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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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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어려웠다. 연재되었던 칼럼이라고 해서 기존 그의 글보다 조금은 편하게 읽히지 않을까 싶었던 안도가 뒤집힌 거다. 그동안 출간된 그의 글(책)을 끝까지 읽은 게 없다. 늘 진행형으로 몇 페이지씩 넘기며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와중에 이번 책을 만났으니, 전보다 부담을 내려놓고 대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다. 그의 두 번째 산문집으로 만나게 된 이 책이 그의 시 이야기와 나를 조금 가깝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말이다.

 

많은 시인을 언급하고, 그들의 시를 들려주면서 '시적인' 것을 말한다. 뭐랄까,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시를 다른 마음으로 대하게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시를 단순하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해석하기는 어렵고, 그들의 영감은 특별할 거라고 여겨서인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접했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비평가가 말하는 그 시 이야기가 거리감보다는, 세상 살아가는 곳곳에 묻어있는 어떤 흔적을 공유하는 느낌이다. 그 모든 것, 그 많은 것을 내가 한꺼번에 다 알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시에 가졌던 어떤 선입견이 한 꺼풀 사라진 것은 틀림없다. 마음이 시를 향해 가는 것, 어떻게 그러한 상태에 다가서게 되는지 말하는 분위기조차 시적이다. (너무 오버인가?) 어떤 그림에서, 영화에서, 사회의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서, 누군가의 작품 근거가 되는 이야기에서... 눈에 보이고 겪어가는 모든 게 시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짙어지게 한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많은 것이 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다. 그동안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가능성이기에.

 

좁은 우물에서 보게 되는 것 역시 좁고 편협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조금은 중의적인 제목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올려다보는 좁은 시선에서 세상을 좀 더 넓고 여유롭게 바라볼 가능성을 열어주는 듯하다.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이 있고, 저마다 끌어안고 살아가는 슬픔과 고통이 있다. 누군가의 눈물과 웃음이 있다. 시는 그런 세상에서 말하고, 누군가에게 들려준다. 그 시대를 말하고, 세상이 녹아 있다. 잊지 말아야 하는 많은 눈물을 전하고, 비극이 모티브가 되어 울림을 전하는 거다. 어느 무명 시인의 아픔을 말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상당히 인간적인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은 미처 몰랐다. 이런 삶의 구석구석이 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시가 단순히 문학의 한 분야이며, 일상과 닮지 않은 모습일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어느 진심이 그대로 묻어있을 수도 있음을, 이제는 좀 알겠다. 저자가 하는 모든 말을 그대로 다 소화하는 게 어려울지는 몰라도, 세상을 보는 시선에 문학과 시를 함께 떠올릴 수 있다는 공감으로 계속 접근하고 싶은 작가의 글이다.

 

각 편에서 들려주는 시 구절도 눈에 저절로 담긴다. 그가 뽑아낸 문장들로 시를 대하는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시인과 예술가의 삶을 들으면서 진지해졌다.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 하나를 배운 것 같아서 이 추운 겨울에 살짝 흐뭇해지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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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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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꽃보다 청춘>의 페루행을 한 번도 빠짐 없이 봤다. 페루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여행을 좋아해서도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세 남자의 좌충우돌 여행기가 궁금해서였다. 그렇게 그들의 발길 머문 곳의 풍경들과 갑작스레 닿게 된 타국에서 겪는 낯섦, 그런데도 좋아 보이는 그들의 표정에서 전해오는 행복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테마에 맞게 찾아가는 듯한, 그들이 말하는 그 청춘의 이야기가 궁금해서이기도 했다. 그 여행에서 그들이 찾게 된 청춘의 의미. 어떤 모양으로든 만나게 된 그들의 청춘은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잊고 있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잠시 멈춘 듯한 열정이 다시 피어오르고, 오늘과 내일을 좀 더 열심히 살아가고 싶은, 오래전 그들이 무언가를 꿈꾸었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여행의 의미는 그런 거라고, 누구에게나 어딘가를 향하게 하는 크고 작은 이유가 생겨날 때 떠나게 되는 것, 이 아닐까. 그게 언제든, 그곳이 어디든...

 

페루 여행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어 더욱 감사한 시간이었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들은 마주하면서 한없이 낮아지던 경험. 때로는 그저 겸허하게 받아들이거나 포기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깨달음. 인간 능력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교만함을 버릴수록 영혼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소중한 진리. 이것이 바로 페루 여행에서 얻은 첫 번째 가르침이었다. (115페이지)

 

저자에게도 그런 이유가 하나쯤 존재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상처받은 그녀의 영혼이 향할 수밖에 없는 곳, 페루였다. 사람이 언젠가 한번은 죽게 되겠지만, 그녀 역시 그때를 가깝게 생각하진 않았던 듯하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 인생을 크게 흔든 계기가 되었다. 그런 그녀가 의지할 곳은 여행이었고, 그녀를 부른 곳이 페루였다.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라니, 그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된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쉬이 들려오지 않았을 듯하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위로와 치유가 절실했을 거라는 건 알겠다. 그녀에게 그 위로를 주겠다며 허락한 땅, 페루. 지구상에서 신들의 세상에 가장 가까운 나라라고, 그곳에서라면 그녀의 영혼을 치유 받고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믿음이 떠오른다. 그렇게 그녀가 페루로 떠나고, 그곳의 땅을 밟고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 온기를 나누던 시간은 그녀 안으로 오롯이 들어왔다. 아름다운 그곳의 자연과 역사를 품고, 사람들이 건네는 순수와 진심을 안고 돌아와 우리 앞에 이 책을 내놓았다.

 

쿠스코의 푸른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도, 마추픽추의 웅장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자연과 사람들의 지혜를 발견한다. 잉카인의 문명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마음을 다 비워내고 오로지 그곳에 존재하는 것들을 그 빈 곳에 다 채울 수 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페루의 유적에서 뿜어져 나오는 경건함, 곳곳에서 보게 되는 삶과 죽음의 의미,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현재의 모습이 간직하는 것, 자연 앞에서 인간의 겸손함을 보게 되는 곳. 그녀가 그 길에서 마주친 것들을 들려줄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이미 한 번 본 장면들도 있지만, 다시 봐도 역시 감탄사가 나오게 된다. 인류가 만들어낸 기적을 보는 기분. 그게 또 아무 데서나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신비함. 열대 우림과 고산, 사막과 바다, 어느 한 곳이라도 자연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는 장소여서 그 특별함을 더한다. 그 여정에서 또 기적처럼 만나는 인연들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택시 운전사 그레고리와의 만남은 우연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약속하지도 않고 서로가 느낌만으로 재회할 수 있다는 게 오늘을 살면서 내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어긋난 약속 그다음에 만나게 되는 우연은 신이 허락한 인연이 아니었을까? 그레고리의 가족들과 보낸 시간에 온기를 담아오고, 그녀의 친구인 이야의 할머니가 건넨 한 마디가 가슴속으로 직행한 듯 훈훈해진다. 시렸던 마음이 다독여지고 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녀가 왜 굳이 페루로 떠났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녹색 평원에 드러누워 있자니 내가 잔디가 되고 구름이 된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인간이란 애초에 잔디나 바람 같은 존재와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그저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긴 채 주어진 삶을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154페이지)

 

가깝지만은 않은 곳이기에 선뜻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곳은 아닌 듯했던 페루를 이 여행기로 조금은 가까운 거리로 끌어당겼다. 문명을 모른 채로 살아가는 티티카카 호수 사람들의 삶에서 비워짐, 느림의 시간을 느꼈다. 도시적인 느낌이 아니어서 더 여유로움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이런 삶을 여기서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특히 그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져 그들의 마음까지 담고 오는 저자의 기운에 뭔가가 더 가득 채워진 기분이다. 인연이라는 건 그렇게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나와는 다른 성격의 그녀가 여행에서마저 낯섦을 떨쳐버리는 듯해서 부럽기도 했다. 어딘가로 향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예민함이 크기를 키우는 나와 다르게, 그녀가 여행준비를 할 때부터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설레기부터 한다. 뭔가 단단한 게 내 안에 들어올 준비를 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결국은 그 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내 것으로, 나를 위한 것으로 만들려는 그녀의 의지가 힘을 발휘한 게 아니었을까... 여행에서 채워지는 건, 낯선 곳을 낯설지 않게 하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길 위의 시간까지 포함하는 것이겠지. 그런 의미로 이 책을 담아보자면, 마음이 어떤 신호를 보낼 때, 그녀처럼 주저 없이 가방을 꾸리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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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반장 똥 반장 연애 반장 초승달문고 28
송언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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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던 학교는 시골의 한 초등학교였는데요. 저는 개구쟁이 남학생과 학교 운동장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막 뛰어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비명이 들렸습니다. 같이 장난하던 남학생이 급하게 저를 쫓아오느라 계단에서 구른 게지요.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랐던지. 아마도 초등학교 3~4학년 때쯤이 아닌가 하는 기억이 있습니다. 다음날 그 남학생은 당연한 것처럼 팔에 커다란 깁스를 하고 나타났어요. 나 때문에 그런 건가 싶어 겁이 나서 가슴이 막 뛰는데 그 친구는 아주 어른스럽게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주어서 안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나 그렇듯 오래 전 시간의 기억을 들추어내는 것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우리를 미소 짓게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지내왔던 한 순간의 웃음과 추억들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발견할 때 신기하면서 또한 기분 좋은 웃음을 만들어내지요. 그 주인공들은 우리의 아이들일 수도 있고, 공원을 지나다가 뛰어노는 모르는 아이들을 수도 있고요. 이 책 속의 아이들처럼 정말 개구쟁이를 볼 때일 수도 있습니다. ^^

 

 

2학년 3반의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황동민, 황동민의 마음을 뺏어간 예쁜 여자 친구 구예슬, 2학년 3반의 첫째가는 개구쟁이 오광명, 오광명의 단짝 말썽쟁이 임진수, 욕을 하다가 별명이 썩은 떡이 되어버린 썩은 떡, 그리고 나이가 백오십 살이라는 소문의 주인공 털보선생님,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있습니다.

 

 

사건은 2학년 3반의 반장선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황동민은 반장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선거준비를 하는데요. 반장에 당선되면 피자 10판을 쏘겠다고 공약을 걸면서 아주 감동적인 연설을 준비합니다. 정말 반장이 안 되면 큰일 날 것만 같습니다. ^^

저 역시도 황동민의 연설에 반해버렸습니다. 이런 실내화 한 짝을 천장을 향해 던지면서 황동민은 이렇게 외칩니다.

 

 

“저 실내화 바닥이 닳아 없어지도록 열심히, 열심히 우리 반을 위해 뛰겠습니다. 여러분, 저 황동민을 반장으로 뽑아 주십시오!”

아, 이 얼마나 감동적인 연설입니까. 그 감동이 친구들에게도 전해졌는지 황동민은 반장에 선출이 되고 자신이 마음에 두었던 구예슬을 여자 반장으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황반장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학교생활을 이어가는가 싶었는데, 황 반장은 한 사건의 주인공이 됩니다. 학교에서 똥을 참지 못해 결국 옷에다가......... 슬프게도 오광명이 말했던 똥 반장이라는 별명을 하나 더 갖게 됩니다. 어우~ 냄새. 바지에다가 똥을.......

 

 

어찌어찌 똥 사건은 넘어가는가 싶었는데, 황 반장에게 또 하나의 별명을 만들어주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바로 황반장의 연애사건이지요. 황반장이 좋아하는 구예슬을 실수로 안아버린 일이 생기고, 구예슬을 좋아하던 황반장이 구예슬에게 특별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황 반장은 연애반장이라는 달콤한 별명을 하나 더 갖게 됩니다. ^^

 

 

 

처음부터 끝까지 황반장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이야기에 한참을 웃게 됩니다. 이 아이의 엉뚱함과 웃음 나는 에피소드로 채워진 학교생활,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가 삶의 한 일부분이어서 행복하다는 느낌도 들게 합니다. 이 개구쟁이를 혼내주어야 하는데,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부터 만들어내니 혼내주는 것이 조금은 참아지기도 합니다.

 

반장 선거 공약에 걸어놓은 피자 10판은 오늘날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서 보던 모습들이었습니다. 선거 공약이라기보다는 선출 되고나서 기분 좋음에 한턱 쏘는 것처럼 보였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조금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먹을 것에 대한 생각이려니 하고 한번 웃어넘기게 됩니다. 특히나 저는 실내화를 교실 천장에 던져 보이던 제스처가 정말 탁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준비된 연설에서 보일 수 있는 행동일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황반장의 기가 막한 순발력일까요? ^^ 구예슬에 대한 마음을 커플 팔찌로 표현하는 모습에서는 콧방귀를 뀌어주고 싶었습니다만, 제가 황반장의 사랑을 방해할 수는 없지요. 그렇게라도 구예슬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황 반장을 응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동화책을 보면서 이렇게 마음에 들어와 웃음과 추억을 한꺼번에 주는 캐릭터는 참 오랜만에 만나봅니다. 저자 후기를 보니, 저자이신 송언 선생님께서 직접 경험한 학교생활이 이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그 감동과 재미가 더 활기차고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들려왔었나 봅니다. 그 말썽쟁이 녀석들의 이야기가 동화로 이미 태어나기도 했던데요.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불끈~! 했습니다. 안 읽어보면 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거든요. ^^

 

그 나이여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이 책 속에서 만난 황반장이나 황반장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행복한 모습이지요. 시간이 지나고 이렇게 어른이 되어봐야만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모습들과 감정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갖게 합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이 아이들이 들려주는 재미를 같이 경험하게 해주어서 좋았고,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해서 반가웠습니다. 그 시간 속의 그 친구들, 선생님들,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리워지는 한때의 시간을 떠올리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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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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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눈빛은 벽 너머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깥세상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스키나 불꽃놀이, 섬, 엘리베이터, 요요 같은 것이 생각날 때마다, 그것들이 전부 진짜라는 것이, 바깥세상에 모두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생각을 하니 머리가 피곤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소방수, 선생님, 도둑, 아기, 성자, 축구선수 등등, 모두 바깥세상에 진짜 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없다. 나랑 엄마는. 우리만 거기에 없다. 우리는 정말 진짜일까? (114페이지)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작은 방에서 엄마와 둘이 사는 게 세상의 전부인, TV에서 보는 것들로 지식과 재미를 채우고, 그마저도 온전하지 않다는 것조차 모르는 한 소년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소설, 엠마 도노휴의 『룸』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방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조차 모르는 소년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 이입해본다. 스무 살 가까이 엄마가 살았던 세상. 모두가 정상이라고 부를만한 그 시간이 그리운 건 당연하다. 누구나 그렇게 산다. 그게 보편적이고 평범한 삶의 모습이다. 그걸 아이에게 가르쳐주지 못하고, 방안에 갇힌 채로 살아가는 게 아주 큰 무제라는 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이제 겨우 이십 대 중반인 엄마가, 엄마도 부모의 사랑 받으며 커가는 시간일 그때를. 치유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로 보내는 시간을 더는 계속할 수 없음을 인지한 순간, 엄마는 목숨을 건 마지막 모험을 시도한다.

 

소년 잭의 눈에 비친 작은 세상. 방 안의 모든 것을 머릿속으로 잠깐 그려보지만, 아무리 그려봐도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집이 좁아서 답답하다는 표현과는 다르다. 잭이 엄마와 단둘이 감금된 채 사는 곳은 집이 아니라 '방'이다. 그 작은 방 안에서 엄마는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잭을 세상 속의 사람들과 비슷하게라도 키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 그 방 안에서 잭은 정상인으로 성장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필요하다. 그들이 그곳을 벗어나야만 하는 일이. 그 방을 탈출하기 위한 엄마의 시도가 불발로 끝날까 싶어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이다. 처음부터 그 결말을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그들이 그 방에서 나왔으니 해피엔딩이겠지만, 그래도 불편한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의 진짜 탈출은 방 안에서 나온 순간이 아닌, 방 밖의 세상에 다시 발 디딘 그 순간부터라는 것을 아니까. 진짜 고통스럽고 힘들고 버텨야 하는 시간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한 번도 땅을 딛고 걸어본 적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서로에게 어떤 예의를 갖추면서 살아가는지 배운 적 없는 잭.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내고 다시 세상 속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엄마의 시작은 쉽지 않다.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고 적응해야 한다. 그들의 진짜 탈출은 그때부터 시작된 거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탈출, 엄마에게는 7년 동안 갇힌 시간으로부터 탈출이다. 잭에게는 지난 5년의 세월은 버리고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커가는 시간을 시작해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아니,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가능한 일로 만들어야만 하는 의무가 그들에게 지워졌다. 살아가야 하니까. 온전하게 세상 속으로 스며들기 위해 지독한 시간이 시작될지 모르지만, 그래야만 하니까 말이다.

 

엄마는 나를 꽉 안았다.

"잭, 엄마 이번 주에 좀 이상하지. 안 그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계속 엉망이야. 너한테는 엄마 노릇을 해야 하는데, 동시에 어떻게 해야 내가 될 수 있는지 기억해내려니까 자꾸만 이상해져."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똑같은 엄마였다. 나는 바깥에 나가고 싶었지만, 엄마는 피곤하다고 했다. (354페이지)

 

밤에 나는 침대가 아닌 침대에 누워서 예전의 담요보다 더 푹신한 담요를 문질러보았다. 네 살 때 나는 세상에 대해 전혀 몰랐고 그냥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엄마가 진짜 세상을 들려주었을 때는 모든 걸 다 알았다고 생각했다. 한데 이제 늘 세상에서 사는데, 나는 사실상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늘 혼란스러웠다. (501페이지)

 

매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수많은 사건을 보고 들으면서 점점 그 충격의 강도에 익숙해져서일까. '세상에 이런 일이'라며 놀라는 순간은 잠깐이다. 우리 사는 세상이 '이런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곳이라는 게 놀랍지 않다. 그런 일들을 접하면서 점점 커지는 불안을 감당해야 한다는 게 남았을 뿐이다. 5년 전, 처음 이 소설의 출간 소식에 충격이었던 건 내용 보다는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 때문이었다. 73세의 노인이 24년간 친딸을 밀실에 가두고 지속해서 성폭행해왔다는 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라는 물음만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자기 친딸을? 그것도 딸이 자기 자식을 일곱 명이나 낳았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아니지. 처음부터 그게 옳지 않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딸을 밀실에 가두는 것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 최악도 이런 최악이 있을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게 우리가 실제 사는 세상'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보니 이런 드라마는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소설을 넘어선 실제 사건의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그 안에서 소년 잭이 보는 세상과 인간에 대해 조금은 따뜻하고 순수하게 그리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살면서 당연하게 잃은 순수의 감각을 잭의 눈으로 따라가 보게 된다.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처음 배우는 예의, 거절의 말, 표현의 서투름이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어떤 기분을 만들기도 했다. 백지 하나 주어진 상태에서 삐뚤빼뚤 그리기 시작한 어설픈 그림 같은. 그렇게 조금씩 그리다가 점점 제대로 된 그림으로 채워질 백지의 여백이 기대된다. 잭이 배우면서 변하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기다려진다. 잭은 누군가가 저지른 범죄로, 세상을 몰랐던 소년일 뿐이니까. 엄마와 잭 모두에게 곧 다가올 안정의 시간과 세상을 재밌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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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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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아하는 책은 어떤 맛이 나죠? 어떤 책이 당신을 그 모든 악에서 구해주죠?"

(중략)

어떤 책이 나를 구해줄까?

그 대답이 생각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책들이 많은 걸 할 수 있지만 모든 걸 할 수는 없어요. 중요한 일들은 직접 살아봐야 해요. 책으로 읽지 말고. 나는 내 책을…… 직접 체험해야 합니다." (373~374페이지)

 

책을 좋아하면서도, 습관처럼 옆에 두고 있으면서도 맘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가끔은 거식증 걸린 것처럼 오랫동안 읽지 않기도 하고, 가끔은 폭식하는 것처럼 몰아서 읽고 싶을 때도 있다. 재밌고, 공감하고, 몰랐던 것을 알 때도 있지만, 책이 많은 순간 중에서 1순위가 되지는 않는다. 소설 『종이약국』 장의 말처럼, 책이 많은 걸 할 수 있지만 모든 걸 할 수 없음을 알아서일까. 그저 어느 '순간'의 만족이나 필요 때문에 책을 대할 때가 점점 더 많아진다. 한동안 그 부분을 고민하곤 했는데, 여전히 답은 없다. 그저 그래 왔듯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의미와 필요에 맞게 손을 뻗게 되면 다행인 거로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도, 크게 변함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 마치 모든 것을 치유하고 해결해줄 것처럼 슬며시 다가온 책이 이 소설이다. 소란스러운 많은 것을 고요하고 잔잔하게 해줄 것만 같았다.

 

파리, 센 강 위에서 그 존재감을 뽐내며 자리한 선상 서점 '종이약국'이다. 서점주인 페르뒤 씨는 책을 사러 온 손님에게 아무 책이나 팔지 않는다. 어떤 마음으로 책을 사러왔는지 보면서 그에 어울리는, 타이밍 좋게 스며들 수 있는 책을 권한다. 손님이 그게 싫다면 그만이다. 그냥 나가거나, 그의 선택을 믿고 그 책을 손에 들고 나가거나 둘 중의 하나다. 많은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그의 서점에서 책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서점은 그런 곳이다. 첫 작품을 성공하고 두 번째 작품을 쓰지 못하는 젊은 작가가 찾아오는 곳.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울분 하는 젊은 여자가 뛰어 들어오는 곳. 그가 몇 권의 책을 같은 아파트 사람들에게 들고 가게 만드는 곳.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반창고를 붙여주는, 말 그대로 약국이다.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상처가 그의 손에서, 그가 건네는 책 한권으로 다 나을 것만 같다. 그때 문득, 궁금해진다. 그가 사람들의 상처를 그렇게 어루만지고 있을 때, 그의 상처는 누가 치유해주지? 그는 상처라는 게 아예 없는 사람인가?

 

페르뒤 씨는 책들 옆에 있으면 늘 피난처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배 안에서 온 세상을 발견했다. 온갖 감정, 모든 장소와 모든 시대. 결코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었으며 책들과의 대화로 충분했다. 때로는 사람들보다 책들을 더 높이 평가한 적도 있었다.

책들은 덜 위험했다. (323페이지)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편지 한 통이 침잠한 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21년 전에 그를 떠난 여자 마농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이제야 읽게 된 것. 그녀가 보낸 편지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떠난 자기를 이해해달라는 얘기겠지, 변명 같은 말이 한 가득하겠지, 싶은 불신으로 가득한 마음. 떠난 그녀를 향한 분노와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었던 불안함이 21년 동안 봉인된 편지로 남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읽게 된 그녀의 편지는 그를 혼란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정박한 채로 배 위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만 했던 그의 선상서점에 시동을 걸게 했다. 그가 향할 곳을 생각하면서, 단 한 권의 책과 저자를 간직하고서, 늦었지만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떠난 항해.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연들, 시간에 녹아들면서 그는 점점 자신의 마음을 읽는다. 상처로 검게 물든 마음이 씻어가고 있음을 본다.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 거친 목소리 속의 아픔을 읽는다. 그만의 방식으로 공감하고 동요하면서...

 

한 권의 책을 품에 안고 떠나는 그 마음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앞부분에서 그는 마치 세상 모든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누구라도, 그 어떤 문제를 안고 그를 찾아가도 아무 어려움 없이 서가에 쭉 꽂힌 책 한 권을 금세 꺼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이 책으로 어서 펼치세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약은 이 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준 약을 꼭꼭 씹어 삼키면서 아픈 몸이 낫기를 기다린다. 약을 넘기는 물이 너무 뜨거워 호호 불어가면서 마시느라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겠지. 아니면 의심의 눈으로 약을 바라보다가 입안으로 넣기를 주저하기도 하겠지. 어떤 식으로든, 결국은 한번 믿어보라는 말일까. 그가 손님들을 대하는 태도는 무슨 근거인지 몰라도 당당했다. 이 책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에 사람들은 그가 건넨 책을 손에 들고 종이약국을 나간다. 그리고 다시 찾는다. 다시 한 번 처방을 내려달라고.

 

사랑하는 그녀가 떠난 후로 그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 그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로 살아온 시간 동안 그 깊이만 더해갔다. 기다렸다는 듯 그가 배에 시동을 걸 때,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그가 자신의 약을 찾으러 떠날 때, 이제 곧 그의 상처에 약이 발라지고 아물어질 거란 믿음이 생긴다. 남을 치료하느라 정작 자신의 상처를 꺼내지 않았던 그가 한 발 내딛는 순간이었으니 얼마나 큰 용기였을까. 방문 하나를 닫아두고 열지 못하는 그 공포를, 그는 이십 년 동안 계속해왔으니 늦어도 너무 늦은 치유의 길이었으리라. 유독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빛났다. 잘려나간 머리카락, 사라진 한쪽 가슴의 여인에게서도 빛이 났다. 많은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고 돌아온 그가 빛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그의 여정은 의미 있었다. 그가 가슴에 담고 돌아온 거대한 감정들이 앞으로 살아갈 그의 시간에 가득할 거로 생각하니 좀 부럽기도 하고, 그의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한다. 쉰이 넘은 나이에 자박자박 걷듯이 시작하는 그의 인생이 어떤 그림으로 그려질지 눈에 선해서 말이다.

 

치유소설이라고 불러도 될까, 아니면 로맨스소설이라고 불러야 할까. 키워드는 '후회남' 정도? ^^ 그의 선상서점 종이약국이 세계 일주 하듯 온 나라에 정박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내가 사는 가까운 곳에 정박한다면 한 번 찾아가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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