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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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이 일어나지 않는 호수처럼, 한여름의 파란 하늘처럼 깨끄하게 잘 알아들었어요. 저를 믿으셔도 되요. - P50

신은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신은 선 그 자체와 선을 선택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 걸까? 어떤 의미에서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살마보다는 낫지 않을까? 심오하고 어려운 질문들이구나. - P114

그래, 그래, 바로 그거지. 청춘은 가버려야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피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아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아가다가 주변의 것들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끄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 거야.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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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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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들은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모모가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 P25

베포는, 모든 불행은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거짓말, 그러니까 단지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었다. - P49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 P51

그는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안정을 잃어 갔다.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 썼지만 손톱만큼의 자투리 시간도 남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은 수수께끼처럼 그냥 사라져 버렸다. 그의 하루하루는 점점 더 짧아졌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는 그 속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는가 하면, 한달이 지나갔고, 한 해, 또 한 해, 또 하한 해가 후딱 지나갔다.
그는 회색 신사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그러니 그 시간들이 지금 어디로 갔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푸지 씨는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시간을 아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정말 빠르고 점점 더 빨리 흘러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라도 하면, 기겁해서 이를 악물고 더욱 더 시간을 아껴 쓰는 것이었다. - P94

시간을 아끼는 사이에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것은 아이들 몫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 P98

"보다시피 나는 이 꼴이 되었단다. 아무리 원해도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 난 끝장이 났어. ‘기기는 기기인 거야!‘ 모모, 이 말 생각나니? 하지만 기기는 기기로 남아 있지 못했단다. 모모, 얘기 하나 해 줄까?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건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적어도 나처럼 되면 그렇지. 나는 더 이상 굼꿀 게 없거든. 아마 너희들한테서도 다시는 꿈꾸는 걸 배울 수 없을 거야. 난 이 세상 모든 것에 신물이 났어." - P281

"좋아. 갈게. 하지만 좀 빨리 가게 널 안고 가면 안 될까?"
모모는 카시오페이아의 등에서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안 돼."
"왜 꼭 네가 직접 기어가려고 하는 거니?"
이 물음에 거복은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했다.
"길은 내 안에 있어." - P314

하지만 전과 달라진 것이 있었다. 별안간 모든 사람들이 한없이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당연히 모두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들이 아낀 시간이라는 것, 그 시간이 신가힌 과정을 거쳐 되돌아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358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간이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 - P360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ㅅ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 있지." - P208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망므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모모를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말을 하는 중에 벌써 어느새 자기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 P23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대개 이 비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ㅅㅣ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 P77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또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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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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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영혼의 기호다‘
밀란 쿤데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 P45

양수가 터지는 탄생의 순간, 모재 속 행복의 바다, 평화의 바다는 사라진다... ...편한 바다를 버리고 무엇 때문에 모래와 용암밖에 없는 땅 위로 올라옸을까. 천적을 피하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 정든 곳을 뒤에 두고 낯선 곳을 찾아가는 호기심. 펀한 것보다 고난에 도전하는 모험심. 지금 우리가 달나라로 가는 우주의 꿈과도 같았으리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언제나 낯선 이야깃거리는 그렇게 시작된다. 왜 울며 태어났는지. 셰익스피어와 굴드와 헤밍웨이의 상상력을 모두 모아 칵테일하면, 이런 가상의 이야기 한 편이 만들어진다. - P100

나의 생일날은 내가 선택한 가장 성스러운 날이며, 그것은 바다를 떠나 육지로 상륙한 고난의 기념일이다. 나는 그날 육지를 향해 단신 포복하면서 숨이 막힐 때까지 앞으로 앞으로 전진한다. 엄청난 고통의 터널 끝에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순간 막혔던 숨통이 뚫리는 소리가 난다. 이미 내 아가미는 허파로 변해 있었고, 지느러미는 어느새 손발로 변해 있었다. 진동하는 허파는 바다와 뭍의 바람결을 타고 돛대처럼, 깃발처럼 부풀고 있었다. 나는 용감한 해병대요, 숨비소리를 내는 환상의 해녀다. 그게 내 출생을 선언한 응애의 울음소리다. - P101

좁은 구멍을 빠져나와야만 끈적끈적한 고치 속의 이물질을 모두 빨아내어 나래를 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좁은 구멍을 통해 나오는 고통은 죽음이 아니라 새 생명을 주고 자유의 날개를 주는 필요한 장치였던 셈이다. - P111

우리말에는 아이가 태어나 제 앞가림을 할 때까지 그 성장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신가한 낱말 하나가 있다. ‘떼다‘라는 말이다. 태너나자마자 탯줄을 가르고 배꼽을 뗀다. 다음에는 젖을 때고 똥오줌을 가리게 되면 기저귀를 뗀다. 그리고 기어다니던 아이가 걸음마를 배워 첫발을 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옛날이라면 천자문을 떼고 요즘이라면 한글을 떼야 비로소 홀로서기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배꼽떼고, 젖 떼고, 기저귀 떼고, 발 떼고, 천자문 떼지 않으면 팽생 ‘떼‘쓰는 응석받이로 어른이 되지 못한다. - P149

나는 80년 동안 책과 함께 살아왔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책은 돌상에서 집은 책이고, 책을 읽어주신 어머니가 나의 두 번째 책이다. 어머니의 말, 어머니가 읽어주셨던 그 많은 모음과 자음에서 상상력을 길렀다. 내 최초의 책은 어머니의 몸이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돌잡이로 집어 들던 그 책,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미니의 음성으로 듣던 책. 그 책이 내 창조력의 씨앗이다. - P281

한국에서는 ‘잼잼‘과 ‘곤지곤지‘같은 애들 놀이에서 쇠젓가락으로 콩알을 집는 손기술까지 모두가 돌잡이의 ‘잡는 문화‘로 상징된다. 돌잡이는 ‘꿈잡이‘다. 한국인은 꿈을 꾸지 않고 손으로 잡는다. - P284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오늘을 잡아라!"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쥐라‘는 뜻이다. 우리는 기회를 잡고, 사랑을 잡고, 운명을 잡는다. 더 나아가 세계를 잡기도 한다. ‘받는다‘는 수동적 의미가 아니라 제 손을 뻗어서 제 손에 넣는 것이 잡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한국인만큼 잡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민족도 드물다. 첫 생일을 맞는 아이를 ‘돌잡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돌상 앞에서 무엇인가를 잡는 것으로 인생을 출발한다. 내 운명을 내가 잡는 것이다. - P285

부모의 품 안에서 길러진 습관이나 버릇은 고스란히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두 살도 아닌 세 살이 인간의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뇌과학에서 밝혀진 이야기지만, 한국 나이로 세 살이 되면 거의 80퍼센트 이상의 뇌발달이 이루어진다. 한 사람의 미래가 세 살에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0년 뒤의 한국을 보려면, 오늘 우리는 세 살 먹은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면 된다. 아이를 잉태해서 츨산해 키우는 3년 동안 80년의 한국 미래를 품고 있는 것이다. 3년만 투자하면 80년이 달라진다. - P305

태어난 집 밖으로 나가야 비로소 고향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 P317

아버지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움보다 혼이 날까 검나 손가방을 더 힘껏 껴안고 울음 뒤끝을 참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얼굴에 금이 갔다. 그 근엄한 얼굴이 무너지고 아주 어색한 웃음이 지으신다. - P325

땅만 보고 나물만 캐는 사람에게는 노동만 있고, 하늘만 바라보고 종달새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궁리만 있다. 그런데 땅의 나물과 하늘의 새는 상호작용하면서 벌판의 지평에 변화를 준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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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5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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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생존해 계신 친정 어머니는 팔순을 바라보시건만도 세상 변화를 어린애처럼 즐거워하시면서 백 살을 살아도 죽을 때는 억울할 것 같다고 한탄을 하신다. 그런데 내가 직조해내는 나의 일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수없이 떴다 풀었다 다시 뜨는 듯한 낡은 실이 몇 가닥씩 어떤 때는 온통 끼어들곤 했다. - P20

나는 속에서 활활 열불이 날 것 같은 예감에 지레 괴로워하면서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유리창으로 보기보다는 차가운 날씨였다. 블라우스 소맷부리로 힘센 날짐승처럼 휘몰아친 바람이 소매를 럭비공처럼 부풀렸다. 노인정 너머로 마주 보이는 동회 옥상에 꽂힌 태극기와 새마을기와 시 마크가 들어 있는 청색기도 어찌나 세차게 펄럭이는지 무지비한 채찍질을 연상시켯다. - P37

날로 고조되어가는 나의 관심이 나도 모르게 가연이네 생활을 조금씩 간섭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침투에 가연이는 조금도 방어적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나타나기 전부터 그녀는 이미 생황르 방기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넉넉지 못하기로서니 그렇게 황폐를 도처에 처바르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 P53

만나본 그는 우리를 가르칠 때의 송사묵 선생님을 너무나도 빼닮아 사람이 자식을 남기고 죽는 한 아주 죽는 게 아니라는 걸 소름이 끼치도록 분명히 깨닫게 했다. - P186

나도 방금 달을 밀어올린 숲이 웅성대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웅성거림은 미세한 바람이 되어 우리가 앉은 옥상의 공기를 소곤소곤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이 행복이라는 거 아닐까. - P358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에서 무거운 추가 아래로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내 가슴속엔 도대체 추가 몇개쯤 달린 걸까? 내려앉아도 내려앉아도 또 내려앉을 게 남아 있으니. 그 추는 내 안에 있으면서도 내 체온과는 무관하다. 무겁고도 차디차서 배창자를 뚫고 지나가는 통로를 선연히 느낄 수가 있다. - P361

전에는 중요하던 게 지금은 하나도 안 중요해진 게 또 뭐가 있냐구요? 형님이야말로 왜 안 하던 짓을 하실까? 전혀 귀담아들으실 것 같지 않은 얘기에 관심을 보이시니 말예요. 전에는 형체가 있어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그후엔 아니었어요. 눈에 안 보이는 걸 온종일 쫓을 적도 있어요. 아녜요. 육체와 영혼의 문제가 아니라구요. 그건 나한테는 너무 거창해요. 장미꽃과 향기의 문제예요. 장미꽃은 저기 있는데 향기는 온 방안에 있다. 향기는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는 걸까? 고작 그 정도예요. - P392

그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될 수가 있답니까. 어찌 그리 독한 세상이 다 있었을까요. 네 형님? 그나저나 그 독한 세상을 우리가 다 살아내기나 한 걸까요? - P402

수자는 아득하게 들리는 기적 소리를 식별하려고 청각을 곤두세우듯이 그녀 안에서 웅성이는 불안한 소요를 감지하려고 신경을 모은다......수자는 마치 마음에 드는 그림엽서를 마땅한 벽면에 찾아 붙여놓듯이 싱숭생숭해지려는 마음의 갈피를 이렇게 고정시켜버린다. 창 밖의 봄은 이미 예감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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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3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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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저장

자네 말이 옳았어. 인간이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서 과거의 불행한 추억을 떠올리는 일에 매달리는 대신 현재를 있는 그대로 담담히 견단다면 고통이 훨씬 줄어든 텐데 - P11

나는 이번 일을 통해서 다시금 깨달았네. 술수나 악의보다는 오해와 게으름이 더 많은 갈등과 다툼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 - P12

황혼이 깃들면 나를 둘러싼 지상과 하늘이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내 영혼에 안식을 가져다준다네. 나는 이따금 상념에 잠기곤 하지. 아, 내 안에 가득 차오른 이 따사로움을 과연 그림으로 재현해 낼 수 있을까? 종이 위에 그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내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이듯 종이가 내 영혼의 거울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내 자신이 없어진다네. 대자연의 장엄한 힘에 압도당하고 마는 걸세 - P14

사람들은 대게 먹고사는 일에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어쩌다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시간이 생기면 아주 불안해하고 말이야. 그러고는 갖은 수단을 동원해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네. 아, 인간의 운명이여! - P18

아이들은 무언가를 원하면서도 왜 그것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지. 이 점에 대해서는 박식한 교사나 교육자들 모두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네. 그러나 어른들도 아이들과 별다를 바 없어. 이 지상에서 어쩔 줄 모르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네. 진정한 목적을 향해 행동하지 못하고 비스킷과 케이크, 아니면 회초리의 지배를 받지. 누구도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주 명백한 사실일세. - P22

그 이후로도 해와 달과 별들은 고요히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도무지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지낸다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온 세계가 사라져 버린 듯해. - P51

모든 일반적인 명제에는 예외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변호를 할 필요가 뭐가 있어! 그는 자신이 뭔가 성급한 발언을 했거나 일반적이고 확실치 않은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말을 계속해서 제한하고 수정하고 가감한다네. 그래서 마지막엔 이도저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 P88

"당신 같은 사람들은 어떤 일을 말할 때 ‘이건 좋다. 저건 나쁘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어떤 행동에 특별한 속사정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나 했나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지는 않을 겁니다." - P89

"나약함 때문이라고요? 제발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폭군의 혹독한 압제하에서 신음하던 미눚ㅇ이 마침내 궐기하여 그 폭압의 사슬을 끊어 버리는 경우에도 그걸 나약이라고 말할 겁니까? 자기 집에 화재가 나자 놀란 나머지 맨 정신으로는 움직이지도 못할 짐들을 온 힘을 다해 드는 사람, 치욕을 당항 데 분노하여 여섯 명과 맞붙어 이기는 사람도 당신은 나약하다고 말할 건가요? 노력하고 앴는 것이 장점이라면서, 왜 정도를 벗어난 힘은 나약하다고 말하는 거죠?" - P91

"인간은 한계를 가진 존재입니다. 기쁨과 슬픔, 고통을 어느정도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면 무너져 버리지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어떤 사람이 약한가 강한가가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그가 그 정도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에요. 나는 자살한 사람을 겁쟁이 취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심한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부른다면 정말 무례한 일 아니겠습니까?" - P94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 안되는 건 아닙니다. 심신이 쇠약재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다시 일어설 힘조차 없고 또 어떤 신통한 치료로도 몸이 회복되지 않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정도가 될 때 우리는 그걸 죽을병이라고 부르지요.
이것을 정신에 적용해 봅시다.사람의 마음이 점점 작아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그는 여러 가지 인상들에 압도당하고, 마음속에는 관념들이 고착되어 가지요. 그러다가 점점 커져 가던 정열이 마침내 침착한 분별력을 앓고 파멸하고 맙니다.
평온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이처럼 불행한 사람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를 설득하기 위해 어떤 조언을 해 줘도 소용이 없어요. 그건 건강한 사람이 환자 옆에 아무리 오랫동안 붙어 있다 해도, 정작 환자에게는 자신의 힘을 조금도 불어넣어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P95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이 들뜬다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 보면서, 자유가 싫증이 나서 스스로 안장과 짐을 얹게해 달라고 했다가 죽도록 혹사당했다는 말의 우화를 떠올리곤하지. 어찌해야 될지 도무지 모르겠어. 환경의 변화를 동경하는 나의 욕망은 내 마음속의 불쾌한 조급함에 불과한 게 아닐까? 그것은 어딜 가든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지 않을까? - P105

낙천적인 마음가짐이라! 이런 말을 쓰면서도 웃음이 나온다네. 아, 내가 조금이라도 낙천적인 기질을 타고났더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어떤 사람들은 보잘것없는 힘과 재능을 가지고도 유쾌한 자기만족에 빠져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는데, 어째서 나는 내가 가진 힘과 재능에 절망하는 걸까? 신이시여, 당신은 내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허락하시면서, 이찌하여 자신감과 만족감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까?
참자! 참는 거다! 그러면 더 나아질 거야. 그래, 빌헬름, 자네 말이 맞네. 날마다 세상 사름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면서 그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를 보고 난 후부터는 훨씬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어. 확실히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 자신과 비교하도록 만들어진 모양일세. 행복이나 불행은 우리가 배교하는 대상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러니 혼자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네. - P117

우리의 상상력은 본래 더 높은 것을 추구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문학의 환상적인 이미지에 영향을 받아 피조물들을 순서대로 죽 늘어세우는 경향이 있네. 거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장 아래에 두고, 우리 외의 것은 모두 우리보다 다 근사해 보이고 완벽하다고 여기지. 어찌 보면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는 곧잘 우리에게는 많은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네. 그리고 하필 우리가 갖지 못한 그것을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또한 그에게 우리가 가진 것까지 모조리 다 주어 버리고, 그에 더하여 우리에게 없는 이상적인 특징까지 부여한다네. 그렇게 가장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을 완성시키는 걸세. 사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창조물에 지나지 않아. - P118


반면 우리가 아무리 약하고 힘이 든다 해도 최선을 다해 전진해 나간다면, 비록 꾸물거리고 난관을 만난다 해도 돛을 달고 노를 저어 가는 다른 이들보다 어느새 앞서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네. 그리하여 다른 사람과 나란히 가거나, 다른 사람을 앞지를 때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느끼게 되는 법이지. - P119

서로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어야지. 건강, 명성, 기쁨, 휴식, 모조리 다! 다들 어리석고 무식하며 속이 좁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네. ‘좋은 의도‘라는 미명하에 말이지. 나는 가끔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라도 부탁하고 싶어져. 제발 그렇듯 성급하게 자신의 오장육부를 들쑤시고 다니며 스스로에게 성처를 주지 말라고. - P131

오, 내 마음이 쉽게 변한다면 좋겠어. 내 마음이 괴팍해져서 이런 기분을 날씨 탓을 한다든지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든지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원망하거나 계획이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탓할 수 있다면...... 그러면 견디기 힘든 불만과 불쾌라는 무거운 짐이 반으로 줄어들 텐데 말이야. - P167

그래, 그때 너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행복했구나! 하느님! 당신은 인간이 이성을 얻기 전과 이성을 잃었을 때에만 행복하도록 만드셨군요! - P179

불만과 불쾌감은 베르테르의 영혼에 점점 깊게 뿌리내렸고, 서로 강하게 엉켜서 그를 잠식해 나갔습니다. 정신의 조화는 완전히 깨져 버렸고, 내면의 흥분과 격정이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그의 본성이 지녔던 모든 힘이 뒤죽박죽되어 그는 완전히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지금까지 모든 불행에 대항했을 때보다도 더욱 초조하게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극도의 초조함과 불안함은 그 안에 남아 있던 정신력을 모두 갉아먹어, 그의 생기와 명민함까지도 모두 소진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점점 더 우울한 사람이 되었고 점점 불행해졌습니다. 그럴수록 판단력은 더 흐릿해졌구요. 적어도 알베르트의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더군요.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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