 경험한 게 절망 뿐이었다면, 이제는 조금씩 나아가는 마음을 붙잡아준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광혜암의 그 많은 사람이 갖게 된 죄책감 말고, 괜찮다는 말로 그저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해준 시간이었다. 곽용호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가는 많은 이가 똑같이 겪는 불안정한 경험 속에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괜찮다고 말한다. 기억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미친 듯이 써 대면서 사람들에게 기억하게 하고, 그 기억을 산 대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일에 앞장서고, 다정하게 대할 수밖에 없던 누군가의 마음이 그대로 읽힌다. 그저 그 시간에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현실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설령 이 인생의 엔딩이 또 다른 패배자의 기록으로 남는다고 해도, 그저 나아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은가. 뭐가 하나 부족해도, 가야지. 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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