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짐을 꾸리는 일부터 낯선 곳에서 고생하던 시간이 별로라면서, 그런데도 시간이 된다면 어딘가로 움직이는 마음이 참 모순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귀찮다고 여기는 내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싶었던 순간이 작년 내내 계속이었다. 코로나로 변한 일상이, 처음에는 좀 견딜 수 있다고 여기던 마음이 점점 힘들어졌다. 움직이기 싫어서가 아니라, 여행하고 싶어도 불가능해진 현실 앞에서 당황했다. 우울하고 슬펐다.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일상이,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도 된다면서 미루기만 했던 일들이 불가능해지니 코로나 이전의 날들이 감사했다. 별일 없이 지내던 일상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커피 한 잔의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 날들이었다. 거기에 마스다 미리의 작품은 그 소소한 날들이 어떤 것인지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의 오늘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오늘의 인생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가 스쳐 보낸 일상의 단편들을 그려낸다. 어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웃지 않는 페이지가 없었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 당황해서 소리 내지 못하고 나오는 웃음. 그래, 우리 이런 맛에 웃으면서 살아왔었지 싶은 이야기에 혼자 적어놓은 일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인생의 하루하루가 이렇게 모여서 삶이 완성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평온한 날들의, 평범한 날의 소박한 기록이었다. 너무 특별해서 기억하고 자랑하고 싶은 날이 아니라, 너무 평범해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순간들을 사진 찍어놓는 듯하다. 사실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날보다 어떤 사건이나 특별한 날이 더 잘 기억나는 건 맞다. 그러면서도 그 특별함 속에 자리한 평범한 날들이 잊히지도 않는다. 가끔 그렇게 별일 없는 날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 걸 보면, 역시 인생을 채우는 시간 속에서 평범한 일상의 기억이 더 애틋하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가 이렇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듣다 보면 우리의 일상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하는 것. 작가가 부리는 마법일지도.


<오늘의 인생2, 138페이지>

 

오늘의 인생 2는 그 마법의 연장선에 있다. 여전한 날들의 평범함, 그 평범함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찾아내는 삶의 기쁨인 기록이다. 거기에 작년 한 해 우리가 고통스럽게 견디던 코로나의 일상이 담겼다. 이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던 날들일 것이다.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고, 식당이나 커피점에 앉아서 먹지 못 하는 일이 생기는, 매일 브리핑하는 확진자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옆을 지나가는 누군가를 피해야 하는 공포까지. 무엇 하나 평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을 지낸다. 하루하루 식사를 하고, 공부하고, 일하는 날들을 이어간다. 평범하지 않은 날들 속에서 평범함을 살아간다. 작가의 일상을 또 한 번 마주하면서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세계가 이렇게 변하게 되었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로 우리는 여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본다.

 

특이하면서도 그럴 수 있음을 공감한다. 겨울날의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드라이를 켜고 머리카락을 데우는(?) 일이라니. ^^ 이런 부지런함이 있을까 싶어 웃음부터 났는데, 차가웠던 머리카락이 따뜻해지면 기분이 좋다는 말에 격한 끄덕임을 보냈다. 그럴 수 있다. 차가움보다는 따뜻함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손끝에 닿는 그 느낌이 그대로 마음이 전해져온다고 생각하면, 겨울 아침의 드라이하기는 충분히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작가가 보여주는 그 간결한 선의 그림이, 많은 생각보다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 담아내면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작가는 우리이기도 하다. 많은 일에 지친 것 같다며 차 한잔 간절하지만 아무 가게에도 들어가기 싫은 마음을 품은 모습은 낯설지 않다. 주택가 어느 골목에서 나는 저녁밥 냄새에서 그리움을 찾기도 한다. 삶의 곳곳에서 묻어나는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다가와서 솔직하다고 해야 할지... 가끔 감추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은가. 아닌 척, 괜찮은 척,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안 듣는 척하면서, 일상의 사소함에 관심 없이 살아가고 싶어지는 마음. 어쩌면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세계에 속하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을 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도를 전한다. 작가가 전하는 일상의 가장 큰 힘은 공감일 것이다.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하루하루가 이렇게 충만할 수도 있구나 싶은 감동일지도 모른다. 아이스크림 하나 먹어야지 하면서 향하는 걸음이 가볍고, 차 한잔에 수다 떠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고, 전철에서 아빠의 어깨에 기대어 자는 아들의 모습에 언젠가 기억할 오늘을 상상하고, 꽃가루를 피해 도쿄를 떠난 여행지에서의 만족감 같은 일이 일상을 반짝이게 한다.


<오늘의 인생2, 64페이지>

 

어쩌면 지나간 오늘은 붙잡을 수 없는, 지나간 하루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기보다 어린 학생들을 마주하면서 종종 그들이 가진 젊음과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 나이여서 아름다운, 그 나이가 지나면 알게 될 순간들을 말하기도 한다. 사실 언제나 그렇다. 이상하게도 인생의 많은 일은 지나고 아는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 때로는 후회가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며 애틋해지기도 한다.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는 세월이지만, 계속 이어지는 인생이기에 오늘의 인생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내일의 나를 기대하면서 사는 날들일지도.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휴일을 보내면서 꼬박 집 정리를 하고, 길가의 고양이에 시선을 빼앗기고, 갓 구워나온 빵 냄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주문하는, 기분 전환 삼아 빨간 지갑을 사러 갔다가 그냥 나오고, 헬스장에서 영상을 보며 운동하고, 여행길에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접어두는, 아무리 봐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내는 작가의 이야기이기에 그 소박한 한 마디에 마음이 향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다짐하는 작가의 바람으로 시작하는 이 책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마음대로 만날 수 없고, 어디로든 떠나는 것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날들이다. 그런 오늘의 인생이 감사하다. 언젠가 마주할 내일, 오늘의 인생을 기억하며 애틋함에 수다의 주제로 오를지 모른다. 그때의 우리는 이랬다고, 그때의 불안은 정말 힘들었다고, 그래도 살아온 오늘이기에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울고 웃으면서 채워진 오늘의 인생이라고 말이다.

 

 

소심하게 덧붙이자면,

작가가 책 속에서 언급하는 또 다른 책들의 제목을 메모하는 즐거움도 컸다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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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일본어학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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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별로 배우는 일본어 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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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뱅크 The 중국어 Step 1 (본책 + 워크북 + 오디오 CD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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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태어난다. 일종의 숙제라면 숙제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숙제를 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인생의 숙제를 풀든 풀지 않든, 어떻게 풀든 결국 죽는 순간 그 결과는 자신이 안아 드는 것일 테다.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특별한 보너스일지도 모른다. 보통은 자기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63페이지)

 

지인의 아버지는 희귀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시다. 아들과 50% 확률로 맞는 골수를 이식받았고, 곧 좋아질 거로 여겼지만 문제가 생겨 다시 입원하셨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곧 좋아지기를 기다린다고 했지만, 만에 하나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들이 모여서 의논도 하고, 앞으로의 일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나의 남동생의 장인어른과 여동생의 시아버지는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주변 사람들의 암 소식은 너무 흔하게 들려왔다. 병명 자체만으로도 공포가 생기는 병이 암이 아닐까. 언젠가부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익숙한 병이 되어버렸고, 혹시나 우리도 암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병원을 찾고 검사를 받는 일이 낯설지 않다. 아마 두 가지가 겹치니 그 공포는 배가 되는 것일 테다. , 병원. 특히 암은 죽음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있는 병도 아니다. 암에 걸렸다고 다 죽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암은 죽음에 가까이 있는 병이기는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암과 함께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암 전문 의사로 항암치료를 해오면서, 그가 만난 암 환자와 가족들을 보면서 느낀 것들을 기록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까.

 

2019년 전체 사망자의 27.5%가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국인이 사망하는 장소의 77.1%는 병원이라고 한다. 그만큼 암과 병원은 우리 삶과 가깝다. 암 환자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떨까. 저자는 18년 차 종양내과 의사로 일하면서 많은 암 환자를 만났다. 완치가 아니라 생명 연장의 목적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와 가족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궁금했다. 나는 의료진이었던 적이 없으니, 언제나 환자 본인과 가족의 자리에서 보게 될 터이다. 그러니 같은 상황 같은 죽음을 두고 저자와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으로 의료진의 시선을 알 기회가 생긴 셈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삶과 죽음의 순간이 생생하다. 암을 앞에 두고 대응하는 방식은 너무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아마도 그건 살아온 세월과 삶의 방식, 환경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의사이면서 한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마주한 저자의 기록은, 저자는 물론이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 만나온 많은 환자의 선택을 지켜보며, 그들이 채워온 삶과 병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그의 삶의 태도에 하나를 더한다. 그들의 삶과 죽음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그들의 시간이 담담하면서도 위태롭게 들리기도 했다. 그건 내가 경험한 삶과 죽음의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마주할 죽음의 순간을 상상하면 아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남과 죽음을 한 번씩은 겪으니까, 내가 태어나는 순간을 누군가가 지켜봤다면 내가 죽는 순간도 누군가는 지켜볼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죽음이 된다는 것. 그걸 생각하면 죽음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삶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죽음을 삶의 끝이라고 간단하게만 생각할 수는 없을 듯하다.

 

저자가 마주한 환자와의 실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다양한 상황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엿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했다. 죽음의 순간을 두고 동생에게 2억 원을 갚으라고 하는 남자, 평생 술과 도박으로 가족을 돌보지 않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이 딸에게는 다행인 일이 아니었을까 싶은 사연, 암 투병 이후의 시간을 감사하며 긍정의 힘을 뿜어대는 환자, 시한부 삶을 맞이한 여자와 결혼을 이루는 남자의 사랑, 사후 뇌 기증을 신청하고 떠난 사람, 남편이 완치되길 바라면서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부부, 이혼했지만 각자 암 투병 중인 부모를 돌보며 일터와 병원을 바삐 오가는 아들, 암과 치매를 동시에 앓는 80대 아버지는 모시는 예순을 바라보는 딸,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이뤄가며 남은 시간을 채우는 노인 환자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라는 말을 듣고 그 시간을 채워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삶을 채우고 있지만 결국은 죽음으로 향해 가는 그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는 각자의 몫인 듯하다. 반드시 죽음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주 그 숙제를 떠올린다. 주어진 삶을 어떻게 얼마나 의미 있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물음. 그 물음과 답은 자기가 만들어가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이 숙제를 풀든 풀지 않든, 어떻게 풀어가든 죽음에 다다르며 그 결과 또한 자기가 받아들여야 한다. 모르지 않은 일인데도, 왜 자꾸만 그 답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삶이 되어가는지, 언제나 어렵다. 의미 있게 살아가는 일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안다는 것은 행운일까 아닐까. 가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오늘과 남겨진 시간을 생각한 적이 있다. 만약 나의 목숨이 시한부라면, 시한부라는 사실을 아는 게 좋을까 모르고 지내다가 죽는 게 좋을까 하는 질문을 떠올린다. 나는 언제나 전자의 선택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남은 시간을 잘 정리하면서 내 마지막을 준비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말기 암 환자라도 그럴 것 같다. 하염없이 병상에 누워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나와 내 주변의 것을 조금씩 정리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싶다고. 저자의 말처럼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특별한 보너스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는 끝을 맞이하는 것보다, 슬프지만 끝을 알게 된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보낼 오늘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종착역으로 가는 환자의 곁에는 같이 그 길을 걷는 가족이 있고, 그들은 곧 한 사람의 끝을 함께하면서 조금이라도 덜 아쉽고 행복하게 걸어갈 수 있게 노력한다. 마음을 다하려고 애쓰며 헤어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저자가 환자와 그 가족들을 지켜보면서 읽은 이야기는 끝이 없다. 저마다의 선택과 결과 앞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하나의 인생이, 한 가족의 삶이 변해가는 장면을 눈에 담는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생각한다.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이고 배우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 많은 이야기 속에서 계속 묻는다. 우리의 남은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평범한 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누구보다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일, 느닷없이 찾아온 운명을 받아들이고 본인 몫의 남은 삶을 평소처럼 살아내는 일.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37페이지)

 

4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1장과 2장에서 환자의 암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3장과 4장에서는 의사로 살아가는 일과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시간과 싸우며 환자를 보는 병원의 환경, 마지막에 다다른 환자의 연명치료가 정말 필요한 것인가 하는 고민을 담았다. 암 투병 이후 완치된 젊은 환자의 미래도 같이 걱정한다. 병을 앓았다는 이유로 취업에서 실패하고, 현실은 언제나 살아가야 하는 냉정함을 뿜어대는데 생존의 위협에 또 시달리는 고통이 뒤따르는 암 투병 이후의 시간을 처음 알았다. 다시 건강해졌으니 다행이고 좋은 결과라고만 여겼지, 현실에서 암이 공격하는 또 다른 일상이 있었다는 게 무서웠다. 몸의 건강만 되찾았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었던 거다. 의사의 자리에서 겪는 많은 고충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환자나 보호자는 의료진이 처한 현실을 다 알지 못한다. 의료진 역시 마찬가지로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을 다 알지 못한다.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일까, 다 알지 못하는 그 마음 때문에 때로는 오해하고 서운해한다. 내 자리에서 보이는 것만 두고 생각하고 말하고 싸우고 운다. 의료진이 환자를 대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들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기에도 벅찬 상황이 있더라는 것. 그러다가 비로소 환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보이는 것들을 감싸 안는다. 자기가 환자가 되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그 순간부터,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의 시선과 마음이 보이는 거다. 역지사지라고 해야 하나. 누군가 아프게 되는 건 싫지만, 나는 의료진이 이렇게 서로 다른 상황을 알아가는 기회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연명치료에 관한 부분이었다. 연명치료를 선택하는 게 최선이기만 한 걸까? 환자의 남은 삶이 연명치료로 행복해질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건수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나도 경험했다. 아버지가 처음 응급실에 실려 가고 수술대 위에 되었을 때, 시간이 지나고 다시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병원에 한 번 드나들 때마다 온갖 서류에 서명하고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때마다 나도 연명의료계획서에 사인을 했다. 처음에는 이 서류에 어떻게 뭐라고 서명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고민이 많았는데, 그 처음 서명을 위해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위급한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그 연명치료를 수락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그 목숨의 주인은 환자 본인이지만, 환자가 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호자와 가족들은 어떤 선택이든 결정을 해야만 하는 어려운 위치에 선다. 의식을 잃은 환자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순간까지 심폐소생술을 하는 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묻는 저자의 말에, 우리 가족의 판단이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안도가 생긴다. 어쩌면 또 다른 순간에 우리는 같은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렵지만, 저자가 말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하는 질문에 같은 무게로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살아 있으나 죽음보다 못한 상태인, 존엄과 멀어지고 있는 환자의 마지막을 위한 결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일. 몇 번을 생각해도 어렵기만 한 주제를 두고 참 많은 생각과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듯하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생명은 고귀한 것이라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하기는 쉽다. 입으로 도덕을 외치고 윤리를 말하는 일도 참 쉽다. 똥 치우며 병수발하고 비용 부담하긴 어려워도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만 있을 뿐 인간다움을 완전히 잃는다면 그때에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혹 당신이 그런 상황이 된다면, 혹은 인지 기능 없이 단순히 숨만 쉬는 상태가 된다면 그런 상태로 몇 년 더 사는 것을 간절히 원하게 될까?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254~255페이지)

 

의사가 들려주고 있지만, 의사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안에 우리가 언제나 함께 참여한 대화이자 기록이다. 우리는 인간이고 언제 어디서든 질병과 마주할 수 있다. 질병이나 병원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기도 하다. 동생이 아파서 1월의 절반을 서울에서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이제는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 생활을 이어간다. 지금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길 거로 여긴 적이 없다. 언젠가 그럴지도 모를, 나이 들어가는 부모의 건강을 염려하기는 했지만, 뜻밖의 일 앞에서 이렇게 당황하고 걱정하면서 병원을 전전할 줄 몰랐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읽다 보니,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가깝게 다가온다. 의사는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존재이고, 병원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머무는 곳이 되었다. 내가 환자가 될 수도, 보호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은 언제든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러니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닌 게 되더라는 깨달음은 저절로 따라온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하면서, 언젠가 나와 가족에게 찾아올 죽음의 순간도 항상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낯설지 않은 경험담에 많이 공감하면서, 삶과 죽음을 겪어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숙제이자 의무라고 말하는 문장들에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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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2-1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그림이, 잎사귀처럼 보였다가 살아 움직이고 싶어했던 잠자리 날개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아름다운 글 잘 읽고 갑니다.

scott 2021-02-10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페이퍼는 문장마다 읽고 음미하고 새겨둘 구절이 많아서 이페이퍼는 아끼면서 읽을겁니다. 구단님 설 연휴 가족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